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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8년 12월부터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이에 이스라엘이 대응하여 가자지구를 공격함으로서 촉발되었던 가자 전쟁에 대하여 수많은 한국인들과 심지어 기독교인들마저도 이스라엘을 비난하기 시작하였으므로 제가 이에 대하여 2009년 1월 어느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문제에 관하여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글을 여기에 다시 올립니다.
1. 아모스 9: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황폐해진 성읍들을 건축하여 그것들에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것들의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예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땅에 돌아오게 하신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본다. 시온주의에 의해서 남이 살고 있는 땅을 갑자기 유대인들이 빼앗아 갔다는 말과는 판이하게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또 여기서 우리는 그 성읍들에 아랍인들이나, 팔레스타인 족이 살고 있던 땅이라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황폐해진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땅에 심는 것은 예호와 하나님이시다. 인간들이 행한 것이 아니다.
다음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들어 설명하겠지만, 아랍인들, 소위 팔레스타인인들이라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바, 아랍인들이 다수 살고 있는데 성경 한 권 들고 와서 자기 땅이라고 유대인들이 주장하며 쫓아내서 지금의 난민 처지가 되었다는 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제 이 점을 규명해야 한다.
2. 에스겔 36:
7 그러므로 주 예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손을 들었나니 너희 둘레에 있는 열방들이 자신들의 수치를 반드시 담당하리라
8 그러나 오,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을지니라, 왜냐하면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
24 내가 너희를 열방중에서 인도하여 내고 모든 나라들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너희 고국 땅에 들어가서
26 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되 너희 육신에서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로된 마음을 줄 것이며
다시 24절에서 이스라엘을 열국으로부터 불러내어 고국 땅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순서이다. 하나님은 돌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을 먼저 속살로 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바꾼 다음 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신 다음, 회개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 심장한 것은 오늘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격 논리가, 이스라엘은 세속국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안믿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3. 에스겔 36 장
34 그 황폐하던 땅이 경작될 것이니, 거기는 전에 지나가는 모든 자들의 보기에 황폐하였던 곳이라.
35 그들이 말하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폐허된 성읍들이 울타리쳐지고, 주민이 거하게 되었도다.
36 너희 주변에 남은 열방사람들이 나 예호와가 폐허화된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예호와가 말하였고 내가 그것을 이루리라
여기서 성경은 이스라엘 땅이 황폐화 되어 있었으며 나중에 그 황무지에 주님께서 폐허화 된 곳을 건축하였고 그 자리에 주님이 이스라엘로 거하도록 하셨다는 말씀을 읽게 된다.
이러한 성경의 예언은 오늘날 흔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는 매우 큰 차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에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이 예언이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그 예언이 틀렸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4. 18세기 중엽의 고고학자 토마스 쏘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Thomas Shaw, Travels and Observations Relating to Several Parts of Barbary and the Levant (London, 1767), p. 331ff. De Haas notes: "Hasselquist, the Swedish botanist, munching some roasted ears of' green wheat which a shepherd generously shared with him, in the plain of Acre,
reflected that the white bread of his northern homeland and the roasted wheat ears symboliz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civilizations' Had he known that Mukaddasi boasted in the tenth century of the excellence Of Palestine's white bread he might have been still more impressed by the low estate to which the country had fallen in seven hundred years....
Hasselquist joined a party of four thousand pilgrims who went to Jericho under an escort of three hundred soldiers. He estimated that four thousand Christians, mostly of the eastern rites, entered Jaffa each year, and as many Jews. The Armenian Convent in Jerusalem alone could accommodate a thousand persons.
The botanist viewed the pilgrim tolls as the best resource of an uncultivated and uninhabited country. . ~ . Ramleh was a ruin." (Emphasis added.) De Haas, History, pp. 349, 358, 360, citing Frederich Hasselquist, Reise nach Palastina, etc., 1749-1752, pp. 139, 145-146, 190.
즉” 연간 4,000명의 기독교 순례자들과 동수의 유대인들이 300명의 병력의 호위하에 얍파( 사도행전 9:42-43욥바, 오늘날의 하이파)에 들렀고 예리코까지 갔는데, 순례객들을 상대로한 영업이 경작하지도 않고 거주민이 있지도 않는 나라의 최상의 수입원이었다, 람레는 폐허로 되어 있었다.”
According to Volney, ". . . we with difficulty recognize Jerusalem.... remote from every road, it seems neither to have been calculated for a considerable mart of commerce, nor the centre of a great consumption.... [the population] is supposed to amount to twelve to fourteen thousand....
The second place deserving notice, is Bait-el-labm, or Bethlehem, ... The soil is the best in all these districts ... but as is the case everywhere else, cultivation is wanting. They reckon about six hundred men in this village capable Of bearing arms.... The third and last place of note is Habroun, or Hebron, the most powerful village in all this quarter, and able to arm eight or nine hundred men . . ."
1783-1785 연간에 여행한 볼르니 백작의 보고 ( 1788 발간)
“예루살렘을 알아보기 힘들었고, 도로에서 멀고, 상업지로 생각될 수도 없었고, 소비처도 없었고, 인구는 12,000에서 14,000으로 추산되었으며,…
두번째 곳은 베들레헴이었는데 흙은 좋았으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경작된 적도 없고.. 이 마을에서 무기를 들수 있는 사람은 6-700명으로 추산했다. 제3의 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마을로서 헤브론이었는데 무장할 수 있는 사람이 800-900명으로 추산되었다. “
6. 톰슨의 여행보고
W.M. Thomson reiterated the Reverend Manning's observations: "How melancholy is this utter desolation! Not a house, not a trace of inhabitants, not even shepherds, seen everywhere else, appear to relieve the dull monotony....
Isaiah says that Sharon shall be wilderness, and the prediction has become a sad and impressive reality." Thomson, The Land and the Book (London: T. Nelsons & Sons, 1866), p. 506ff.
“이 철저한 황폐함은 얼마나 우울한 것인가! 집 한 채도, 거민의 흔적도, 목동 하나도, 어디를 가도 보이지 않으니! … 이사야가 말한바, 샤론은 황무지가 될 것이며…. 그 예언은 슬픈 현실이 되었도다… “ 톰슨, 그 땅과 그 책 ( 런던 1866)
7. 영국 예루살렘 주재 영사관 보고서 2권 1939-1941 발간
“ 예루살렘은 많은 집들이 폐허화 되어 있었으며, 정규 고용주도 없고 … 거민들은 15,000으로 추산되는데 인구의 과반수는 유대인들이었다.
1863년 예루살렘의 상업에 관한 보고서. 예루살렘 시의 인구는 1만5천, 그중 4,500 모슬렘, 8,000 유대인, 나머지(2500)는 여러 종파의 기독교인들이었다.”
Jerusalem consisted of "a large number of houses ... in a dilapidated and ruinous state," and "the masses really seem to be without any regular employment." The "masses" of Jerusalem were estimated at less than 15,000 inhabitants, of whom more than half the population were Jews.17
"Report of the Commerce of Jerusalem During the Year 1863," F.O. 195/808, May 1864. ". . . The population of the City of Jerusalem is computed at 15,000, of whom about 4,500 Moslem, 8,000 Jews, and the rest Christians of various denominations. . ." From A.H. Hyamson, ed., The British Consulate in Jerusalem, 2 vols. (London, 1939-1941), Vol. 2, p. 331
8. 갈릴리 호수를 1817-1818년에 여행한 여행가
갈릴리 호수에 배 한 척도 볼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After a visit in 1817-1818, travelers reported that there was not "a single boat of any description on the lake [Tiberias]."
**James Mangles and the Honorable C.L. Irby, Travels in Egypt and Nubia (London, 1823), p. 295.
9. 1827년 독일 백과사전의 수록 사항
In a German encyclopedia published in 1827, Palestine was depicted as "desolate and roamed through by Arab bands of robbers."14
Brockhaus, Alig. deutsch Real-Encyklopaedie, 7th ed. (Leipzig, 1827), Vol. VIII, p. 206
“황폐하였고 아랍 강도떼들만 득실 거렸다.”
10. 톰 소여의 모험, 헉클베리 핀으로 유명한 마크 투웨인의 여행보고.
그는 1867년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 갈릴리를 여행했다.
이 마크 투웨인의 여행보고는 매우 유명하며 여러가지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Stirring scenes ... occur in the valley [Jezreel] no more. There is not a solitary village throughout its whole extent-not for thirty miles in either direction. There are two or three small clusters of Bedouin tents, but not a single permanent habitation. One may ride ten miles hereabouts and not see ten human beings. 22
“놀라운 장면… 이스르엘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어느 쪽으로든 30마일을 가도 단 한 마을도 있지 않았다. 단지 베두윈 족의 텐트들의 작은 집단들이 2-3개 보였고 영구 거주 시설은 하나도 없었다. 어느 누가 10마일을 여기 저기 다녀도 열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They met together in full view of the pilgrims, after the battle, and took lunch, divided the baksheesh extorted in the season of danger and then accompanied the cavalcade home to the city! The nuisance of an Arab guard is one which is created by the sheikhs and the Bedouins together, for mutual profit...
마크 투웨인은 또 보고하기를 당시에도 베두윈 습격자들이 수시로 불려와졌고 아랍 호족들은 순례자들을 습격하여 등쳐먹고 사는 것을 보고했다.
Come to Galilee for that... these unpeopled deserts, these rusty mounds of barrenness, that never, never do shake the glare from their harsh outlines, and fade and faint into vague perspective; that melancholy ruin of Capernaum: this stupid village of Tiberias, slumbering under its six funereal palms.... We reached Tabor safely .... We never saw a human being on the whole route
“갈릴리에 왔고…. 이 사람없는 사막들, 황무지의 언덕…,. 카퍼나움의 우울한 폐허…. 이 모든 여정에 인간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Of all the lands there are for dismal scenery, I think Palestine must be the prince ?It is a hopeless, dreary, heart-broken land ? Palestine sits in sackcloth and ashes. Over it broods the spell of a curse that has withered its fields and fettered its energies ?
Nazareth is forlorn; about that ford of Jordan where the hosts of Israel entered the Promised Land with songs of rejoicing, one finds only a squalid camp of fantastic Bedouins of the desert; Jericho the accursed, lies a moldering ruin, to-day, even as Joshua's miracle left it more than three thousand years ago ?
Renowned Jerusalem itself, the stateliest name in history, has lost all its ancient grandeur, and is become a pauper village ?Capernaum is a shapeless ruin; Magdala is the home of beggared Arabs; Bethsaida and Chorazin have vanished from the earth ?
Palestine is desolate and unlovely. And why should it be otherwise? Can the curse of the Deity beautify a land?" ? (The Innocents Abroad (New York 1966) - summary of Palestine visit)
http://www.cdn-friends-icej.ca/guide.html
나자렛은 쓸쓸한 곳으로 베두윈족들의 사막 텐트촌…. 여리고는 폐허,,, 예루살렘은 극빈 마을이 되어 있고 ,, 가버나움은 형태도 없는 폐허요, 벳새다와 고라신은 땅에서 사라졌는가? 팔레스타인은 황폐화되었고 보기 흉하다. 신성의 저주가 한 땅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을까? ( 순전한 외국들, 마크 투웨인의 여행기록으로 뉴욕에서 1966년 발행된 책자)
11. 위의 모든 여행기록들은 모두 사기극인가?
어떤 이들은 19세기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가 50만에 달했다는 둥, 그런데 유대인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아랍인들을 쫓아냈다는 둥의 말을 내세운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과 달리, 그 보다 먼저 여행하고 그 책들을 100년 전에 출간했던 사람들의 책에는 위와같이 황폐화 되어 있고 인간들은 전혀 살지 않거나, 겨우 2-3만 사는 예루살렘을 서술하고 있지 않는가?
위의 글모음은 다음의 사이트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그 사이트에서 인용한 근거 원문은 찾아보면 확실히 그런 내용을 수록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http://www.freerepublic.com/focus/fr/604628/posts
12. 아울러 18-19세기에만 그 땅이 황무지였는가?
물론 위의 사이트에 보면, 1590년의 여행기록에도 그와 똑같이 황무지로 있었음을 알수 있다.
In 1590 a "simple English visitor" to Jerusalem wrote, "Nothing there is to be scene but a little of the old walls, which is yet Remayning and all the rest is grasse, mosse and Weedes much like to a piece of Rank or moist Grounde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낡은 벽들과 풀들, 잡초들만 보인다”
Gunner Edward Webbe, Palestine Exploration Fund, Quarterly Statement, p. 86, cited in de Haas, History, p. 338.
13. 십자군 당시의 상황
The Jews and Muslims fought together to defend Jerusalem against the invading Franks. They were unsuccessful though and on 15 July 1099 the crusaders entered the city.[16] Again, they proceeded to massacre the remaining Jewish and Muslim civilians and pillaged or destroyed mosques and the city itself.[17]
One historian has written that the "isolation, alienation and fear"[1] felt by the Franks so far from home helps to explain the atrocities they committed, including the cannibalism which was recorded after the Siege of Maarat in 1098.[18]
As a result of the First Crusade, several small Crusader states were created, notably the Kingdom of Jerusalem. In the Kingdom of Jerusalem at most 120,000 Franks (predominantly French-speaking Western Christians) ruled over 350,000 Muslims, Jews, and native Eastern Christians[19]
http://en.wikipedia.org/wiki/Crusade
위키가 올려놓은 숫자는 항상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대략의 정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십자군은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을 살육하기 위해 나아갔고…” 예루살렘 왕국에는 12만의 프랭크 십자군과 35만의 무슬림, 유대인, 동방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었다. “
여기서 우리는 다시 이스라엘 땅이 황무하였든지 매우 적게 거민이 살고 있었든지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4 그렇다면 어떻게 아랍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많이 들어왔는가?
우선 사탄은 흉내내기의 명수요, 따라하기의 애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유대인들뿐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지역을 중요시하며, 순례하기 시작하고, 영국이 1839년 세계 최초로 예루살렘에 영사관을 설치하자 사탄은 그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하수들을 그곳으로 투입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순례객들이 많아지자 아랍인들도 장사할 것이 많아져서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신속히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유대인들은 주로 유럽에서 옮겨와야 한 반면, 그들은 북쪽의 시리아, 남쪽의 이집트, 옆의 요르단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터키는 인구조사를 한 것이 있겠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인구조사보고서를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것은 아라라트 산의 노아 방주에 관해서도 그들이 전혀 협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흔히 세계 여러나라에서 무수히 내놓는 인구보고서에는 팔레스타인 인구가 1880년 유대인들의 시온주의 운동 직전에, 48만이었다는 둥, 50만이었다는 둥, 그 중에 유대인은 2만5천에 불과했다는 둥의 말들만 늘어놓고 있으나. 그것들은 근거를 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숫자에는 북쪽의 레바논 인구, 트랜스 요르단 인구, 시리아의 인구를 포함한 것이지, 제대로 된 인구 센서스가 아니었음은 위의 여행기술들을 살펴봄으로 자명해진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땅이 된 지역의 인구가 50만이었다는 주장은 위의 수많은 여행기록을 뒤엎어 버리고 역사를 소급해서 새로 썼을 때 나온 숫자이면서, 성경의 예언이 전혀 틀렸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숫자이다.
영국의 예루살렘 영사관의 모든 기록은 가장 중요한 증언으로 남을 것이다.
15. 아랍인들의 유입
아랍인들은 1799년 나폴레온이 하이파( 사도행전 9:42-43의 욥바)를 방문하여 유대인의 국가 설림을 약속했을 때에도 그 수는 거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들의 수는 오늘날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서안지구를 통틀어 5만 미만(실제로는 3-4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 2만 정도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면
나머지 1-2만 미만이 이스라엘 전역에 살고 있던 황무지가 맞을 것이다.
아랍인들의 유입은 영국이 1839년 예루살렘에 영사관을 설치한 이후 기독교인 순례객들이 많아지자, 조금씩 늘어나다가, 1880년 경부터 더 늘기 시작했으며, 1897년 유대인들이 제1차 시온주의 총회를 통해 시온으로 가자는 운동이 벌어지자, 덩달아 많아졌으며, 또 다시 1905년 하이파-예루살렘간의 철도가 부설 개통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1917년 아더 발포어 선언으로 유대인들에 의한 이스라엘 국가의 창설을 약속했을 때 더욱 아랍인들은 자극되었고 그들의 유입 또한 많아졌다.
반면 유대인들의 유입은 유럽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인디아, 에티오피아, 예멘 등 대부분 인근 아랍인들보다 먼 곳으로부터 떠나와야 했기에 더디었으며, 1930-1939년간에는 아랍인들의 눈치를 받은 맥마흔 선언은 유대인들의 유입을 제한하여 1년에 1만5천으로 한정했다.
그러한 제한은 1947년 11월 유엔의 이스라엘 영토 분할안 통과와 1948년 5월 14일 독립선언시까지 계속되었다. 영화 영광에의 탈출에 나오는 엑소더스 호의 키프로스 탈출, 하이파 도착의 사건은 바로 이러한 영국의 이중적, 유대인 이주 억압정책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즉 영국은 1930년부터 1948년 독립시까지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유입을 계속 막아왔다. 그들은 1922년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통치를 받아오면서 1948년까지 유대인들의 유입은 그 수를 제한하였으나, 반면 아랍인들의 유입은 전혀 제한하지 않았다.
아랍인들은 국경이 없었으므로 마음대로 이주하여 들어와 살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흔히 오늘날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영국이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땅 이주를 도와준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정부 특히 애틀리 수상 정부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오히려 막고 있었다.
어느 아랍인 족장중의 한 노인은 자기가 그 땅에 19세기 말에 왔을 때 거기에 아무도 사람이 살지 않고 있었고 그 땅을 경작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한 이후로 아랍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므로 아랍인들은 사실 그리스도인들의 순례가 증가하고, 유대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덩달아 인근 국가에서 몰려들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땅, 황폐화된 땅이라는 표현은 분명 맞는 것이며, 하나님은 때가 차기까지그 땅을 황무한 땅으로 보전하셨다.
나폴레옹이 하아파를 방문하여 이스라엘 국가설립을 약속했어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때가 차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리라.
위의 모든 기술에 대하여는 다음의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http://www.nfuu.org/Palestineto1948.htm
16. 고대로부터의 거주민 추정치
그에 앞서 고대의 이스라엘 땅의 거주민 추정치에 관한 연구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조사해 보시기를 바랍니다만, 다윗-솔로몬과 같은 이스라엘 전성기에는 1000만을 돌파하였다고 추정하며, 예수님 당시에는 2-3백만으로, 바코바 반란( 135AD) 당시에도 2-3백만으로 추정을 하는 분들이 많으며, 여기에는 별 이견이 없다고 본다.
바코바의 반란(AD 135)에서 적어도 100만 이상이 참수되었고, 수많은 유대인들은 그 땅을 떠났다. 그 이후 이스라엘 땅의 유대인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불과 수십만 미만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가 논쟁할 당시 예루살렘 교회 감독이 있었고 그 무렵에도 여러 교회 감독들이 안디옥 교회와 교류한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슬람의 발흥과 더불어 650년 경 이스라엘 땅에는 더욱 적은 수의 유대인들만이 거주하였으며, 이 무렵 아랍인들의 수가 많아졌을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6-11세기 기간중의 이스라엘 땅에는 주민 수가 어느 시기에도 50만을 초과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그 사실은 십자군 원정에서 드러난다.
오스만 터키제국 이후에는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이 더욱 살기 힘들어졌다. 그 이유는 터키의 잔인한 유대인 박해 때문이다. 그들이 유대인 남자를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눕혀놓은 다음 이마에 쇳물을 부어 죽인 사건등은 여러기록들을 통해 볼 수 있다. 여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아무런 형사상의 범죄 없이도,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고문과 참혹한 죽음을 수없이 당했다. 그런 이유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떠났다고 해서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점유는 2천년 전에 끝난 것이므로 점유의 시효가 지났고, 그들은 소유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논리일 뿐이다. 다만 하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그 땅에 아무도 번성할 수 없도록 황무지로 막아두셨다. ( 에스겔 36장 34절, 36절)
19세기의; 이스라엘 땅들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있고, 스켓치한 그림들도 있다. 그것들 역시 그 땅의 황량함을 보여준다.
17. 에스겔 37장
12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 “주 예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너희 무덤들로부터 올라오게 할 것이며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리라. “
14절그리고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둘 것이며, 너희가 살겠고, 내가 너희를 너희 땅위에 안식하게 할 것이며, 그때에 너희는 나 예호와가 말하였고 그것을 행하였음을 알리라, 예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24절...그들이 내 정의심판 가운데 행할 것이며 나의 율례들을 지킬 것이며 그들이 그것들을 행하리라.
위에서 다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모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순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먼저 죽음의 땅에서 꺼내 올리시고, 그 다음,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시며, 그 다음 그들 중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심을 볼 수 있다.
즉 여기서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을 안믿는 족속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민족과 아랍민족을 동일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 중에 자신의 영을 두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순서가 먼저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실행하시면서 영적 회복을 진행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도 침투한다. 반대로 성령께서는 거듭나지 않은 육적 이스라엘에게도 먼저 역사하시며, 그 이후 영적 회복을 진행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은 하늘의 기상을 알고 또 시대의 징조를 파악하는 것이 된다(마 16:3)
18. 성경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
성경은 이스라엘 땅이 황폐화되고 황무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런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친히 불러 모아 이스라엘 고토로 불러오심을 예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땅에 아랍인들이 가득하였는데, 그 아랍인들을 이스라엘인들이 쫓아내고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주장자 스스로가 성경 예언을 안믿는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성경을 믿기는 믿는데 19세기 말의 시온주의 운동에 의해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것은 하나님이 불러모아 온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인위적으로 들어온 것으로서 하나님이 불러오시기까지 기다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 들어온 유대인들은 다시 세계에 흩어져야 하고, 그런 다음 이스라엘 땅이 다시 황무지가 된 다음, 하나님이 다시 불러모아 기적적인 방법으로 다시 데려오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아랍인들은 그 땅을 결코 떠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그들의 고토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수백년은 더 있어야 될 것이다.
이러한 성경해석은 오늘날, 이스라엘 의 변화외에도, 이방인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배도현상 ( 동성애의 인정, 낙태의 횡행, 범죄의 증가, 인간복제, 성경의 무시등)과, 카톨릭 교황청의 예루살렘 이전계획과 카톨릭을 중심으로한 에큐메니칼 운동과 세계 종교 통합, 유엔의 다국적군의 형성 관례화를 통한 이스라엘 공격 분위기 조성등 수많은 징후들이 종말을 예고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종말이 다가왔음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전혀 타당하지 않다.
또한 이스라엘 땅이 황무하게 되었다는 예언도 적어도 이스라엘이 자발적으로 그곳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 예언은 틀린 것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의 이스라엘 건국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인들이 인간적으로 행한 것이니까 다시 세계로 흩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전혀 타당하지 않다.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진 것이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아모스, 스카랴서, 다니엘서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19. 사도행전 12장
11 그리고 페트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기를, “이제야 내가 참으로 주께서 그분의 그 천사를 보내셨고 헤롯의 손에서와 유대인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나를 구출하신 줄을 알았도다.” 하고12 그가 깨닫고서 마코라고도 불리우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이르니, 그곳에 많은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며 있었더라. 13 페트로가 대문의 문을 두드리니, 로데라 이름하는 소녀가 들어보려고 나왔다가, 페트로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기쁨을 인하여 대문을 열지 아니하고 달려들어가 페트로가 대문앞에 서있다는 것을 고하니라. 15 이에 저희가 그녀에게 이르기를, “네가 미쳤도다!” 하되 그녀는 그와 같음을 강조하니, 그들이 이르기를 “저는 그의 천사이다.”하니라. 16 페트로가 두드리기를 계속하니, 저희에 열고 그를 보고 놀라니라.
이 사건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베드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풀려났다. 그런데 정작 그가 풀려나왔을 때 기도하던 사람들은 그것을 안믿었다!
여러분 만일 홍수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강안의 섬에 고립되어 있었다고 하자.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께 구조를 강력히 기도했다. 그 결과 헬리콥터가 그 곳에 왔다. 그때 기도하던 여러분이 저 헬리콥터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추락할 수 있으며, 반면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강물 사이에 바람을 불어서 여호수아때 요단강을 건너게 한 방법으로 건너나가게 하실거야 하면서 그 헬리콥터를 거절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이스라엘의 귀환과 건국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이스라엘 족속이 돌아갈 것인데 아직 모두 돌아간 것도 아니며, 이스라엘을 둘러싼 여러 세력들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경 예언은 이루어졌으며, 계속 이루어져 나갈 것이다!
20. 이스라엘에서 아랍인들을 쫓아냈다는 주장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주장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역사상 이스라엘 내에 살던 아랍인들을 이스라엘이 쫓아낸 적이 없다!
아랍인들이 그 땅을 떠난 것은 대부분 다음의 이유에서 이다.
- 첫째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과의 전쟁은 항상 아랍국가들이 먼저 공격함으로서 촉발되었다. 그때마다 아랍국가들은 승리를 확신하였으며, 이에 따라,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 내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로 하여금 그곳을 떠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을 피할 겸 아랍인들은 그곳을 자진하여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그들의 예상과 달리 항상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 둘째는 아랍인들 스스로 전쟁을 피하여 그 땅을 떠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학생이라도 전쟁이 일어나면 그 곳으로 달려갔다. 아랍인들은 도망갔다.
- 만일 이스라엘이 인종적으로 아랍인들을 쫓아냈다면 그것이 크게 보도되고 난리났을 것이다.가장 크게 아랍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떠났던 때는 이스라엘의 독립전쟁 당시였다. 그때는 아랍국가들이 승리를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모든 아랍인들은 떠나도록 강조했고 그들은 떠났다.
이스라엘이 강제로 아랍인들을 쫓아냈다는 주장 역시 사탄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모습중의 하나다.
이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인들이 아랍인들의 땅을 빼앗았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유대인들은 거의 황무지인 땅을 당시 시세의 4-5배 이상의 값을 주고 사들였다. 그것은 아랍인들에게는 일확 천금같은 기회였기에 아랍인들은 앞다투어 팔았을 뿐이다. 유대인들이 안들어온 상태에서의 유대땅은 황무지에 불과했으나, 유대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그 땅은 기름진 옥토로 변했다.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랍인들은 단지 유대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불과 몇년, 십여년 앞서 들어와서 땅을 팔았을 뿐이다.
21. 이스라엘은 원래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후손들 수 이상을 이미 수용하고 있다.
이스라엘내에 살고있는 베두윈족, 아랍인들은 130만이 넘습니다. 19세기 당시 10만명 ( 많아도 15만을 초과하지 않음) 정도의 현지인들의 후손들 수 이상을 이미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도록 하고 있다.
그들은 가자의 하마스나, 서안지구의 파타에 속하지 않고 이스라엘에 적대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내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 아랍인들이 차별대우문제로 최근에도 들고 일어선 경우도 있지만, 그들은 아랍국가들 중 어느나라에서도 누릴 수 없는 수준의 인권을 누리고 있다.
그들중에는 국회의원도 있으며, 장관도 나온 적이 있다. 심지어 배두윈족들의 일부다처제도 허용해주고 있다.
그들에 대한 차별행위는 외곽의 가자지구나, 서안지구의 아랍인들이 적대행위를 종식할 때는 많이 완화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중다한 잡족들이 따라왔던 것과 같이(출12:36) 이스라엘은 그들이 반역하지 않는 이상 수용할 것이다.
그러나 하마스와 파타는 별도로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으며 계속 항쟁할 뜻을 유지해왔다. 그중에서도 하마스가 강경하여 로켓포 공격을 해왔던 것이다.
22. 하마스가 한국의 독립유공자들과 같다는 주장.
이것이야 말로 이스라엘과 그 땅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하마스는 자기들의 땅이 아닌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서 강도들이 하는 짓을 하고 있을 뿐이다. 위의 성경 예언을 보라!
성경예언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자들만이 억지 부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경 외에 또 하나 부정해야 할 것이 있는데 진정한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참 역사는 하나님만이 기록하셨다. 다만 인간은 그것에 접근하고 가장 가까운 기록을 유지할 수 있는데 여러 명의 여행가들이 그 땅이 황무하였음을 기록하였다. 아랍족은 한번도 팔레스타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여 건국하려한 적이 없었다. 단지 이스라엘이 건국한 이후로 그 이름을 들고 나온 것이다. 심지어 시리아는 지금의 이스라엘이 항상 남부 시리아로 불리어 왔음을 주장하여 영유권을 주장하여 왔다.
한국의 독립유공자는 정당하게 한국민의 땅에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어린이와 여자들에게 무차별 공격한 적이 없다. 그들은 일본군 장성들과 침략의 수반등 해당 당사자들을 공격하였을 뿐이다.
대부분의 현 하마스 일당과 파타 일당은 원래의 자기 나라로 가면 된다. 그들은 사실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등지에서 주로 왔다. 그들 나라로 가기 싫다면 그대로 살고 있는 지역에 살면 된다. 이스라엘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수많은 유물과 역사 기록은 이스라엘이 그 땅의 진정한 주인임을 증거한다.
성경은 사도행전 17:26절에서 하나님이 각 민족에게 거주의 한계를 정하셨음을 말한다. 신명기 32:8은 하나님이 영토를 분할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따라 민족의 경계를 정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또 시편 24편1절은 땅이 예호와의 것이며 세계의 가득한 모든 것이 그러하며 거기에 거하는 자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신다. 인생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거주의 한계에 만족하여야 한다.
하마스가 독립유공자들과 같다는 주장은 한국의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모독이며, 성경과 역사에 대한 무지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23세계의 언론이 이스라엘을 편들고 지원하고 있는가?
이 판단의 기준은 그들의 언론 보도가 그것을 읽었을 때 이스라엘에 적개심을 느끼게 하는가? 또는 하마스가 어리석게 먼저 발포하여 일을 일으켜서 자업자득임을 알려주고 있는가 등으로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세계의 언론들은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의 언론들과 진정한 기독교계의 언론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의 공격에 독자들이 분개하도록 보도하고 있다. 소위 기독교 인터넷 매체라고 자칭하는 뉴조의 제목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이스라엘아! 하나님이 심판한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은 웃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방 열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라 (에스겔 39:21, 요엘 3:12).
세계 언론들 중 진정으로 이스라엘을 편드는 언론이 있다면 알고 싶다! 이곳 토론토 스타를 보면 온통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위의 성경을 알고, 역사를 아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마스와 온 세계가 생쇼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세계 언론은 이스라엘 탱크 앞에 돌멩이를 들고 있는 어린이를 사진을 찍어 보도한다. 그 아이는 역사를 알고, 진실을 알고 그러는 것인가?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그렇게 나가도록 그냥 두는가? 아니면 일부러 어린이를 그렇게 나가도록 내보내고, 사진을 찍기 위해 서게 한 것은 아닌가? 어찌하여 부모들은 도망가고 어린이만 나가서 돌던지게 두었는가? 여기에는 분명 쇼멘쉽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신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그분이 주신 땅에서 평안히 거하게 하시기까지 그분은 계속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실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세계의 언론들중, 진정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언론을 찾아보라!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해 적개심을 느끼게 하지 아니하고, 역사적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언론들이 이스라엘 편을 드는지, 하마스 편을 드는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 언론을 들을 때 이스라엘의 입장과 하마스의 입장을 공평히 보도하고 그것들을 정의의 입장에서 분별하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하마스의 개전책임 문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부각되는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고,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이스라엘에 분개하도록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세계의 종말시까지 계속될 것이며, 온 인류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으로 팽팽히 차도록 하여 종말시에 온 세계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명분과 구실을 비축하여줄 것이다.
24. 에스겔 38장
1 예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2 아담의 아들아(인자야), 너는 네 얼굴을 마곡 땅의 곡 곧 메셐과 투발의 수령에게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라. ……. 5 파로스( 페르시아=이란)와 쿠쉬(수단 이티오피아)와 푸트(아프리카인)이 그들과 함께… 고메르와 북방의 토가르마와 많은 사람들이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곡이 Georg를 의미하여 그루지아( 스탈린 탄생국)가 될지는 주목할 일이나, 모스크바가 메섹을 의미함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서유럽의 경제력을 등에 업고, 로마 카톨릭의 정신적 지도하에, 아랍의 전위부대를 앞세우고 이스라엘을 총공격할 것이다. 거기에는 아프리카 병력도 참여한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은 이미 열국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땅에서 평안히 거하고 있을 것이다.
12절 : 황무하였다가 지금은 거민이 살고 있는 땅으로 네 손을 향할..
여기서도 이스라엘 땅이 황무지였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미국은 어디로 갔는가? !!!!!
이때쯤 미국은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교회는 무엇하고 있겠는가?
교회의 일부 신실한 성도들은 휴거되었을 것이나 대부분은 환란을 겪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 비율이 얼마나 될지(144,00이 될지)는 역사진행을 지켜보아야 한다. 휴거당시 남은 자들은 그 휴거의 광경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계 11: 12-13)
이스라엘만이 유일한 적그리스도에 대한 저항세력 국가로서 끝까지 항쟁할 것이다. 전세계는 단결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할 것이다. 아무도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믿고 소망할 것이다. 이방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항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다국적군의 처참한 패배로 끝난다.
에스겔 38장19 왜냐하면 나의 질투와 불같은 진노로 내가 말하였거니와 분명 그날에 이스라엘 땅에 큰 지진이 날 것이며
20 바다의 고기들과, 하늘의 새들과 … 땅위의 모든 사람이 지진(한글 성경과 다름)으로 흔들릴 것이며, 산들이 던져질 것이며 뾰쪽한 곳들이 넘어질 것이며…( 뾰쪽한 곳은 모스크 사원들과 카톨릭 성당들을 지칭하는 듯)
즉 그날에는 지진이 있다. 그때에는 수많은 어린이들도, 수많은 여자들도 산채로, 통채로 땅이 꿀꺽할 것이며, 세계언론이나, 아랍인들은 꽥소리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진같은 천재지변은 오직 알라만이 할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도, 그 이전에 이스라엘이 먼저 그들의 땅에 귀환해 와서 살고 있는 것을 전제로 예언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이 장을 잘 읽어 보시라.
25 국가와 개인의 구분
로마서 13장1 모든 영혼으로 하여금 위에 있는 권세들에 순복하게 하라. 왜냐하면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하고는 있지 아니하나니(권력천부), 존재하는 그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어진 권세들임이라. (천부헌법제정권력) 2 그러므로 권세에 반항하는 자는 하나님의 명하신 바에 반항했는 것이며, 빈항했는 자들은 스스로에게 정죄를 받으리라. 3 왜냐하면 관원들은 선한 일들에 두려움이 아니라, 악한 일들에니라. 그러나 너는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러면 네가 그(권세가진자) 에게서 칭찬을 얻으리라. 4 왜냐하면 그가 네게 선을 위해 하나님의 시종이 되느니라.(하나님의 대리인) 그러나 만일 네가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라, 왜냐하면 그가 공연히 칼을 지니지 아니함이니( 무력사용권), 그는,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한 진노하심을 위해 원수 갚는( 보복 응징권), 하나님의 시종이 됨이라. 5 그러므로 순복하는 것이 필수이니( 국민의 순복의무), 진노하심을 인하여 뿐만 아니라, 양심을 인하여서도 그러하니라. 6 왜냐하면 너희가 세금을 납부하는 것도 이런 까닭임이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시중들이 되어 바로 이것을 위해 헌신함이라. 7 그러므로 모든 자들에게 채무들(책무들)을 이행하되, 세금 징수하는 자에게 세금을( 조세징수권), 관세 징수하는 자에게 관세를( 관세징수권), 두려워할 자에게 두려움을, 존경할 자에게 존경을 이행하라.
성경은 개인과 국가를 구분하고 있지 않는가? 국가로 하여금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왼뺨을 치거든 오른 뺨도 대주어라고 말씀하시는가? 아니면 원수를 사랑하여 관대히 모든 죄들을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처럼!) ?
26 국가와 개인의 구분(2)
바울만이 아니라 베드로도 말했다.
페트로 전서 2:13 그러므로 너희는 인간의 모든 제도에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위에 있는 왕에게든지, 14 악행하는 자들을 치리하고, 선행하는 자들을 칭찬함을 위하여 그에 의하여 보내어진 자들같은 총독들에게 순복하라.( 사법정의와 보훈 포상권)
다음의 바울의 가르침은 정부의 민생 치안유지의무를 전제로 한 것이다.
딤전 2 장
1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들 보다 먼저 간구들과, 기도들과, 중보기도들과, 감사를,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행할 것을 권하며, 2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사람들을 위하여,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우리가 모든 경건함과 진지함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를 권하노라.( 국가와 정부의 민생 치안유지 의무)
그러므로 예수님의 개인에 대한 가르침을 들어서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의 무력도발에도 불구하고 참아야 하고, 오른 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서 개인과 국가를 구분한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무력으로 악행을 응징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 심판의 그림자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개인은 개인의 전도 사명과 선행의 의무를 계속해야 한다. 그리할 때 위에서와 아래에서 평화는 두텁게 보호되는 것이다.
27.에스겔 39장
이 시점이 종말의 시점임은 38장과 39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38장 2-3절, 39장 1절에서 메섹과 투발의 로쉬의 왕 곡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메셐은 모스크바의 옛이름이요, 투발은 시베리아지역의 한 도시로 분별된다. 그리하여 시베리아와 모스크바의 러시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이다. 언제 이 일이 있었던가? 언제 고멜과 토가르마 족속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적이 있었던가? 과거 역사에 그런 일은 없었다. 이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21 내가 나의 영광을 이방민족들 가운데 두었나니, 모든 이방민족들이 내가 행하는 심판과 내가 그들에게 댄 나의 손을 보리라.
23. 이방민족들은 이스라엘 집이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수치스럽게) 사로잡혀 갔던 줄을 알리라. 왜냐하면 그들이 내게 대하여 범죄하였으므로 내가 내 얼굴을 저희에게서 숨겼고 저희를 그들의 원수들의 손에 넘겨주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칼에 쓰러졌음이라.
25 그러므로 주 예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야콥의 사로잡힌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집을 긍휼히 여길 것이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내가 질투하리라.
27 내가 그들을 여러민족들로부터 돌아오게 할 때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들에서 모을 것이며 많은 나라들의 눈들에 그들로 말미암아 내가 거룩함을 입을 것이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28 스카랴 12장
9 그날에 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온 모든 이방 민족들을 파멸시키기를 추구할 것이니라. 10 내가 다비드의 집에와 예루살렘 거민들의 집에 은혜와 간구들의 영을 쏟아주리라. 그들이 주목하여 나를 곧 그들이 찌른 자를 보고 그들이 통곡하기를 그들의 유일한 자를 위하여 통곡함같이 할 것이며, 그들이 그를 위하여 쓰라림 가운데 있기를 그들의 처음난자를 위하여 쓰라림가운데 있음같이 하리라. 11 바로 그날에 예루살렘에 큰 통곡함이 있어 므기돈 계곡의 하다드림몬의 통곡함같으리라.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치러 세계 전 민족들이 총동원하여 올 때까지 민족적 규모로는 메시아를 믿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메시아께서는 이방민족들을 쳐부수기를 힘쓰신다.
그들이 메시아를 못박아 죽인 자들임을 그때서야 깨닫고 뉘우치고 통곡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몰려들어 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방민족들처럼 하나님을 믿는 족속이 아니었다. 비록 개인적으로 믿는 자들(메시아 유대인들)이 일부 있을지언정.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분이 부르시고 긍휼 베푸시는 것이다.
29. 로마서 11장- 못자리와 모내기
26 또한 이와 같이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니, 기록된 바,
<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셔서, 야콥에게서 불경건함을 제거하시리라.>
바울은 이스라엘이 모두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만이 민족적으로 전체가 구원받을 것을 약속받았다. 그들은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참혹한 박해를 곳곳에서 지난 2000년 동안 받아왔다.
이제 바울은 다시 조용히 이방인들에게 충고한다.
롬 11장
17 그러나 가지들 중에 얼마가 꺾여졌고, 너는 들감람나무로서 그들에게 접목되어져 있어 그 뿌리와 감람나무의 풍요함에 참여하는 자 되었다면, 18 가지들에게 자랑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만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지탱하느니라. 19 그러면 네가 말하기를 “가지들이 꺾여진 것은 내가 접목되도록하려함이라” 하리라. 20 옳도다. 안믿음으로 저희는 꺾여졌으나,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자긍하지 말라,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연생의 가지들을 아끼지 않으셨다면, 더욱 너를 아끼시지 아니하지 않도록 하라
만일 예수께서 한국에 오셨다면 그분은 박해받지 않고 메시아로 영접되었겠는가? 만일 예수께서 영국에 태어나셨다면 그들은 메시아를 영접했겠는가? 세계 어느 민족도 그분을 알아보고 영접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아마 십자가 지기도 전에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비애이다. 이스라엘은 구약시대 동안 인류세계를 위한 못자리판으로 역할을 했다. 그 못자리판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모내기를 맞이했다. 그 모내기가 다른 모든 논에 이루어진 다음, 원래의 못자리판에도 모내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 세계의 구원 전도의 역사는 완성될 것이다. 이제 원래 모가 있던 못자리판에 모심기가 이루어질 시점이다.
이제 많은 유대인들이 개인적으로 예수아를 메시아로 영접하고 있다.
30. 스카랴 14장
2 내가 모든 민족들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투하도록 모으리니, 그 도시가 사로잡힐 것이며, 그 집들이 약탈을 당하며, 그 여인들이 능욕을 당하며, 그 도시의 반이 사로잡혀갈 것이나, 그 백성의 나머지는 그 도시로부터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그때에 예호와께서 나가사 저들 민족들을 대항하여 싸우실 것이며..
4. 그분의 발들이 그 날에 감람산 위에 설것이니 그것은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으며 그 감람산이 그 중간에 갈라져 그 동편으로와 서편으로 갈라질 것이며 심히 큰 계곡이 있을 것이며, 그 산의 반절은 북쪽으로 반절은 남쪽으로 옮겨가리라.
12 이 것이 예루살렘을 치러온 모든 민족들을 예호와께서 치실 그 재앙이리라.
그들이 그들의 발들로 서있는 동안 그들의 살이 썩을 것이며, 그들의 눈들이 그 구멍들 속에서 썩을 것이며, 그들의 혀가 그들의 입속에서 썩으리라.
16 예루살렘을 치러온 모든 민족들 중의 모든 남은 자들이 해마다 그 왕, 만군의 예호와께 경배하러 올라와 숙콭의 명절(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9….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않는 이방민족들을 예호와께서 재앙으로 치실 것이라.
21 그날에 만군의 예호와의 집에 카나안인들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배운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호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재림하실 때 그분이 이스라엘에게는 예호와로도 알려질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양태론을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2) 재림하시는 날 이방족속들을 심판하시는 방법은 지진과 역병이다. 그 역병은 살이 썩는 병이 될 것이다.
3) 초막절은 그 심판이후에도 계속 지켜진다. 그것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에 근거할 것으로 본다. 그분이 다시 죽을 수는 없으며, 다시 동물 제사로 돌아가는 것은 보다 열등한 제사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예배로 진행될 것이다.
4) 초막절은 재림 이후, 메시아의 심판을 즐거워하는 절기이므로 이 명절이 언급된 것은 매우 적절하며, 유월절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5) 이방민족들 중에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중에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서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자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지만 천년왕국에 참여한다.
6) 차기 정부는 예루살렘에 설치되며, 그 정부는 세계를 통치할 것이며 그 정부의 수반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31. 이스라엘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의 차이
현재 이스라엘은 무력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세계로부터 비방을
받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민간인 살상은 어쩔수 없이 일어나고
불가피한 현실이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물러서면 죽는다. 오늘날
과거의 역사를 모르는 세대들은 아랍이 마치 화해하고, 이스라엘의
공존을 인정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국가 인정을 하는
나라는 아랍권내에서 터키와 이집트 뿐이다. 이집트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는 댓가로 절대로 공격하지 않겠다고 서약했기 때문이며 터키는 유럽연합 가입등 여러가지 외교문제로 비교적 온건 노선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완전히 없애겠다고 공언한다. 사우디, 시리아등은 강경하다. 시리아는 골란고원을 돌려주면 협상하겠다고 하지만 그리하면 이스라엘은 설 땅이 거의 없다. 소련보다 넓은 땅의 아랍권앞에 겨우 경기도 면적밖에 안남는다. 게다가 하마스는 이스라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들 땅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며 이스라엘에 죽음을, 미국에 죽음을 외친다. 파타 또한 아직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소위 로드맵이라는 것으로, 오슬로 협정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정치인들이 떠들지만, 메시아의 강림하실 때까지는 결코 평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단계에 들어설 것이다. 그리하여 무력으로 아랍권의 적대행위를 대항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현 상황에 대한 해법을 하나님께 구한다면 종말시에 내리실 재앙을 앞당겨 내리실 것이다. 그 재앙으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제압하실 것이다. 이 점은 탈출기( 쉐뫁) 23장 20절-23를 잘 읽으면 해답이 나온다. 카나안 일곱 부족을 멸망시키는 방법이 나와있지 않은가?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면, 여자와 어린이를 죽였느니 하는 말이 쏙 들어가고 아무도 꽥 소리 못하도록 통쾌하게 대적자들을 청소할 것이며 아랍인들은 알라는 거짓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해법과 통치 방법은 악에 대하여 철저히 잔인하시다!
노아의 방주당시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겠는가? 얼마나 많은 여인들과 어린이들이 죽었겠는가? 소돔과 고모라의 어린이들과 여인들이 살아남았던가? 여호수아의 카나안 정복 당시에는 어떠했는가? 그때에는 여인들을 남겨두었던가? 고라 자손들이 반역했을 때는 어린이들과 여자들이 남겨졌던가?
오늘날 이스라엘이 간구해야 할 것은 그들의 메시아를 깨닫는 것이다.그리고 그 메시아로 하여금 자기들을 돕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이미 위에 인용된 성경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재앙으로 응징하시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보복하실 것이다.
그것은 지진과 혹독한 질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지진으로 가자지구를 통채로, 산채로 삼켜버리면, 아랍 세계는 입을 꽉 다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지진과 천재지변은 오직 알라만이 행할 수 있는 영역임을 믿고 있으며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알라가 응징한 것으로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에는 여자들과 어린이가 한 두명 죽는 것이 아니라, 수십만 이상 산채로, 통채로 땅에 삼키운 바 될 것이다. 수십명 죽은 민간인들로 인해 떠들던 언론들은 아주 조용해질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다.
원망하는 저들은 영원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 이유를 깨닫기 위해.
이제 온갖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날에는 메시아를 믿을 것이며, 그날에는 메시아가 나서서 싸우실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태해결을 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면 이까짓 통일이 문제였겠는가? 실지 회복을 충분히 할 수 있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한국은 온갖 잡신교가 횡행하며, 땅귀신 덕택에 남한마저도 통일되지 못하고, 최상의 지도자를 뽑기보다는 자기 지역 땅귀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고 분열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어찌 통일을 내다보겠는가?
그러면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비난하는가? 먼저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을 비방하기에 앞서 자기들 눈들에 박혀있는 통나무 기둥부터 뽑아내야 할 것이다.
32.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계시록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은 이스라엘대로 이루어진다.
교회에 관한 예언은 교회대로 이루어진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다음의 진행을 예상할 수 있다.
이방인의 시대는 서서히 마감을 맞이한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은 그 교황청을 예루살렘으로 옮길 것이다. 그리하여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설 것이다. ( 마 24:15) 멸망의 자식이 드러나고 자기를 하나님 위에 높이는 상황이 ( 살후 2:3-10) 벌어질 것이다. 교황청은 현재 다윗의 기병대 마굿간 자리 등 왕궁터를 놓고 아랍측과 협의중이다. 교황청의 그 식욕이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사라졌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 아랍, 유럽 연합이 마음놓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아크사 사원은 무너지고 교황청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일부가 휴거 될 것이며 그 시기는 둘째 화 기간이다.( 계 11장3-13) 그 일부가 휴거될 때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 계 11:12-13). 남은 자들은 적그리스도에 대항하여 끝까지 저항할 것이며, 그들은 그들의 메시아가 예루살렘에 강림하실 때, 천년왕국에 영광스럽게 참여할 것이다.( 계 20:4) 환란기간동안 수많은 거짓 기독교인들이 적그리스도에 참여하고, 그들은 참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설 것이다.
천년왕국에서는 많은 것들이 회복될 것이다. 맹수들도 초식동물로 돌아갈 것이며, 지구는 23도 35분 기울은 것이 원상으로 돌아가고, 지구상에는 물방울층이 형성되어 자외선을 차단할 것이며, 알라스카와 시베리아 캐나다 북부에도 온난한 아열대 기후가 형성될 것이다.
100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경우 뿐이리라. 나머지는 긴 수명을 누린다. 치아도 여러 번 날 것으로 예상한다.(코끼리는 인간수명과 비슷하지만, 여섯번 나는 것으로 안다). 어린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고 노는 때가 올 것이다. 지복의 천년왕국으로 굶주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죄는 있으며, 여전히 십자가의 구속사역은 유효할 것이다. 그분의 십자가 역사는 영원한 효력을 지녔다!
메시아께서 오시는 날 적그리스도와 그의 잔당은 불못에 산채로 던져진다.( 계19:20)
33. 오늘날의 중동문제를 한국상황으로 변환하여 생각해본다.
한국이 2000년 전 몽고의 침입으로 식민화되어 한민족이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임진왜란 무렵에는 일본의 침략으로 더 이상 한국 땅에 한인들이 거의 살지 않았다고 하자.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민족이 민족성을 유지하겠다는 열의가 대단하여 세계 각지로 흩어졌는데 19세기 말부터 국권회복운동이 벌어져서 한민족이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하자.
그런데 그 비어 있던 한국땅에 1880년쯤 전국을 통해 3 만쯤되는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고 수만명의 한국인들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그 황무지의 한국 땅에 중국인들도 차츰 몰려왔다.중국인들이 몰려오는 속도는 한인들보다 많았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만주에서 가깝고, 그 숫자도 많은 집단중에서 1%만 몰려와도 많은 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하여 한인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오느라고 그 수가 극히 제한되었다. 게다가 미국이 신탁통치를 행하면서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에 돌아가는 한인들의 수는 일년에 15,000명으로 제한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이 1948년 독립을 선포할 당시에는 한인 60만 중국인 60만 정도였으나 중국인들의 주장은 한인 60만 중국인 110만으로 자기들의 압도적 우세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몰려왔으며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자 중국은 한인들을 완전 말살시킬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한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중국인들은 피난을 떠나라고 말하고는 곧바로 전쟁을 선포하여 한국을 쉽게 정복하고 한인들을 황해바다에 모두 말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신생 한국 독립정부군은 중국의 침략을 막아냈다. 그리고 피난을 떠났던 수많은 중국인들은 올 데 갈데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두 나라 사이에 적대관계가 계속되고 휴전협정이 성립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은 뿔났지만,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어서 졌다고 핑계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한국내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중 일부는 한국 정부에 순종적이어서, 한국 정부에 적대행위를 하지 않고 한국내에 거주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들에게 한국정부는 영주권을 허용하고 그들은 한국의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반면 일부 중국인들은 한국정부에 귀속되기를 거부하여 일부는 인천에 난민촌을 형성하고, 다른 일부는 강원도지역에 난민촌을 형성하여 살게되었다. 그런데 이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중국은 4차례나 한국을 공격하며 전면전을 벌렸다.
그때마다, 한국은 기적적인 괴력으로 중국군을 물리쳤다. 그럼에도 인천지역의 중국인들은 수시로 로켓포를 발사하여 부천과 영등포지역에 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중앙청과 서울 동남부를 포격하는 것도 시간문제가 되었다. 매일 하루에 두발 씩 쏘고 있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이 한국정부가 취할 조치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정부는 그들의 로켓포가 자체 개발한 것도 있지만 중국에서 몰래 땅굴을 통해 들여온 것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당신은 한국정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저들 로켓포를 발사하는 자들은 우리의 독립투사들인 김구, 이봉창, 안중근, 윤봉길과 같은 사람들이므로 그들을 체포 처벌해서도 안되고, 그들이 로켓포 쏘는 만큼만 하루에 두발 정도씩만 박격포로 대응하면 된다고 말하겠는가?
(이것보고 장난한다고 말한다!)
그들 중국인들은 수시로, 한국은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식당과 시내버스에 수류탄을 투척한다. 그리고 자살폭파 특공대를 보내어 여러 장소를 폭파시키고 있다.한국 정부가 이들을 근절시키기 위하여, 인천을 쳐들어가서 그 땅굴을 파괴하고 로켓 발사시설를 없애고, 그 지도부를 와해시키려한다면, 당신은 지나친 조치라고 말하겠는가? 그 중국인들이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아 싸운다고 해서, 민간인 살상을 막기 위해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겠는가?
미국정부와 캐나다 정부는 자기들이 당하면 마땅히 조치했었을 바를 이스라엘이 지금 취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스라엘 지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은 민간인 살상이 목표가 아니라, 바로 그 로켓 발사시설과 그 무기 반입을 근절시키는 것을 목표로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인천의 중국인 게릴라들을 공습한다면 지나친 것이며, 인천 사시는 중국인들이여, 오른 뺨을 때리듯이, 부천만 공격하지 말고, 압구정동, 잠실, 청와대도 마음껏 로켓포로 발사해주시오, 하면 훌륭한 정부가 될 것인가?
34. 민간인 살상과 유엔
이스라엘이 민간인 살상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반면에 하마스는 민간인 살상을 피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동안의 수많은 자살 공격에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언론들은 하마스 전사보다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죽었다고 보도한다. 이제 그 사례들을 분석해보자.
1) 니자르 라이얀이 죽었을 때 그의 두 명의 아내와 4명의 어린이들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즉 한명의 하마스 전사에 6명의 민간인 살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스라엘 공습이 있었을 때 얼마 후 수차례의 후폭발이 그 아파트에서 있었다. 그는 그 아파트에 폭탄들을 저장하고 있었으며 공습으로 연쇄 폭발한 것이다. 그는 하마스의 수많은 자폭공격을 주도해온 인물이었다. 그런 경우 그에 수반된 민간인이 죽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2) 하마스가 이 기회에 파타계 아랍인 민간인들을 죽인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경쟁자들인 파타 그룹 멤버들을 살육한 것이다. 그들은 갑자기 사라졌으며 그들의 유족들이 증언하고 있다.
3) 이스라엘의 정보국 모사드와 신베트의 정보요원인 아랍인들도 죽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작전의 상하 불협화로 노출되었으며 하마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들도 민간인 살상으로 들어가 있다.
4) 하마스는 수많은 경우에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는다. 병원과 유엔 학교시설등에 숨어서 박격포를 발사한다. 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5) 이스라엘이 가자 침공을 감행한 것은 그들이 도저히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이 처음에는 매우 부정확하고 사거리가 짧았으나 정확도가 높아지고, 사거리가 길어져 민간공항 벤구리온 공항까지 포격 가능하게 되었고, 네게브 지역의 핵시설에까지 포격이 미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6) 유엔은 미국, 유럽,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동안, 무슨 조치를 취했는가? 그 하마스를 위해 학교를 세웠단 말인가?
유엔총장은 유엔 건물 기초석에 새겨진 이사야서 2:4절이 누구에 의해 새겨졌는지부터 공부해야 할 것이다.
7) 하마스가 매일 2-4발씩 로켓포를 발사하는 동안 유엔은 무슨 조치를 취했는가? 왜 갑자기 그 로켓 발사행위를 응징하려 할 때에야 전쟁 중지하라고 결의하는가?
8) 테러단체 하마스를 옹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유엔의 수장을 보노라면, 과거의 부트로스 갈리가 재선임을 받고 싶어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받지 못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분이 재선임을 받기를 바라는 심정이지만 안타까울 뿐이다.
9) 지금도 하마스는 언제든지 로켓포 공격을 재개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먼저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아랍측이 먼저 공격해왔다. 그러므로 민간인 살상에 대한 모든 책임의 근원은 하마스에 있다.
10) 전쟁에서 민간인 피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비록 그것이 민간인을
목표로한 공격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러기에 개전책임은 중요하다.
11)하나님은 당연히 이 시간에도 이스라엘을 옹호하시며 보호하신다. 왜냐하면 그 분이 이스라엘로 그 땅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에스겔 36:34, 38:11, 39:26장)
35. 인간들이 성경을 인정하고 성경으로 돌아가면 중동문제 해결된다.
아직도 세상 사람들을 뒤따라, 팔레스타인 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내가 이스라엘 땅이라고 부를 때 항의하는 것을 본다.
그들은 성경에 이스라엘 땅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지부터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성경을 자기가 믿는지 스스로 시험해보기 바란다.
이 세상의 눈으로는 해답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해답을 갖고 계신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땅을 언급하였으며 그 면적은 오늘날의 이스라엘 보다 더 넓다. 그 완전한 회복은 메시아의 강림시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땅의 황폐화와 거민이 거하지 않음을 예언하였다. 수많은 여행가들은 이 예언이 진실이며 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사탄은 즉각 모방과 따라잡기를 실시하여 지금까지 훼방놓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언론들이 성경을 살펴보고, 또 진정한 역사를 살펴보면, 하마스, 아랍세력들의 주장이 억지임을 알 수있고 보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랍인들이 그 땅에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인들이 몰려들어와서 땅을 뺏겼다는 주장은 성경을 배반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언론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오늘날 가자 사태의 300배 (최소한 100배 이상)규모로 살육과 강간 약탈이 자행되는 수단 다푸르에 대해서는 가자 보도의 0.1% 미만의 분량만 보도한다.
왜 이슬람국가의 살육에는 언론들이 그토록 관대한가? 다푸르 사태는 하마스 사건보다 훨씬 더 억울하다. 하마스는 자기들이 먼저 공격하여 발생한 사건이고 다푸르는 선량한 양민들을 장자위드가 공격하여 발생한 것이다.
오늘날의 언론들은 하나님의 심판대상이 될 것이다. 언론이라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며, 그 세상 임금의 지휘를 받는다. 인간들은 원래 간사한 것이며 언론은 그 간사한 인간들의 심령을 거슬려서 진리와 정의를 설파하는 기관은 아니다.
36. 개인전도와 중동문제
이러한 하나님의 잔인한 심판을 생각한다고 해서 아랍인들에게 대한 전도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세계가 존속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지난 주 나의 교회에서는 토론토 대학생들의 기독학생 모임을 통해 구원얻은 파키스탄 학생이 이제 우선 해야할 일을 깨달았는데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고 간증했을 때 많은 감동을 일으켰다.
오늘은 알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놀라운 간증이 있었다. 극심한 탄압의 국가에서 전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밀리에 모이는 것을 듣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쿠웨이트에는 200명이상이 공개리에 모여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것을 듣는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한 귀한 생명들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개인전도의 문제는 국가행위와는 별개이다. 국가란 수많은 불신자를 포함하여 형성되어 정책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적 구속을 약속받은 민족이며 그들은 그간 혹독한 박해를 받아왔다. 그들의 국가가 설립되고 평안히 거할 때에 메시아를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37 이방민족들과 이스라엘, 대체이론
오늘날 이방세계의 기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은 자주 이스라엘이 세속 국가이며 세계 어느 나라와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구약의 모든 약속은 교회에 대한 약속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이스라엘은 교회로 대체되었다는 주장이며 이를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 대체이론(Replacement Theory)이라고 불리운다. 이러한 주장은 대개 로마 카톨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프로테스탄트중에서도 지독한 유태인 혐오주의자였던 마르틴 루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바울이 이스라엘 민족이 전체적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예언을 한 것을 간과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수많은 구약예언을 교회에 관한 것으로 갖다 붙이는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구약예언을 교회에 갖다 붙여서 러시아와 이란과 유럽국가들의 이스라엘 침공을 교회에 대한 탄압으로 갖다 붙이는 것은 억지이며 무리이다.
이러한 생각들의 배경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시가 자리잡고 있다. 로마서 11장을 읽어보면, 분명히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만, 그들은 완악하여져 있는 것이다.
이방세계와 이방세계의 교회들은 하나님 앞에 또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 심판대에서 자기들의 행위에 대해 직고하며 심판 받을 것이다.
역사상 유태인 혐오와 유태인 살육의 배후에는 대부분 로마 카톨릭이 자리잡고 있었다. 히틀러 또한 카톨릭 신자였다.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메시아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교회는 교회대로 그리스도께 나올 것이며 구원받을 것이다.
지난 2000년 동안 이방교회들은 그 수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만큼 위대한 성도들을 배출하지 못하였다.
모쉐만큼 홍해바다를 가르는 역사를 행한 성도도 없었으며, 이사야 만큼 메시아를 예언할 수 있는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엘리야처럼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사람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마태 10장 8절에서 병든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고 명하셨다. 바울은 그 일을 행했다. 베드로 요한도 그 일을 행했다. 이방인 교회 성도들 중에 누가 그만한 일들을 행했는가? 누가 바울처럼 죽은 자를 살린 적이 있는가? ( 행 20:7-10)누가 요한처럼 주후 2천년 동안의 역사를 예언할 수 있었던가? 2천년은 커녕 쓰나미를 예언하는 사람도, 1년전에 오늘의 경제위기를 예언할 수 있는 선지자도 없었지 않는가? 이방인 교회 성도 수억을 합한다 해도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도들의 수를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무리한 생각이겠는가? 이방인 성도들의 게으름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에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인들이나, 이방인 성도들이나, 인류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오늘의 사태를 보는 것도 그 시각이 과연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각인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판단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38. 한민족의 영토회복의 희망
한민족이 그동안 당한 수많은 억울함을 깨닫고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제 모든 판단을 성경에 맞추어 행할 때 그들이 이스라엘의 당연한 권리와 건국, 그들의 안위를 옹호하는 생각을 품으며, 이스라엘을 지지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다음의 음성을 듣는 것은 무리한 상상이라고 생각될 것인가?
” 너희 민족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옹호한 것처럼 나도 너희 민족을 지켜줄 것이며, 너희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을 성원한 것처럼, 나도 너희 민족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도록 힘을 다할 것이라,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라!”
영토를 되찾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거대 중국은 하나님의 손으로 한 주먹 감밖에 안된다. 저들은 숫자만을 믿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중국에 일어난 지진으로 수많은 남녀노소가 죽지 않았던가? 교만한 일본도 하나님이 한번 치면 그 족속은 뻐름적 거리다 죽는다. 그들의 모든 잔학 행위를 하나님은 모두 기록하고 계신다. 러시아는 종말시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성경을 잘 읽어 보시라. 성경에는 모든 문제의 해답이 들어있다.
나는 매일 그분의 음성을 듣는 기쁨으로 지낸다. “네가 나를 죽기까지 섬겼은즉 나도 너를 내가 죽기까지( 십자가처럼) 보호하고 지킬 것이라.”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한민족이 하나님의 길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본다. 곳곳이 썩어 있을 뿐이며, 젊은이들은 더욱 그렇다.
하나님은 한민족이 전혀 지원하지 않아도 이스라엘의 건국과 안전한 거주, 회개와 열국에 대한 승리를 이루실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의 예언은 한국의 지원이나 성원 없이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다만 한국민들이 그들을 지원하고 옹호할 때 하나님은 한국민을 축복하실 것이다. 즉 이스라엘에 대한 올바른 생각과 지원 기도는 바로 한국민을 위한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여러분이 이스라엘을 맹비난해도, 이스라엘은 건재할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심판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여러분의 참여 없이도 그대로 이루어진다. 다만, 여러분이 이스라엘을 성원하고 그들을 지원한다면 여러분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다. ( 창 12:3)
39 이스라엘과 열방, 한국과 미국
앞서 이스라엘과 열방을 영적으로 비교해 보았다. 열방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만큼의 영적 수준을 발휘한 기독교 성도는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엘리야같은 선지자도 없었고 바울같은 위대한 성도도 열방민족들 중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오늘날 전세계에 2천만도 안되지만, 수많은 기여를 인류세계에 해왔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많은 실수와 오도도 있었다. 유대인들이 주도한 공산주의는 인류세계 전체에 큰 해악을 가져왔고, 유대인 사회에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칼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티토, 이들은 모두 유태인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인류는 근대사에 있어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끌려나왔다. 국제연맹이나, IMF, IBRD, GATT ( Urguay Round-WTO), UN 등의 이 모든 기구들은 유태인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Dumbarton Oaks 회담, Breton Woods 협정 등을 제안하여 성사시킨 것이다. 이것들이 종말에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도구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기구 없이 이 세상이 움직여왔다고 상상해보시라. 그것은 지독한 혼란과 궁핍으로 치닫는 지구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즉 세상 또한 어느 시점까지는 이러한 기구들을 통해 운영되도록 하나님이 간접적으로 허락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들의 폐해도 있으나, 그것들 덕택에 세계는 평화를 누리기도 하였다. 노벨상의 100명이 넘는 수상자들은 아랍인구 전체가 얻어낸 3-4명에 비할 때 그들이 얼마나 인류의 과학과 의학 발전에 기여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들은 과거 역사에서 무수한 핍박을 받아왔다. 오늘날도 다시 그러한 핍박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정부 뿐만 아니라,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일어서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수많은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사태에 대하여 상당히 정확한 정보와 판단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기독교 언론들은 진실을 보도한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하는 언론들을 보면 아직 한국은 멀었다는 생각이다. 한국 기독교인들 중에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시겠으나, 그들의 절대다수 신자들은 침례가 아닌 세례를 시행하고 있으며, 카톨릭 성경 사본인 바티칸 사본에 근거한, 웨슽코트-홀트-네슬알란드-로 이어지는 성경사본을 근거로 번역한 성경을 보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다수이면 정통인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장로교는 침례교인 수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란다.
미국은 수많은 사회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으며,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 또는 최소한 다수 사본에 근거한 성경( 뉴 킹제임스 등) 을 사용한다. KJV에는 (특히 구약에) 상당한 오류들을 안고 있으나, 다른 어느 성경보다 가장 정확하다고 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 바탕이 되는 근거 원문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55억에 가까운 발행부수가 그 동안의 기여를 말해준다.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예언을 정확히 파악하며 그에 따라 오늘날의 이스라엘 사태를 잘 분별할 수 있으며 그들은 입으로만이 아니라, 행위로도 하나님과 성경예언을 인정한다. ( 디도1:16)
40.땅이 또한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으며, 땅이 폭력으로 가득찼더라!
(창세기 6장 11)
노아 당시에 세계는 폭력으로 가득차 있었다. 여기에 폭력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하마스의 번역이다.( 히브리어를 공부하신 분들은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물론 하마스의 아랍어 의미는 투쟁정신이라든지, 그것은 이슬람 저항운동의 약자에서 왔다는 말을 듣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인류세계 종말의 시점에서 세계가 폭력으로 가득차 있음을 상기시켜줌을 받는 것이다.
세계는 하마스로 가득차 있다. 하마스와 그들을 은근히 도와주는 언론들로 가득차있으며, 그 언론들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이 많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그들에 이미 미혹된 자들이 많은 것이다.
얼마 전 샘물교회 사람들이 아프간을 갔을 때 한국에는 탈레반 잔당들이 많아서 그 기회를 틈타 기독교를 무수히 공격하였다. 종말의 시점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라면서 적그리스도에 저항하는 유일한 저항세력으로 남을 것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개인적으로 흩어져 믿음을 지킬 것이다.
41. 한국에는 축구 선수가 많다.
여기서 하나님의 처방을 살펴보자.
그분은 폭력으로 가득찬 세상을 치유하려 하시지 않았다. 그것들을 응징하시기로 정하시고 심판하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방주를 준비케 하셨다.
창세기 6장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해 방주를 만들지니; 너는 그 방주안에 선실들을 만들고, 그것을 안과 밖에 피치(코페르: 대속물)로 덮으라 (코페르: 대속하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이 폭력의 세계에 대한 대책으로 그것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모형이요, 그리스도의 몸의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는 방주를 준비케하셨다. 그 교회는 코페르로 코페르칠을 하였던 것이다. 즉 대속물로 대속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당신 스스로는 예수 그리스도(대속물)로 대속함을 받았는가? 그분의 피를 온전히 믿어 변화되었다면 당신은 그 방주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날에는 방주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구원을 얻었다. 오늘날은 그리스도의 교회안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구원을 얻는다. 그 교회란 콘크리트 건물위에 십자가를 꽂은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몸을 깨뜨려 이루어 놓으신 신령한 세계를 말한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당신을 대속하셨다. 당신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신 것이다.당신은 어린양의 피로 문설주에 발랐는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이 당신을 위한 것임을 믿고 인정하면 그 어린양의 피를 당신 마음속에 있는 문설주에 바를 수 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를 믿음으로 당신의 방주에 역청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기억하고 증거하며 전도할 때이다 그리고 그분이 이스라엘에 어떻게 일하시는지 주목할 때이다.그날에 그분께서는 많은 고통 당하시고 피흘리셨다. 메시아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메시아를 찔러 죽였음을 깨닫고 찢어지는 마음으로 통회하고 있다. 이제 그분은 인류 모두로부터,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로부터 경배를 받으실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하나님의 복을 차내는 축구 선수가 많다. 나도 그러한 축구 선수였기에 그것을 안다. 세월이 지나서야 후회한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시며 그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신다고 하셨다.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왜냐하면 그에게 하신 약속이 그의 후손들에게도 지켜질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42. 이스라엘의 메시아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중의 기독교인
아랍인들 중의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인지는 의문이다. 중동의 마론 파와, 이집트 콥트 기독교, 카톨릭, 그리스 정교회등의 그룹들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그들 중에 얼마나 많은 수가 진정으로 성경말씀을 믿으며, 그 예언을 믿고 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성경이 진실임을 믿는 자들은 그것을 면밀히 살폈을 것이며, 그리하면, 그 땅이 당연히 이스라엘의 땅임을 알았을 것이다. 다만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어느 민족 중에도 그분의 사람들이 있듯이 그들 중에도 진정으로 믿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내의 메시아 유대인들은 조용히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의 수만큼의 메시아 유대인들이 있으리라고 독립당시에 누가 예상했겠는가?
오늘날, 코네티컷, 로드 아일랜드, 뉴욕, 뉴저지, 메사츠셋츠 주 등의 유대인 밀집 지역에서는 메시아 유대인들의 모임에 속지말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이제 메시아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손상시킨다는 우려를 가진 유대인들이 많아졌다는 증거이다.
북미 메시아 유대인들의 교회는 6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 어느 인종들 중에서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 국가적 회심의 시기가 남아있다.
43. Humanism 으로 하나님을 심판하겠는가?
성경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휴멘이즘이라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심판하겠는가?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과 다르며, 너희 길들은 나의 길들과 다르다고. ( 이사야 55:8)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나의 길들은 너희 길들보다 높고 나의 생각들도 너희 생각들보다 높다. 비가 내리고 눈이 하늘에서 내리면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시며 그것으로 싹나게 하여 씨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며, 양식을 먹는 자에게 주는 것처럼, 나의 말도 내 입에서 나갔으면 그것이 헛되이 내게로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것이 나의 기뻐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그것을 보낸 바에 형통할 것이라. ( 이사야 55:9-11)
하나님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인간들은 하나님께 왜 그러냐고 항의하기 전에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좀더 곰곰히 새겨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세상의 수많은 언론에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먼저 발포하여 전쟁을 일으켜놓고, 그 사실은 쉽게 잊게 만든 다음 그 발포 폭력을 응징하는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을 부각시켜 평화를 깨뜨린 범죄자로 비추고 있는 언론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속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끝까지 승리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의 성취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항의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각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견해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늘날 이 시점에 바울이 온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오늘날 이 시점에 예수께서 오신다면 당신의 생각이 그분께 받음직하겠는가?
나는 예수께서 이 시점에 다시 오신다해도 위에 쓴 글의 취지로 말씀하시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왕이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시다. 그분이 어찌 이스라엘을 잊으시겠는가?
44. 참고 사이트
종합적인 이해가 용이하게 설명된 사이트
http://www.nfuu.org/Palestineto1948.htm
아랍인들의 논리 반박, 예루살렘 인구 변화
http://israel.net/timetospeak/8.htm
이스라엘 신문 하아렛츠 보도
http://www.haaretz.com/hasen/objects/pages/ResponseDetails.jhtml?resNo=2420266&itemno=886373&cont=2
이스라엘 땅의 황량함. 황무지였음.
읽으면 좋은 사이트
http://www.eretzyisroel.org/~peters/coexistence.html
이스라엘 땅이 황무지 였음을 증명하는 추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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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aretz.com/hasen/objects/pages/ResponseDetails.jhtml?resNo=2420266&itemno=886373&con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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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메시야닉쥬의 영화 회복을 본 후에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을 여러모로 하고 있습니다. 올려주신 글도 그러한 생각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네요. 유대인으로서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그리 좋은 이미지가 있지 못한것 같습니다. 죽은이에게 기도드린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오히려 그러한 생각이 유대인으로 사는 정체성에 큰 도전으로 전달된다는 점, 그로인해 적으로 간주되어 받게되는 깜짝 선물, 시오니즘의 유대인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방인들에게 그들은 선조들의 정복전쟁의 후예임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리스도인과 이방민족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나 봅니다.
선조들이 정복전쟁을 벌였다는 생각은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진정한 유대인들이 아니라, 카자르 왕국 사람들이라는 개념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현재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만일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니라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귀환하기까지는 종말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기독교인들을 경계하고 신뢰하지 않는데 그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무수히 참혹한 핍박을 유대인들에게 가해왔기 때문입니다. 또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핍박을 촉구하는 글들을 써왔으며 그 대표적 인사가 바로 어거스틴과 마르틴 루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