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muIswJvwqQ
[230528 집중수행 인터뷰법문 Summary]
분명한 앎의 분명하다는 것은 유형유색의 사물을 분명히 본다는 뜻이 아니라, 이해를 말합니다. 빠라맛타는 빤냐띠와 반대로 모양 색깔이 없습니다. 단지 이치, 성질만 알아서, 마음이 깨끗해지면 본인이 압니다.
관찰하는 마음, 수행하는 마음에 번뇌가 없이 깨끗하고, 견해도 바르게 되어 빠라맛타를 이해하게 됩니다. 빠라맛타를 아는 것은 지혜가 나야 합니다. 지혜가 빠라맛타를 대상으로 해야 분명합니다.
아닛짜(무상)와 둑카(고)는 한 쌍으로 일하지만 거기에 잠깐 Term이 한 번 있고, 아낫따(무아)가 됩니다. 그것도 다 동시적이라서, 구분될 수 없고 다 지혜로써 이해를 하는 문제입니다. 아닛짜, 둑카는 일어나는 쪽에 감당을 한다고 한다면, 아낫따는 사라지는 쪽에 감당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대상 한 번 일어났을 때, 3법인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 것을 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금싸라기 지혜를 모았기 때문입니다.
아닛짜 둑카 쪽은 빠라맛타를 대상으로 하는 지혜 쪽 파트라고 한다면, 아낫따는 중도 지혜 쪽 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는 통찰의 특성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보는 마음 쪽에서 힘이 좋으면 대상이 일어나면 바로 알아차립니다. 지혜는 그냥 아는 쪽입니다. 보는 힘에 따라서 ‘알고’를 사띠로도, 지혜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순간에 변화과정이 있습니다. 변화과정 속에서 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려면 금싸라기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체험했다고 법의 성품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과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의 관계가 원인 결과입니다. 무명의 마음과 대상과의 관계 또한 원인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