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7~11.쇠~불날. 볕과 비와 / 지리산 언저리 1·사람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서정춘, ‘봄, 파르티잔’ 전문)
긴 길.
내포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진주로 내려와 산청으로 구례로 함양으로...
벽소령 칠선계곡 백무동 한신계곡, 지리산 둘레길 운리-덕산 구간, 금계-인월 구간.
숲길이 아니라 도시에서 걷는 길이었다면 강행군이 쉽지 않았을 게다.
산길이 사람에게 주는 회복의 힘으로,
혼자도 걸었지만 몇과, 또 서른도 넘는 이들과 어깨 겯고 걷는 이들로 가능했던 걸음!
지리산에 깃든 물꼬 식구들도 만난.
지리산, 그 이름에 가슴 저리지 않을 이는 흔치 않을 것. 난들.
한국을 떠나있을 때라면 다시 한국으로 바삐 돌아오게 하는,
내게 손가락에 꼽히는 까닭 하나도 바로 지리산.
지리산은 시인 서정춘 선생님의 단 세 줄로 된 시로도 다 그려지고
(단 세 줄! 시가 모름지기 어떠해야는지 보여 주시는)
이어 목이 멘다. 더 어떤 형언이 가능할 수 있을까.
걷는 내내 나는 1950년대 언저리를 살았다.
그리고 분단의 세월이 또한 새삼 미어지게 서러웠고,
짱돌과 화염병 뒹구는 거리에서 보낸 젊은 날을 생각했다.
지리산은 내게도 역사다.
(중략)
그리고, 정규샘 편-
발해 시대의 뗏목을 재현해 발해 항로를 따라 떠났던 ‘발해 1300호’가 있었다.
그 배에 올랐던 넷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지만
대신 산 자들을 이어주었다.
정규샘은 형(현규샘)을 보냈고,
그 인연으로 배가 난파된 뒤 우리들은 만났다. 벌써 20년 전이다.
정규샘은 구례에서 유기농 쌀을 생산하고 있다, 130마지기 논에서.
쌀로 다른 농산물들을 바꿔먹기도 한다더라.
집에서 수진샘이 차려준 꽃밭 같은 밥상을 받았다.
사람 찾아오면 밖에서 대접하기 쉬운 요새 삶인 걸.
막둥이 서완이랑 숨바꼭질도 하고 놀았다.
돌아오는 길, 바리바리 싸 준 먹을거리들을 실으며(아주 이삿짐)
눈시울이 다 붉어지더라. 동기애(同氣愛)!
지리산 언저리에서 돌아오는 길, 하룻밤이 걸렸다.
자다 깨다 쉬다 일하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엉금엉금.
2017. 7. 7~11.쇠~불날. 볕과 비와 / 지리산 언저리 2·노래 셋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눈 쌓인 저 산만 보면
지금도 흐를 그 붉은 피 내 가슴 살아 솟는다/ 불덩이로 일어난 전사의 조국사랑이
...
나는 저 산만 보면 소리 들린다, 헐벗은 저 산만 보면
지금도 울리는 빨치산 소리/ 내 가슴 살아 들린다
김지하의 시를 빌어 박종화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거리에서
오랜 대학시절의 끄트머리를 보냈다.
빨치산 이현상이며들이 숨어들어 마지막까지 뜻을 지켰던 지리산은
주사파가 아니어도 가슴 떨리게 하는 성지였다.
그래서 지리산이 더 좋았을 게다.
그 산을 걷고 있으면 멀리 스미게 서러웠고 깊이 스미게 기뻤다.
얼마쯤의 나이를 먹고 이원규가 쓴 시를 안치환이 부른 노래로 사람들과 같이 불렀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반갑게 노고단, 반야봉, 피아골, 불일폭포, 벽소령, 세석평전, 칠선계곡, 반갑게 들먹이며도 이래서 오지 말고 저래서 오지 말라더니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서 그만 주저 앉아버리고 마니, 견뎌내던 힘이 그만 다 스러져버리나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견딜 만하다면 오지 말고 견디라는 말에 견딜 수 없어 달려가곤 했다.
가장 최근, 그래도 10년도 더 넘어 된 내가 부르는 지리산 노래는
80년대 운동가요를 생산해내던 정세현이 절집으로 들어가
범능이라는 법명으로 세상을 나와 만든 곡일 거다.
‘천리 먼 길 떠나지만 돌아오마, 살아오마/ 살아 못 오면 넋이라도 고향 찾아 돌아오마/
불타는 남쪽 하늘 전선으로 떠난 내님...’
그리고 그는 몇 해 전 영영 지리산 흙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리산은 산만이 아니라 거기 깃들어 사는 모든 것의 이름이고, 진한 역사의 이름.
비가 거세고 집요하게 내리는 날들 사이 지리산 둘레를 걸었다, 맨발로,
간간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건 아쉽고 안타까운 시절에 대한, 혹은 사람들에 대한 부름이기도 하고
내가 찾는 그이기도 하고,
내가 찾는 나이기도 했을 것.
둘레길이 흔하다. 제주도엔 올레길도 있고.
지리산에도 둘레길이 있더라. 그런데 이 길도 의미야 왜 없겠냐만
아무래도 내겐 산으로 들어가는 게 암만 더 당기다마다.
첫댓글 아~~~
영경씨~~~
너무 반갑네요.
글보니 더 그립고..
늘 주변에 힘과 용기와 행복이 되는 삶을 보여주는 영경씨~
보고싶다.
반갑습니다.
18주기에서 뵙고 이제이니 오래 되었군요.
모임 있었다 들었습니다.
두루 궁금합니다.
가끔 소식 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