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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영화채널에서 '호텔 뭄바이' 몇일마다 계속 재방송하는데 안보신분들 꼭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전세계 유명 관광지가 다 테러집단의 표적이 됩니다
전에는 인질확보하고 요구조건을 협상하는게 정석이었지만 최근엔 협상같은건 없고 무조건 많이 외국인 관광객들 최대한 많이 죽여서 전세계에 자기 조직을 널리 알리는게 목표입니다
여자나 애라고 봐주는거없고 민간인 최다살상이 테러의 목표입니다
10년전 발생한 인도 뭄바이 호텔의 총기테러는 정말 영화같은 설정이었는데 오히려 영화가 못따라 잡는다고하죠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2시간내내 나도 그호텔에 갖힌 투숙객들처럼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와 분위기에 압도됩니다
아울러 인도경찰이 그렇게 허술했나 믿기지도 않는데 그런거보면 100년전 영국이 인도 봤을때는 얼마나 엉망이었을런지 문명국이 야만국 교화시킨다는 강대국 논리가 좀 이해되기도 함
영화를 통해서 무엇보다 테러현장속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수 있는지 좀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 호텔에 당시 정부주최로 고위 공무원과 재계 인사들 50명이 있었는데 정말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왔다는군요
아래글은 당시 그 호텔에 갖혀있었던 한국인의 생존 수기이며 맨 아래 링크 네이버 블로그를 가면 잘려진 사진도 볼수 있습니다
테러범들의 ak47의 총 난사와 수류탄이 연이어 터지는 와중에 다른 외국 관광객들은 공포에 질려 어쩔줄 몰라하고 웅크려 떨고 있는 와중에도
한국인 아재들은 군대때 경험을 되살려 커피숍의 문을 탁자를 쌓아 막고 테러범의 접근을 차단하는등 생존에 큰 역활을 했다네요
이렇게 당시 인도에선 기차역과 유명카페, 여러곳의 5성급 호텔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가 시작됬습니다
생존은 이렇게 언제 어디서든 기차역이나 카페, 유명 5성급 호텔에서도 당할수 있다는거 잊지 말아야합니다
호텔 뭄바이-테러, 그 무자비한 현장-실제 체험 수기(1)
※ 수기 형식으로 쓰기 위하여, 경어대신 평어를 사용함을 양해 바랍니다.
1. 인도... 나에게 인도란?
어제, 4월 21일 부활절, 스리랑카에서 대규모 테러사건이 발생하여, 현재까지 약 260명의 사망자가 발생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끔찍한 일이다.
특히, 테러대상이 된 샹그릴라 호텔은, 작년 11월에 내가 스리랑카에 갔을때 묵었던 호텔의 바로 옆에 있는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이고, 내가 아는 지인 또한, 어제까지 스리랑카 여행을 갔다가, 인근 호텔이 테러를 당해서 호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저녁 비행기 만을 기다린다는 카톡을 받았다.
그리고, 4월 그저께 토요일에는 영화관에서 "호텔 뭄바이" 라는, 2008 년 뭄바이 테러사건을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한 터였다. 이 당시, 뭄바이 테러현장 중 하나인 타지 호텔에 발목을 잡혀있다가, 테러 현장을 직접 목격한 나는 기회가 된다면, 이 기록을 직접 글로 남겨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당시 기록들을 하나씩 찾아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스리랑카 테러 소식을 듣고는 급히,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때의 기록과, 기억을 차근차근 풀어 보려 한다.
내가 인도 뭄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것은, 2008년 8월 초순경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약 8시간의 비행 거리...
그때의 인도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90년대 중반, 델리인근에 내가 근무하던 회사의 인도 법인이 있었고, 이때, 1년 반 정도를 델리에서 파견 근무를 했었던 터였다. 2008년, 그당시 모셨던 분이 갑자기 나를 호출하여, 뭄바이 인근으로 가서 회사 설립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터였다.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에겐 나름대로 인도에 대한 어떤 묘한 감정이 있었다. 특히나, 뭄바이 인근 아우랑가바드에 있다는 유네스코 문화 유산인 석굴 사원들...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문화 유산은 내가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마음 먹었던 터였고, 인도산 망고의 그 달달한 향은 이미 내 후각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터라, 약간의 망설임 끝에, 결국 뭄바이로 가기로 결정했다.
십여년이 흐른 인도 뭄바이, 뭄바이는 인도 최대의 도시다. 인구 1200 만명을 웃도는 대도시인데다, 인도의 물류를 책임지는 나바샤바 컨테이너 항을 끼고 있는, 인도의 관문이다.
뭄바이는 옛날 영국 통치시절에는 '봄베이' 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그러나, 민족 정통성 확립이라는 취지 아래, 옛 지명인 뭄바이로 부르게 된건 오래전 일은 아니다.
저녁 7 시가 넘어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인도 현지 시간 새벽 2시경에 뭄바이의 관문 공항 "차트라파티 시바지 국제공항" 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터미널로 들어서는 순간, 훅! 하고 느껴지는 후텁지근한 열기...
그리고, 인도 특유의 냄새... 커리 음식에 많이 사용하는 '커리안더' 라는 향초의 냄새... 십여년만에, 드디어 인도 땅에 다시 발을 디뎠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뭄바이 국제 공항은 지금은 신청사를 새로 지었지만, 그때만해도 우리나라의 고속버스 터미널 수준을 넘지 않는, 국제 공항치고는 허름한 공항이었다. 까탈스러운 입국 심사를 마치고, 미리 연락을 해둔,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내온 택시를 타고 4시간 여의 밤길을 달려 도착한 푸네.
푸네는 뭄바이 동쪽 약 240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다. 고속도로라고는 하나, 밤중에도 체증이 심하고, 특히 뭄바이-푸네 사이에는 약 700 미터 고도의 고개가 있어,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린다. 고속도로 중간 중간에는 고장난 트럭인지, 잠시 쉬는 것인지, 주차해 있는 대형 트럭들이 보이고, 길옆 도랑으로 굴러 떨어진 트럭도 보인다. 맞다. 이게 인도의 흔한 풍경이다.
푸네는 인도의 7대 도시에 속하는 대도시다. 광역권 인구를 포함하면 거의 천망명 가까운 인구가 산다. 뭄바이가 상업과, 정치, 그리고 세계 각 지사.상사들이 모여있는 도시라면, 푸네는 뭄바이의 배후 공업도시다. 웬만한 글로벌 기업들의 공장은 푸네에 다 몰려 있다. 또한, 인도 공군의 중부 사령부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푸네 공항은 군사 공항겸 국제공항이기도 하다. 푸네가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뭄바이의 배후 도시라는 점이 크게 작용 했지만, 기후가 뭄바이에 비해 비교 할수 없을 정도로 좋다. 물론, 여기도 덥기는 매한가자이지만, 뭄바이가 바다를 낀 후텁지근한 날싸라면, 푸네는 비교적 쾌적하다. 푸네는 인도에서도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 3위 권 안에 드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렇게 두번째의 인도 생활은 시작되고, 거리를 돌아 다니다 보면 여기 저기 많은 흉상이나 동상들을 보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차트라파티 시바지" 장군이다. 17세기경 중부인도의 마라타왕국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그는, 델리를 기반으로 하는 무굴제국의 남하를 막아내고, 힌두 왕국을 지켜낸 인도의 구국의 명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 장군급에 해당하는 사람....
그가 바로 이곳 출신이다. 그래서 온갖 지명에는 차트라파티 시바지 라는 이름이 다 들어간다. 뭄바이 국제 공항도,
뭄바이 중앙역(옛 빅토리아역) 도 차트라파티 시바지 국제공항, 차트라파티 시바지 역이다. 이 외에도 여기저기 광장이나 도로들이 그의 이름을 사용한다.
하루가 바쁘게 움직이면서, 회사 설립 절차를 마치고, 공장 부지 물색이 끝난게 2008년 11월초. 이제 직원을 채용하고, 공장 설비를 발주하는 등, 절차에 따라 하는 일이 대충 마무리 되 갈 즈음....
뭄바이 총영사관으로부터의 연락을 받는것이 11월 20일 경이었다. "한-인도 경제인 포럼"을 창립 하고자 하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는 나도 이곳에 주재하는 한국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하던 터라, 사람들에게 인사도 할 겸, 뭄바이도 나가볼 겸 하여, 먼저 이곳에서 컨설팅하던 사장님과 함께 참석 하기로 했다.
2. 인도인의 자존심, 타지 호텔. 그리고, 뭄바이 테러의 막이 오르다.
드디어 그날, 11월 26일. 나와 또다른 업체 직원, 그리고 컨설팅 업무를 하는 사장님... 이렇게 3명이 같은 차를 타고 뭄바이 타지 호텔에 도착한게 저녁 6시 30분 쯤.
우리는 뭄바이 앞바다를 끼고 잘 지어진 타지 호텔로 들어갔다. 그리고, 원래의 호텔 뒷편에 새로 지어진 신관 건물 19층 스카이라운지로 갔다.
그곳에는 뭄바이 총영사님과 관계자들, 그리고 인도 각 기업의 거물급 회장, 사장들... 그리고 한국 기업인 등 약 4,50여명이 모였다. 간단한 "한-인도 경제인 포럼" 창립식을 갖고, 돌아가면서 인사를 나눈 후, 간단한 만찬을 가졌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저녁 9시 반쯤 됐을까? 푸네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갈길이 멀다고, 먼저 간다는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나도, 이젠 푸네로 가야 할 것같아 같이온 컨설팅 사장에게 돌아가지고 언질을 했다.
그러자, 그럼, 이왕 여기까지 온김에, 호텔 커피숍에서 바다를 보며 차 한잔 하고 떠나자는 얘기를 한다. 외국에서의 밤바다라... 누가 그걸 마다 하겠는가?
그래서, 나와 컨설팅 업체 오사장, S사의 김과장, P 사의 허 차장 4명이 신관에서 내려와, 구관 중앙 2층의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를 시키고나서 좀 있으니, 커피가 나왔고, 막 마시려는 찰라에 아마 1 층 복도쯤에서 "탕!" 하는 총성이 들려왔다. 이때가 저녁 9시 50분 경. 이 타지 호텔은 사실 암살 장소로 악명 높은 호텔이기도 하다. 인도인의 자존심이라는 별명 답게, 유력 정치인등 거물급 인사들이 자주 오기때문에, 이를 겨냥한 암살이 수시로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심코 "아! 오늘은 또 어떤 양반이 가셨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계속 앉아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들끓는 호텔이라, 총으로 쏴 본들, 상대는 죽었을지 몰라도 암살범은 주변 사람들에게 곧 제지 당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 2분쯤 지났을까? 우리가 있던 호텔 커피숍 출입문(양문형의 여닫이 출입문)이 와장창 부서져 내리면서 반대쪽 벽에 자동 소총 실탄이 퍼퍼퍽! 하고 박힌다. 아뿔싸....
드디어, 그 악몽같던 뭄바이 테러사건의 전주곡이었던 것이다.....
****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2편을 기다려 주세요.
그 저녁,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던 호텔.
건너편 길가에는 여전히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걸어 다니고, 100 여 미터쯤 떨어진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의 앞 광장에는,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왁자지껄한 음악을 틀어 놓고 춤추고 떠드는데....
진한 아라비아 향의 커피 내음과 함께 울려퍼진 총성은 열흘간의 뭄바이 테러사건의 전주곡이 되었다.
커피숍 안쪽 벽에 박힌 세발의 AK 소총 탄은 마치 쓰리스타 계급장처럼 일열로 가지런히 박혀 있었고, 언듯 비치는 장정 서너명의 그림자와 거친 발자국 소리는 영문도 모른체 앉아서 차를 마시던 사람들을 혼비백산 하기에 충분했다.
커피숍 중앙에는 두개의 큰 원형 기둥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일제히 기둥 뒤로 달려가 엎드렸다. 커피숍 바닥은 카페트가 깔려 있어서 그나마, 엎드려 있기에 문제는 없었다. 대략 보아 하니, 우리 4명, 인도인 한 열명, 그리고 백인이 한 열명 정도... 직원을 포함하여 대략 23~4 명 정도가 있었다. 다행히 총탄은 좀 높이 천정쪽으로 박혀,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출입문이 박살나, 휑하니 뜷려 있는 상황이라, 언제 누가 실수든, 고의든 총을 들고 들어 온다면 우리들의 생도 그걸로 끝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파고드는데....
모두들 놀라, 기둥뒤에 숨어 머리를 바닥으로 박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 4명이 출입문에 바리케이트를 쳐서, 우연히라도 누가 들어 오는것을 막자고 했다. 우리 넷은 기둥 뒤에서 일어나, 탁자와 의자를 끌어 모았다. 그리고, 출입문으로 옮겨서 차곡차곡 바리케이트를 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간간히 총성은 들려오고, 겁을 먹은 다른 사람들은 누구하나 기둥 뒤에서 나와, 거드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넷이서 탁자와 의자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잘 알다시피, 커피숍 탁자라는게 원형에다 가운데 다라 하나만 달랑 달린 테이블에, 어디 포차에서나 볼듯 한 의자들 뿐이라 바리케이트가 좀 허술 하긴 한데, 그 이상 뭐를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다시, 기둥뒤에 돌아와 엎드려서는 이때부터 수첨을 꺼내들고 총성이 나는 시간과 추정되는 방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0:XX 3 층-->1층 1발
10:XX 1층 --> 3층 2발
지금처럼 스마트 폰이 있었으면, 폰으로 기록 저장 하면 되는데... 그 당시는 폴더블폰이 최신형이라...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까 오 사장이 나에게 묻는다. "그건 기록해서 뭐하시게요?"
내 나름대로는 적는 이유가 있었다. 테러범들이 실탄을 휴대 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AK 소총의 30발 들이 탄창 두개 정도를 감안 하면, 대략 5~60 발 정도면 상황이 끝나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기대를 걸고 실탄 발사수를 헤아려 본 것이었다.
그때까지 경찰은 도착 하지 못하고, 대략 10시 45분까지 발사한 실탄이 79 발이었다. 일부는 3층에서 1층으로 경고 사격을 가하고, 일부는 투숙객들을 사살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간간이 비명 소리도 들려온다.
10시 40분이 넘어서면서 일부 무장 경찰이 호텔로 들어오고나서는 양상이 달라졌다. 테러범은 3 층에, 경찰은 1 층에, 우리는 2층에.....
이때부터 테러범들은 수류탄을 1층으로 던졌다. 쾅! 하는 폭음.... 그것이 내가 헤아린 80번째 폭음이었다. 이 수류탄 소리를 듣고나서는 더이상 기록이 의미가 없다는걸 느꼈다. 어느 3~4 명에 의한 우발적 테러가 아닌, 대규모의 계획 된 테러라는 직감이 들었다.
시간은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고, 경찰은 몇명이 출동 했는지 몰라도, 1층에서 위로 올라 가지 못하고 있고, 테러범도 3층에서 내려 오지 않은채 서로 공방이 시작 됐다. 탕!..타타탕!!...쾅 !....
이때 까지 서로 공방은 하면서도 큰 타격은 주지 못했다. 호텔은 오래된 호텔이라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서로 마주 보고 총을 쏠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간간히 테러범들중 일부가 방을 돌아 다니면서 고객들을 사살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비명소리...
또, 누군가는 출세한 비즈니스맨으로, 이 먼곳까지 왔다가 허망하게 죽임을 당하는구나 하는....
그러던 중,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더니, 신관 19층에 있는 총영사관 사무관이었다. 신관에 지금 21 명이 그대로 숨어 있고, 현재 안전 한 상태인데, 이곳에 몇명이 있고, 상태가 어떤지를 묻는다.
그래서, 여기에 4명이 같이 있고, 현재까지는 우리도 무사 하다고 했더니... 다섯명이 아니냐고 묻는다.
혹시 우리랑 같이 동행은 안했어도 그 안에 있을지 모르니 확인해 달라고 하는데... 정말 우리 말고는 한국인이 없다고 하자... 푸네로 귀환한 사람, 신관에 억류된 사람, 커피숍에 있는 우리... 다 확인 했는데 오직 한사람의 안전이 확인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사고가 생겼을 수도 있는데...
그날, 공교롭게도 총영사관에서 주최한 행사인데, 만에 하나라도 불상사가 생긴다면, 이거야 말로 나라가 발칵 뒤집어 질 문제였다. 그리고는 신신 당부 한다. 제발, 제발 아무일이 없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이 테러가 지금 뭄바이 중앙역과 오베로이 호텔, 그리고 우리가 있던 타지 호텔 등 세곳에서 동시에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뭄바이 경찰력으로는 도저히 진압이 어려워, 델리에서 SWAT 팀이 오고 있는데, 그들이 와야 어떤 결론이 날것이라고 한다. 이때가 11시 반 쯤이었나...
총성과 수류탄 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
호텔앞 도로에는 여전히 차들이 크락션을 울리며 다니고, 행인들은 느릿한 8자 걸음으로 돌아 다니고, 광장에서는 여태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이 상황에서 왜 주변 통제는 안하는지... 왜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령은 안 내리는지....
도무지 이해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인도였다.
우리도 이젠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기둥뒤에서 나와, 창가쪽 탁자에 앉아 바깥을 보면서, 정말 이해 안되는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주고 있었다.
이때쯤, 바깥엔 경찰 증원 인력이 도착 했는지, 구식 총을 든 수백명의 경찰들이 화단이며 보도며.. 사이사이로 호텔 안으로 진입 하는게 보였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상대가 자동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 했는데... 훈련도 제대로 안되고, 옛날 2차대전때나 쓰던 장총 들고 기어 들어 온들 뭐가 달라지랴 하는 마음으로 혀를 끌끌 차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 밖, 위에서 아래로 뭔가 떨어지는 것을 얼핏 보았다.
그 예감....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없드렸다. 쾅~~~~!!
테러범들이 경찰이 진입하는 걸 저지 하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수류탄을 던진 것이었다. 수류탄은 땅에 닿기전, 우리가 내다 보던 창문틀 아래 2미터 쯤 아래에서 폭발했고, 우리가 내다 보던 창문은 유리가 수십갈래도 갈라졌다.
그렇지. 우리는 군대를 갔다 왔지. 총소리에도 익숙하고, 수류탄도 던져 봤으니까...
여전히 인도인, 외국인들은 기둥 뒤에 숨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우리 행동을 보면서, 마치 사춘기 소년들 쳐다 보듯 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우리들은 SWAT 팀이 빨리 와서, 죽든지 살든지 결판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시간은 흘러... 12시를 넘기고 있고......
***** 다음에 3편으로 *** 이어서 쓸께요.
3. 테러 - 이유 없는 인간 사냥
뭄바이 타지 호텔에서의 테러는 저녁 9시 50 분경부터 시작 되었다. 그리고, 초반 4,50 여분간은 경찰의 대응이 거의 없거나 무력 했다. 사실, 호텔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테러는 일반 경찰로서는 감당이 어려운게 사실이다. 테러진압 장비와 무기, 훈련등이 사회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경찰과, 대 테러 대응은 천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10시 40분이 넘어 서면서 비록 일반 경찰이지만, 무장 경찰이 호텔 안으로 진입 하면서, 테러범들과 경찰간의 대치 상황은 그 수위가 올라 갔지만, 초기 40 여분간 간간이 들렸던 총소리, 그리고 비명소리....
그 소리는 다름아닌, 학살의 소리 였다. 투숙객들을 불러 끌어다 놓고, 무슨 이유를 들이 대면서 머리에, 가슴에 총알을 난사 하고 있을터였다. 윗층 어딘가에서 들리는 총소리, 가끔씩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소리....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엎드려 있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영화를 보고있나 하는 착각도 들었다. 군대에서 총도 쏴보고, 수류탄도 던져는 봤지만, 실제로 군용 무기에 다치거나 죽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전쟁이 아니라면, 결코 보게 되지 않을 것이리라. 그러나, 여기에서,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귀로 생생하게 듣게 될 줄이야...
이런 무자비한 테러리스트들을 제압 할 능력이 있는 인도의 SWAT 팀은 애초에 없었다.
또한, 그런 팀이 있다고 한들, 억류된 사람을 구하지는 못하고, 오로지 테러리스트 사살에만 목표를 두는 특공대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시간이 흐르면서, 현장 분위기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테러리스트들은 사주경계가 용이하고, 도주로 확보 등이 용이한 구관을 점령 했다. 따라서, 1층 로비로만 출입구가 연결된 신관은 안전한 상태임이 확인 됐다.
구관에서도, 우리가 있던 2층은 1층의 경찰과, 3층의 테러리스트들 사이에 끼어 있어, 무참한 상황은 모면 할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얼마후, 총영사관 사무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관 19층은 현재 안전 상태이고, TV 를 켜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이 사태가 타지 호텔뿐만 아니라, 뭄바이 중앙역과 오베로이 호텔에서도 발생 했다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커피숍에 5명이 있는것 아니냐고 재차 묻는다. 푸네로 귀환한 사람들 안전 여부는 다 체크 됐고, 여기 4명이 일단, 갇혀 있는것이 확인 됐는데, 오직 한 사람이 확인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이 사태는 뭄바이 경찰력으로는 해결이 불가 하여 델리의 SWAT 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준다.
그 SWAT 팀이 바로 5월 8일 개봉하는 영화 "호텔 뭄바이" 의 주제인것이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지나있고, 마음을 어느정도 추스린 우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과연 어떻게 진행 될 것인가를 살피고 있었다. 호텔 앞 도로 가장자리 인도에는 파란 얼룩무늬복을 입은 군인들 1개 소대쯤이 2열로 줄을 맞춰 서있다.
어느 소속인지는 몰라도.... 아니, 창문에서 총을 쏘면 바로 저격 당할 위치에 열을 맞춰 부동자세로 서 있는 건 또 뭐란 말이야? 물론 총은 경찰들이 쓰는 총보다는 나은 접철식 개머리판의 자동 소총을 들고 있지만....
여전히 길에는 차들이 오가고, 그 사이로 사람...사람들은 지나다니고,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의 앞 광장에는 음악 틀어 놓고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사태가 발생한지가 거의 세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주변 통제는 커녕, 호텔 주위의 사람들을 소개조차 시키지 않다니... 인도 경찰의 대응을 믿어도 되는 것인가?
만약 내가 테러리스트라면, 호텔내 손님들을 테러 하기 보다는 지나가는 행인이나, 군인들에게 총격을 가했으리라는 망상도 들었다. 어차피 세계의 이목을 끌 목적이라면, 이 편이 더욱더 파장이 클테니까...
4. SWAT 팀 블랙 캣? 그리고 탈출
우리는 언제쯤이면, SWAT 팀들이 테러 진압을 시작하나 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새벽 1시... 1시 반...
여태 사태는 총소리와 가끔 들리는 수류탄 소리로 어수선 하고, 바깥은 바깥대로 여전히 춤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새벽 2시가 되었다.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이 들리면서 실내가 지진이 난것 처럼 요동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총소리...
우리는 SWAT 팀이 작전을 개시 한것을 직감했다. 첫 공격지는 우리가 있는 2층 커피숍의 바로 위, 3층.
테러리스트들의 아지트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수류탄 소리, 총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무시무시 했다. 바로 이어서 어떤 여자의 비명이 들린다.
아악~~아아아악~~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비명중에 이처럼 크고 처절한 소리는 들어 본적이 없다. 한 10여초간 들리던 비명 소리는 어느순간 총소리와 함께 커억~~ 하는 소리를 끝으로 멈췄다.
다리나 어느 부위에 총을 맞고 울부짖다가 또 다른 총알에 희생 됐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수 있었다.
내 살아 생전, 진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소리를 내 귀로 직접 들을거라곤 상상도 해본적이 없었는데... 그걸 듣고 있어야만 했다. 이어서, 남자들의 죽어가는 소리... 억..으윽!!.. SWAT 팀이 죽는 것인지, 테러리스트가 죽는 것인지...
그리고, 수류탄 소리..... 수류탄이 두발이 더 터지면서, 3층바닥 (2층에선 천정)에 금이 가면서 물이 쏟아져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수돗물 처럼 쏟아지는 물은 우리가 엎드려 있던 카페트를 흥건히 적시는 바람에 우리는 더 이상 엎드려 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둥뒤에 쪼그려 앉아 있는데.... 한 30여분 쯤 지났을까?
총소리가 확연히 더 위로 올라가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일단 3층에서의 진압작전은 일단락 되고, 4,5 층으로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로서는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그 사이에 희생된 사람들에겐 미안 하지만, 나부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수 없는 심정이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 반.... 전화가 울렸다. 총영사관의 사무관이었다. 신관 19층에 있던 한국인 21 명과 인도인들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그러면서도 안전에 각별히 주의 하라는 신신 당부를 한다. 지금 상황이면 얼마 없어 나올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알려준다.
새벽 세시가 넘어서면서, 총소리는 확연히 멀어졌다. 4,5,6 층으로 SWAT 팀이 올라 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총소리의 빈도도 낮아졌다.
새벽 4시를 조금 넘긴 시간, 갑자기 커피숍 창문밖에서 어떤 움직임이 감지된다. 바깥을 내다보자, 소방 사다리차가 사다리를 커피숍 창문에 걸치고, 경찰 한명이 망치를 들고 올라 오더니, 유리문을 깨어 부순다. 그리고는 한명씩 사다리를 타고 내려 가라고 한다. 안에 있던 여자들 부터 손을 잡아주며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게 한 다음 우리 일행 4명도 무사히 내려왔다. 사다리를 내려 오면서도 혹시나, 경찰이 신분 확인을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여권을 갖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신붕을 확인 해 줄것은 명함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내려가자마자 우리를 맞이 하는 건 경찰이 아니었다. 어떤 여자가 이름이나, 국적이나 이런것을 전혀 묻지 않고, 다만 다친데 없냐고만 묻는다. 그래서 괜찮다고 했더니, 그냥 집에 가란다. 이럴수가....
만약에 우리들 틈에 테러리스트들이 끼어 탈출을 시도 하거나 할 가능성은 전혀 생각 안하는 것일까....
그 여자의 검문을 마치자마자 득달같이 TV 카메라와, 기자들이 달려들어 질문을 해댄다.
우리는 기자들을 제지하고 나서, 우리가 먼저 질문을 했다.
"테러범은 몇명인가?, 그리고 상황이 종료된 것인가?" 하고... 그 중에 ABC 방송국 기자가 우리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테러범은 총 6명이고, 3명이 지금 사살 됐으며, 3명은 4층 이상으로 도망갔는데, 호텔이 워낙 복잡한 구조라 바로 처리를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렇다면, 지금 그들이 창밖으로 총을 쏜다면 우리는 죽을수도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하지만, 쫓기고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말을 한다. 기가 막힌다. 주변을 통제 하는 경찰은 콧배기도 안 보이고....
거기서, 영어를 젤 잘하는 컬설팅업체 오사장이 ABC 방송과 잠깐 인터뷰를 하고, 나는 총영사관 사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시히 전원 탈출 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그 사무관이 우리에게 오겠노라고 하여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 전화가 울린다. 국제전화다. 한국에서 집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당신 어디야?" 하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방송을 타고 한국에도 거의 실시간 방송을 하고 있나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 오는 것을 봤나? 하고.... 그래서, 나는 "응, 이제 풀려나서 사다리차 타고 내려왔어, 괜찮아" 하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고... 어젯 밤부터 뭄바이 간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는데, 통 연락이 안되서 전화 한거란다....ㅎㅎ...
그러더니, TV 를 켜고 뉴스 속보를 봤는지.....
얼마후, 사무관은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가, 우리가 있는 반대편 쪽으로 왔다. 그리고는, 안전하게 탈출해서 다행이라고.... 이건 기적이라고 얘기를 한다. 하필 그날 50여명의 한국인들이 같은 호텔에 있었는데, 단 한명도 다치거나 사고 없이 탈출한것은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란다. 그동안 행방을 몰랐던 나머지 한명의 안전도 확인 됐다고 한다.
그때의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 매체에는 커피숍에 5명이 있다가 탈출한 것으로 보도 되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오보다. 그 한명은, 그때 호텔을 나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한명이 아니다.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분의 부인과 동행이었다. 그러나, 그때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 분만이 알고 있을뿐....
이렇게, 타지 호텔에서 내가 겪은 테러는 이것으로 끝나는 듯 했다. 이제 차를 타고 푸네로 복귀만 하면 될터...
그런데, 끝난게 끝난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후 푸네에 복귀해서 이것 저것 들은 얘기는....
커피숍에 있을때 느꼈던 공포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일들이었다.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오싹했다.
그럼... 다음 4편에서.....
5. 집으로.... 그러나??
우리 일행은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P 사의 허 차장이 타고 온차가 총격에 피격되어, 운행을 할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우리 일행 4명이 오사장 차를 타고 푸네로 같이 가기로 하고, P사의 기사에게는 사태가 정리되면 차량을 조치 한후 복귀 하라는 말을 남기고 오사장의 차로 갔다. 그러나, 오사장의 차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량 앞뒤로 온갖 차들이 다 주치 되어 도무지 차를 빼낼 방법이 없었다. 인도인의 자존심이라는 이런 고급 호텔이 차량 주차 하나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나를 슬프게 했다. 이런 나라에서 앞으로 몇년간을 주재원 생활을 해야 한다니....
우린 어쩔수 없이 차안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멀리서 희므끄레 하니 동이 터오고, 지척에 있는 호텔에서는 아직도 총성이 들린다. 테러범들은 코너에 몰렸는지, 호텔 6층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우리는 불타는 호텔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의자를 눕혀놓고 실눈을 감고 있었다. 누가, 창밖으로 총을 쏘면 피격이 될수 있는 거리... 호텔 건물과는 약 70여 미터 쯤...
그러나, 다른 방도는 없었다. 어디 갈곳도, 숨을 곳도 없는 곳이라...
아침 6시가 좀 넘기 시작하자, 차량 몇대가 빠져 나가더니 길이 뚫렸다, 우리도 서둘러 호텔 주차장을 빠져나와 푸네로... 집으로 출발했다. 그 엄청난 테러가 발생 했는데도 주변에는 경찰도 눈에 안띄고, 차량을 붙잡고 검문 검색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이게... 나란가? 어찌 이리 허술한 나라가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차안에서 눈을 붙였다. 한참을 달려, 데칸 고원에 오르는 로나발라라는 고개를 넘어설 무렵, 기사의 휴대폰이 울리고, 누구랑 통화를 한다. 한참 통화를 하고나서 우리에게 한 말은 우리 모두를 멘붕에 빠지게 했다.
그의 말인즉, 전화 한 사람은 P사의 운전 기사인데, 큰일이 났다는거다. 왜냐하면, 6명중 세명이 사살된 타지호텔 테러리스트가 다시 20 여명으로 늘어났다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하냐고 물어봤더니, 뭄바이 중앙역과, 오베로이 호텔에서 테러를 하고 살아남은 테러리스트들이 타지 호텔로 몰려들어 합세를 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 얘긴가? 적잖은 경찰력과 군까지 동원 됐고, SWAT 팀이 델리에서 날아왔다는데, 그사이 외부에서 테러리스트가 추가로 현장에 난입 할수 있다니.... 우리는 믿을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 알고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그 당시 오베로이 호텔과 중앙역은 그날 밤 하루로 테러가 끝났지만, 타지 호텔은 그후 10일 가까이 지난후에야 완전히 테러리스트 진압이 끝났다.
이 사실은 그 운전기사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하는 것이다.
얼마후에, 인도인에게 그런말을 하면서, 어떻게 그런일이 있을수 있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나를 너털 웃음 짓게 만든다.
"선생님, 호텔이라는 건물은 구조가 무척 복잡합니다. 더구나 타지 호텔은 더욱 복잡하지요. 그리고 물과 먹을 것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루 이틀에 끝낼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이말은 듣고나서... 뭐라고 할말도, 반박할 말도 잊어 버렸다.
나는, 집에 돌아 오고나서, 바로 출근을 했다. 우리 직원들 어느 누구도 뭐 별일 아니라는 듯한 눈치다. 그냥 인도의 흔한 일상??
좀 있으려니...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조선일보 등 신문사 기자, SBS 등 방송국 이었다. 아마, 총영사관 사무관이 내 연락처를 알려준 모양이다. 일도 바쁘고, 마음도 고단하고, 그나마 한국인들은 조금의 희생도 생기지 않았기에, 그냥 대충 덤덤하게 대답하고 끝냈다. 기자들도 모두 무사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상세히 묻지도 않는다.
그렇게.... 나의 타지 호텔 테러 사건은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다만, 행방이 묘연했던 한 분... 그분은 H 사의 법인장이었다, 푸네에 온지 일주일도 안되어, 아는 사람도 없었고, 환경을 잘 모르기도 했다. 그의 직원의 말에 따르면, 뭄바이에 행사차 가는데, 이왕 가는 김에 그 유서깊은 타지 호텔에 부인과 함께 1박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그 호텔에 투숙하지 않았고, 그 이후 행방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아 아직도 모른다. 가끔, 그분은 그때 어디에 계셨을까 하는 말들은 우리끼리 술한잔 하면 얘기를 하는데...
6. 영화 호텔 뭄바이 - 블랙켓의 영웅적인 이야기
얼마전에 집사람이 호텔 뭄바이라는 영화를 5월 8일에 개봉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때 그 사건에 대한 영화라고...
이 소식을 듣고는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들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물론, 나도 보고싶다. 나의 얘기일수도 있으니까... 내가 본것이 또 뭄바이 테러 사건의 전부도 아닐테니까...
그러나, 걱정도 된다. 과연 그들이 영웅이 맞나? 지구를 구하는 많은 영웅들이 우리 주변에 있으니, 우리는 걱정 없이 세계를 누벼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명의 포졸이 한명의 도둑을 못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영웅일 수는 있다. 내가 괜히 그들을 폄훼 하는 것인가?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영웅이라면, 나는 일개 소시민이다. 그들 눈에는 내가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다. 내 생명의 가치를 그들은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일에 희생 당한다 해도 그저 숫자 "1" 이 더해 질뿐...
이런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나를 보호해주고,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방심 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6. 끝나지 않은 테러... 여기에서도?
나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었기에, 그렇게 타지 호텔의 악몽이 잊혀져갈 만한 시간, 1년여....
우리들 사이에선, 그런 말들을 테이블에 올리곤 했다. 푸네는 날씨도 좋고, 교육도시로 이름이 난 도시인데다, 도시의 절반이 군부대라, 절대 푸네에서는 테러가 발생 하지 않는다는...
그 말은 신념이었다. 이제까지 푸네는 뭄바이에 비해 주목 받는 도시도 아니고, 사방이 군부대라 검문 검색도 많고 하여, 우리들 모두는 테러는 불가능하다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뭄바이 테러 1여년 후, 푸네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 했다. 푸네에서도 부자들이 산다는 깔리아니 나가르라는 곳에는 유명한 빵집이 있었다. German Bakery... 우리는 그냥 독일 빵집이라고 불렀다. 인도의 빵은 어찌나 맛이 없는지, 오성 호텔을 가도 늘 먹는게 곤혹 스럽다. 그래서인지, 그 빵집은 꽤나 유명세를 탔고, 고객이 많았다.
내가 사는 곳하고는 거리가 좀 있어서, 나는 그 앞을 지난적은 있어도, 가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무렵, 그 빵집이 폭탄 테러를 당했다. 사망자 17명...
푸네 시민들은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그린 푸네" 라는 환경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중이었는데... 그 그린 푸네, 클린 푸네에는 환경의 이미지도 있지만, 테러 안전 지대 같은 내용도 함축 돼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테러... 그날, 그 빵집 앞에는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있다가 누가 원격으로 터뜨린 것으로 추정 되지만, 아직도 범인은 누군지 모르고 있다.
그 한달여 후에, 푸네 시내 곳곳에서 폭발물이 실려있는 자전거가 발견 됐지만, 사전에 조치가 돼어 피해는 없었다.
인도는 호텔, 쇼핑몰, 은행 등 주요 건물에는 우리나라처럼 자유롭게 출입을 할 수가 없다.
호텔이나 대형 쇼핑몰, 관공서 같은 주요 건물에는 정문에서 부터 차량 탐지경과 폭발물 탐지견이 배치 되어 있고, 모든 출입구에는 검색대가 설치 되어 있다.
그런데, 테러는 어김없이 발생 한다.
또한, 작년에는 우리 회사 인근에서, 옛날 전쟁의 승전 기념회를 하다가, 인도의 상위 카스트와 불가촉 천민 사이에 싸움이 번져 몇명의 사상자가 나고, 아무 상관 없는 차량 여러대가 불에 타기도 했다.
며칠간, 이 일이 뭄바이까지 번져, 심각한 사태가 발생 하기도 했었다.
종교간 갈등, 계급간 갈등.... 이런 것들이 테러의 주요 원인이 되는데, 솔직히 한국 떠나면, 안전 한 곳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에서의 테러는 어떠한 보호를 받는게 어렵다.
영웅?... 그들에게 영웅일지 몰라도, 낯선 외국인에게도 영웅이 될거라는 망상은 하지 않는게 좋을 듯 하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스토리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 영웅이란건 존재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끝까지 살아 남은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일뿐....
** 이쯤에서 뭄바이 테러 사건의 현장에 대한 얘기를 매듭지을 생각이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 테러 이후 사건의 재구성에 관한 글을 한편 더 올리려고 합니다.
5편에서, 사건의 전모와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전개하면서 마루리 해 보겠습니다. **
오늘 이 글은 지난 며칠간 1~4편으로 올렸던 뭄바에 테러 사간을 종합 하는 글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만연 하는데, 며칠전 벌어졌던 스리랑카 테러를 IS 에서 했다고, 그 수장이 말했죠. 그리고, 앞으로도 교회에 대한 테러를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얘기를 방송을 통해 했는데...
모든 원인을 남탓하며 테러를 저지르는 집단도 한심 하지만, 영문도 모른체, 당하는 일반 사람들은 그저 억울 하고 원통 할 뿐입니다.
예전에, 중동 지역으로 선교 나갔다가 테러로 희생된 사람 중에는 제가 잘 아는 후배의 동생도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뭄바이 테러 현장에서 아찔 했던 경험을 한 상태이고....
지금 세상은 세계화의 물결을 거스를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같은 수출 주도형의 산업이 발달 된 나라는 싫든 좋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미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는 어디,어디 소속이 되어 해외로 나간다고는 하지만, 막상 테러를 당했을때는 "바로 나" 자신이 희생 되는 비극을 오롯이 짊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테러에 아직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은 남의 일처럼 생각 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사실, 이제는 누가 어떤 일로 외국에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테러의 중심에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 처럼...
나 자신부터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입니다. 그런 의미로, 이 발제에 대한 요약 및 비하인드 스토리로 마무리 지어 볼 생각입니다.
1. 타지 호텔 테러 상황 요약
2008. 11. 26 일, 한-인도 경제인 연합회 창립총회를 뭄바이 총영사관에서 주관하여, 타지 호텔 신관 19층에서 간소하게 진행 했고, 이 당시, 타지 호텔에는 50명 가량의 한국인이 있었지만, 단 한명의 희생자나, 부상자 없이 무사했습니다. 타지 호텔에서만도 60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 됐는데 말입니다.
이 상황을 아래 사진으로 간략히 보시죠.
한국인과 인도인 VIP 수십명이 신관 19층에서 창립 총회와 간단한 연회를 하고, 푸네에서 온 20여명은 먼저 나와, 차를 타고 푸네로 이동. 이때가 테러리스트들의 난입 1~2분전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4명은 연회장에서 나와, 구관 2층 호텔 커피숍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이게 테러리스트들이 난입하기 4~5분전 쯤이었습니다.
만약에, 푸네에서 오신 분들이나, 우리 일행이 그 몇 분간을 엇갈려 이동 했으면, 바로 테러리스트와 호텔 안에서 맞닥뜨리게 되어 있었고, 그 결과는 말 할 필요가 없었죠.
다행히는, 한국인들 중에는 호텔에 투숙한 사람이 없었고, 불과 몇분 차이로 아무런 사고 없이 마무리 됐던것입니다. 이날 행사가 뭄바이 총영사관 추죄였기 때문에, 만에 하나 사상자가 발생 했다면, 정부에 대한 책임 문제는 심각한 상태로 치달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였던것이죠.
2. 테러사건 이후, 그 비하인드 스토리.
이런 굵직한 사건 뒤에는 늘 숨겨진 이야기나, 음모론이 나오는데, 이 사건 역시 마찬 가지 입니다.
그 몇가지를 추려보면,.....
1) 테러 희생자는 테러범보다, 테러 진압팀에 의해 더 많이 죽었다.
인도 정부는 뭄바이 테러 희생자가 188 명이라고 공식 발표 했습니다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뭄바이 중앙역에서 100 여명, 오베로이 호텔에서, 80 여명, 타지 호텔에서 60 여명... 최소한 240 여명이 희생 됐다는게 정설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테러범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 다수이겠지만, 여러 군데에서 테러가 발생 하다보니, 테러 진압팀들이 다급한 나머지, 현장 투입후 눈에 띄는 사람은 모두 테러리스트로 간주하여 사살했다는 말이 파다합니다. 내가 인질 이었다면, 그들 눈에는 한 패로 오인되어, 일단 사살하고 보자는 식의 희생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99%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2) 테러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이런 논란은 늘 있어왔죠. 심지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는 논란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처럼....
이 사건에서도, 인도 정부는 테러 경보를 미리 알고 있었고, 테러리스트가 파키스탄에서 바다를 통한 침투를 할 것이라는 첩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상 순시를 강화 하던 중 테러리스트들이 탄 배를 적발 했는데....
경찰들이 해상에서 건네주는 돈 100 루피 (그당시 한화 2500 원) 을 받고, 검문 없이 통과 시켜줬다는 설도 있었죠. 만연한 인도 공무원들의 뇌물 행태를 비꼰 얘기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사실로 알고 있다는 것이죠.
3) 호텔 직원들의 목숨을 건 희생 덕분에 사상자를 많이 줄였다.
얼마전, 타지 호텔 소유자인 인도의 타타 그룹은 그 당시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희생을 줄이는데 앞장선 사람들에 대한 시상식을 한다는 뉴스를 봤는데.... 실제로, 그들이 그만큼 헌신적인 희생을 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제가 2층 커피숍에 갇혀 있을 동안에도, 커피숍 직원 누군가가 현장 통제와 지휘하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고, 한국인 4명이서 탁자로 출입구 바리케이트를 쌓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거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화를 통한 외부와의 연락은 커녕, 제가 영사관 직원과 상황에 대해 몇차례 통화를 할때마다, 오히려 나에게 소리 내지 말라고 하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나름대로 잘했다고 포상을 하고 격려 하지만, 사실을 묻어둔 그들만의 논공행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4) 테러를 진압하라??
테러 발생 후, 주변 경찰 대여섯 명 정도가 나타난건, 약 20여분후, 그리고 경찰 본대가 나타난건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났고, SWAT 팀이 출동 한건, 무려 테러 발생 4시간 후에야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 그 4 시간은 테러 리스트들이 호텔 내부에서 자기들 할 짓을 다 하기에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테러 진압이 테러리스트를 잡는게 1 순위여야 할까요? 아니면, 일반 시민들의 희생을 1명이라도 줄이는게 1 순위여야 할까요? SWAT 팀들의 눈에는 시민 1 명은 단순히 숫자 "1" 에 불과 할 뿐...
"희생자 숫자 +1 = 내 생명" 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는 이유 입니다.
그 SWAT 팀... 블랙켓 의 영웅적인 이야기?... 글쎄요...
더구나, 뭄바이는 인도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 수도라고 일컬어지는 도시입니다. 또한, 빈번한 국제 회의들이 열리는 국제도시이기도 합니다. 이런 거대 도시에, 변변한 SWAT 팀 조차 없다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죠. 인도에서 사람 몇명 죽는 것은 사실 뉴스거리도 아니긴 합니다만.....
그리고, 사실 그 테러리스트들이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여부는 모릅니다.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사살 됐기 때문에, 그 배후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죠. 다만,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을 비난하고, 파키스탄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을 뿐.....
인도 중앙역 CCTV 에 찍힌 테러리스트의 손목에는, 실로 된 팔찌가 묶여 있는데(빨간 원 안) 인도어로는 "라카" 라고 합니다. 이것은 9월 중순경 보름날, 여동생들이 오빠나 남동생에게,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주변으로 부터의 위협, 경제적, 정신적..으로) 증표로 묶어 주는 것인데, 힌두의 풍습이죠.
물론, 인도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그냥 하나의 풍습처럼 같이 하는 경우도 있는데, 파키스탄처럼 원래 무슬림 국가에서 앙숙인 힌두의 풍습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테러리스트의 팔목에 라카가 묶여 있는 것은, 인도내의 무슬림 극단 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입니다.
혹자는 위장 전술의 하나로 라카를 메고 왔다고도 하는데.... 진실은 이미... 요단강을 건넜죠.
이 외에도, 여러가지 말과 썰이 난무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것을 증명 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호텔 뭄바이"....
이 실제 사건이 영화로 제작되어, 5월 8일 우리나라에서도 개봉이 된다고 합니다.
내용은 아직 안봤으니, 모르겠군요. 그러나, 중요한건....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에 나갔을때는 테러의 위협에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대 테러부대가 여러분을 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점을 얘기 하고 싶어요.
더군다나, 저 때는 총기에 의한 테러였기 때문에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요즘 테러는 묻지마 자살 폭탄 공격이라는 점은.... 그 자리에 있지 않는 한에는 피할길이 없다는 점을 얘기 하고 싶습니다.
누가 구해주고 자시고 할 틈이 없이.....
저도 해외를 많이 돌아 다녀 보았지만, 규모가 크고 인지도가 높은 호텔은 피하는 편입니다. 경제적으로도 비싸지만, 저런 테러에는 타겟 1 순위이기 때문이죠. 좀 규모가 작지만 알차고 좋은.... 한마디로 가성비 좋은 호텔을 찾는게 더 안전 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요즘... SNS 에 올리려고 일부러 고급 유명한 호텔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런 상황에서는 타겟 제 1 순위를 자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들은 당신을 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가 됐든, 이목을 끌기만 하면 그들의 목적 달성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국제적으로 이름난 곳,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타겟이죠.
얘기의 보따리를 풀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 정도로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부디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돌아보며.... 세계를 누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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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정말 마음 아픈 사건입니다.. ㅠ 제가 1999년, 2000년 2001년 인도여행을 세번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저도 무식해서 용감했다고.. 무모한 짓 많이 하고 다녔던 듯 합니다. 카쉬미르 분쟁지역.. 위험해서 사람들 잘 안가서 숙박비 등등 저렴한 것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난한 학생이 갈 수 있겠냐며 한참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ㅠ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지나간 길에서 사흘 뒤 폭탄테러가 있어서 100명이 사망하고.. ㅠ.ㅠ 뭐 그런일들이 있었더라구요. 군인들이 실탄 장전된 총 들고 다니는데.. 철없던 시절.. 학교 선배들 동기들이 군대 가있으니 군복만 봐도 그런 친숙한 군인아저씨들이라.. ^^;;
저는 손 흔들며 인사하고 그랬네요.. 나중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한테 들었는데, 그 당시 그 지역으로 여행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군복입은 군인들을 봐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더라.. 고 하더라구요. 파키스탄 국경도 걸어서 넘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쪽도 위험지역에서 멀지 않았던 곳이었고.. 정말 역사도, 세계 정세도 잘 알고 다녀야겠다.. 는 생각을 나중에야 하게 되었습니다. 글 쓰신 분, 정말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탈출 하셔서 정말 다행이고.. 군복무 마친 대한민국 아저씨들.. 엄지 척입니닷!!
에고 큰일날뻔 하셨군요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한국 남자들 군경험이 당시는 별로여도 나중에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죠 ㅎ
외국 돌아다녀 보시면
대한민국 이 살기 좋은 나라 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죠.!
민주주의 를 실감 하게 됩니다!
진짜 잘 나가는 나라 이라는느낌이 팍팍 !
와 닿죠!!
대 한 민 국!!
저는 소시민이라...해외에 간혹 가게되어도 중저가의 호텔을 이용하는데..그게 좋은거였군요..
뭄바이..희생자들의 명복을 다시한번 빌며..생존자들분들은 트라우마에서 다들 벗어나셨길..
대한민국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군대를 다 다녀오니..음..그럴땐 도움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