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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행 17:11
예수님의 사역을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아니었다.
성경을 손에 쥐고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유대인들이, 그것도 그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충동하고 동원하여, 그리고 빌라도를 압박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사도들의 복음 전도를 방해한 자들도 유대인 지도자들이었다.
17장에서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유대인 회당에서 세 안식일 동안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다.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내가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였다.
그 중에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믿었으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왔다’고 하고,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고 한다’ 하여 고발하고 소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밤에 베뢰아로 보냈다.
그들은 항상 하던 대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달랐다.
베뢰아 사람들은 “더 너그러웠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1 베뢰아 사람들처럼 진리에 대하여 마음이 너그러워야 한다.
진리에 대하여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너그럽다는 원어는 고귀한 혈통, 가장 고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성경에서 쓰이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왕위를 받으러 간 귀인”(눅19:12),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에서 쓰였다.
이전의 개정역에서 이 단어를 ‘더 신사적이어서’라고 번역하였다.
진리에 대해서 너그럽고 신사적이고, 열려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도무지 배울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에 대하여 마음이 닫혀 있고 옹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해석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고 그대로 지킨다고 하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다고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9,막7:7)
그들의 믿는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과 권력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사람의 계명이 교훈인양, 진리인양 가르친 것이다.
목적과 동기가, 순수함에서 멀어지면, 진리를 왜곡하고, 그릇 가르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서도 헛되이 경배하게 되는 것이다.
제사는 열심히 드리지만 그들의 마음은 우상을 경배하는 것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들이 열심이 있었으나, 바른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그것은 형식이고, 바알과 아세라상을 더욱 섬겼다.
오늘날은 그때처럼 우상을 만들거나 제사하지 않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서도 마음 속에는 돈과 재물, 권력과 부와 명예가 우상이 되어 있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떡만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삼가라고 하셨다.
그들의 교훈이 바로 누룩이다. 그들의 가르침이 누룩이었다.
누룩은 이스트처럼 조금만 넣어도 전체를 부풀케 하고 변질시키는 것이다.
천국도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셨다.(마13:33)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이 있다.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만이 천국을 만든다.(고전5:8)
바리새인의 누룩은 순전한 말씀을 율법화시켜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법을 엄하게 해서 자기들은 특권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로 인해 억압과 피해를 받게 된다.
법이 엄하다고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후진국일수록 형벌이 엄하면서도 무질서하고 선진국에 갈수록 형벌이 덜 엄하면서도 질서가 지켜진다.
말씀과 법은 순전하고 정직해야 한다.
권력자들과 추종하는 세력들이 항상 자기들의 기득권을 위하여 말씀과 법을 악용하여 왔다.
진리는 어느 한 쪽을 편드는 것이 아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다.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말씀과 법을 세속화시킨 주범들이다.
하나님과 영적인 것을 믿지 않고 진리를 상대화하고 세상적 지혜와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법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지 않으면 모든 것은 상대화되고 만다.
사두개인들은 권력과 부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진리를 세속화하였고,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진리를 율법화하였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지나친 율법화로 말씀을 왜곡하는 바리새인의 무리들이 있다.
지나친 근본주의자들, 극단주의자들, 과격한 종교개혁자들과 경건주의자들.
이데올로기 깃발을 들고 자기들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하는 무리들이다.
자기 교단만 진리라고 믿는 무리들도 이에 해당한다.
강화도에 가면 감리교 아닌 교단은 다 이단이라고 한다.
순천에 가면 통합측 교단이 아니면 다 이단이라고 한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다.
또 지나친 세속화로 말씀을 왜곡하는 사두개인의 무리들이 있다.
신정통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믿음신학 형통신학 기복신앙들이 다 이에 해당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 아니고, 사람의 지혜가 우선이고, 바벨탑 쌓는 것이 우선이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다 돈을 좋아하고,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사람들이다.
진리에 대해 너무 너그럽다가 저지르는 패악들이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아야 한다.
진리에 대해서는 어린 아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엡4:14)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이 그 해결책이다.
2.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말씀에 대한 간절함, 진리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재물에 대한, 세상에 대한, 간절한 마음들이, 말씀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부와 권력에 대해서만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말씀과 진리를 왜곡하고,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 것이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하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멀었다.
우선은 부와 권력을 손에 쥐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멸망의 길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땅에서도 내려지고 남은 심판은 마지막 날 다 내려질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반드시 사필귀정이어 왔다.
우선은 불의와 부정이 이기는 것 같고, 누리는 것 같지만, 심판은 반드시 있어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는 양육강식이 되어, 지옥과 멸망으로 치닫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처럼 역사에 눈이 어둡고 근시안적인 동물도 없을 것이다.
권불 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역사가, 속담이 말해주는데도,
자기만은, 자기들의 세력만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고, 온갖 패악들을 저지른다.
역사를 알아야 하고, 미래를 제대로 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부와 권력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말씀께로 돌이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린 쾌락의 갑절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매일 호사스런 옷과 잔치로 향락을 즐기던 부자가, 지옥의 뜨거운 불에서,
자기 혀를 식혀 줄 한 방울의 물을 구걸하는 날이 온다.
고난을 받은 자는 위로를 받고, 좋은 것을 받은 자는 괴로움을 받는 날이 오고야 만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일지라도 부와 권력의 탐심, 곧 우상을 버리지 못하면,
가나안 땅일지라도, 사사시대의 암흑의 땅으로, 저주와 고통을 받고,
기독교가 부와 권력을 쥐었던, 중세 천년도, 암흑의 땅으로 저주와 고통을 받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지 않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진리를 붙잡지 않으면,
인생도 사회도 국가도 혼란과 고통과 비극의 저주를 받게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 내 인생과 가정도 나라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
나무가 맑고 깨끗하고 좋아져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말씀도 없고 진리도 없는, 탐욕으로만 가득찬 못된 나무가,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자본주의를 바로 세운 이들도,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고,
세계를 지배한 영국과 미국을 바로 세운 것도,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은 청교도들이었다.
중세 천년을 무너뜨린 종교개혁자들도, 말씀을 간절히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도, 매일 성경을 읽을 때도,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 말씀이 내 중심이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고, 내 삶의 기준과 원칙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길만이, 그 간절한 마음만이, 내 인생을 바로 세우고, 행복과 번영으로 이끌 수 있다.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없으면, 그 마음은 어느새 탐욕과 우상으로 채우게 돼 있다.
모래 위에 아무리 집을 근사하게 지은들, 폭풍이 몰아치는 날 견딜 수 없다.
오직 말씀의 반석 위에, 간절한 마음으로 세워야, 모든 풍파를 견디고 승리할 수 있다.
3. 베뢰아 사람들처럼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상고하는 것은 자세히 살펴 보는 것이다. 조사하고 검토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분별하고, 사법적으로 조사 심문하는 뜻도 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의 말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 곧 목사들, 신학교 교수들이기 때문에,
들은 말씀이, 그들이 쓴 책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거짓 목사들한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다가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성령으로 역사한다는 사람들한테 간절한 마음으로 받다가 잘못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미국 티비 설교 방송을 열심히 듣다가 돈 뺏기고 믿음 잃고 배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신비주의자들, 경건주의자들은 마음 속에서 말하는 직통계시만 듣고, 기록된 말씀을 무시하다가,
교회와 멀어지고, 이단이 되고, 미혹의 영들의 친구가 되고 말았다.
자유주의 신학은 경건주의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 아들들이 대부분의 철학과 현대사상들과 현대신학을 낳았다.
진리에 대한 추구에는 강하면서도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지 않았기에 진리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성경을 매일 상고한다는 것은 오직 성경만을 살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건서적을 유산으로 남겼다.
사람은 다 자기신학과 자기철학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겨우 유리 조각을 발견하고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바른 해석, 바른 적용은 경건서적들을 통해서 배울 필요가 있다.
그것들을 쓴 사람들은, 하나님께 확실하게 깨끗하게 쓰임받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 신학만 내 지식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지가복음에 빠지고, 이단교주가 되기가 십상이다.
성경을 제대로 상고할려면, 내 마음 속에, 사고방식 속에, 숨어 있는 우상들을 뿌리채 뽑아야 한다.
말씀을 오래 듣고 성경을 많이 봤는데도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거의 바뀌지 않은 사람들을 본다.
말씀을 듣고 성경을 보며 내 마음도 상고하고 심문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반성과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경건서적들은 바로 이 작업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을 바로 잡아주고,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바꾸어준다.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바로 상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참고서요 아버지 같은 스승들이다.
매일 성경을 상고하면서 검증된 경건서적을 한 달에 한 권씩은 꼭 보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바란다.
다음 카페 ‘청교도 아카데미’에 들어오면 대표적인 경건서적들을 소개하고 요약하고 있다.
하루 평균 50명 이상이 방문하고, 블로그 ‘청교도의 길’은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책을 보지 않고서는 사람의 생각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지 않고서는 사고방식을 바꿀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새롭게 하는 관점과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작업을 결정적으로 확실히 도와주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스승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지만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버지는 많지 않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성경을 매일 상고하는 훌륭한 스승들을 낳고 책을 쓰게 하셨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다가 아니다.
돈을 모으고 부동산을 사고 좋은 차를 사고 즐기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하신다.(골3장)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
바울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땅의 일만을 생각하며, 욕망의 배를 신으로 삼고, 부끄러운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고, 결국 멸망으로 인생을 마치고 만다는 것이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그 마침이 축복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영광이다.
그들의 신은 성경의 참 하나님이요, 그들은 십자의 친구로 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도,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우리 눈에 천국을 넣고, 그 천국의 눈으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자.
그래서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고, 저곳에 가서도 영원한 천국을 살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경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하나님의 성경을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다.
성경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할 때,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된다고 약속하셨다.
그 축복과 형통의 길로 가서 2016년을, 남은 인생을, 빛나는 해, 빛나는 인생으로 만들자.
첫댓글 아멘.
샬롬!!!
아멘 너무나 귀한 말씀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