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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국 [제25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작]
허은규
복국 식당 앞에서는 가끔 복卜집, 점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용한 점집의 무당처럼 식당 안에 돗자리를 깐 복어가 사람들의 막히고 엉킨 속을 상담하고 있다. 신 내린 무당인양 제 살점을 휘휘 풀어 국탕 속에서 한바탕 살풀이굿을 하고 있다. 복국집 간판에 그려진 은밀복의 웃고 있는 표정이 문득 애기보살의 볼때기 같다는 문과적인 상상이 스친다.
'복어 맑은탕'을 '복지리' 또는 '복국'이라고 부른다. 복어로 만든 요리를 대하면 누구나 한 움큼의 긴장이 어리기 마련이다. 성냥개비 머리만한 미량에도 사람이 절명할 수도 있다는 풍문이 자꾸만 의식될 수밖에 없지만 이 야릇한 긴장이 도리어 맛을 깊게 각인시킨다. 국물 한 숟갈에도 온 미뢰를 집중하여 맛을 감별하게 만드는, 오묘한 집중을 낳는다.
특유의 담백한 맛은 독과 필시 연관이 있으리라. 풋매실이나 은행열매처럼 극미량의 독을 가진 것들은 알싸한 감칠맛을 내곤 한다. 열로서 열을 다스리는 이열치열의 원리처럼, 또 회초리로 아이들의 버릇을 고치는 것처럼 독한 것이 나쁜 성분을 다스리는 수가 있다. 복어도 그러한지 그 속의 영양분은 신체의 해독을 담당하는 간 기능을 북돋는데 특히 탁월하다.
독성 있고 요리하기도 가탈스러운 복어가 귀한 식재료로 대접받는 건 담백한 살점 속에 아구찜 속 아귀나, 삭혀낸 홍어처럼 저만의 고유한 맛을 품고 있어서다. 버려지기는커녕 오히려 애지중지 환영받는 복어를 보면, 아무래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맛을 지니면 결코 버림받지 않고 되려 귀하게 대접받는 모양이다. 남들이 업수이 여길 수 없는 실력이나 결기, 그런 특징 있는 독기를 제 몸에 단도처럼 간직한 채 살라고 복어는 말한다.
아버지는 유독 복국을 좋아하셨다. 술을 즐기는 성미가 아니시고 대취하는 경우가 드문데도 복국 집을 즐겨 찾곤 했다. 맑은 탕 한 그릇을 후룩후룩 비우면서 일자리의 상실과 그로인한 가족 간의 갈등까지, 응어리진 속사정을 남몰래 풀고 있었을 것이다. 혼자서 식당에 가기 무렴할 때는 종종 나를 대동했다. 어떤 때에는 어머니가 등을 떠밀며 '부자간에 간만에 외식이나 하고 오라'며 부추기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돌돌 엉킨 감정의 낚싯줄은 식당에서 마주한 때만큼은 뒷주머니에다 쟁여 둔다. 뜨거운 국을 사이에 두고 부자의 갈등이 살점과 야채처럼 함께 끓어 팔팔 우려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가 종종 나를 대동한 채 식당엘 가는 건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모든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식당의 차림표를 펼치면 크고 투실하게 살이 오른 복어의 사진이 도드라지며 옆에는 간단한 설명이 곁들어진다. 복어는 '복스러운 물고기'란 뜻으로 읽히지만 실은 '복부가 부풀어 오르는 물고기'란 뜻이다. 그러나 복어의 '복'자를 꼭 복부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복어는 과거에 강돼지라고도 불렸다. 돼지는 머리가 풍어제나 개업식 고사에도 사용되고, 편육과 수육은 잔칫날에 빠지지 않을 만큼 복스러운 동물이다.
달마대사나 소크라테스처럼 대인군자의 모상은 대개 불룩하고 넉넉한 뱃살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무릇 뱃심에서부터 인정과 배짱이 나오는 법이다. 복어는 넉넉하게 늘어진 배와 뚱뚱한 외관을 두르고 있으므로 복어의 '복'자가 꼭 포만이나 행복과 관련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재밌게도 바다 건너 일본에선 복어를 '행복'이라는 뜻의 '후쿠'라고 호명하기도 한다니, 복어의 심상은 퍽이나 흥미롭다.
항아리나 복주머니, 쌀가마니가 둥글듯 곡선 완만한 것들은 정겹다. 복어는 배흘림기둥 닮은 불룩한 뱃살과 뚱뚱한 몸피를 갖고는,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귀염성이 있는 고기다.
복어를 낚아다가 지상에다 부려 놓으면 뽀득뽀득 이를 간다. 홀로 독수하는 과부처럼, 꼭 살아남아야 할 일이 있는 백절불굴의 전쟁 포로처럼 뽁쟁이는 제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한참을 빠득거린다. 날카로운 이빨만 있으랴. 살점이 질긴 탓에 낚싯바늘이 박히면 쉬이 빠지지 않을 정도이고, 위험을 만나면 영판 딴 모습으로 몸을 부풀려 포식자를 놀래키기도 한다. 독과 이빨, 질긴 피부에다 부풀어 오르는 성미까지, 이리보고 저리 봐도 결코 허투루 볼 예사 고기가 아니다.
커졌다 작아졌다, 능소능대의 처세술 덕에 복어는 바다에서 천적 없이 살아남는다. 유능한 생존의 대가요, 처세의 달인이다. 몸을 잔뜩 부풀리는 우스꽝스런 몸짓이 허장성세 같지만 이 수신호를 무시하고 복어를 삼키면 예외 없이 중독되어 삼킨 자나 먹힌 자나 둘 다 죽고 만다. 공멸의 위기에서 상생의 방도를 일러주는 친절한 표지판이 복어의 부푸는 뱃살이고 보면, 이 세상의 불행한 것들, 치명적인 것들이 닥치기 전에 복어처럼 머리 신호를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가 과장된 손짓을 섞어가며 한참 재미난 이야기에 열을 올리실 때 마침 주문한 복국이 나온다. 미나리와 쑥갓, 콩나물을 가득 넣고 우려 낸 뽀얀 국물이 흡사 비눗물 같다. 이토록 맑기에 사람 속까지 칼칼하게 씻을 수 있는가 보다. 쫄깃하고 탄력 있는 살점 몇 덩이가 하얀 탕 속에 큼지막이 떠있다. 담박한 국물에다 매운 양념을 풀면 알알한 맛이 감돈다. 중화된 복어의 향이 밀물처럼 입속에 차오르고, 쫀득한 식감이 혀 위에서 들꿩처럼 튄다.
흔하면 저렴하고 귀한 것은 비싼 게 세상이치지만, 복어의 매력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별미를 접할 수 있는 데 있다. 낚시꾼이 낚고 나선 잡어 취급하며, '아무 짝에도 못 쓰는 고기'라며 갯바위로 던져버릴 때, 내동댕이쳐진 복어는 세상 향한 울분과 깊은 원한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한으로 주먹질하기보단 도리어 제 가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투명한 국물을 우려내었다.
"이것 봐, 세상에 울분 깊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런 버림받은 사람들의 응어리진 사연이 훨씬 더 감명 깊잖어."라고 제 경우를 들어 항변한다.
복국은 일반 가정집에서 탕탕 도마를 때리며 손질한 후 부추 넣고 미나리 넣고 뚝딱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닌데도, 이 국에서 서민의 정취를 느낀다. 아무래도 복어가 소외받고 도외시되는 약자의 고통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복어는 바다 밑을 헤엄치는 동안에 쉬지 않고 성게와 조개를 씹고 가재와 게를 씹어 삼켰다. 단단한 이빨로 족히 한 트럭 분량의 영양가 높은 바다 사료를 꾸덕꾸덕 소화 시킨 후에는 자기만의 고유한 풍미를 두르곤 도시의 밥상으로 튀어 올랐다. 맑은 자리 가득 자신의 살점과 영양까지 모두 우려내는 복어의 성미, 과거와 생명까지 다 쏟아낸 복어의 오롯한 자기 투신!
"나를 봐, 나처럼 바닥까지, 껍질까지 아낌없이 다 한번 쏟아내어 봐, 지금껏 삼켰던 좋고 값진 것 모두를, 속에 것을 몽땅 다 뚝배기 그릇 속에 시원하게 토해 내어봐"라며 뭉텅뭉텅 썰린 복어 살점이 나에게 일갈한다.
몸통이 나뉘어 요리된 마당에도 그릇 가득 묵직한 화두를 우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복어는 전설 그대로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사랑받던 벗이요, 질긴 껍질 닮은 고집과 신념을 간직한 뼈대 있는 가문의 후예인가 보다. 깔끔한 복국의 뒷맛이 흡사 대가가 집필한 책 한권을 다 읽고 난 여운과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찬양이 될른지.
식당 여기 저기 놓인 식탁에서 묵묵히 복국을 뜨는 사람들은 다들 퍽이나 속이 풀리는지 연신 땀을 훔친다. 복국의 첫술을 뜨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시원하다'라는 감탄사, 이 첫키스와 같은 쾌감 때문에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복국을 찾을 것이다. 무릇 인정하고 사랑 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속을 뻥 뚫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타인을 자기에게 계속 이끌려면 엉킨 속을 휘휘 풀어줄 줄 알아야 한다고 복어가 말한다.
복어가 펼쳐놓은 불립문자의 강론 가운데 묵묵히 수저를 놀리는 나에게 아버지는 "복국은 아무나 먹는 게 아니야, 사나이만 먹을 수 있는 거야."하고 짐짓 너스레를 보이신다. 뜨거운 국물에 달아오른 아버지의 표정이 한결 푸근해 보이고 간간한 맛 덕분에 기분이 넉넉히 풀리신 듯하다. '어쩌면 내가 새긴 독과 응어리를 아버지는 복국으로 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 하니, 복어가 나보다 더 효자 같아 슬며시 죄책감이 든다.
-당선소감
마음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응모를 했음에도 당선의 기대를 스스로 축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공부하며 읽었던 다른 분들의 글이 탁월했기 때문이고 또 좋은 글에 고정된 기준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응모도 했으니 아쉬움은 없다, 다시 열심히 써보자’라고 마음을 다독이던 찰나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겨울바람이 시리게 불어도 따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해가 지는데도 점점이 밝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쌀가마니 몇 부대를 쌓은 듯 든든했습니다.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그동안 써오던 글에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기 중의 수증기는 식어서 비가 되어 내릴 수도 있고, 얼어서 눈과 우박이 되어 내릴 수도 있습니다. 같은 수증기인데도 말입니다. 아무래도 수증기의 모습이란 자신이 간직한 고유성만큼이나 날씨와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도 큰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제가 수상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분과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동양일보에 진심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수필을 쓰고 공모를 준비하며 귀감이 되는 글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색 있는 글을 쓰신 원작자분들이 다 저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저를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가족에게 고마움을 보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전국 각처에서 응모한 191편을 살펴보면 아직도 수필을 너무 쉽게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반적으로 문학성은 높아졌지만 그저 자신의 회상기나 가족의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 주변의 감상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필을 작품이라고 내놓기는 민망하다. 각 지역에서 수필이란 문학 수업을 받는 열성을 보이지만 남다른 소재와 주제 의식을 잘 소화하는 것이 문제다. 작품은 크든 적든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꾸밈새가 없이 자연스럽게 문장 수련을 쌓았으면 싶다.
이번에 뽑은 장원작 ‘복국(허은규)’은 많은 작품들을 읽는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훌륭한 수필을 만나는 기쁨은 글쓰는 사람의 행복이다. 중후한 수필이 자칫 딱딱하기 쉬운 분위기를 화려한 문장으로 다양한 식견으로 황홀하게 이끌어준다. 흔히 지나칠 법한 복어 요리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복집과 점집을 연상하여 살풀이라도 하듯 그리로 이끈다. ‘복국집 간판에 그려진 은밀복의 웃고 있는 표정이 문득 애기보살의 볼때기 같다’고 한다. 복어의 독성을 잘 활용한다. ‘남들이 업수이 여길 수 없는 실력이나 결기, 그런 특징 있는 독기를 제 몸에 단도처럼 간직한 채 살라고 복어는 말한다.’ 복어의 생존 전략을 상찬한다. ‘커졌다 작아졌다, 능수능대의 처세술 덕에 복어는 바다에서 천적 없이 살아남는다. 유능한 생존의 대가요, 처세의 달인이다. 몸을 잔뜩 부풀리는 우스꽝스런 몸짓이 허장성세 같지만 이 수신호를 무시하고 복어를 삼키면 예외 없이 중독되어 삼킨 자나 먹힌자나 둘 다 죽고 만다.’ 아버지와 함께 복국을 먹는 재미까지, 너무 많은 것을 나열한 흠이 있긴 하지만 가장 우수한 글임엔 틀림없다.
'흑립(홍성순)’은 집안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흑립을 발견하며 종갓집 장손으로서 전통적인 법도를 지키느라 시골집을 버리지 못하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회상을 자세히 쓴다. 자식들은 도시로 다 떠나갔지만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 전통을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자존심을 이해하지 못하다 아버지의 유물을 이제서야 상자 속에 가지런히 정리하여 잘 간직한다.
폐사지에서 버려진 삼층 석탑과 고향 어머니가 김을 매던 메밀밭의 감나무를 연상한 ‘성황리 삼층 석탑(김순경)’은 처연하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런 감상만 나타낼 게 아니고 좀더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었던지 좀 더 구체적인 스토리가 필요하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에 대한 추억의 ‘흑백 사진’, 군대시절의 특별한 인연인 ‘달맞이꽃’도 그저 평범에 그친 점이 아쉽다. 심사위원: 조성호
연잎밥 [2019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조경숙
연잎밥을 지었다. 큰 솥뚜껑을 열자 향을 껴안은 주먹만 한 연밥이 소복하게 담겨있다. 오뉴월 땡볕에 싸움질을 하던 아이들이 마치 한 이불 속에 서로의 몸을 포갠 채 잠자는 모습 같다. 하나 둘 조심스레 펼치니 이리저리 곡선을 그리는 김이 오른다.
평소 '옴마밥'이라며 찬 없이도 밥그릇을 단숨에 비워내던 열 명이나 되는 식솔들은 연밥을 싸는 동안 신기한 듯 하나둘 얼굴을 들이밀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굳이 이런 풀이파리에 밥을 싸는 이유가 뭐냐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내 주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한 주걱씩 푼 밥을 연잎에 올리고 고명으로 대추 은행 잣을 올려 마음을 포개듯 돌려가며 동여맸다. 밥은 하루를 잇는 징검다리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사 일상의 소박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밥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닐까. 한소끔 뜨거운 김을 올린 뒤에도 연잎의 향기가 밥알 하나하나에 고루고루 스며들 때까지 가열한다. 쟁여넣은 연밥은 "잘해라. 바르게 가야 된다. 청춘은 한 번뿐인 거야." 라며 지칠 줄 모르게 재촉하고 호소하던 나의 잔소리와 함께 채근하듯 안개 같은 김을 내뿜는다.
연잎을 채취하러 갈 때는 팔월 그믐인데도 더위는 여전히 맹렬했다. 불 같은 태양이 식을 줄 몰라 산더미처럼 쌓인 일조차 포기한 날, 연꽃 따러 가자는 지인의 전화가 왔다. 팔월 하순이라 연꽃을 채취하기엔 때늦은 감이 있어 연잎이라도 따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십 여 명이나 되는 피 끓는 십대 아이들의 등쌀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요량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 삼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시골의 외딴 연못이었다. 이백 평 남짓한 밭에는 빼곡하게 뿌리내린 연이 내 키보다 훌쩍 커 힘차게 솟구쳐 자라고 있었다. 넓은 이파리는 마음껏 펼쳐 하늘을 담아냈다. 사이사이 홍안紅顔의 소년 같은 깊은 눈망울로 투명한 연꽃을 피워냈다. 단아한 연실에 까맣게 익은 연밥까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연못 언저리에 서 있던 지인의 어머니는 해마다 살아있는 미꾸라지 서너 말 풀고 약 한 번치지 않고 키웠다며 연신 연꽃 예찬을 쏟아 내신다. 나는 허벅지까지 오는 물 장화를 신고 무턱대고 텀벙텀벙 진흙밭에 들어섰다. 그 순간 무릎까지 쭈욱하고 묵직하게 소리를 내며 단숨에 빠져들었다. 무심코 내디딘은 발걸음은 나를 곧추세우기는커녕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문득, 이제 열다섯 살 승기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승기는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날 소년원에서 나왔다. 팍팍한 삶을 꾸려 갈 수 없어 집을 나가 버린 엄마, 길을 잃고 엇갈리던 삶은 대를 잇는 듯하였다. 면회장 유리 창문 너머로 새파란 입술을 깨물며 닿지 않는 손만 유리벽을 쓸고 있던 그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내 가슴에 화살처럼 꽂혀 있다.
연잎을 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부족한 경험은 마음만 앞질러 좀처럼 원하는 것을 체득할 수 없지 않던가. 진흙밭 깊은 수렁을 겨우 헤쳐 손이 닿는 대로 여름 햇살에 검푸르게 자라난 연잎을 채취하였다.
연잎은 폭염과 진흙탕 속에서 한 점 진흙의 티끌도 담아내지 않고 바람의 흔적조차도 찾아낼 수 없다. 자신만의 색을 태연히 담아냈다. 뿌리는 어떠한가. 가는 갓난애기 손가락 크기만 한 텅 빈 바람 구멍을 가슴에 안고도 아무 일 없듯이 진흙 속에 서 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그 속에서 맑은 물 걸러 지상의 꽃대로 잎으로 올려 보낸다.
세파와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해 깊은 수렁 같은 어둠속에서 견디는 것이리라.
내가 운영하는 청소년 회복센터는, 세상의 가장 큰 의지이자 본성의 고향 같은 엄마는 오래전에 집을 나갔거나, 아버지는 오랜 지병으로 이미 뿔뿔이 흩어진 가족, 혼자 할머니 손에 머물다 거리로 전전하던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도무지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캄캄하고 암울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비행이라는 날개로 자신의 숨통을 뚫은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가슴속도 숭숭 뚫려져 있으리라. 올바른 길은 분명 아닐 것인데 그렇게라도 숨통을 열어야 살아 있다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상처투성이 아이들하고 살아가자니 진흙 속 연뿌리처럼 가슴에 숨구멍 한 두 개쯤 열어놓아야만 한다.
열 명의 아이들은 제 각 각 먹는 것이며 말하는 모양새며 자는 모습까지 개성도 판이하다. 매 순간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는 활기 넘치는 소년들의 엄마 역할을 할 때면 덜컥 겁이 날 때도 많다. 넓은 연잎과 뿌리처럼 튼실해야 될 성 싶은데 말이다. 아이들이 제 모양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내가 진흙밭이 되고 꽃대도 되어야 상처와 아픔을 태연하게 도려낼 수 있을 것 같다.
한낮을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연잎의 싱그러움이 가득할 때 연잎 밥을 지어보려 잡곡과 견과류를 대충 준비했다. 켜켜이 담아온 연잎도 손질하며 흐르는 물에 연잎을 내려놓으니 물방울만 굴러 떨어진다.
연잎에서 쉽게 세상과 섞이지 못하고 아웃사이드로 튕겨나 올 수 밖에 없는 아이들 얼굴이 선명하게 오버랩 된다. 세상의 어떤 불의에도 오염되지 않고 고유한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에도 비유할 수 있기에 묘하게 극명한 두 부분이 하나의 연잎에서 나타난다.
연잎의 너른 품성을 닮고 싶다. 슬픔과 기쁨, 미움과 고마움도 한 심장에서 피는 꽃이 아니던가.
연잎 보자기에 싼 밥을 푼다. 은은한 향이 베인밥 앞에 눈길을 보내며 아이들과의 인연 고리에 어떤 의미조차 부여하고 싶지 않다. 둥그렇게 마주 보고 앉아 깔깔대며 밥을 먹는 지금의 모습을 감싸 안고 싶을 뿐이다.리는 연잎에 싸여진 알곡처럼 아주 특별한 하나하나로 가족이 된 셈이다. 고고하게 핀 연꽃보다 진흙 연못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또한 연뿌리가 되고 꽃으로 물길을 내어 주는 꽃대가 되어 가길……. 심장 깊숙이 각인된 주홍글씨를 지우고 감미로운 바람 같은 연잎 향이 아이들 몸과 마음에 배어들면 좋겠다.
▶당선소감
해마다 결핵환우와 나누어 먹던 동지 팥죽을 끓이고 있을 때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깊은 밤, 달빛 가득한 마당에 서 있어도 마음은 두근거렸습니다. 낮에 받은 당선전화가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두 볼만 감싸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찬 밤공기는 온 몸을 휘감고 달빛은 바다에서 방금 건져 올린 은회색 비늘처럼 눈부시게 반짝거렸습니다.삶은 때때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꿈에도 생각해낼 수 없었던 지금의 아이들과 만남이었습니다. 나 역시 절망의 순간에 만난 아이들입니다. 좋으니 싫으니 저울질 할 겨를도 없이 앞 뒤 가리지 않고 덥석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앞 만 보며 달려온 터라 내 안에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자신이 거듭 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나로 인해 가슴 아픈 시간 보냈던 남편과 동네 목욕탕에도 함께 갈 수 없었던 딸, 듬직한 아들 내외와 해맑은 미소를 선물해 준 손자들. 공간과 시간을 허락해 주신 운암 자운스님께 깊은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문학의 길로 이끌어 준 도반인 김영미 선생님, 수필로 행복해지길 소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백남오 교수님, 탐.진.치를 닦는 길이 수필이라는 문화원 정목일 교수님, 고맙습니다. 서툰 글 당선의 영광을 안겨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 스민 글올해는 응모 작품이 작년보다 훨씬 많았다. 작년에는 100명이 보내온 269편이었는데 올해는 131명의 작품 340편이었다.수필은 작가가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다. 픽션인 시나 소설과는 달리 수필 한 편을 읽으면 문장력에서 작가의 인격과 사상, 그리고 철학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러 유려한 문장 솜씨와 독창적인 비유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로 형상화한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그 중 '다듬잇돌의 노래'와 '돌꽃' 그리고 '연잎밥'을 다시 읽어 본다.'다듬잇돌의 노래'는 이제 잊혀져가는 옛 이야기처럼 편안하고 그리운 노래이다. 호흡이 고르고 문장이 간결하나 수필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나타내야 한다. '돌꽃'은 이끼와 바위가 어우러져 피워낸 돌꽃을 보면서 애달픈 사연을 담담하게 펼쳐 내고 있으나 작품 전면이 너무 어둡고 처진 느낌을 준다. '어머님을 옥죈다' '칼 위를 걷는 듯한 날들' '다락에 숨어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겹겹의 아픔' 등의 문장이 계속된다. '연잎밥'을 보자. 글쓴이는 가정환경이 불우한 청소년 열 명을 맡아 키우고 있는'청소년 회복센터'의 직원이다. 어느 날 연잎밥을 만든다. 연잎을 펼쳐서 쌀 견과류 등을 넣고 친친 감싼다. 먹는 모습, 말하는 모양새, 자는 모습까지 제각각이며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한데 모으기라도 하듯. 글쓴이는 열 아이들 모두 지금은 비록 진흙밭의 뿌리에 불과하지만 바르게 잘 자라서 맑고 눈부신 연꽃이기를 바란다. 예리한 관찰력과 아름다운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겨움과 애틋함을 담고 있어 가슴이 훈훈해지는 글이다.심사위원들이 고심한 끝에 최종적으로 선한 작품은 '연잎밥'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드리며 더 큰 성취를 위한 고뇌의 시간이 이어지길 바란다. (심사위원 강현순, 한후남)
마디 [2019년 영주신춘문예 당선작]
안희옥
하늘 향해 뻗은 대나무의 기상이 옹골지다. 미끈한 몸매에 둥근 테를 두르고 서 있는 모습은 흡사 초록 옷을 입은 병사들의 열병식을 방불케 한다. 이따금 간들바람이 푸른 대숲을 훑고 지나간다. 무성한 댓잎 사이로 신기루처럼 일어나는 햇살에 눈이 부신다.
굵은 대나무가 길을 가로막는다. 두 손으로 감싸 쥐니 손안에 가득 찬다. 매끄러운 줄기 사이, 마디가 껄끄럽다. 볼록한 부분은 특별히 다른 곳에 비해 단단하고 힘이 있다. 대나무는 기후가 나쁘거나 수분이 부족할 때 성장을 멈추고 힘을 모은다고 한다. 이때 생기는 것이 마디다. 성장판을 닫고 힘을 비축한 뒤 기회가 되면 다시 커간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대나무는 휘지 않고 곧고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아들 귀한 집안의 다섯째 딸로 태어난 여동생은 그 아래로 남동생이 태어나자, 다른 형제들에 비해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할머니는 터를 잘 팔아 대를 잇게 해 주었다며 동생을 추켜세웠고, 잘못된 행동을 해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할머니의 특별한 사랑 때문인지 동생은 어릴 때부터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했다.
대나무가 한창 클 때는 한 시간 동안 자라는 속도가 삼십년간 자라는 소나무 속도와 맞먹는다고 한다. 생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줄기 끝에만 생장점이 있는데, 대나무는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다. 그러나 줄기의 벽을 이루는 조직은 엄청나게 빨리 늘어나는 반면 내부성장은 느려서 속이 텅 비게 된다.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한 청년과의 결혼을 집안에서 극구 반대했지만 동생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모두들 아무 탈 없이 잘 살아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걱정은 기우였다. 동생의 결혼생활은 순탄했다. 제부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상류층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 곳 저 곳 모임에서 익힌 세련된 매너와 옷차림에 자매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생활의 여유가 있으니 친정 식구들에게도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대나무 마디는 멈춤을 뜻한다. 중간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자라면 더 쑥쑥 큰다. 대나무만의 특징이다. 중간에 마디가 형성되는 시기는 유난히 더디다. 그러나 그 마디들이 없다면 가늘기만 한 나무가 그렇게 높이 자랄 수 있을까. 잠시 정지해있는 듯 보이지만 그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멈춤이 없다면 진정한 성장도 없다는 교훈을 대나무에게서 얻게 된다.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던 동생네의 행복이 암초에 부딪혔다. 기다리던 둘째 조카의 탄생을 가족 모두가 기뻐한 것도 잠시, 의료진의 불찰로 그만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다.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넘쳐나던 웃음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갔다.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동생의 인생에 굵은 마디 하나가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거침없이 질주하던 제부의 사업이 IMF를 맞으면서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무리한 사업 확장은 곳곳에 빚을 남겼고, 끝까지 지키려 했던 집마저 경매에 넘어갔다. 하루아침에 길가로 나앉은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터라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월세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해 나갔다. 생활의 여유가 없다 보니 부부간 갈등도 심해 연일 큰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도 점점 밖으로 나돌았다. 삶은 나날이 피폐해져 갔다.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휴식을 ‘대나무의 마디’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마디가 있어야 대나무가 성장하듯, 사람에게도 쉼이 있어야 강하고 곧게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드럼통은 최초, 표면에 아무런 굴곡 없이 매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작은 충격이나 굴릴 때 쉽게 찌그러졌다. 누군가 대나무 마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드럼통 옆구리에 마디를 넣었더니 강도가 네 배나 강해졌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지옥 같던 고통도 조금씩 사그라질 무렵,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예쁜 딸이었다. 아이는 동생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딸이 태어나고부터 신기하게도 살림살이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집안에 다시금 웃음이 찾아왔다.
그것도 잠시, 잘 자라던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뇌종양이란 큰 병에 걸렸다. 청천벽력이었다. 하늘을 원망하며 속울음을 삼키는 동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강단 있고 패기 넘치는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던 동생을 단단하게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엄마라는 이름이었다. 아이를 위해 대나무처럼 마음을 비우고 낮은 자세로 임했다.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하고 인내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자 아이의 병도 조금씩 나아져 갔다.
시원스레 하늘로 솟구친 대나무 숲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죽순이 돋아나고 성장할 때까지 그 음습한 땅 속에서 수년 간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거친다. 뿌리가 깊기 때문에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속이 빈 채 커 나가는 대나무로서는 반드시 필요한 인고의 세월이다.
대나무는 허허실실이다. 속이 빈 것이 허라면 밖이 단단한 것이 실이다. 내강외유다. 속은 허술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강하다. 속을 비워 내지 않으면 단단한 마디를 만들 수 없다는 걸 가르쳐준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순탄하게 잘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시련이 닥치곤 한다. 시련은 곧 마디다. 넘어지면 실패가 되고 말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승화가 된다. 시련은 크고 강하게 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다. 작은 일에도 쉽게 절망했던 나의 나약함에 대해 반성해본다.
마디를 가만히 만져 본다. 매끄러운 몸통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믿음직스럽게 자리 잡은 마디 사이로 봄기운이 가득하다. 대나무 숲 사이로 환하게 웃는 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당선소감]
가끔씩 대나무 숲에 설 때가 있습니다. 우듬지 사이로 지나가는 청아한 바람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맑아지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번잡한 일들도 거기에선 고요해짐을 얻습니다.대나무 씨는 뿌린 후 5년 동안 싹이 나지 않습니다. 그 기간 동안 캄캄한 땅 밑에서 부지런히 뿌리내리기 작업을 합니다. 그런 후 마침내 새싹을 땅 위로 밀어 올립니다.글을 시작한 뒤, 오랫동안 미로 속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었을 때도 있었고 그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이 어둠 끝에 빛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올해의 끝자락에 한 줄기 빛처럼 당선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직은 모자란다고 스스로 도리질을 하면서도, 까마득하게 걸어놓았던 소망 하나가 드디어 내 앞에서 환히 불을 밝히는 순간입니다. 행여 부족한 실력으로 급하게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내심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던 어둠이 걷히자 잠시 눈이 부셨습니다. 눈가가 조금 젖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땅 위로 올라온 나를 바라보며.설익은 글을 곱게 보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멋진 기회를 주신 영주일보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합평회 때마다 따끔한 회초리를 들어준 <윤슬문학회> 문우님들께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늘 곁에서 힘을 실어주는 가족들, 특히 사랑하는 두 아들 진섭, 민섭이를 비롯해 저를 아끼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합천 출생동리목월 문예창작대학 수료 (2012)
동서문학상 수필부문 은상(2012)
공무원문예대전 수필부문 금상(2017)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2018)
동화집 「호미곶 돌문어」 공저 (2014)
[수필부문 심사평]
백여 명이 넘는 신춘문예 수필부문 지망생들은 심사자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지녀야 한다. 등단 전에는 숙녀•신사의 정장 복장이 이에 어울린다 할 것이나, 등단후에는 걸인의 옷도 좋다.수필의 가치는 타인의 공감을 얻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수필의 공감지수는 나와 우리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문장화 할 때 더욱 높아진다. 이를 위해 문장력을 비롯하여 제목선정, 단락나누기,은유적 표현 등의 포장 능력 역시 간과해서는 않될 것이다.2019 영주일보 신춘문예에는 전국에서 128명의 예비작가들이 응모하였고, 작품수는 400여편에 이른다. 5편이 넘는 수필을 보내주신 예비작가들도 십여 명에 이른다. 많은 작품을 쓰려는 열정보다 좋은 작품 몇 편을 쓰려는 열정이 습작시기에는 더욱 빛을 발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백지와 원고지에 친필로 써내려간 분도, 컴퓨터에 내장된 원고지에 출력해 보내주신 분도 계셨다.수필은 개인적 체험에 대한 연상과 상상을 작품화 하는 것을 그 가치로 삼는다. 과거의 체험이 현재에서 의식화 ․ 내재화 ․ 공유화 되고 그래서 미래의 가치스로움인 멋과 맛이 있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는 상상과 연상의 날개를 펼쳐야 한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본 신춘문예에 응모된 수필 중에서 시선을 끄는 여덟 분의 작품들을 우선 선정하였다.이인숙 님의 ‹뒷모습›•‹화무십일홍›•‹그리운 이야기꾼›, 김정미 님의 ‹시간을 흙으로 굽다›•‹누에의 잠›•‹단풍차를 한 손에 든 채›, 김장배 님의 ‹테, 발簾에 들다›•‹뜸›, 이용호 님의 ‹가지 않은 길›•‹예(禮)›•‹시조(時調 예찬›, 장희자 님의 ‹내 안의 감옥›•‹봉황을 먹었다.›•‹엄홍길과 라마스떼›, 이상수 님의 ‹끙게›•‹박새의 포란›•‹둥근 동행›, 조미정 님의 ‹검정›•‹남두육성›•‹둑방 옷 수선집›, 안희옥 님의 ‹마디›•‹떼배›•‹사점死點› 등을 선정하여 다시 정독에 들어갔다. 그리고 최종 심사를 위해 이상수 님, 조미정 님, 안희옥 님 등 세 분의 작품들을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 봤다.이상수 님의 수필에서는 농촌에서의 삶의 전경이 눈에 어리고, 박새와 가족들과의 삶과 죽음을 은유적으로 조화롭게 대비되고, 자연과 인간의 동행을 문장으로 잘 버물리고 있다. 조미정 님의 작품에서는‘죽음이란 묵직한 세계를 가벼운 삶의 영역’으로 다루고, 북두칠성에 밀려난 이인자별처럼 여겨지는 남두육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이고, 삶의 보풀이 생길 때면 누군가의 수선집이 되고 싶다는 은유적인 삶의 태도가 가슴을 파고 든다. 안희옥 님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다니.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이라 작년 심사평을 뒤졌더니, 최종 심사평에 등재된 이름이었다. 낙선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수필에 대한 열정이 작품 속에 녹아 있는 듯했다. 세 편의 수필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체험에 대한 연상과 심리변화를 적절하게 버무려 놓은 작품에 몰입케 하는 문체의 긴장감이다등단 수필가의 작품에 못지 않은 세 분의 작품들을 만난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하지만 수 차례의 정독 후에 읽는 재미와 삶의 교훈과 수필의 절제미가 좀더 돋보이는 안희옥 님의 수필 ‹마디›를 최종 선정하였음을 밝히는 것은 결단에 찬 고뇌였다.
수탉의 도전 [2019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인숙
수탉이 철조망 틈새 끼인 날갯죽지를 빼느라 발버둥을 친다. 눈망울을 껌뻑이고 붉은 볏을 움찔거리는 모습이 힘겨운가 보다. 틈새가 비좁아 수탉이 탈출하기엔 불가능해 보이건만, 포기할 수 없다는 몸부림이다. 탈출을 향한 집념이 팔월의 태양 볕보다 뜨겁다. 급기야 부리로 땅을 쪼아대며 용을 쓴다. 수탉의 몸짓에서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오기마저 느껴진다.
드디어 탈출이다. 수탉이 날개를 펴고 텃밭으로 쏜살같이 내달린다. 철조망 아래 땅을 파헤쳐 틈새로 탈출을 성공한 것이다. 닭이 머리가 나쁘다는 말도 옛말인 것 같다. 철망과 땅의 틈새를 파헤치면 구멍이 생기는 걸 어찌 알았을까. 수탉은 볏을 꼿꼿이 세우고 개선장군처럼 풀밭을 활보하고 있다. 그 모습은 더없이 늠름하다. 수탉의 탈출은 한 번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얻은 값진 성공이다.
수탉을 바라보다 문득 예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과연 나는 삶의 주인인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니 목숨 줄인 생업을 하느라 종종거리며 살아온 듯싶다. 좀 더 넓은 집을 얻고자 애를 쓴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비싼 자동차와 좋은 옷을 입고자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낯선 세계의 도전은 고사하고, 세 목숨 부지하고자 일을 찾아 애가 탈 뿐이었다.
두 딸의 손을 잡고 마주한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누구에게도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때론 오기도 부렸다. 매순간 강해지고자 마음을 다잡았고, 그래도 두려움이 일면 들길을 달려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스스로 생계란 목숨줄에 친친 감겨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았다. 나에게 수탉의 거침없는 도전이 절실하던 터였다.
생명 앞에선 미물인 닭도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알을 품은 어미 닭은 모이를 먹을 때 외엔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알을 품은 채로 잠이 든다. 새끼 외에 그 어떤 것도 욕심내지 않는다. 오직 알이 깨어 병아리가 되기를 염원할 뿐이다. 나 또한, 아이들을 온전히 지키고자 개인의 삶은 세상 밖으로 내던졌다. 어설픈 감상이나 불평불만을 할 여유도 없었고, 한낱 감정 타령은 사치라고 여겼다. 가장의 빈자리와 세 명의 목숨을 위하여 옥석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지난한 환경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기에 역부족이었지만, 어미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두 딸은 부족한 보살핌에도 밝은 모습으로 자랐다.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와 서둘러 아침을 준비하였다. 아이들에게 부족한 사랑을 아침밥으로 대신이라도 할 양 바지런을 떨었다. 그렇게 다시 일터로 부리나케 향하던 참이었다. 먼지가 뽀얀 자동차 유리창에 언뜻 무언가 보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가로등 불빛에 보이는 것은 ‘엄마 사랑해!’라고 또박또박 써놓은 문자였다.
작은 녀석의 필체였다. 평소 표현이 적어 ‘시크소녀’라고 부르는 녀석에게 사랑 고백을 받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아마도 학교를 마치고 오던 길에 적어놓았으리라. 병아리만 같았던 딸아이가 벌써 어미를 위로해 줄 정도로 성장한 것 같아 기특하였다. 딸의 무언의 표현은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새벽길을 달려도 지치지 않을 활력소가 되었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큰 딸이 둥지를 떠나던 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안정된 직장을 마다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단다. 처음엔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경쟁이 치열한 광고계에 뛰어든 아이가 불안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아이가 대학 시절 내내 몰입하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딸은 내로라하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외국 연수도 다녀왔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접고 직장을 택한 건 엄마와 동생을 염려한 결과였으리라.
딸은 대입시험 준비도 홀로 무진 애를 썼다. 엄마의 경제적 짐을 덜어주고자 학원도 가지 않던 녀석이었다. 수능시험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독서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최선의 노력을 한 다음에야 다른 대안을 찾는 아이인지라 이번 일도 쉬이 결정하진 않았으리라. 그렇게 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내 눈에 사회자로 선 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연말 회사에서 주관하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자선경매 자리였다. 큰 무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자리를 굳히는 딸이 기특하였다. 아비의 부재와 어미의 나약함에 큰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였나 보다. 막막한 현실을 탈출하고픈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으리라. 그 덕분인가, 자신의 미래를 지키고자 도전하는 발길에 거침이 없었다. 과연 엄마보다 용기가 넘쳤다.
딸의 모습은 좌중을 이끌고 있었다. 그날 자선행사가 대성황이었다며 보내온 영상에는 마치 수탉이 풀밭을 누리듯 활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행사를 준비하고자 녀석은 많은 시간 무던히 애를 썼으리라. 딸의 당찬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삶이 고단하다고 절망하지 않아 고맙다. 단단한 세상의 철조망을 뚫고자 도전을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라고 딸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아이는 이제 걱정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듯 화면 가득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머문 세상을 돌아본다. 나는 한 동안 세상 속 두려움이란 감옥에 자신을 유폐시킨 듯싶다. 두려움은 실상 그 높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차마 그 깊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지레짐작 느끼는 공포감이리라. 수탉의 탈출과 딸의 거침없는 모습이 나를 일깨운다. 이제 딸들에게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마음 깊이 숨죽인 모든 감각과 의지를 일깨우리라. 꿈을 마음껏 펼쳐 보고픈 강한 의욕이 불붙듯 일어난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수탉의 자태가 늠름하다. 먹이를 사냥하고자 흙을 헤집는 발길질에도 힘이 넘친다. 울안에만 머물렀다면, 흙 속 산해진미와 새싹의 향긋함을 어찌 맛보았겠는가. 비록 수탉의 일생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나 삶을 선택할 권리는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 불굴의 도전이 있었기에 울안이 아닌 풀밭의 터전을 얻은 셈이다.
용기도 절망도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삶에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으랴. 고통의 원인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 극복하는 일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모난 돌이 몽돌이 되기까지는 거친 물길에 쓸리고 부딪히는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 머물러 주춤거린다면 무엇 하나 얻을 수 없으리라. 수탉의 몸부림에서 포기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거침없는 도전정신을 깨우친다.
세상은 두려움이 아닌 도전의 장이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끝없이 물길을 다독여 강으로 바다로 주저 없이 나아가야만 한다. 저기 붉은 볏을 꼿꼿이 세운 수탉이 걸어오고 있다. 마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딸들이 엄마에게 걸어오는 모습만 같다. 이제 딸들에게 나의 참모습을 보여 줄 차례이다. 가슴에 품은 꿈을 향하여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다.
▲ 당선 소감
당선 전화를 받는 순간, 마음속 음지에 웅크리던 내가 밝은 빛으로 걸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롭지 않은 삶을 위한 유대인의 지혜’에선 ‘온전히 그 슬픔의 감정을 말할 수 있도록 들어준다.’라고 했지요.수필 속에서 제 모습이 그랬습니다. 전국의 명소나 사찰, 전시회를 데리고 다니며 ‘많이 보고, 읽고, 듣고, 깊이 사유하여 좋은 수필을 쓰자.’고 가슴에 묻어둔 언어를 꺼내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이은희 작가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앞으로 더 좋은 수필을 쓰도록 도전의 기회를 열어준 전북도민일보 관계자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독자와 소통하며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글을 낳도록 정진하겠습니다.
▲ 심사평
그동안 수필이 양적 만족감은 맛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직적인 질적 상승에 따른 문학 장르적 신분 상승 차원에서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마음을 안고 응모작품 앞에 앉으며 내 가슴은 설레고 무거웠다. 반면 대어를 낚는 어부의 손맛 같은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심사가 끝난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경기 고양, 광명, 경북 칠곡, 청도, 영덕, 포항, 대구, 부산, 충남 천안, 전남 나주, 캐나다 그리고 전북의 각 시군에서 150여 명의 응모자들이 보낸 작품이 책상머리에 가득 쌓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들이 ‘전북도민일보’가 1988년 언론민주화 이후 도민 주식으로 창간되어 그 이미지를 잘 가꾸어 가는 언론사로서의 공정함을 알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어서 이름 대신 번호만 기재된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부터 늦은 시간까지 응모작품과 씨름하듯 집중하여 읽고 또 읽었다. 문학 작품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나 인간으로서의 자기 증명이라고 했다. 서로가 성실한 자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고민 없이 ‘이거야! 자연산 활어 같은 언어 감각이요. 삶의 질서가 녹아 있는 작품’ 그게 바로 이것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나타나기를 기대했다.응모자의 400여 편에 이르는 작품에서 일곱 편을 건졌다. 그리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일곱 사람 모두 거주지가 달랐다. 청주 전주 광주 대전 울산 서울 대구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세 명은「수탉의 도전」과 「사람의 노래」와 「숫눈길」의 응모자이었다. 그중에서도 「수탉의 도전」은 문장의 은유법이 돋보였다. 눈물 어린 삶 속에서도 그늘 없이 사회적 희망을 살아내는 작가의 정리된 영혼이 아름다웠다. 어두운 배경인데도 화사한 문장의 표현 기법과 문학적 새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때문에 「수탉의 도전」을 당선작으로 미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응모한 모든 분에게 당선의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데 있어 마음 무겁다. 많은 분에게서 수필을 고민하고 심혈을 기울인 내공이 느껴졌다. 그러나 지나치게 안정적인 글쓰기가 흠결이라면 흠이었다. 그런 면에서 당선자는 살아 있는 작가로서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로 수필계의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언어의 부림에 있어서는 단어의 성격과 글꼴까지를 자세히 검증하고 성찰하여 문학성 풍부한 수필을 생산하는 수필가이어야 할 것이다. 이어서 늠연한 자세로 세월이 푹 고아낸 곰국 같은 글맛의 수필을 창작하는 수필가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위해서는 응모자가 「수탉의 도전」마지막 문장에서 밝혔듯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 거문고 줄 다시 조이듯 들메끈을 고쳐 매는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오늘의 영광을 안겨 준 전북도민일보에 대한 애정이 변하지 않기를 당부하며 축하드린다.
포물선, 마주보기 [2019 매일신춘문예 당선작]
김애경
스크린의 느린 화면에서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에 떨어진다. 문득, 포물선 상의 한 점을 지나고 있는 느린 걸음의 내가 보인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도 화살촉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 패턴의 반복이라고도 한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한 지점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나이 들어가며 선택할 때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좋게 보면 심사숙고를 하는 것이지만, 대범했던 성격이 소심해진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인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 작은 것에도 자주 망설인다.
남편과 건강검진을 받고 나와, 벌써 한 시간째 식당을 결정 못 하고 있다. 그도 딱히 결정하지 못하고 내 결정에 따를 심산인 듯, "글쎄 어디가 좋을까."만 반복하며 나란히 걷고 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분식은 위가 좋지 못해서, 중국집은 싫증이 나서, 패스트푸드는 모처럼 둘만의 식사인데, 파스타는 한쪽이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서, 스테이크는 점심으로 부담돼서, 한식은 매일 먹는 것이니 등, 우리의 삶처럼 이런저런 이유에서다.
밖에 나오면 서로의 기호를 적당히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눈앞에 커다란 간판인 한방 삼계탕집으로 들어갔다. 나름 그 결정에 서로 만족한 듯 밝은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나란히 앉는 편이다. 마주 보자 남편이 많이 늙어 보였다. 불현듯 한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마주 보고 앉으면 단점만 보여서 싸우게 된단다. 이런 내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메뉴판을 보고도 결정 없이 내 판단에 맡기고 있는 사람이 야속하다.아니나 다를까. 나란히 앉았을 때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먹을 때 입가에 묻히고 먹는다. 먹는 속도가 빨라서 나는 반도 못 먹었는데 벌써 이를 쑤신다. 심지어 내가 먹고 있는데 화장실에 갔다 온다며 일어섰다.
부부는 큰 인연으로 연을 맺은 후 함께 포물선 모양으로 걸어가는 영원한 함수 관계라고 한다. 포물선이라는 함수는 단순히 시간의 경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좌표 위에 좌선과 점으로 곡선을 그리며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건강과 관련지어 함수관계를 연구한 결과가 흥미롭다. 배우자가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스트레스가 심하다 해도, 상대 배우자의 지지와 격려만 확고하다면 높았던 혈압이 안정권에 든다는 것이다. 사이가 원만하면 건강하다는 말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눈에 반한 연인, 집안의 반대, 사랑의 도피와 같이 드라마틱하고 운명적인 사랑도 포물선의 내리막을 탄다. 하물며 우연하고 화려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현실적 사랑에 갈등이 전혀 없을 수 있겠는가. 포물선의 정점처럼 뜨겁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처지도 많이 변했다. 이제 정겹다는 말, 눈빛만 보아도 심정을 안다는 말은 차츰 구태의연한 말로 포물선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마주보기보다 나란히 보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화장실에서 나온 한 남자가 뒤돌아서서 웃고 있다. 다 먹었으면 나가자는 사인을 보낸다. 내가 잘 아는 남자 같다. 알고 지낸 지 30년이 넘었다. 신발 크기와 바지 치수도 알고 있다. 한때 한 눈의 시력이 바늘귀를 뚫었다는데 이제 그 눈엔 인공 수정체가 빛난다. 어쩌면 우리는 겨우 요만큼씩 아는 것에 서로 저당 잡혀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식, 남편과 아내라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준선과 좌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부라고 해도 서로 다른 인생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초점과 준선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운명의 두 축인 X축과 Y축을 넘나들며 고단하지만, 부단히 삶의 좌표를 그려가고 있다. 대칭축을 기준으로 큰 사발 같은 포물선을 반으로 나누면 반절은 행복, 기쁨 등 달콤한 맛이요, 반절은 아픔, 슬픔 등 씁쓸한 맛이 아닐까 싶다.
심사가 상한 밍근한 하루의 여장을 풀고 등 맞대고 이불 속에 나란히 들었다. 오래된 먼지 냄새나는 사진첩 한 장이 풀썩 또 넘어가며 평범한 하루가 사위어간다. 그래도 부부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라지 않는가. '부부'라는 한글 문자를 보라. 돌아누워 남편의 눈을 마주 보니 그가 의아한 듯 매우 겸연쩍어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오늘은 같은 포물선을 그린 날로 기록될 것 같다. 뜨거운 사랑도 빛바랜 사랑도 사랑의 한 형태로 포물선 상에 있다. 사랑이든 연민이든 서로를 꼭 안아 보면, 어깨 위에서 엇갈린 두 얼굴은 하트 모양이 되고 두 몸은 맞닿아 포물선 모양이 된다. 못 믿겠거든 당장 오늘 큰 거울 앞에서 포옹해 보라. 매료되고 실망하고 다시 용서하고 그것이 포물선이다.
◇ 당선소감
송년 모임 자리에서 남편과 마주 앉아서 밥을 먹다가 당선통보를 받았습니다. 왠지 귀소본능이 발동해서 집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었는데, 남편은 후식까지 가져와서 먹자더군요. 너그럽게 기다려주었습니다.저는 글쓰기가 사람을 서로 품어준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문학을 사랑했던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져서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너무 기쁩니다. 새봄에 움을 틔우듯 생각할 때마다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이보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2019년에 제 가슴에 움 하나 틔워 준 매일신문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을 선 해주신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저는 항상 제가 글들을 맞게 쓰고 있는 것인지 늘 의심이 갑니다. 진실을 쓴 것인지, 거짓에 허세에 보이기 위한 위선은 아닌지 등등 다음날이 되어 내 글을 보면 늘 부끄럽습니다. 아직 판단을 잘 못 합니다. 마음이 편할 때는 오히려 글이 잘 써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의심이 많고 복잡해서 평생 친하게 지낼 것 같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며 조금씩 '겸허'해졌습니다. 내 삶의 가장 큰 바람이고 목표입니다. 제 곁에 수필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이 목표를 향해 달리고 싶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은 것에 눈을 주면서 신명 나게 살아야겠지요. 사랑하는 딸 내외, 손녀, 큰아들 작은아들 그리고 남편, 친구, 선배님들, 문우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지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약력
1959년 강원도 춘천 출생
춘천교육대 국어과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과 문학박사문학평론가 등단(2018),
심상 해변시인학교 백일장 장원
◇ 수필 심사평: 인생의 포물선, 마주보기 사랑으로 승화
전체 응모작 644 편 중에서 1차로 10편을 뽑고, 그중에서 다시 4편을 골랐다. 그 수필은 '포물선, 마주보기', '택배', '어디만치 왔니?', '초임 선생의 1년 회고담'이다. 이것을 다시 정독하면서 최종심에 오른 두 작품은 '포물선, 마주보기'와 '택배'이다. 마지막으로 심사자들은 제재와 주제의 참신성과 독자와의 공감도, 구성과 문체의 문학적 형상화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결과 '포물선, 마주보기'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심사 과정에서 심사자가 공통으로 느낀 점은 20대의 젊은 응모자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수필 문학의 성격과 문단의 현실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점은 매우 고무적이고 환영할 일이다.최종심에서 아쉽게 탈락한 '택배'는 부자간의 사랑과 가족애를 통한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하나의 제재를 통한 통일성 있는 주제화에 성공한 수필로서 간결하고 적절한 문장이 돋보이지만, 단락 구분의 문제와 '하던' 같은 사소한 맞춤법의 실수도 보였다.'포물선, 마주보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제목이지만, 작품의 제재와 주제를 아우르는 함축성을 지닌다. 인생을 포물선으로 비유하고, 단순하게 단정할 수 없는 부부의 삶도 함께 걸어가는 포물선 모양이라고 하였다. 참신한 착상과 문학적 형상화로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었다. 인생의 포물선을 반으로 나누면 절반은 달콤한 맛이지만, 절반은 씁쓸한 맛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부부는 꼭 안고 마주 보면 두 얼굴은 하트 모양이 되고, 두 몸이 맞닿아 포물선 모양을 이룬다. 뜨거운 사랑도 빛바랜 사랑도 사랑의 한 형태로 포물선 상에 있다고 말하며, 매료되고 실망하고 용서하고, 그것이 포물선이라고 멋지게 마무리하였다. 인생의 포물선을 마주보기 사랑으로 승화한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심사위원: 허창옥(수필가), 조병렬(수필가)
한 걸음 [2019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진숙
토오옥, 토오옥.
봉황산 밑에서 깨 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저기 엄마가 계시는구나,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더욱 바빠진다. 예전 같으면 한걸음에 갔을 텐데…. 뇌경색으로 퇴원한 지 일주일. 아직은 마음을 안 따라주는 몸이다. 부르르, 부르르, 트리를 불고 혀를 잘근잘근 씹어본다. 다시 천천히 힘을 모아 한 걸음 한 걸음 엄마 숨결을 향해 발을 옮긴다.
바람의 무게가 느껴진다. 한 걸음.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난다. 샛노랗게 달린 열매에서 향긋한 향이 흘러나온다. 향의 소리도 가을 하늘만큼 상큼하고 신선하다. 어린 날의 추억이 슬그머니 기지개를 편다. 날카로운 가시를 피해가며 잘 익은 탱자 하나를 따서 입 안에 넣었다. 눈이 찡긋해질 만큼 새콤달콤한 맛이다. 동글동글 씨앗들이 한입 가득 남는다. 후루루 퉤, 입안이 알싸하다. 코끝까지 개운해진다. 엄마는 그것을 뒷마루에 말려두었다가 우리가 고뿔이라도 걸릴 양이면 화롯불에 약탕기를 올려놓고선 내내 달였다. 그런 날은 달빛조차 환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다시 한 걸음.
발이 돌에 걸려 삐끗했다. 작은 돌멩이에도 이젠 균형을 잃는다. 발밑을 조심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질경이가 밟혔다. 엄마는 이것을 소달구지 밑에서도 살아남는 배짱 좋은 녀석이라고 했다. 길가에 흔한 풀로 산에서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에게 질경이는 고소한 냄새로 남아있다. 엄마는 그것을 끓는 물에 데쳐 간장 넣고 조물거리다가 참깨를 뿌리고 들기름을 살짝 쳐서 무쳐 주시곤 하셨다. 지금도 그 고소함이 땅에 납작 엎드린 잎에 묻어 있다. 갈색이 되어가는 씨앗들도 대글대글 영글어 있다. 무르익어가는 것이다. 나도 이처럼 잘 익을 수 있을까? 오십 초반에 갑작스레 찾아온 뇌경색은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쉼표를 허락하는 선물임을 확신한다. 이렇게 한 걸음에도 5초 이상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잠포록한 날씨다. 또 한 걸음.
한 해를 달려온 엄마, 그녀의 마지막 숙제인 배추밭을 지난다. 일렬로 길게 뻗은 밭이랑에 진녹색 배추가 예닐곱 겹의 속살을 채워가고 있다. 김장철이 오면 노랗게 속이 찬 배추가 토방 가득 쌓이겠지. 배추를 네 조각으로 가르고, 그것을 소금에 절여 한밤을 재울 것이다. 품앗이 온 이웃 아주머니들과 무채를 치며 밤새는 줄 모를 것이다. 참깨 볶는 향이 진동하고, 시원한 배와 사과, 생강과 마늘, 대파, 양파의 매콤함과 달큼함이 온 마당을 차지할 것이다. 찹쌀 풀을 쑤어 태양초 고춧가루와 섞은 후 설탕 대신 홍시를 넣고, 까나리 액젓과 새우젓, 온갖 양념거리를 한데 섞어 버무리면 양념 준비는 끝이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배추에 빨간 양념을 입히며 시집간 딸 이야기와 갓 태어난 손주 이야기로 꽃을 피우시겠지. 부엌에선 보쌈 익는 냄새가 구수하고, 갓 버무린 배추김치를 손으로 죽죽 찢어 깨소금 듬뿍 묻혀서 고기 한 점을 싸 먹으면 겨울의 매운바람도 시어머니의 독한 시집살이도 모두 고소한 추억으로 변화될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두부를 가운데 놓고 한 입 두 입 김치와 곁들여 먹는 재미도 뺄 수 없다. 편하고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나는 김장문화가 변질되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또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고구마를 캐내고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황토가 보인다. 무더기무더기 된서리를 맞은 고구마 순들은 축축 늘어져 있다. 그 옆으로 노란 호박이 하나, 둘, 셋…. 여덟 덩이나 달려 있다. 늙은 호박을 갈아서 부침개를 해 먹고, 호박죽을 쑤었던 그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우리 여덟 남매와 작은집 여섯, 고모네 여덟 남매를 책임졌던 엄마의 식사 준비에 호박죽이 최고였다. 언니들과 나는 빙 둘러앉아 한 나절 내내 달챙이숟가락으로 껍질을 긁고 속을 파냈다. 호박씨는 깨끗이 씻어 채반에 말렸다가 백산을 만들 때 고명으로 쓸 것이다. 뭉텅뭉텅 토막 낸 호박을 큰 가마솥에 넣고 기다란 나무주걱으로 저으면서 끓여준다. 거기에 불린 찹쌀을 학독(돌확)에 갈아서 부어준다. 불렸다가 삶은 붉은 팥도 넣으면 궁합이 제격이다. 한참을 젓다 보면 몽글몽글 밝은 주황빛 죽이 된다. 어우렁더우렁 조화를 이루며 살던 배부른 가난이 해결되는 순간이다. 찹쌀 새알을 넣어 끓인 뜨끈한 호박죽을 생각하며 한 걸음에 힘을 모아 다시 발을 옮긴다.
툭, 툭, 툭.
엄마가 보인다. 토독, 토독, 토도독, 산 그림자가 짙게 내려와 누운 봉황산 자락에 깨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무죽죽하게 마른 들깨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은행나무에 기댄 채 돌아앉아 깨를 터는 엄마의 뒷모습은 작고 쓸쓸하였다. 머리카락을 감싼 하얀 수건엔 검불이 쉬고, 웅크린 등으로 고단한 가을바람이 끙끙거리며 지나간다.
내가 다가서는 것도 모른 채 긴 막대기로 깨를 터는 구순의 엄마. 십 년 전 먼저 떠난 남편의 빈자리, 그 허전함을 애써 털어낸다. 톡톡,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이 한 보따리 털어진다. 먼저 가버린 큰아들에 대한 애증이 또 한 보따리 쏟아진다. 진안 성수면 봉황산자락 상수리나무도 노랗게 다홍으로 물들어 가는데 돌아온다는 소식이 없는 이들을 부르는 소리다.
나는 아픈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허리를 세우고 웃음으로 입 꼬리를 올린다. 솔음으로 엄마를 불러본다.
“엄…, 마…, 엄마!”
소리는 울음을 먹고 잠긴다. 쪼그라든 엄마의 품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엄마의 깨 터는 소리는 여전히 봉황산에서 놀고, 엄마의 지게에 근심 한 짐을 더 지울 나는 한숨처럼 발길을 돌린다. 내 소리를 더 키워서 와야지. 내 걸음에 힘이 실리면 저 깨를 같이 털어야지. 고단한 엄마의 걸음에 힘을 주는 막내가 되어야지. 무수히 떨어지는 저 근심 덩어리가 웃음소리가 되기를 빌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들깨의 고소한 향이 한 걸음 앞서 걸어가고 있다.
▶당선소감
또 하나의 기적이 내게로 왔다.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막혔던 혈관들이 모두 열리고 두 눈이 맑아짐을 느낀다. 웃고 또 웃었다. 오선지에 가장 높은 음까지 올라간 목소리는 내려올 줄을 모른다.십 년 전부터 최명희의 「혼불」을 통해 그녀를 만나면서 묘사의 묘미를, 토박이말의 정겨움과 고유어의 속살거림을, 사라지는 전통 복원의 열정을,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혜안을, 우는 어깨를 다독일 줄 아는 심성과 어두운 곳에 소외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동경해왔었다. 이제 미흡하나마 그녀의 발자국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갈 수 있을까?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된다.감사할 은인들이 너무 많다. 곁에서 응원해준 남편과 아이들. 기름을 부어준 박정희 선생님, 경희 언니와 정민이 그리고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신 어머니와 가족들 모두가 감사할 따름이다.끝으로 나의 나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부족한 글에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전북일보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어머니께서 즐겨 쓰시는 말로 들뜬 마음을 마무리하련다.“하도 좋아. 하도 좋아”
△이진숙
1965년 전북 출생.
1989~2000년 고교 국어교사로 재직,
우석대평생교육원·조선대평생교육원 독서지도전문강사,
최명희문학관 전문위원
▶심사평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은 30편이었다. 3편을 응모한 사람이 4인이고 나머지 9인은 2편씩 응모했다. 응모자들의 나이는 중년층 이상인 것으로 판단되었고, 일상적인 생활경험을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글쓰기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소재를 다루는 솜씨와 그것을 문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자연스러운 서사적 진행에 초점을 맞추어 최종심 대상으로 3편의 작품을 선별했다.‘속긋을 긋다’와 ‘붉은 잠망의 시간’과 ‘한 걸음’은 글쓰기의 내공이 느껴지는 수작(秀作)들이다. 이 3편 모두 사물에 대한 감각과 자신의 경험을 통합하여 서술하는 능력, 글의 속도감과 긴장감, 서사적 진행의 자연스러움, 어휘 활용의 적절성과 소재를 풀어내는 노련함이 돋보였다.세 응모자의 또 다른 작품들도 당선작을 선정하는데 참고했다. 응모자 작품들을 면밀하게 다시 읽고 문학적 역량과 작가적 발전 가능성 등을 검토한 결과 ‘한 걸음’을 선정했다. 이 작품을 응모한 사람의 작품이 다른 두 명의 응모작들에 비해 글쓰기의 정치함과 감성적 호소력의 측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판단되었다.‘한 걸음’은 소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언어로 풀어내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특히 뇌경색으로 입원했다 퇴원한 화자-딸이 “힘을 모아 한 걸음 한 걸음 엄마의 숨결을 향해 발을 옮”기는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현재의 입장-상황에서 ‘고향의 풍경과 어머니의 숨결’을 여러 감각들을 동원하여 통합적으로 서술하고 표현하는 솜씨가 수준 이상이었다. 정제된 문장구성과 언어구사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고향의 실체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어머니와 고향을 감각적 이미지’로 부활시켜 향수감을 자극한 점도 ‘한 걸음’이 지닌 미덕이다. ‘멈춤과 쉼, 그리고 여유’를 되새기며 ‘실존(實存)의 깊은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한 이 응모자의 또 다른 작품인 ‘초짜드막(잠깐 동안)’도 ‘한 걸음’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긍지와 자부심을 지닌 작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전정구 문학평론가
나의 부족한 언어로 [2019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
박하림
엄마는 내게 부러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엄마, 친구들이 나더러 자기 이름도 못 쓰는 바보래.” 어느 소설에도 써먹었던 대사는 허구의 문장이 아니라 유치원에서 돌아온 내가 실제로 엄마에게 건넨 말이었다. 엄마는 넌 바보가 아니라며 날 다독였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내 이름을 쓰는 법에 관해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엄마, ‘바보’는 어떻게 쓰는 거야?” 태어나 처음 쓴 단어는 내 이름 석 자가 아닌 ‘바보’였다.
물론 그날의 이야기는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엄마에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내가 한 질문도, 그 질문에 담겨 있던 마음도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 웃으며 옛 추억을 얘기하는 엄마의 표정만 보자면 아주 어릴 적의 나는, 혹은 글을 몰랐을 때의 나는, 이름도 못 쓰는 바보라고 놀림당해도 울지도 괘념치도 않는 아이였던 듯했다. 글을 알고 난 후의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초등학생 때 바닷가 마을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를 했다. 서울 아이들은 사투리를 쓰는 내 말투를 가지고 놀렸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이 틀렸다는 지적과 비웃음을 내 책상에서, 교실 앞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음악실에서도 몇 번씩 들어야 했다. 부모님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처럼 ‘친구들이 내가 하는 말이 틀렸대’라고 고백할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넌 틀리지 않았다는 부모님의 대답에 아무렇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였다. 엄마가 갑작스레 이모가 있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냐고 물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은.
막 이민을 한 우리는 이모네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껏 본 집 중에 가장 넓었던 그곳에서 우리 네 가족은 방 한 칸을 빌려 지냈다. 정사각형 모양의 방에는 창문이 없는 대신 문이 두 개 달려 있었다. 거실 화장실로 통하는 문과 사촌 오빠와 언니의 방과도 이어진 복도로 통하는 문이었다. 난 첫 번째 문을 주로 사용했다. 오후 네 시 이후에는 저녁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네 시엔 사촌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언니는 내게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했다. 시간이 되어 거실 창밖으로 사촌 언니가 차를 몰고 오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내게 방으로 들어가라 일러줬다. 방에서는 한국어로 쓰인 책을 읽곤 했다. 독서가 단순히 재미있어서도 아니었고 다른 할 일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사촌 언니 오빠가 한국어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쓰는 이름을 쓰고 그 나라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만 대화하던 두 사람은 한국어가 서툴렀다. 그게 나의 가장 큰 위안이었다.
이모네 식구와 우리 식구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였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촌 언니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 가족에 관한 얘기를 했다. “쟤네들이 우리 집 방 한 칸에서 얹혀살아.” 언니가 스페인어로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알아듣는 척을 하는 것보다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게 더 어렵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언니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내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사실이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나나 내 옆의 동생이 바로 앞에서 무슨 말을 한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여기는 언니의 당당하고도 당연한 태도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청바지를 엄마가 잘못 세탁했다며 따지던 사촌 오빠의 말이나.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나도 죽고 싶어요”라며 흐느끼던 엄마의 말이나. 저 뚱뚱하고 못생긴 애가 너처럼 생겼다며 생전 처음 보는 여자아이와 날 가리키던 사촌 언니의 말이나. 누군가 내게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라고 했다. 내겐 말이 그랬다. 말이 늘수록 상처가 늘었다.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서야 아빠가 내게 물었다. 우리끼리만 사는 게 좋겠냐고. 여기 이 방보다 훨씬 좁은 집이어도 괜찮겠냐고. 나는 일 년 전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생이 되었을 땐 스페인어를 제법 할 수 있었다. 예전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없었지만, 어눌한 억양에 또 한 번 놀림을 받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은 내가 욕을 할 때 가장 크게 웃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말투가 아닌 내가 느끼는 감정조차 가짜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화가 치밀어도 욕을 함부로 뱉지 못했다. 나보다 성적이 낮은 아이는 많았지만 나보다 장학금이 적은 아이는 거의 없었다. 언젠가 아빠와 함께 행정실을 찾았을 때 그 이유를 물었다. 외국인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직원의 설명이 변명처럼 돌아왔다. 나는 옆에서 나와 직원 사이의 대화를 번역해 주길 기다리는 아빠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Extranjero. 엑스뜨랑헤로. 외국인. 이방인. 넌 이방인이니 우리보다 우리말을 못하는 게 당연해. 나는 그 당연함이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나라가, 그곳의 사람들이 미워 스페인어를 더 공부했다. 사촌 언니와 오빠를 보며 한국어를 공부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유에서였다. 언어는 가장 갖고 싶고, 잘 다루고 싶은 무기였다. 그 무기로 내가 상처 입은 만큼 남을 상처 입히고 싶었다. 그때부터 국어 수업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애썼다. 점수로 일등을 차지하지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너넨 ‘우리말’이라는 게 없잖아. 다른 나라 언어를 빌려 쓰고 있는 주제에.” 날 괴롭히던 한 남자아이를 비웃으며 그런 말을 던졌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한 사람만을 향해 한 말은 아니었다. 교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 그리고 교실 저 너머에 있을 그 나라의 모든 사람이 들었으면 하고 지껄인 말이었다. 내 말에 아이는 조용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 말을 한 걸 아직도 후회한다.
그러다 시끌벅적했던 중학교 졸업식 날 소중한 친구에게서 손편지 한 통을 받았다. 친구는 우리나라를, 네가 머물다 가는 모든 곳을 사랑해달라고 내게 썼다. 누가 보기엔 별것 아닐지도 모를 그 편지의 내용이 나를 늘 들끓게 하던 화를 꺼트렸다. 동글동글한 글씨로 적어 내린 몇 마디의 문장은 어쩌면 내가 그때껏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친구와 다른 고등학교에 들어간 난 그 편지에 관한 글을 썼고 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내 글에 공감한다는 말을 건넸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난 반짝이던 시상식이 아니라 시상식장을 나서며 올려다본 밤하늘을 두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아빠에게 전했을 때, 아빠는 한숨을 쉬었다. “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아빠는 말로, 그리고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엄마는 침묵으로 날 무너뜨렸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겠다는 게 뭐가 그리 잘못되고 쓸모없는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글을 쓰겠다는 거냐.” 네 언어는 부족하다는 그 모진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아팠다. 그것은 꼭 내가 여태 받은 상처 또한 부족하다는 말 같았다.
결국 나는 아빠가 바라던 경영대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일 년을 채우지 못한 채 자퇴서를 냈다. 다른 대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불합격을 받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내게 한 말이 자꾸 생각났다. 네 선택은 틀렸어. 분명 후회할 거야. 그렇게 점점 움츠러드는 몸을 이끌고 밖을 나선 어느 날, 우연히 한 작가분이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 관한 공지를 보고 괜히 마음이 끌려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은 어느 주택을 개조한 작은 서점의 다락방에서 열렸다. 우리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각자 단편을 쓰고 그것을 함께 나눴다. 난생처음 쓴 내 단편을 모두와 읽었을 때, 부족하다는 감상만 받게 되는 건 아닐까 하던 내 걱정과는 달리 멋진 글이라는 칭찬을 연이어 받았다. 수업이 끝나 자리에서 일어났을 땐 한 여학생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글은 처음이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그 말을 곱씹었다.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
“이렇게 예쁜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지독하고 아픈 글을 쓸까요.” 몇 번의 수업을 함께한 작가님이 내게 말했다.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만큼이나 날 울고 싶게 하는 말이었다. 종종 묻곤 한다. 내가 쓴 글엔 내가 얼마나 들어 있는 걸까. 나의 전부가 들어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대체 뭘까. 그저 상처인 걸까. “우습지만, 그 사람의 영혼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꼭 글을 쓰지 않더라도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사람이 내게 들려준 대답이었다. 나의 영혼이 스며든 글. 내 언어는 늘 부족했고 나는 그것을 나의 부족함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상처가 나의 전부는 아니듯이 이 글 또한 나의 일부를 담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싶어 한 나의 마음은 진짜였다. 그러니 그 어떤 언어로 쓰였든, 틀리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선 통보를 받고 "수필은 가장 나다운 장르…내 글에 책임지는 작가 될 것"
엄마는 최근에야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법을 배우셨다. 지구 반대편에서 엄마가 내게 보낸 문자는 늘 이곳 시간으로 이른 새벽에 도착했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엄마의 글을 읽었다.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엄마의 문장을 끊어 읽는 동안엔 매번 숨이 가쁘고 눈물이 났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아빠의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나를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렇게 우셨다던 아빠를 상상하며, 아빠가 내게 ‘포기해라’ 말했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언젠가 그걸 보여드릴 날이 올지 모르겠다.무슨 언어를 쓰든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 글을 썼다. 웃으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울면서 시작한 게 글쓰기였기에, 눈물이 말라버리면 내 글쓰기도 끝이 날까봐 두려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내 글을 읽고 싶다는 이들이 있기에 괜찮다. 앞으로 글을 쓰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기에 괜찮다. “엄마, 아빠. 나는 결코 당신들의 딸로 태어나 자란 걸 불행이라 여긴 적이 없습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언어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꿈은 여전히 작아진 적 없이 늘 그대로였습니다.” 내 글을 발견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나는 나만의 언어로 계속 글을 쓰려 한다.
박하림 씨는 △1989년 전남 순천 출생
△싱가포르국립대·호주국립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심사평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를 담은 흥미로운 작품
올해 신설된 2019 한경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512명이 지원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으며 심사에 들어갔다. 응모작 상당수는 체험을 묘사했지만 가족의 죽음, 첫사랑, 사업 실패 등 낯익은 이야기가 많았다. 수필엔 개인의 체험과 함께 문학적 참신성, 문체의 독특함 등을 고루 담아내야 한다.1차 관문을 통과한 응모자는 김혜경, 도희주, 박하림, 백태철, 서상, 우마루내, 조경호, 허명숙, 홍미자다. 이 중 김혜경의 ‘아름다운 그늘’은 문학적 완성도가 부족했고 다소 신파적이었지만 체험에서 나온 감수성을 잘 녹여낸 순수하고 어여쁜 글이었다.최종 집중 토론 대상작은 박하림의 ‘나의 부족한 언어로’와 홍미자의 ‘개오기’였다. ‘개오기’는 오랜 삶을 산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인생적 발견과 깨달음’이란 의미를 잘 담아냈다. 흠잡을 데 없는 높은 완성도를 갖췄다.정목일 수필가구효서 소설가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2019 기독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하미경
궤
처음으로 혼자 방을 쓰게 되었을 때였다. 방 한쪽 구석에 그것이 있었다. 거무튀튀한 색의 반닫이였다. 칠이 벗겨진 건지 칠을 한 적이 없었던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표면이 거칠었다. 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가운데에는 까만 쇠 구멍이 위에 두 개, 아래에 세 개가 있었다. 다섯 개 구멍을 일렬로 꿰어 길쭉한 쇠를 걸어 두었다. 걸쇠 아래쪽에는 경첩이 있었는데 군데군데 녹이 슬어 얼룩덜룩했다. 오래된 물건처럼 보였다. 나보다 먼저 방을 차지하고 있는 궤가 어쩐지 방의 주인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상상해보았다. 슬그머니 열어볼 생각도 했지
만 열쇠도 없었고 혹시 열었다가 뭔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나와 닮아 보이기도 했다. 그즈음 나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 비밀이 아니었지만 비밀처럼 간직한 일기를 쓰며 나는 조금씩 자랐다. 지금 봐도 어려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또박또박 일기장에 쓰기도 했다.
새벽까지 책을 읽다보면 방이 점점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체온에 의지한 채 잠이 들었다가 어머니가 아침밥을 짓느라 불을 때면 그제야 구들 위로 몸을 폈다. 장판에 손을 대고 미지근한 기운을 느끼면서 깊은 잠이 들었다. 겨울아침 늦잠은 순전히 뜨끈한 방구들 때문이었다. 세상모르고 자다가 고무장갑을 낀 손에 엉덩이를 맞고서야 깼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버스를 놓치겠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갔다. 행복이 뭔지 잘 몰랐지만 크게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가난이라는 말뜻을 아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내밀었지만 보호자의 도장은 찍히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팠지만 고등학교에 못 갈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성적도 좋아서 장학생이었으니 도장만 찍으면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머니는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도 말이 없었다. 학교는 보내줘야 한다며 울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입을 꽉 다문 궤처럼 어머니는 입에는 열쇠도 없는 자물쇠가 달렸다. 졸업식이 끝나고 사흘이
지났다. 나는 냉골에 궤와 함께 처박혀 있었다. 나랑 어울리던 친구들은 나의 사정을 이해할 수없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도 나의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난이란 이렇게 힘이 센 것인가. 아무리그래도 진학을 해야한다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불안은 온갖 수식어가 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중에 제일 큰 불안은 집에 머물러있다는 것이었다.
잠도 오지 않고 밥맛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고집이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고집이 장점이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허튼 짓이 아니라면 사람이 강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집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씀도 자주하셨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내게 일러둔 말씀이었을까. 그래도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내하는 대로 내버려두다니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집을 떠나야겠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말을 걸 수 도 없을 만큼 완강한 어머니였다. 나도 속을 내보이기 싫었다. 끙끙거리며 궤를 들여다보았다. 나랑 몇 년을 함께 살았던 그것의 속을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칠이 벗어지고 녹이 슬어있었다. 그렇지만 왠지 내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았다.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궤에 내 마음을 털어 놓았다. 나는 집을 떠날 거야.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거야.
사흘 동안 냉골에서 얻은 결론은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학교를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보니 얼마 전 견학을 갔던 공장이 생각났다. 그곳은 여러 가지 공정을 거쳐 실을 만들어 천을 짜는 곳이었다. 각 공정마다 조금씩 하는 일이 달랐는데 각 공정마다 중학교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작업복을 입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친하게 지낸 친구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중학교에서 봤던 친구들이 헐렁한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맡은 일을 하느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은 꽤 어른스러웠다. 나는 이런 곳이 있었나 싶어 자세히 보았다. 할 수 있다면 주경야독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미리 서류를 내고 지원을 했어야 했다.
늦은 게 아닐까. 과연 그곳에서 나를 받아줄까. 벌써 졸업을 했으니 학교선생님을 찾아 갈 생
각도 못한 채 무작정 공장으로 향했다. 주머니에는 달랑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뿐이었다. 버스를 타고나니 그것마저 없어졌다. 걸어야했다. 새로 만든 도로였다. 공단이조성된지얼마되지않았을때였으니다니던 차도 없었다. 보도블록도 제대로 깔지 않은 길이었다. 말라붙은 개망초 대궁이 제멋대로 바람에 날렸다. 2월이라 바람이 찼다. 자꾸만 눈을 헤집는 바람 때문에 눈물이 났다. 슬프지는 않았지만 얼얼한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너무 짰다. 눈물길을 따라 볼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나를 따라오던 그림자가 짧아졌다가 어느새 길어져 나를 앞서 걸었다. 그림자를 밟으며 걸음을 재촉했지만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갔던 길을 걸어가려니 멀기만 했다. 추위에 몸이 얼어붙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웅크린 채 계속 걸었다. 길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행여나 길을 잃을까 확인하며 걷고 또 걸었다. 어둠살이끼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그곳에 도착했다.
수위실 문을 두드렸다.
“학교에 가려고 왔어요.”
수위아저씨가 놀라 달려 나왔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기숙사 방이었다. 혼자 쓸 수 있는 방은 아니었지
만 그래도 살 곳이 생겼다. 그것만으로 안도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힘들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니 웃음의 가면을 쓰고 씩씩하게 버텼다. 그래도 학교에 다닐수 있으니 집을 나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서 집을 떠난 것이 나의 선택이고 결정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날 짠 눈물을 삼킨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어린 딸이 떠난 방에서 냉골을 견디며 더욱 치열하게 살았던 어머니의 삶을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식물의 씨앗들은 모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야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 살아갈 힘을 씨앗에게 담아놓은 것이다. 나도 어머니의 품에서 그것을 배웠다. 떠나야할 시간이 왔음을 감지했을 때 주저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어머니를 원망했었다.
나에게만 침범 당하고 싶지 않은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 욕심 때문에 부모의 속을 긁어 아프게 하고도 모른 척했다. 고집만 피우지 말고 속을 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받아 줄 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속을 내보이는 일은 어렵다. 가슴 속에는 여전히 큰 궤 하나를 품고 산다. 하지만 가끔 넣어 둔속을 꺼내 보기도 하고 들려주기도 한다. 궤의 쓸모는 보관에 있다지만 너무 오래 묵으면 쓸 데가 없다. 마음속의 궤가 꽉 차지 않기를 바란다.
<끝>
하미경 1970년 경남 창녕 출생.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방송통신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졸업. 포남교회 집사
수필 심사평 삶의 깊이와 무게 소통과 공감에 흡인력 발휘
수필은 살아가면서 겪는 자신의 경험을 보여주고 거기서 느끼는 생각과 정서에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글이다. 단순한 경험담을 쓰는 것은 수기다. 수기는 좁은 의미(협의狹義)의 문학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독자와 감동으로써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주관에 따라서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문학성, 즉 독자에게 전달될 감동을 염두에 두었다. 신춘문예 첫 수필장르를 축하하며 응모작140여 편을 읽었다.
‘묵을 쑤다’는 모녀가 묵을 쑤면서 딸의 눈으로 바라본 어머니에 대한 추억, 가난으로 해서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녹여내며 ‘앙금’으로 비유한 것이 좋았다. 문학성, 삶에 대한 깊은 이해. 전 달력 등 군더더기가 없는 글이다. 주제 결론 전개다 좋다. 개성적인 문체의 구사에 애를 더 쓴다면 나무랄 데가 없을 것 같다.
‘내 할머니’는 탄탄한 문장력이요 단아한 글 솜씨였다. 하지만 할머니에 대한 너무 많은 일화가 되레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아버지를 드러낼 수 있는 제재들을 집약적으로 선택했다면 글의 주제가 더욱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글의 흐름에 단락 나눔은 몹시 중요하다
‘새벽밥과 새벽예배’는글의 주제가 분명하고 진솔하지만, 서두가 너무 길어서 전체적 구조의 밸런스가 허술했다. 전체적 구성과 내용단락, 형식단락의 구성 면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 결론으로 제시한 자유로운 영성에 대한 부분을 더욱 심화했다면 안정적인 형상화에 기여했을 것이다.
‘비상금’과 ‘따뜻함’은 문학성, 문장력, 주제 등 두루 좋았다. 다만 본인의 고통을 지나치게 천착하여 전개가 일방적이고 제목도 다소 평면적인 감을 주었다.
‘어도魚道’와 ‘잎 솎음’은 문장은 매끄럽지 못하지만 자신의 삶을 비유해서 글을 풀어나가고자 애쓴 흔적이 보였다.
‘궤’와 ‘묵을 쑤다’ 이 두 편을 가지고 끝까지 고심을 했다. 궤 는 삶의 깊이와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어머니와 자신을 은유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삶의 특별한 시기를 나직하지만 힘 있게 펼쳐냄으로써 소통과 공감에 흡인력을 발휘했다. 또 다른 작품 ‘혜거당’도 수작이다. 두 작품 모두 제목의 인상이 특별했다.
은옥진 권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