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정치경제학
1.
우리나라에서 상평통보란 이름의 동전이 처음 출현하고 반세기 경이 지난 다음에 저술된 곽우록의 전론(錢論)에서 성호 이익 선생은 돈이란 가진 자에 유리한 것이고, 가난한 농민을 수탈하는 도구이므로 폐기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계급사회에서 돈의 본질을 간파한 탁견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견해는 화폐의 사용이 사회경제발전 방향에서 대세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한계를 갖습니다.
2.
서양경제사에서 지폐가 발생하는 과정을 봅시다.
중세 말기에 상업이 발달하고 브로주아 계급이 형성되면서 화폐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됩니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해서 각지에서 종래의 고리대금업자들이 은행이라는 새로운 기관을 세워 기존의 금화나 은화 대신 지폐라는 새로운 신용 수단을 발행합니다. 은행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에 준해서 지폐를 발행하고,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지폐를 금과 교환해줄 수 있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사기였습니다. 은행 금고 속에 든 금의 양을 아무도 알 수 없었기에 은행들은 지폐를 남발해서 막대한 수익을 챙겼습니다. 이런 사기 행각은 결국 고객들의 의심을 사게되고 대규모 뱅크 런( 현금 인출) 요구로 은행들은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지요.
당시 신대륙 진출 등으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유럽 각국의 왕들은 이러한 은행들의 신용남발 사기 사건에 개입해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대출받는 조건으로 은행들의 사기를 합법화시켜 주는 거래를 하게 됩니다. 이른 바 지불준비율 제도란 명목으로 은행들은 신용 남발에 대한 면제부를 받고 일정 범위 내에서 신용을 남발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공인되었습니다.
일반 사람들 눈에는 국가와 은행들간의 타협이고, 자기들 끼리의 짜고치는 게임으로 보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배세력인 부로주아가 주도하는 사회 흐름이었습니다.
3. 이차세계대전 이후 정착된 브리튼우즈 체제에서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로 부각되고 그 가치는 미국 정부가 보유히는 금에 의해 보증되었습니다. 그런데 1971년 미국 닉슨대통령은 돌연 미국 달러의 금태환 중단을 선언합니다. 앞으로 달러는 순수한 미국 국가의 신용만으로 유통되니 이를 믿어달라는 선언입니다. 기존 가치론의 입장에서 볼 때는 황당한 요구이지요. 권력은 충구에서 나온다고, 미국의 무소불패의 군사력에 압도되어 세계는 이를 묵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4.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미국정부는 천문학적 부채와 경기침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를 무한으로 찍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시장에서는 달러가 넘치게 되지만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통화과잉으로 유발될 인플레이션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세계 각국으로 떠넘겨 해결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
시장이란 수조통에 물과 같은 유통성으로 공급되는 돈이 지나치게 많으면 어느 순간 수조통이 넘치고 경제는 익사하게 됩니다. 과잉 유동성을 받아 줄 새로운 수조통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은 원래 블럭 체인 기술에 기반한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민간시장입니다. 미국 정부와 금융지배세력은 이것을 유동성 과잉을 해소해 줄 새로운 수조지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디지털 가상경제를 터받치는 새로운 가치수단 즉 디지털 금으로 설정되었다고 파악됩니다.
5.
이제 새롭게 설치한 경제권으로 미국 통화가 흘러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융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를 디지털 경제로 새로 재편하려는 세력들의 플랜이 반영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디지털 금이 된 비트코인은 가격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한화 2500만원 하던 것이 몇 달 사이 6000만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그 가격이 치솟을 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은의 가치 총량에 비교하더라도 개당 1억이 되어야 그 가치가 상충된다고 합니다.
저들이 주도해서 만들고 있는 디지털 경제라는 전대미문의 세계는 그 규모가 가공할만큼 클 것으로 예견됩니다. 따라서 그 속에서 유통되는 부의 기초가 되는 가치척도 또한 크만큼 크질 것이 당연합니다. 나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6.
역사상 지배계급이 주도해서 창출하는 다양한 형태의 돈은 항상 기층 민중에게 불리하게 작용해왔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돈의 역사는 사기가 거대화되는 과정입니다.
문명이 발달할 수록 부에 대한 지배층의 욕심은 증폭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돈의 단위와 규모는 증가해왔습니다.
동전을 실제 가치 이상으로 유통시킬 때부터 그 사기행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종이 조각에 국가 관인을 찍어 지폐로 남발할때 그 사기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비트코인이라는 가치론적 근거가 희박한 물건을 가리켜 디지털 금이라고 합니다. 사기의 극치인 셈이지요.
그래서 비판적인 일부 지식인들은 인류 최대의 폰지사기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돈은 지배층에 의해 실물가치가 아닌 신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허구냐 아니냐는 지금의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들이 이것을 신용으로 유지할 힘이 있는 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더구나 디지털 경제는 그 실체가 분명한 새로운 노다지의 세상입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비트코인에 대한 냉소적 비난은 눈 앞에 전개되고 있는 화려한 부의 잔치에 참가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위안은 될지언정,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입니다.
도덕적 단죄와 분노에 앞서 우리에겐 이것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새로운 경제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부의 지형의 판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시점에서, 팔짱끼고 비난만 히는 것은 결국 쪽박신세를 면치 못하는 후과를 초래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추기
비트코인처럼 탈중앙화된 화폐에 대해 미국정부와 연준으로 대변되는 금융지배세력은 서로 공통된 입장도 있지만 상충하는 부분도 큽니다.
정부입장으로서는 비트코인이 가치저장 수단을 넘어 교환수단이 되면 달러를 위협하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려 하겠지요. 그러나 금융지배세력으로서는 자신들이 구축하고 있는 부가 쇠약해지고 있는 달러와 운명을 함께하다 동반 침몰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트코인을 새로운 부의 기준으로 삼아 암호화폐 영역을 지배함으로써 돈에 대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이를 더욱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미국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는 이 양자의 갈등에서 결국은 후자가 우세할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비트코인에 반대하는 유시민씨는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갗추어야 할 조건이 결여되어 있고, 가치가 불안정하고 투기적 성격이 크다는 것을 비트코인의 극복할 수 없는 내재적 한계로 너무 경직되게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봅니다.
제가 암호화폐에 대해 공부를 해보니, 이 문제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극복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꾸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돈이란 애초 교환수단을 넘어 축장수단으로 변질된 때부터 도덕성을 상실했고 미국이 달러를 남발하는 것 역시 비도덕의 극치이지요.
비트코인이라는 원천 기술이 금과 비숫한 속성이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이것을 신용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자본의 역량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들의 시도가 상당부분 성공할 것이라 예견합니다.
도덕을 논하기 이전에 이것이 이들이 주도하는 현실의 흐름이라는 것을 직시해야합니다.
그리고 이 흐름이 현재는 자본에게 유리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본을 전복할 해방의 힘이 그 속에 들어있다고 봅니다.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점이지요.
블럭체인의 디지털 기술과 자본주의 현란한 금융기법은 비트코인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화폐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암호화폐 세계에는 비트코인을 보완하는 많은 알트코인들이 있고,이것이 다양한 방법으로 비트코인을 지원하는 자기 완결적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유시민씨도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자기가 알고있는 지식 내에서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데에 다소 실망했습니다.
세상은 이미 저만큼 변화해가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뒤에서 우기는 격이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