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나무 잎
오리나무 꽃, 열매
최고의 오리나무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리, 키20m, 줄기둘레334㎝, 수령200년
오동나무 꽃과 열매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큰 오동나무 양산 호계산
벽오동
벽오동 열매
▢ 오리나무, 오동나무
▫ 오리나무
오리나무도 한자 이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오리목(五里木)이라 하여 옛사람들의 거리표시 나무로 알려져 있다. 5리마다 자라고 있어서 길손의 이정표가 되었다고 오리나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일부러 심어서가 아니라 햇빛을 좋아해 길을 따라가다 보면 5리도 못 가서 만날 수 있는 나무다. 비슷한 이름으로 10리마다 만난다는 시무나무라는 나무도 있다.
오리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자라며 키20미터,둘레가 두세 아름에 이르는 큰 나무도 있다. 나무껍질은 흑갈색, 잘게 세로로 갈라진다. 잎은 양면에 광택이 있는 달걀모양으로 잎 끝이 뾰족하다. 꽃은 이른봄 긴 꼬리모양의 수꽃이 아래로 늘어져 핀다. 사람들이 자라는 족족 잘라서 진짜 오리나무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나 등산하는 사람들은 산에서 오리나무를 쉽게 만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진짜 오리나무가 아니라 둥근 잎을 가진 물오리나무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오리나무는 잎이 훨씬 크고 둥글며, 일본서 들여온 사방오리나무는 잎맥의 간격이 촘촘하고 더 많다. 오리나무 종류들은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고 있어서 웬만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리, 키20m, 줄기둘레334㎝, 수령200년
▫ 오동나무
속전속결이란 말이 어울리는 오동나무는 커다란 잎을 가지고 있다. 보통은 오각형에 지름이 20~30㎝지만 생장이 왕성한 어릴 때는 잎 지름은 거의 1미터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광합성을 많이 하여 단기간에 집중적인 양분 공급으로 급속히 몸체를 불린다. 가장 빨리 자라는 나무에 속한다.
세상사 모두는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빨리 자라다보니 목질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생긴다. 약 40퍼센트의 세포가 양분공급과 저장을 담당하는 유세포(柔細胞)란 녀석들이다. 물관도 20퍼센트쯤 되고, 나무의 단단하기에 관여하는 목섬유(木纖維)가 40퍼센트 남짓이다. 비중은 0.3으로 박달나무의 3분의1 수준이다.
수치상으로만 보아서는 푸석푸석한 나무가 되어 쓸모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오동나무는 효과적인 세포배열을 하고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적절히 넣어 자신의 몸값을 올렸다. 오동나무는 비중에 비해서 단단한 편이고 재질이 좋기로 이름 나 있다. 가볍고 연하여 가공하기 쉬우며, 무늬가 아름답고 잘 뒤틀어지지도 않는다.
습기에 강하며 불에도 잘 타지 않는 성질까지 있다. 그래서 옷장 재료로 흔히 쓰이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옛날 악기 재료이다. 소리의 전달 성능이 다른 나무보다 좋아서다. 우리나라 가야금과 거문고는 물론 중국, 일본의 전통악기에도 오동나무는 빠지지 않는다. 옛 문헌에 보면 오동나무 이야기를 수없이 많다. 많은 관리들이 관청이나 서원의 앞마당에 자라는 오동나무를 베어 거문고를 만들려다 불이익을 당하고 심지어 파직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조선중기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신흠(申欽, 1566∼1628)의《야언(野言)》에도“오동은 천년이 지나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라고 했다.
*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부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을 간직하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버드나무는 100번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오동나무는 오동나무와 참오동나무가 있는데, 남부지방에서는 드물게 대만오동나무도 자란다. 오동나무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자라던 나무로 추위에 강하여 북한에서도 자라고, 참오동나무는 울릉도가 고향이다. 우리 주변에는 오동나무보다 참오동나무가 더 흔하다. 오동나무는 통꽃의 안쪽에 보랏빛의 점선이 없고, 참오동나무는 점선이 뚜렷하다. 일본은 원래 오동나무가 없었으나 울릉도의 참오동나무가 건너가면서 널리 심고 있다. 일본인들도 오동나무를 좋아하며, 나막신을 비롯한 생활용품에 쓰였다. 오동나무 잎과 열매는 형상화하여 일본 총리의 문장으로 쓰기도 한다.
▫벽오동나무
중국 남부가 고향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에서 자란다.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 말의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키 20미터, 줄기둘레가 두 아름에 이르기도 하며, 한해 1미터 이상 클 만큼 자람이 굉장히 빠르다. 잎은 어른 손바닥 둘을 활짝 편만큼 크고 윗부분이 흔히 세 갈래로 갈라진다. 암수 같은 나무이며, 초여름에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연노랑의 작은 꽃들이 잔뜩 핀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다른 나무가 흉내 낼 수도 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 작은 장난감 배 모양의 얇고 오목한 열매인데, 암술의 일부가 요술을 부린 것이다. 가장자리에는 쪼글쪼글한 콩알 굵기의 씨앗이 보통 네 개씩 붙어 있다. 보기에는 금방 떨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꽤 단단히 붙어 있다. 바람에 씨앗을 날려 보내겠다는 의도인데, 바람에 멀리 날아가도 땅에 닿을 때까지는 꼭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씨앗을 볶아 먹으면 고소하고, 약간의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어서 커피 대용으로도 쓴다.
《동문선》에“벼가 누렇게 익어 가니 닭과 오리는 기뻐하지만/벽오동에 가을이 깊어지니 봉황은 수심이 가득하누나!”라는 이규보의 시가 나온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으로 배를 채울 수 없어서 벽오동 씨앗도 먹는다는 것이다.
벽오동(碧梧桐)은 줄기는 푸른빛이 나고, 잎 모양이 오동나무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 문헌에는“오동은 벽오동을 말하고, 동(桐)은 오동이다”라고 따로 설명한 경우도 있으나,‘오동’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벽오동나무인지 아니면 오동나무인지는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이 둘은 빨리 자라고 잎 모양새도 비슷하고 악기를 만드는 쓰임도 거의 같으니 헷갈릴 만도 하다. 나무를 잘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물관 등 세포배열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둘은 과(科)가 다를 만큼 거리가 먼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