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쥬신제국사42-구야의 김수로왕>
金首露王(김수로왕)
☯ 멸망하는 쥬신 및 북부여 세력들의 한반도 유입으로 마한도 몰락
무려 2천년 동안, 동아시아의 패자(霸者)로 군림하던 대쥬신제국[대조선제국(大朝鮮帝國)]이 어이없이 자멸해 버리고, 힘의 공백을 틈타 천왕랑(天王郞) 해모수(解慕漱)가 북부여(北夫餘)를 일으켰으나, 그 동안 쥬신의 잔재 세력들이 언제 다시 저항해 올지 염려되어 구제국의 중신(重臣)들에 대한 처우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특히 영지를 완전히 잃은 불쥬신과 신쥬신의 왕들, 그리고 5가[오가(五加)]의 욕살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은 신정부의 안전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부여의 해모수 정부는 아직 말쥬신의 남쪽 영지가 많이 비어있음에 착안하여 문제의 구신(舊臣)들을 남쪽으로 추방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돌아서 그 후 쥬신의 구신(舊臣)들을 추방했던 그들이 가우리의 똑같은 정책에 희생되어 이번엔 그들 자신이 추방당하니, 한반도의 남부가 갑자기 밀려 내려오는 북방의 백성들로 인하여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한반도는 쥬신제국 때부터 말쥬신의 영지였으나, 중국과 쥬신의 패권 다툼으로 그 남부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늦었다. 더욱이 기자[개아지]쥬신[기자조선(奇子朝鮮)]의 준왕(準王)이 메주골에 목지국(目支國)을 세우고, 잇따라 새라불[서라벌(徐羅伐)], 백제(百濟), 십제(十濟) 등의 북방 세력들이 속속 진출해 들어옴에 따라 54개 제후국을 호령하던 마한(馬韓)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저름새[조령(鳥嶺)]의 남쪽 땅, 즉 지금의 경상도는 소백과 태백의 양대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북방의 전란(戰亂)을 모르는 채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제 [북방] 구신(舊臣)들의 분산 정책으로 새로운 세력들의 각축장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선주(先住) 세력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에 도전해 오는 신흥 세력들에 완강히 저항함으로써 도처에서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질서가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아 갔다.
《북방 유민들이 몰려드는 한반도의 정세도》
☯ 망한 불쥬신의 왕손 이비가, 한반도 동남방 미오야마국 왕이 되다
이미 망해버린 옛 불쥬신[변조선(卞朝鮮)]의 왕손 이비가(夷毘訶)도 일단의 추종세력을 이끌고 반도의 남쪽으로 새로이 정착한 땅을 찾아 내려오고 있었다. 그도 처음에는 땅이 비옥한 호남(湖南) 쪽으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이미 강력한 세력들이 각축하고 있어, 할 수 없이 험난한 소백산맥을 넘어 미오야마[지금의 고령(高靈) 지역에 도착하여 보니, 땅이 넓고 기름져서 새 나라를 일으키기에 적당하였다.
당시는 과학이 별로 발달하지 못하여 세상의 모든 조화를 다 신(神)의 뜻으로 돌리고 모든 사람들이 신을 섬기고 있었다. 따라서 신에 제사하는 권리를 독점한 군왕[(君王):제사장(祭司長)]이나, 산신(山神) 등을 모시는 무당들의 권한이 대단하였다.
미오야마[미오사마(彌烏邪馬)]지역의 ᄀᆞᆷ산[지금의 가야산(加耶山)]에는 정견모주(政見母主)라는 여인이 산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녀는 현지 백성들의 농사일, 병 치료부터 중매,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손끝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할 정도로 민심(民心)을 한 손에 장악하고 있었다.
남의 지역에 정착하려는 이비가(夷毘訶)로서는 아무래도 원주(原住) 세력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는 힘으로 굴복시키기보다는 현지의 중심 세력이 되어있는 정견모주와 정략 결혼하는 편이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ᄀᆞᆷ산의 여산신이라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다.
♬(말풍선)
“나는 불쥬신의 왕손인 이비가라는 사람이다. 오늘 그대 정견(正見)을 처(妻)로 맞아들이고 싶어 찾아왔다. 어떤가? 나와 결혼하여 이 곳에 새 나라를 세우는 데 힘이 되어 주지 않겠는가?” (이비가)
↔
“나 역시 훌륭한 남편을 기다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그대가 스스로 찾아와 청혼하니 내 기꺼이 그대의 아내가 되어 이 곳에 새 나라를 세우는 데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정견모주)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정견모주는 한눈에 영웅을 알아보았다. 그들의 결혼식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뜻에 따라 원주민들과 새로 진출해 온 세력들이 화합이 원만히 이루어져서 드디어 신국(新國)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으니, 그 나라 이름을 미오야마국[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이라 하였다.
☯ 이비가의 둘째 아들 뇌실청예(=김수로) 김해지역 왕이 되다
정견모주는 이비가의 두 아들을 낳았다. 큰 아들은 이름을 붉은해[뇌실주일(腦室朱日)]라 하여 태자에 봉하였다.
둘째 아들은 푸른자손[뇌실청예(腦室靑裔)]이라 하였는데. 기골이 장대하여 주위 사람이 그 체격에 위압 당하니 그가 바로 김수로(金首露)왕이다.
이비가왕이 세상을 뜨자, 붉은해가 미오야마국[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의 칸[한(汗)=왕(王)]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후에 대가야(大加耶)의 시조(始祖)로 불리는 이진아고(伊珍阿鼓)왕이다.
붉은해 칸[한(汗)]은 푸른자손[뇌실청예(腦室靑裔)]을 대장군으로 삼아 그 일대에서 아직도 마한(馬韓)에 조공(朝貢)을 하고 있던 소국(小國)들을 정복하여 5개의 연방국을 세웠으니, ① 미오야마[미오사마(彌烏邪馬):지금의 합천(陜川)] ② 아라(阿羅) ③ 고령(高靈) ④ 별뫼[성산(星山) ⑤ 구지[고자(古資)] 등이 그것이다.
정치제도는 옛 쥬신제국의 것을 본떠서 5개 지역의 5칸[오한(五汗)]들이 모여 나라의 대소사(大小事)를 의논하여 결정하였다.
선왕 이비가를 따라 왔던 불쥬신 세력들은 이리하여 오칸 동맹국[오한동맹국(五汗同盟國)으로 각각 나라의 체제를 잡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들은 이번 정복전의 일등 공신인 뇌실청예 장군에 대한 포상을 위하여 5칸[오한(五汗) 특별회의를 열었다.
♬(말풍선)
“뇌실청예 대장군, 그대가 원하는 어떠한 지역이라도 할애할 것이다. 그대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땅을 골라 보도록 하오. 하하하!” (뇌실주일 미오야마국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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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이 오칸 회의에서 저에게 그러한 영광을 주신다면, 저는 남쪽 끝에 위치한 구야(拘耶) 땅을 원합니다.”
“구야 지역은 바다와 접하고 있어서 외적들의 침입이 용이한 곳이므로 내가 그곳을 지켜 우리 오칸 동맹국의 안녕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옵니다.” (뇌실청예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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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뇌실청예 장군은 장하시오. 이로써 오칸회의[오한회의(五汗會議)]는 구야(拘耶) 지역에 대한 장군의 영유권을 승인하오. 그뿐만 아니라 장군의 새 나라 구야한국(拘耶汗國) 설립을 우리 모두 도울 것이오. 우선 미오야마군[미오사마군(彌烏邪馬軍)] 900명을 장군에게 넘겨주겠소. 그 정도면 충분하겠소?”
“구야 지역엔 여러 나라 백성들이 섞여 살고 있어서 다른 지역과는 좀 사정이 다를 것이니, 아마도 장군이 아니면 그 지역을 통치할 사람이 없을 것이오, 자, 건투를 빕시다.” (뇌실주일 미오야마국 칸)
오칸 회의의 결정에 따라 뇌실청예 장군은 900명의 보기군(步騎軍)을 거느리고 낙동강(洛東江) 하류의 구야[구야(拘耶): 지금의 김해]로 진격해 갔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원주민들은 아무 저항 없이 장군 일행을 맞아 주었다. 아직까지도 그들에겐 강력한 통치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강의 하구에 도달해 보니, 그곳에는 어디선가 막 도착한 듯싶은 황포 돛의 거선들이 20여 척이나 정박해 있었다. 혹시나 침략자일까 싶은 생각에 군대를 전투태세로 돌입시키고, 장군 자신이 말을 달려 나가니 저쪽에서도 대표자가 나와 장군을 맞이하였다.
♬(말풍선)
“나는 용성국(龍城國)의 큰무라[건모라(建牟羅)]에서 온 타래 칸[탈해(脫解)한(汗)]이오, 이곳 구야 땅이 주인이 없다고 하기에 찾아왔는데, 지금 보니 이미 나라가 세워져 있는 듯하니 잘못 찾아온 모양이오.”
“우리는 굳이 그대들과 피 흘리며 싸워서까지 이 땅을 차지할 생각은 없소, 사실 삼도[왜지(倭地)]도 땅이 넓고 대부분 주인 없이 버려져 있으므로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정착하는 것이 좋을지 삼도로 가는 것이 좋을지 서로 분분하게 의논하고 있던 중이었소.” (타래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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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을 해 주어서 고맙소. 나 역시 이 땅에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오는 길이오. 나는 뇌실청예라 하오.”
“이곳은 우리 오칸동맹국[오한동맹국(五汗同盟國)]의 남쪽 해안지방이므로 나로서는 양보할 입장에 있지 않소. 부디 나의 입장을 양해해 주시오.”
“그런데 용성국(龍城國)의 타래칸[탈해한(脫解汗)]이라 하셨는데, 칸의 본국에 무슨 변란이라도 있어서 이곳까지 오셨소?” (뇌실청예 장군)
우리나라 초기 역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두 영웅은 서로의 인물에 반하여 초면인데도 서로 술을 주고받으며 밤이 새도록 세상사를 의논하니, 세상의 돌아가는 사정에 밝아지게 되었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 것이다. §
2020.4.27 편집
一鼓 김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