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길라잡이>
수난의 길에서 고통과 실패, 좌절, 모함을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된다. 예수님께서는 다가오는 군사들과도, 팔아넘긴 유다와도, 최고 의회와 대사제에게도, 총독 빌라도에게도 당신을 강변하거나 반박하지 않으신다. 죽음의 길을 막아서려 했던 베드로를 혼낸 적은 있어도 그분께서는 죽음에 이르는 길 위에서 어떠한 저항도 불평도 없이 묵묵히 걸어가셨다.
잡아가려는 이들에게 당신을 내어 주고, 사람들의 질문에 순순히 답하며, 하느님 나라에 대해 말하고, 환멸의 목소리에 묵묵하며, 십자가에 매달려 그 아래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묶어 주며, 하느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고개를 떨구신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의 길 위에서 당신의 신성은 완전히 감추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이사 53,7) 나약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이신다.
나는 철저하게 나의 약점과 허물을 감추려 애쓰며, 그 그림자라도 보일세라 바라보는 이들의 눈을 찌르고 다가오는 이들의 다리를 꺾으며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이사 53,5) 그리고 이제 그 십자가 죽음과 사랑으로 생명의 길을 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