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大安.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곳 천안.(홍보글)
(천안 삼거리 변천)
1. 천안의 유래. 2. 천안삼거리 전설.
[천안의 유래] 글.옴겨온날. 2014년 3월 1일(토)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은 天下大安 의준말이다.
하늘 아래 가장 살기좋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천안은 삼남의 관문이라서 천안을 보면 삼남의 형편을 안다고 한다.
따라서 천안이 편해야 나라가 편다는 뜻도 된다.
* 천안 교통의 역사는 1번 국도가 나고 경부선이 깔리던 근대사의 이야기가아니다.
먼 삼한시대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팔도 제일의 교통요지였다.
경상도를 가든 전라도를 가든 충청도를 가든 예나 지금이나 천안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천안교통의 역사는 홍경사지 비갈 국보7호 같은 문화유산이나 천안삼거리 같은 전설로 .
여실히 남아서 우리에게 전해온다,
[천안 삼거리 전설]
*고려말 이조 초엽에 무관공신" 유봉서"는 낙향하여 경상도 함양에서 주경야독 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중 왜경의 침입으로 인하여 처자를 잃고 독신으로 "능수" 라고하는
어린 외동딸을 데리고 곤중한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능수는 나이 7세에 운일지십하는 탁 월한 재능과 보기드문 미색을 갗우고 더우기 효성이 지극하여 동래 사람들로 하여금 총매 를 받는 유일한 존재가 되였다.
이러던차 왜 적을 물리치라는 명령을 받은 유봉서는 어린 능수를 데리고 전지로 가게되였을때.
천안 삼거리에 이르고 보니 임지에 도착할 날짜가 너 무나 늦어진지라 왕명위배도 물론이거니와
애국의 지성 또한 촌각인들 계울리 할수없어 부득이 오파리 같은 딸의 손목을 붙들고 단장의 이별을
하지 않을수 없어으니 산천 초목 까지도 눈물을 먹은듯 차마 볼수 없는 정경 이였다.
(옛 사거리에 서있던 4층석탑이 현제 삼거리 공원으로 옴겨진곳)
(옛 주막집(위에)
유봉서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버들 지팡이를 노변에 심으며 이나무가 무성이 자라서 잎이 필때
나의 딸도 몸성히 자라거라. 이말을 남기고 몸부림을 치는 능수를 뒤에두고.
눈물을 뿌리면서 발거름을 돌렸던 것이다.
그 후 세월은 수십년이 흘러 세종대왕시 전라도 고부 에서 선비 "박현수"는 과거를 응시코져 上京 도중 천안삼거리에 이르러 어느 초라한 주막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절세미인 유능수를 만나 담소중에 서로 의사와 이상이 상합하여 하루 한 낮을 줄기고 그 다음날 출발 하여 과거길에 올 랐으니
흣날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것이였다, (아래사진은 천안박물관에서 촬영)
발이 부르트고 몸이 괴로운 것도 이제 얼마 후 능수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참고 견딜수 있었으며 과거에는 특급제 해야 겠다는 생각 이 능수때문에 더 높아만 갔다.결국 십년공부가 헛되지 않았는지 장원으로
급제하여 삼남어사 의 직품을 배명받고 행차 노정에 다시 삼거리에 들려 능수를 만나 서로 얼싸않고
그 피웠던 정을 나누면서 백년가약을 맺으니 서로의 기쁨은 무한하였으나 부친을 생이별하고 10여년간 고생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설음이 복받쳐 박어사의 품에 안겨 한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한편.유봉서가 심어 놓은 버들지팡이는 무성이 자라서 잎이 피고 정자가 되였는데 그 밑에서 흐느끼고 있는 능수의 삼단같은 머리쌔를 만지는 박어사는 문득 생각하는 바 있어 연못을 파고 창포를 심었으며 한 구절을음은글이 민요가 되어 참천리 방방곡곡에 알려 졌으니-(아래사진은2013년 9월에 삼거리공원)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제 멋에 겨워서 축 늘어졌구나 흥 -----
그 후 매년 단오절이 오면 그 옛날 능수를 상기하는 인근 주민들은 창포를 뜯어 연못에 머리을 감고
능수버들에 그네를 매어서 줄겨으니 오늘날 까지 매년 행사의 하나로 되여있다.
#.(우리의 뿌리 연구자료 에서 옵겨쓴사람).천안시 인터넷 모니터.최병국.<사진촬영>13년9월 최병국.
천안 삼거리 영남루.
첫댓글 좋은글 사진 감사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못된 내용(사진 설명중)이 있어 글을 씁니다.
위 두번재 사진은 옛지명은 돌모랭이(돌아가는길)입니다.
예전에 이곳에 삼거리 표지석이 있어서 위치가 잘못되었다고 여러군데 항의도 하곤 했습니다.
위 사진에 있던 탑 또한 혀재 청수지구안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에서 나온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세번째 사진은 삼거리 공원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식당에 불과합니다.
천안시 삼룡동은 크게 세개의 부락(마을)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동중학교 지역을
첫째, 둔지미(군대가 주둔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둘째, 방죽말(지금의 삼거리 공원 앞동네)
계속됩니다
셋째, 삼거리(현재 청수지구로 편입된 지역과 천안여고 인근지역)
그외 샛골, 무생이(무상) 등의 마을들이 있었으나 현재 무생이라는 마을은 살아져 버리고 없는 상황입니다.
원래의 삼거리는 현재 청수지구로 포함된 초입에 초가집 구조물에서 뒷족으로 50여m 지역에
주막집(주인분이 조막손이었다 함)이 실제로 존재(작고하신 저희 할아버님 어린시절까지 존재) 하였다 합니다.
그 주막집에서 현재 백석대학 교회가 신축된 곳에 쬐금한 고개가 있었는데 명칭이 "온양고개"로 불리었고
천안역이 생기기 이전에는 이곳 온양고개를 통하여 화룻불->쑥고개 ->온양으로 왕래하였다합니다.
계속됩니다..
옛 천안삼거리에서 지금의 21번국도 청삼교차로 옆으로 천안여고 옆쪽으로 윗방죽열을 통하여 납안들고개를 넘어
목천 성남 진천----으로 쭉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지금의 1번국도 천안여고 지나서 도리티고개(선문대위치)를 지나서 ...남쪽으로...
도리티 고개는 옛고전에도 나오는 지명입니다.
참 흑성산 옛지면 아니 지금도 그 지역에서 불리우는 지명 아시는지요?
흑성산 인근 나이드신 분들은 "거무싱이" 즉 검은산 그래서 흑성산이라고 불리어진것 같구요.
21번에 취암터널 이 이름도 옛지명에서 잘못 이기된것 같습니다.
이어 집니다
취암터널이 있는산 옛명칭은 "이빠진산"입니다.
어르신들 말씀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시절 배가 산을 들이받아 이가 빠졌다나 ㅎㅎㅎ
그래서 이빠진 산이라 했는데....
"치암산"이 맞는 이름인데......
천안에 대한 많은 옛날이야기가 있는데....나중에 기회가 되면 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