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치면
유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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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리구역 : 법정리 16개 / 행정리 29개 |
인구수 : 남 630명/ 여 652명 |
가구수 : 700호 |
면 적 : 122.17㎢ |
읍면장 : 문재춘 |
주 소 :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유치로 22 |
◆ 유치면 대리마을
* 산간 마을로써 화전민 마을이다 산간마을이기때문에 논보다 밭이 더많다* 대삼 마을 앞 재를 넘으면 내삼마을이있다* 가구수: 12가구* 인구수: 24명 * 문헌상에는 이 마을의 지명이 1747년 장흥읍지에 덕촌, 방촌과 대리가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마을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수인산성의 축조연대를 추측해볼 때 상당히 유래가 깊은 마을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수인산성의 규모가 최초로 기록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이다. * 청정 산지에서 자란 매실이 유명하다. * 수인산성을 끼고 등반하는 등산코스도 좋다.
◆ 유치면 신월마을
* 장흥댐 서남쪽으로 수장되는 마지막 마을이 신월리다. 신월리는 강진군 옴천면과 경계한 산간마을로 월암 오추 새몰 세마을로 나뉘어져있다.* 가구수 : 32가구* 인구수 : 51명 * 새몰마을은 김태자라는 선비가 조선조 말엽에 입주하면서 성촌되었다* 월암마을은 수몰지역에서 제외 새몰에서 1Km 떨어진곳위치 마을뒷산 말을타고놀았던 마장의흔적이있다.* 오추는 강진 옴전면과 소교량을 사이에두고 있는마을로 마을재산을지키는마을앞입석이있고마을뒷산 천년을넘은소나무가있으며 마을 지형이 오동잎 형국이라해서 오추이다. * 91년에 추진되어 95년에 완공한 자연휴양림은 모든시설을완비한 보림사관광지로 장흥관광의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 유치면 관동마을
* 국도변을중심으로 신월리로 넘어가는중간에 야산을 깍아 교통편리에일조한 밤재터널이있으며 마을남쪽으로는 하천이흐르고 마을뒷산에는 황새봉이있다* 가구구 : 59가구* 인구명 : 117명 * 밤재는 밤이많아 비가 많이오면 밤이 떠내려온다하여 밤재다.*관동은 황새가많아 학동이라불렀으며 왜정때 일본사람이 돌을던져 황새눈을 뺀뒤 황새가없어졌다한다 학동에서 관동으로 바뀐연도는 미상이나 신씨가들어와벼슬과 출세한사람이 많이배출됨에 개칭되었고 처음 관동은 도강김씨가 입향하고 세웠다. * 개떡배미 : 개떡3개를 받고 팔았다는 논* 돈방잇재 : 관동리와 신월리 경계에 있는 고개* 마을자랑 : 유치면에서 가장많이 담배를 재배했던마을이다
◆ 유치면 반월마을
* 면소재지 북서쪽으로 위치한 남서향마을로 북동쪽으로는 깃대봉 중심으로 조양리와 경계를 이루고있으며 남서쪽으로는 만쇠봉으로 반월2구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국사봉을 경계로 근곡과 구별되는 계곡에 위치한 마을이다.* 가구수 :38가구* 인구명 :73명 * 마을 뒷산 깃대봉이 반달모양이라하여 반월이다.* 농바우 : 반월과 칠인동 상;에 있는 바위로 농처럼 생겼음* 외앗골 : 반월리와 조양리 경계에 있는 골짜기 * 효자집안 : 김재암선조들께서 효자로 알려져 있으며 현제까지 장기를 보관하고있다.* 열녀집안 : 장영일씨 조모께서 남편죽은뒤 3년안에죽어야 저승에서 남편 옆으로 간다하여 방에서 극약을마시고 죽었다합니다.* 현재 장수풍뎅이 마을로 2005년 발단에 2006년 8월9일 2회로 군수님모시고개장식을했습니다.
◆ 유치면 반월리 장주마을
* 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위치한 산간마을입니다 서쫏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을 경계로 하며 북쪽은 장주마을위치이고 그남쪽에는 학송마을이 형성되어있다.* 가구수 : 23가구* 인구명 : 57명 * 현종1660년대 나주 봉황면에서 난을피하기위해 이취장할머니께서7살난 아이없고 국사봉기슭인 윗 장구배미에 입주하여 터를잡았고 이후 이승, 박승 두장사가 머문곳이라하여 1670년 장주라 불렀다. * 1988년 장흥군 퇴비증산대회에서 군 2등을 수상하여 상금 2백만원을 받았다 * 현재 표고작목 하우스가 형성되어있으며 지렁이생식등 면에 기여하는 사업이 활성화 되고 있다
◆ 유치면 조양리 조양마을
* 마을이 남쪽마을을 제외하고 삼면이 산으로 둘러쌓여있어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동쪽에는 갈비봉 서쪽에는 당앞산 마을 뒤 북쪽은 이름이없는 산이있다.* 가구수 : 64가구* 인구수 : 101명 * 마을전체가 새형국으로 옛부터 전해오는 전설에따르면 마을동쪽에있는 당앞산이고 일명 매봉이라고하고 이 매봉이 반월동에있는 꿩 형국의 한 치은봉을 바라보고있어 꼭 매가 꿩을 노리고있는 형국이라고한다 그 가운데 새의 형국을 한 조양마을은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한다 * 강성서원 : 삼우당 문익점 (1329-1398)과 풍암 문위세 (1534-1600)를 기리기위해 세운 서원이다
◆ 유치면 조양리 인암마을
* 마을(큰 한치)를 중심으로 남으로 조양 저수지 있고 동으로 길동 북으로 한치 서로는 장흥과 영암경계로 하는 국사봉이 위치하고있다 큰한치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인암바위가있고 주로 벼농사가 생계유지하고 풍토또한 매우좋은곳* 가구수 : 14가구* 인구명 : 28명 * 400년전 인암이라 칭하였음 마을 입구에 도장바위(인암바위)가 있어 인암이라 칭하였다 * 산중의 입지조건때문에 과거에는 담배 인삼이 잘 되었다고 한다.* 비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오곡백과가 매우 잘됨
◆ 유치면 조양리 상촌마을
* 이마을은 산간 마을로 덕암산 (해발 456m) 남서쪽 산록에 남향으로 자리잡고있다 전답이 주로 면적이 좁은 다랭이논이 많다가구수 : 34가구인구명 : 69명 * 마을이 형성된 정확한시기는 알수없으나 1747년에 씌여진 상촌이다,* 이러한것들을 추정해보먄 360년까지 소급해볼수있다. * 상촌 입구부터 끝까지 꽃길로써 1단계 개나리 2단계 오색능수도(버들나무과)3단계 벛꽃(산벛,왕벛)등* 우리동네 : 오갈때없는 노인들을위한 복지시설* 2006년도 김경호 자녀중 판사로등급등* 현재이장님 (박희금)께서 유기농 닭을 1000수 직접기르고있음* 휴경답을 이용하여 매실,감나무,자두,복숭아등 재난관리과와 자매맺어 심었음.
◆ 유치면 원등마을
* 면소재지 면사무소등 관공서가 집합되어있다.* 가구수 : 69가구* 인구수 : 145명 * 옛 원님이 사셨던곳이고 옥터가있다하여 원등이라불리웠다, * 단합을 교훈삼아 열심히 일하는 일꾼들의 유치면사무소* 2006년 결성해서 넘 활발히 활동하는 사물놀이 * 매주 화요일에 어르신건강증진프로그램과 무료 목욕탕운영* 완벽한 복지회관시설(심신회복실 정보실, 독서실, 체력단련실),등등* 테니스코트장과 탁구장이있어 직원들의 여가을즐길수있고 밖으로 어르신들을 위한게이트볼장이 있어 주민화합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 유치면 신풍리 신풍마을
*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3번국도로따라가다보면 신풍마을이있다.* 사면이 산으로 싸인 분지형 마을이다* 평탄한 농경지가 많으며 각종 토산물의 중심지며 유치면에 최초로 교회기설립되곳* 가구수 : 39가구* 인구명 : 72명 * 문헌상 본마을의 지명이 처음 나온것은 1747년 유치지역으로 새로 번창한마을이므로 새터,신기 또는 신풍이라하였음 조선 형종 3년에 남평 문씨 주민니 들어오는데서 비롯됨. * 다른지역보다 충효사상이 높아 여러차례 효부상과 효자상을 수상한 것을 자랑스럽게여긴다.
◆ 유치면 신풍리 마정마을
* 23호선의 길목 5Km 지점 북쪽으로 골짜기를 타고들어 위치한 중산간마을이다. 마을동편에는 불정산이 위치하고 서쪽과 서뿍쪽은 국사봉의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 산간 마을을 연상케하며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가구수 : 18가구* 인구명 : 35명 * 설화에 의하면 조선시대 기덕이란 장군이 명마를 구하러 다니다 신우란 보살을 만나 이곳에 정착하여 마정이라했다,* 1959년 마정이란 이름이 첨 나왔다 기록되어있다. * 도둑이없고 협동심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옛부터 힘이센 장사가 많아 씨름판이 열리면 번번히 우승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 유치면 용문리 가보마을
* 본 마을은 좌청룔 우백호가 풍수지리적 여건을 갖이고있다 마을앞 평야는 배수가 양호한 사질 토양이며 수원은 용소에서 흘러들는 물줄기와 인근 계곡에서 모여드는 물줄기가있어 논농사에 유리한조건* 가구수 : 2가구* 인구수 : 3명 * 이비역은 보림사 창건과 연관 보림사 창건시 백룡이 쫓겨가다 용문에 꼬리를 쳐 바위가 문같이 되어 버려서 용문이라했음* 6,25당시 전마을이 소개되고 소실되었다* 중간 좀살다 현제 사림이없어 이장님도없다 2구이장님이 같이일을본다 * 해마다 설날이면 돈을걷어 웃 어르신들에게 새해 인사가는 미풍이 지속되고 있다.
◆ 유치면 용문리 용문마을
* 산간 마을로써 화전민 마을이다 산간마을이기때문에 논보다 밭이 더많다* 대삼 마을 앞 재를 넘으면 내삼마을이있다 * 1747년 장흥읍지를 보면 삼용이라나타나고 1914년 면개편에서 용문이라하여 신삼 대삼 내삼 송림 용문 부산 금성까지 포함* 의신은 6,25당시 피남민이 은신처로 이용되어 유래된 이름 6,25때 다없어지고 현재 내삼과 대삼뿐 * 서봉산을 끼고있어서 수질은 타 지역에서도 알아주는 약수로써 서봉산에서 내리는 물을 이용하고있다* 이물을 먹으면 잔병치례가 없다고 한다
◆ 유치면 봉덕리 1구마을
* 봉덕1구는 당촌 동산 구석 고가리의 4개 자연마을로 구성 보림사가 위치한 산간 마을이다.* 보림사 앞으로 탐진천 상류가 봉덕2구 마을과 대천리에서 합류하여 면소재지로 흐른다* 가구수 : 67가구* 인구명 : 113명 * 동산이라는 마을이 처음 나타나고 있는 것은 1747년 간행에 250년 이전부터 동산이라는 마을이름이있었다는 기록이있다* 절 주변에 주민이 형성되는 것으로 봐 보림사보다 훨씬먼저 형성되었을 추정을 가능케한다.* 김해김씨 태슬이 장흥에서 이주형성하였고 해남윤씨가 담배재배하고자 강진 대구면에서 이주해 성촌하였다 전한다. * 물맑고 인심좋은 마을이며 10여년전에는 범죄없는 마을로 표창받았고 각종 유물이 산재하여 앞으로 관광 명소로 개발가능성이높은 보림사가있다.* 체력단련과 화합을위한 학생의집이라는 수련장이있는곳
◆ 유치면 봉덕리 2구마을
* 보림사입구에서 약 4Km떨어진 산간 깊숙힌 계곡을 따라 형성된 유치면에서 가장 높은 마을이다.이마을어귀에는 블론바위가있는데 옛날에 무슨일만있으면 바위위에올라가 서로 연락하는 통신역활을했다.* 가구수 : 29가구* 인구명 : 52명 * 봉덕의 원래이름은 산태볼인데 마을의 터가 산태미형국이라하여 곡식이차면 다시비워야하는 세를이루면 다시떠나야하는 설이전해져오고 있다 또한 마을의 입지가 봉을 날으는 산세인데 어느때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나주에서 5마리의 봉이 날아와 울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마을 이름을 봉덕이라부르게되었다고한다 * 생이바위 : 새터마을 입구 도로와 계곡 사이에 있는 바위로 상여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지게된 이름인데 이 바위 밑 부분에는 관을 안치할만한 공간이 있다* 1985년 3월 범죄없는 마을로 100만원 하사받아 그돈으로 새터에서 봉명사이에 있는 약 50m의 도로를 포장하였다.* 구싯소 : 새터마을 입구에 있는 소인데 형상이 구시처럼 생겼다 하여 붙어지게 된 이름이다
◆ 유치면 대천리 대천마을
* 산간지역으로 동쪽으로는 가지산 서쪽으로는 국사봉 북쪽으로는 화학산이 자리잡고있다 죽동,암천,강만,소양,모두통합한 마을* 가구수 : 29가구* 인구수 : 48명 * 본토 주민들은 거의 객비로 이동하고 타향에서 모여든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기때문에 입향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수없다. * 중형국 : 암천사람들이 수명이 짧아 이곳 남자들은 아들은보나 손자는 못본다는 이야기가있음 * 객지 사람들이모여서 사는 외로움때문인지 유특히 협동심이 강한 마을이였다* 암전 : 자연마을로써 바위가 많고 골짜기로 이루워져 있어 그 위에 물이 흐르기때문에 암천이다* 죽동 : 대나무가 많아서 죽동이다
◆ 유치면 대천리 소양마을
* 이 마을은 산간오지마을이며 마을에서 볼수있는것은 산과 하늘뿐이고 문명혜택이 적은 여유로움과 순박함을 느낄수있는 마을이다.* 가구수 : 19가구* 인구수 : 26명 * 설기 연대나 입향조는 미상이나 구전에의하여 소양은 회산군의 4대손 전주이씨 철세의 모친이 장자인 철세를 데리고 입주하여 현제 12대손에 이르렀다 * 소양,강만,소곡.새터, 자연마을로 이루워졌으나 정부에서 독립가옥 없애기 운동에의해 철거되었다.* 소양 : 산세가 소의 형국인데 소외양간이 있다해서 불러졌다. * 1991년도 서인종씨가 마을에 300만원을 희사하여 우산각을 건축했다* 부산에 있는 고향민 30여명이 삼리회라는 향우회를 조직하여 마을에 돈도 희사하고 가끔씩 대천 분교에 학용품을 주거나 광주를 구경시켜 주었다.
◆ 유치면 운월리 운월마을
* 장흥읍에서 북쪽으로 산간마을로 장흥군 최북단이다. 동으로는 화순 서로는 영암 북으로는 나주군으로 경계로 하고있다* 가구수 : 21가구* 인구수 : 32명 * 운월 : 마을의 형태가 구름 가운데 반달이라 한다(운중반월)* 운월 : 깊은 두메 골짜기라는 뜻에서 굿골 또는 운월이라 함* 굿골재 : 제사모실때 이 고개에서 국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지명 * 1980년 범죄없는 마을로 동력 분무기를 부상받앗다,* 마을 이을도라는 사람이 효자로 알려져있으며 이경훈이라는 사람은 옛이야기를 잘했다고 전해졌다* 운월리 이장님께서는 32년을 임 하시다가 2007년 2월에 그만두신 그야말로 한 청춘을 마을을위해 바친 대단한분이라고 생각하지요
◆ 유치면 운월리 신덕마을
* 마을은 산간오지마을로 국사봉줄기의 기슭에 있다.* 현제 한농복구회라는 한 집단이 형성되어 일촌을 이루고있다* 가구수 ; 106가구* 인구수 : 193명 * 1700년경 성씨를 모르는 일가가들어와 마을 대밭에 집을짖고 대장장이 일를 하다가 개성이씨들어와 이 일가를 쫓아낸뒤설기하다 그후 나주 문평에서 입주한후 마을 이름을 신덕이라 개칭함* 신덕 : 원신덕과 새터를 합친 마을 * 산수가 수려하며 물이 깨끗하고 각종 산나물,약초가 자생하며 한지원료인 닥나무,모시,다마,쪽풀,등 야생 녹차가 자생하며 200녕 범죄없은마을로 표창장과 1999년 민방위훈련으로 행자부 장관표창장등등..주민들또한 청정주민이라 할수있다 이청정한곳에 영노법인 장흥지부 한농복구회가 함께하고있다* 한농복구 : 병든 땅을 회복하고병든 몸을 회복하고병든 마음을 회복하고자 설립된 단체이다.
◆ 유치면 오복마을(수몰지역)
* 오복리(사미동) 장흥읍에서 북으로 10km, 유치면 소재지에서 6km떨어진 중산간 마을로 기름진옥터에 호랑이 형국으로 따뜻한 감을주는마을이며 오복과 사미동 사이의 징검다리처럼 놓인 그 큰돌, 고인돌등에 들과 그큰돌 몆개의 내력은 이제영원히 알수없다 * 오복리 마을 명칭에 한자표기에 쫒아 사람들은 대충 다섯가지의 복으로서 오복정도로 풀이가되나 오복이전에 호복이였다 * 오복마을 전체를 조감해보면 사인암 바위가 호랑이머리가되고 오복리 마을 전체는 호랑이가 땅에 대고 엎드리고 구부리는 모습이된다 말 그대로 호복이다* 삼한시대때는 무주골 그뒤 웃밥골 이후호복이라부름 * 사미동의 네가지 아름다움 첮째 샘의 물맛 둘째 마을 사장터 위쪽으로 펄쳐지는 와룡바위 줄기에 우렁참 셋째 진작사라졌지만 마을앞 자작나무 숲의 풍성함 넷째 의견은 분분한데 뒷산 장군바위라하고 최근 유치면지에는 1993년 문씨집안 3형제가 아름다움이라부른다* 1991년 10월 전국체육대회 육상부 금메달을 문준흠이 획득* 1992년 올림픽대회 여자 핸드볼 금메달 획득과 도지사하사금으로 향자회관 신축
◆ 유치면 단산마을(수몰지역)
* 유치면 송정 대리 다음으로 큰마을로 67가구 2백여명이 생활하는 농사, 표고버섯,담배,등 특산물로 생산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였다 이후 6,25때 빨치산 근거지라하여 소개되어 외검으로 이주하고 폐촌이됐다 * 이에 장흥댐에 하류족으로 완전 수몰지역이다. * 단산리 마을에는 4기의 지석묘가있는것으로 보아 곧 4천년전부터 사람이 살았던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내검단 외검단으로 분류해오다가 1914년 일제 때 면리가 개편되면서 단산이라 통합됨. * 단산리는 전통적으로 자식들의 교육 열이많아 이마을 유명인사 ,의학박사,유치국교교장, 경기도 의왕시 의회의장, 소설과 유치면장 등* 장흥 유치간 국도변에 영경문이라는 비각이있다 유치면이 흉년이들자 세금을 물어주어 그 은혜를 잊지말자고 세운 비각이다.
◆ 유치면 덕산리 1구마을(수몰지역)
* 면소재지에서 3km지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마을은 서,남, 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조리형국을 이루고있으며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낄수있으며 유치천을 두고 노목이 많아 평화스러운 마을이다. * 인구수 : 131명* 가구수 ; 36가구 * 일면 조리형국 또는 월조계림이라 하여 본마을 년년마다 인제를 배출하는 마을 터가 아담하고 유서가 깊은 마을이다* 고려중엽때 장씨 ,동씨들이 살면서 분둔이라명하고 이 명칭은 조양골의 원님이 살때 벼슬하는 양반들의 행차시 밤이면 횃불을 잡고 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살았다해서 유래한 말이다.* 1914년 면리 개편으로 따라 둔지리와 월정리를 병합하여 덕산리라고함. * 이 마을은 범죄 없는 마을로 새마을 지도자로 최초로 문재희씨가 내무부장관상을 받기도함
◆ 유치면 덕산리 2구마을(수몰지역)
* 소재지 서북쪽으로 2km 지점 중산간 마을 서족으로는 덕산1구 북쪽으로는 월정마을 남쪽으로는 돈지마을이 산림에싸인채 각각 자리잡고있다 마을 입구에는 300여년된 정자나무가있어 여름철 시원한 그늘이되어주었다.* 인구수 ; 76명* 가구수 : 31가구 * 1914년 돈지리 월정리를 병합한뒤 덕산리라 불리워졌다* 돈지마을은 경관이 넘 뛰어나 선비들이 숨어든다하여 돈지고 월정마을은 마을앞에 달형국으로 보이는 산이있어 월정이다 * 1984년 월정마을에 문경흠씨가 지극한 효성으로 마을주민들의추천으로 대한노인회 전라남도 연합회에서 효자상 상패수상 * 이곳은 예로부터 자연수로 물이아주 맑아서 질병에 걸린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또한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풍부한 물은 가뭄때에역시 많은 도움이되고 있다.
◆ 유치면 송정리 1구마을(수몰지역)
* 소재지 마을로 인접한곳에 위치한 유치초교가 있는 마을이다. 유치 소재지에서 보림사로 오르는 중간에 위치한다.* 인구수 : 254명* 가구수 ; 63가구 * 송정1구는 자연마을이 갈두 공수평 그리고 강동 으로 구분 전하는 에기로는 송정리는 갈머리였는데 소나무가 무성하여 송대막이라고 부르는것을 송정으로 고쳐불렀다.* 공수평은 배산임수에 터를 하여 마을의 형국이 탈을 굽은 형국이라 하여 공수평이라 했다고한다. * 교육열은 옛날에는 마정기씨 증조부가 운영하던 서당에서 교육을 받았고 1922년 유치국민학교가 설립되어 유치국민학교에 다닌 사람이 많았다.* 강동마을 좌측에 채석장이있다 70년대 후반부터 1988년까지 약 10여년간 석질이 고르고 붉은빚이 있어 건축자재와 제방 축조에 많이 이용되었다.
◆ 유치면 송정리 2구마을(수몰지역)
* 송정2구는 유치면 소재지마을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북으로 13.7km 지점위치* 탐진천의 상류이며 면사무소 비롯 각각 관공서 주요 생필품을 공급하는 상가와 시장이 위치하며 면소재지답게 식당,대중음식점이 위치하고있다.* 인구수 : 295명* 가구수 ; 75가구 * 송정2구 자연마을이 주암과 장터로 나뉘어져있고 행정구역상 송정1,2구로 나뉘어진것은 1914년 때이다.* 주암마을은 배바위로 풍수지리상 배가 닿은곳이라 하여 붙여진곳이며 배바위주변에 지석묘가 많아 오래전에 위치한 마을로 여겨지나 1910년 장흥읍지 여리성씨조에 남평문씨가 살고있는것으로 문헌의 최초이다. * 문귀원: 유치농협장 역임 소도읍 가꾸기 사업 추진위원장 마을의 많은 공헌* 유치면장님도 여러분 나오셨으며 국민학교 교장등 전북대교수 이학박사등* 문내민 : 농악의 상쇠로 1970년 군대회에서 마을의 농악이 우수상을 받았다* 임계오 : 6,25당시 수훈으로 훈장을 받았다.* 문점옥 ; 마을 이장으로 2회 도지사 상을 수상하였다.
◆ 유치면 늑룡리 1구마을(수몰지역)
* 늑룡리는 남평문씨 집성촌이다 유치면 소재지 1.5Km 떨어진 하구쪽을제외하면 마을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려쳐진 산중마을이다 마을 앞 노거수들을 보면 역사가 깊은 산중이라 볼수있다 허나 장흥댐에의해 마을 전체가 수장되는 비운이있다.* 인구수 : 68명* 가구수 : 26가구 *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을 애워싸고있는 주변의산들이 마치 다섯마리 용이 하나의 구슬을 향해 굴레 모양으로 형세를 취하고있는 형국이라하여 늑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있다. * 주변 마을 이름이 용두,용밧등 등의 지명도 이마을의 지세가 용의 형상과 깊은관련을 가지고있음. *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느낌을 갖게하는 마을이 늑룡이다 유치천이 가로지르고 그너머 350~400년되 노거수들이 즐비하게 있어 아슴히 향수를 절로 불러이르키고 역사와 전통을 단번에 느낄수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아픔이고 비극이다.
◆ 유치면 늑룡리 2구마을(수몰지역)
* 면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500m 지점에 위치한 탐진천의 삼각주가 형성된곳 * 마을위로 넓은 들 가옥이 있는곳 대나무 소나무가 둘러서있다* 매년 500여마리 백로가 서식하는 마을이다.* 인구수 ; 157명* 가구수 : 39가구 * 탐진강 상류에서 흘러나오는 모래와 자갈의 퇴적으로 이룬 평지에 형성된 들판에 농가가 이주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 월천마을은 1950년 6,25사변시 마을 주민들이 서로 아끼고 협동하여 전혀 피해가 없으며 강성서원에 유치지구토벌군경의 부대본부가 설치되었다. * 또 금사마을은 매년 날아오는 백로들의 서식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