일루전ILLUSION
제1부 폭동 전후(줄거리 18회)
그런데 한 시간의 점심시간, 빳빳한 종이처럼 얇게 재제한 판목재로 일회용 도시락 그릇에 담은 왜식 도시락이 학교에서 제공되었어요. 식사를 끝내자 휴식이 시작되었지요.
그가 식사를 마치자 바로 음악실로 간다는 것을 느끼고 서둘러 뒤 따라 음악실로 갔습니다. 우리는 마치 여러 해 만에 만난 연인이기나 한 것처럼 그런 서로의 표정을 확인하면서도 돌부처처럼 발이 굳어 있었습니다. 나는 문간에, 그는 피아노 옆에 그렇게. 내 발걸음 폭으로 대여섯 발자국 거리? 그런데도 그에게 달려가 안길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이제 채점이 끝나면 방학동안 어디에서 지내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어쩌면 이 학교에 더 다니지 못하게 될지 모릅니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예? 혹시 어제 다투신 일 때문이라예?”
“나는 혁명의 뜻을 품은 사람이오. 이제 그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직장에 더 이상 매여 있을 수도 없는 거요. 이번 여름은 이 나라의 운명이 진정한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될 깁니다. 빠르면 해방 기념일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리 늦어도 올해를 넘기지는 않을 깁니다. 그 동안 전 선생님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소. 전 선생은 아름다운 분이고, 어린 학생들에게 귀중한 존재이니까 남아서 훌륭한 교육자가 되시오. 그러면 혁명이 성취되고 새로운 세상이 되었을 때 가장 빛나는 혁명의 교사가 되어 만날 수 있을 것이오.”
나는 그 순간 그를 결단코 놓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를 따를 수 있다면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던져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의 딸도, 교사라는 직업도 포기하고, 모로 세울 세상의 눈길도 다 받아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반소매 셔츠 아래로 내리 벋은 그의 하얀 한 쪽 팔을 두 손으로 꽉 붙들자 그는 당황해 했습니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내려다보면서 잡히지 않은 팔의 손으로 나의 손을 그의 팔에서 힘주어 떼어냈습니다.
“이러는 게 아니요. 지금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어요. 전 선생의 행동은 나의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 뿐 아니라 정결했던 우리의 관계도 우스꽝스런 짓거리로 되어버리게 할 것입니다. …… 전 선생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그는 나를 그렇게 달랬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나를 교실에 혼자 둔 채 복도로 나버렸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야말로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심정으로 피아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계속|10월30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