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revelation)가 사라진 구약성경
흔히 기독교를 자연종교에 반해서 계시종교라고 한다. 자연종교는 인간 스스로 구원의 방법을 찾아보고 연구하는 것이지만 계시종교는 인간의 구원적 삶과 영원의 문제를 신이 계시하여 주신 가르침에 근거하여 믿게 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거나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계시하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으로 계시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는 면면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 전체에 걸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시되었다면 ‘계시’란 단어가 성경 전체에 어느 정도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계시란 단어가 신약에만 나타나지 구약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킹제임스역을 보면 revelation(계시)이란 단어가 12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 단어가 구약에서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고 신약에만 12번 나타난다. 구약에서는 한번도 계시란 단어를 킹제임스역은 쓰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진짜로 구약에서는 원문에서 계시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계시란 히브리어 단어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단어를 잘못 번역한 것은 아닐까?
필자는 이런 의문들을 가지고 하존 (!Azàx)' 이란 히브리어단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존이란 히브리어는 히브리어성경(구약)에 35번 나타난다. 영어성경은 이 단어를 거의 모두 vision 이라고 번역하였다. NASV는 35번 모두 vision으로 번역하였고 NRSV 는 한곳만 prophecy로 번역하고 나머지 34곳은 모두 vision으로 번역하였다. 또 유대인 학자들의 번역인 TNK는 아홉 곳을 prophecy로 번역하고 나머지 26곳을 vision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NKJV는 35군데 중에서 삼상 3:1과 잠 29:18을 revelation으로 고치고 나머지 33곳은 모두 기존 번역인 vision을 그대로 두었다.
이에 비해 한글성경은 그래도 ‘계시’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 편이다. 개역한글판은 이 단어를 이상(17번), 환상(1번), 묵시(16번), 계시(1번) 네 가지 단어로 번역하였다. 표준새번역도 이상(1번), 환상(24번), 묵시(5번), 계시(5번)로 번역하였다. 묵시란 단어는 중국어 성경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이상이나 환상은 영어 vision에 대한 우리말의 대응어로 사용한 것 같다. 환상대신 이상을 사용한 번역자는 환상이 좋지 않은 뉴앙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상을 사용하였을 것이며 이상 말고 환상으로 번역한 번역자는 이상보다는 환상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여서 환상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상과 환상이란 단어와 계시와 묵시란 단어를 처음부터 어떤 의도를 가지고 히브리어 단어의 대응어로서 사용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상과 환상 중에, 또 계시와 묵시 중에 각각 한 단어로 통일 하는 것이 더 적절한 번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서 이 ‘하존’이란 단어가 문맥에 따라서 ‘환상’이란 뜻과 ‘계시’란 뜻으로 구분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영어성경은 전체적으로 한 단어인 vision을 사용한 데 비해 한글성경은 4가지 단어를 섞어서 사용하였다. 과연 한글성경 번역자들은 이 단어가 쓰여진 문맥에 따라서 4가지의 다른 단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였는가? 아니면 부분적으로 이렇게 번역하고나서 하존이란 단어의 번역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하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후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 성경번역은 일관성 작업이 빠져있다. 어쩌면 일관성 작업을 하려고 하여도 히브리어성경에서 직접 번역하지 않아서 이런 작업을 아예 시도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지난 호에서 말한 total 번역 기법의 내용이 바로 이 일관성작업이다. 모든 성경번역은 번역을 하고 나서 반드시 이 일관성작업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존’이란 단어가 쓰인 35번의 용례를 살펴보면 모두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나타내시거나 보여주시거나 알리실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나타날 때 반드시 어떤 상황이 눈에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음성으로만 나타날 수도 있었다.
오늘 본문은 ‘하존’이란 단어가 구약성경에 처음 나타나는 곳이다. 쉬무엘이 세 번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쉬무엘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엘리에게 달려갔다(*삼상3:1-9). 이것은 쉬무엘이 음성만 들었지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네 번째 말씀하셨을 때 쉬무엘은 하나님께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종이 듣고 있다’고 말한다. 본문의 상황으로 볼 때 쉬무엘이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고 보기는 힘들고 그냥 음성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환상(幻像)’ 이란 환영(幻影)과 비슷한 말로서 소리보다는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상(異像)’도 환상과 똑같은 상(像)자가 들어 있으므로 보이는 것을 강조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쉬무엘에게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음성만 들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는 ‘하존’에 대한 번역으로서 ‘환상’이나 ‘이상’이란 단어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계시(啓示)’가 더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계시에 관한 뜻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의 지혜로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일을 신이 가르쳐 알게 함’이라고 나와있다. ‘계시’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가 꼭 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수단으로든지 하나님께서 비밀한 것을 드러내어 알게 하시는 것이라고 한만큼 그 뜻이 ‘이상’이나 ‘환상’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또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관련이 있으므로 ‘하존’의 대응어는 ‘환상’이나 ‘이상’보다는 ‘계시’가 더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히브리어 직역 구약성경은 35번 모두 ‘계시’로 번역하였다.
왜 우리말 성경은 ‘계시’나 ‘묵시’로 번역을 통일 시키지 않고 ‘환상’이나 ‘이상’이란 단어를 썼을까? 그것은 영어성경에서 ‘하존’의 대응어로서 vision을 썼기 때문이다. 왜 영어성경에서는 ‘하존’의 대응어로서 ‘revelation’을 쓰지 않고 ‘vision’을 썼을까? 그것은 칠십인역의 영향 때문이다. 칠십인역은 ‘하존’의 대응어로서 o[rasij를 썼는데 이 단어는 ‘보다’ 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o[raw의 명사형이기 때문이다.
KJV는 사무엘상 3장 1절의 ‘하존’을 ‘vision’이라고 번역하였으나 NKJV는 ‘revelation’으로 고쳤다. 한글성경 중에서는 공동번역이 사무엘상 3장 1절의 ‘하존’을 ‘계시’로 번역하였다. KJV가 이 단어의 대응어로 vision 을 썼을 때 다른 번역들은 아무 의심 없이 모두 손 따라 번역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존은 하나님과 관련되어서만 사용되었고 하나님께서 비밀스러운 것을 택한 자에게 드러내 보일 때 사용한 것을 감안한다면 영어의 ‘vision’ 이나 우리말의 ‘환상’이나 ‘이상’보다는 계시가 더 적절한 대응어로 보여진다. 만일 이 주장이 일리가 있어서 받아들여진다면 구약성경은 35개의 revelation을 다시 찾은 결과가 될 것이다.
요즈음 목회자들이 젊은이들에게 vision을 많이 강조하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간구해야 할 것은 vision이 아니라 revelation 이다. vision 은 다분히 자의적인 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구원은 전적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며 구원받은 자가 해야 할 일도 마땅히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한다. 십자가가 예수님의 vision 이었겠는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였다. 요즈음 강단에서 계시(revelation) 대신에 vision을 많이 가르치는 이유가 혹시 구약에서 ‘하존’을 revelation 대신에 vision으로 번역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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