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전ILLUSION
제1부 폭동 전후(줄거리 40회)
양수는 그것을 다시 봉투에 접어 넣어 한쪽에 치워놓고 보따리를 풀었더니 그야말로 손가락을 벨 듯한 새 돈 다발 다섯 개와 따로 낱장의 지폐가 덧 보태어져 있었다.
그는 은행에서는 아마도 돈 다발을 이렇게 묶어 배출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은행에서 관리하는 돈 다발이 그런 식이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 유학 중 몇 차례 드나들어 본 적은 있으나 귀국한 뒤 도무지 은행 출입을 해야 할 일이 없었던 그였으니까. 당시 이 나라 백성들은 은행 출입을 할 줄 몰랐다. 은행을 무슨 무서운 관공서 쯤으로 인식하는 이도 있었고, 서문시장의 포목장수들 정도의 사업을 하거나 기업가나 억만 장자들이나 이용하는 곳인 줄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은행은 일번 소시민들과는 인연이 없는 곳이라는 인식이 깊었다. 양수도 그러한 소시민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가 익숙한 돈 다발은 창호지를 썰어서 만든 1센티 남짓한 폭의 종이 띠를 감아서 지출한 관리자의 콩도장을 찍은 것 -학교 서무과에서 봉급 줄 때 받아 본 돈 다발의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유학 시절 은행 창구에서 받아 본 돈다발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다섯 개의 돈 다발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다섯 개의 돈 다발을 단위로 묶여서 배출되었음이 분명한 포장이었다.
돈 다발이 다섯 개임을 알 수 있게 양쪽 도련은 노출되도록 포장지의 폭이 돈의 세로 길이보다 짧았다. 그런데 그 포장지는 벽지처럼 무늬가 있었는데 그 무늬는 놀랍게도 ‘조선은행권’이라는 표시를 단위로 한 사방연속 무늬로 뒤 덮여 있었고, 싸서 이어진 곳에는 검정색 둥근 도장으로 찍었는데 그것도 역시 조선은행이었다. 그러니까 그 돈은 조선은행 창구에서 배출된 것을 바로 직송해 온 것처럼 느끼게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