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전ILLUSION
제1부 폭동 전후(줄거리 37회)
종서로 썼기 때문에 요즘 같으면 ‘상기(上記)’이라고 썼을 것을 ‘우(右記)’라고 나타내고 있다. 당시엔 어디에서나 공문서에는 단기와 서기를 병기하거나 단기만 썼는데 좌익계에서는 서기만 썼다.
‘서기 1946년 9월 12일, 노동조합 책임비서 곽 양 수(郭陽洙) 귀하
조선공산당 경상북도 도당위원장 배기철(裵基哲)을 대신하여
월봉 8백5십원이면 여중에서 받던 사백몇십원보다 거의 갑절에 해당한다. 그것은 바로 백미 한 섬 가격이었다. 며칠전 신문 보도로 각종 물가의 시중 가격이라고 나타낸 것이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시장의 어느 미곡상 가격인지는 알 수도 없지만 아마도 그런 보도를 믿는 이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군정 당국은 이 땅에 진주해서 쌀 가격은 원래 시장 가격에 맡긴답시고 자유롭게 두었다. 그래야 농가에서 미곡을 무작정 감추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농민들이 마음대로 시장 가격을 좌우했다. 그런데 군정 당국의 예상은 전혀 어긋나서 천정부지로 날이면 날마다 뛰어올랐다. 농민들은 수확한 양곡을 무작정 비축하고 내놓지 않았다.
말하자면 해방의 맛을 농가만 누리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미곡이 풍년이라면서도 시중에는 쌀 구경이 어려웠고 일반 소시민들은 쌀로 끼니를 잇는다는 것은 아예 상상도 못하게 되었었다.
그러니까 시중에는 양곡이 귀해지고 시세가 급등을 거듭하니까 배급으로도 이것이 통제되지 않게 되자 지난 연초부터 군정당국에 의하여 통제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날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강제하고 있었다. 미곡을 감추거나 사재는 것이 발각되면 제재가 가차없었다. 거의 몰수하다시피 강제 구입을 시행하기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