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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 유래
줄탁동시啐啄同時
우리의 문화는 역사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삶의 교훈적인 내용을 주로 다룬 고사성어는 대부분 중국에서 유래되었는 데, 세상 살아 가면서 누구나 거두절미,각골난망,온고지신 등의 고사성어 몇 개씩을 대화 도중이나 혹은 글을 쓰면서 적당한 시기에 잘 써 먹는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중국 송나라 시대 총 열권으로 구성되어 있던 불교서적인 「벽암록」에 기록되어 있었던 이 고사성어는 줄탁치기(啐啄致機), 줄탁지교(啐啄之交)라는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줄탁동시가 의미하는 참 뜻은 삶의 여러 분야에 전부 적용이 될 수 있는 상징성 의미가 매우 깊은 고사성어다. 자나깨나 알을 품고있는 어미닭에게 18일쯤의 시간이 지나면 알속의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반응을 시작한다.이 때 어미닭은 알속의 병아리가 알의 막을 쪼는 소리(줄啐)을 듣고,밖에서 부리로 알을 깨는 일을 동시에 도와준다(탁啄).이 시기에 병아리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안의 껍질을 깨지 않으면 어미닭 역시 밖에서 도와주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절벽에서 새끼를 떨어뜨려 혼신을 다하여 올라오는 새끼만을 기르듯,어미닭 역시 험한 세상을 스스로 살아가야 된다는 신념을 출발부터 길러주는 것이다.
실제로 병아리가 부화되는 부화장에서는 인공부화를 하기도 하지만 알속의 병아리가 보인다고 사람이 껍질을 깨주면,이런 병아리는 나중에 오래살지 못한다고 한다.어미닭 역시 그런 자연의 이치를 알아서 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도록 밖에서 약간의 도움만을 줄 뿐인 것이다.
작가 헤르만 헷세는「데미안」에서 새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올 때의 그 의지처럼 우리 인간은 이 험한 세상에 스스로 적응하여 살아가야함을 가르쳤다. 줄탁동시 고사성어가 우리네 삶에 지시하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일례로 스승이 아무리 교육을 열심히 시켜도 제자가 스스로 깨우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남이 나에게 줄(啐)을 하면 자신도 그에 상응하여 탁(啄)을 해줘야 한다.우리의 미풍양속인 품앗이처럼 세상은 자기혼자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고,이웃과 가족이 서로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엄마 뱃속에서 아홉달반(280일)을 머문다.원래는 이보다 몇 개월을 더 머물러야 병아리처럼 스스로 인지하는 본능을 더 깨우치지만,그러나 그 기간이 지나면 머리가 커져서 산도의 좁은 문을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인간은 그리하여 미리 세상 밖으로 나와 옹알이 무렵까지 엄마의 도움을 받도록 진화가 되었다. 그러나 유아기 엄마의 따뜻한 도움이 부족하게 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결격사유의 인간이 되고만다는 사실 역시,생물학적으로 많을 실험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쩜 우리는 하찮은 동물인 어미닭과 병아리의 출생시부터의 「상호의존성」을 교훈삼아 이 험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 구성을,줄탁동시라는 고사성어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이미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줄탁동시啐 啄同時
啐(울 줄) 啄(쪼을 탁) 同(한가지 동) 時(때 시) 교육을 말할 때 흔히 '줄탁동시'를 이야기합니다.
병원이나 보호감호소 입구 등에 '줄탁 동시'라는 문구를 흔히 봅니다. 이는 불경에서 처음 나오는 용어로 '啐啄同機(줄탁동기)'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새끼의 울음소리와 허기진 배를 채워주려는 어미의 행위가 동시에 이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21일만에 부화된 병아리가 달걀 속에서 울부짖고(啐), 어미 닭이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쪼아주는(啄) 행위가 동시(同時)에 이루어졌을 때 병아리가 깨어 나오게 된다는 본래의 뜻을 담습니다. 병아리의 울음소리와 어미 닭이 쪼는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내면적인 본래의 뜻은 위와 비슷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학습의욕에 차있는 제자들의 절규에 찬 애탄 목소리(啐)를 듣거나 그 태도를 보고, 지도자인 교원이나 학부모가 성의를 다해 가르치는(啄) 행위가 동시(同時)에 이루어 졌을 때 교육이 성공할 수 있음을 뜻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의 신음소리( 啐)를 듣거나상담이 있는 후에, 의사의 적절한 처방(啄)이 동시(同時)에 이루어져야 환자의 병이 낫게 됩니다.
노동자의 절규에 찬 목소리(啐)를 듣고, 사용자의 적절한 처방(啄)이 동시(同時)에 이루어져야만 노사관계가 원만하여 생산력이 증대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열화와 같은 외침의 소리(啐)를 적절히 알아듣는 국가지도자의 적절한 대책(啄)이 동시(同時)에 이루어졌을 때 국가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 학교생활, 사회생활, 국가생활 등에 두루 통하는 용어일 것 같습니다. 어린 새끼가 먹고자 하고,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고자 하는 동물의 원초적인 용어에서 유래했었지만, 이제 교육적인 큰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용어는 학생들이 받고(啐) 교육자가 주려는(啄) 행위가 동시(同時)에 이루어져야만 우리 교육이 진정 발전되리라 봅니다.
= 佛經 碧巖錄(불경 벽암록)에서 발췌한 원문을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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