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국사와 풍수의 고장 삼성동 마을
삼새
도선국사는 비둘기가 키운 아이로 영암 김씨 영암 출신. 입산수도를 하였다하여 법명이 도선(道詵).
처녀가 빨래를 하는데 냇물 위에서 오이가 둥실둥실 떠내려 온다. 처녀는 빨래를 하다말고 목이 마른 나머지 오이를 건져 먹었지요.
처녀는 점점 배가 부르더니 827년 아이를 낳게 된다. 그런데 동네에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에 챙피하게 느낀 처녀는 아이를 돌보지도 않고 바위 위에 살며시 놓고 갔지요.
얼마 후 산천이 울리도록 아이가 왕벌처럼 왕왕 울자 비둘기가 몰려와 아이를 감싸며 구구구구구구구 구욱구욱 돌보고 있었지요.
마침 지나가던 길손이 그것을 보고 아이를 거둬 키우게 되는데.... 이 아이가 풍수의 대가 도선국사가 될 줄이야.
오늘날 국사암 구림마을에서 태어난 도선은 문수사터 도갑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842년 15세에 월유산 지금의 월출산 화엄사에 들어가 낙발지지 머리를 삭발하고 출가를 한다.
도선은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동리산 혜철스님의 문하에 들어가 선을 공부한다.
신라 문성왕 8년 846년 도선국사 20세 되던 해 헤철대사가 당나라의 서당지장으로부터 밀인을 전수받고 귀국하여 전남 곡성 동리산 태안사 원래는 대안사에서 개당 설법을 하게 된다. 이때 도선은 혜철스님의 제자가 되어 무설설 무법법, “사물에 집착하지 말고 그대로 보라!” 전수를 받고 23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는다.
이때 나라는 이론 위주의 왕권정책으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도선은 강원도 변방의 방랑길을 결심하게 된다.
850년 23세 어수선한 시국에 도선은 운수행각 15년의 방랑길을 오르는데......
전남 구례는 강원도로 오기 위한 지름길
모래와 관련된 사도리 마을이 있다. 도선은 사성암에서 수도를 하다고 신선을 만나 모래밭에 지도를 그리고 풍수지리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고 한다.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게 되어 모래 사에 그림 도, 사도리 역시 우연의 일치는 아닐까 싶도록 모래 언덕 원주 흥업 사제리라는 마을이 존재하고 있다.
도선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면 태백산의 줄기 운봉산에서 띠 집을 짓고 수도를 하게 된다. 이때, 이인으로부터 풍수설을 전해 받은 것으로 전해오는데.... 넓은 세상 삶의 소식을 듣기위해 하산을 하여 언론 내륙의 중심지 부론을 목표를 삼고 길을 재촉하게 된다. 주천의 법흥사 치악산 구룡사 원주.
운치리에서 여울 따라 원주로 오게 된다.
원주에서 부론으로 가는 지름길 길목에 놓인 삼성동(三省洞) 마을
도선국사는 배부른 산 남쪽 행가리에서 배를 타고 사제리 모래 언덕으로 오다가 좌측 상류로 뱃길을 돌려 언론의 중심지 부론을 가려고 했을 것이다.
이때 배를 타고 마을 어귀 나루터에 잠시 머물러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보다가 안산을 보고 우측 마을 뒷산 아래 네 채의 집을 보았을 것이다.
大安百川은 來落公이요, 五峰四隣은 巨寶水라!
대안백천은 래락공이요 오봉사린은 거보수라!
크고 하얀 물줄기는 다가오는 울타리요, 다섯 개의 봉우리와 네 채의 이웃은 클 보배로울 물이로다.
이때 이 마을을 도선국사가 세 번 살펴보았다 해서 석 삼(三)에 살필 성(省), 삼성동 마을로 전해지게 된다. 큰 대, 편안할 안, 대(大) 안(安)이라는 것도 지금은 태안사이지만 스승인 혜철스님이 기거하던 원래 대안사 대안에서 따온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도선국사는 마을을 간산하고 도보로 산길을 넘어 내륙 물물교역의 중심지이자 언론의 중심지인 부론으로 향했을 것이다.
전남 곡성 죽곡 봉두산을 동리산 명봉산 아래 사찰도 봉황이 좋아하는 동화사 오동나무 동桐 비보의 사찰명일까 싶다.
858년 김천 청암사 창건
859년 수도산 수도암 창건
863년 37세에 도선국사는 백계산 옥룡사에 기거를 한다. 어머니 가슴 같은 산세 알을 품고 있는 새의 모습. 종이학을 날려 보내니 학은 연못에 내려앉는다.
소금과 숯으로 연못을 마르게 하여 용을 몰아내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던 연못자리 옥룡사 전설은 연못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 원주 구룡사 아홉 마리의 용 전설과 매우 흡사하다.
옥룡사에 기거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찰들을 창건하게 되는데 도선국사의 행적을 나열해보기로 한다.
865년 철원 영원의 안식처 도피안사 창건. 광양 운암사 창건
872년 진주 청곡사 창건
875년 성수산 상이암 창건, 순천 선암사 창건
지금부터 2년 뒤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왕건의 탄생 예언
876년 도림사 중창
878년 진주 두방사 창건
886년 대전 고산사 창건
898년 72세 나이로 입적한다. --궁예가 도읍을 송악으로 옮긴다.
요공선자 왕사 선각국사로 추봉
이외 많은 사찰들을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비보와 함께 전하고 있다.
도선국사와 궁예 갈등, 진공대사와 왕건 친목
풍수와 미륵 사상 갈등, 유학파 진공대사 등장으로 왕건은 진공대사를 왕사로 모신다.
5월 5일생으로 유모에게 자란 궁예는 말띠 확률이 높다. 화랑정신의 미륵사상을 꿈꿨을 것이고 도선국사는 이론보다 실천자연주의를 강조하였다.
귀족가문의 출신 진공대사 30년의 유학 후 등장으로 왕건은 진공대사와 손을 잡고 지방 귀족과의 화친정책을 펼친다.
궁예와 도선국사의 갈등, 궁예는 도선국사를 보고 풍쟁이라 하였다. 도선국사가 15세에 출가하여 입산수도 인생이라면 궁예는 유모에게서 자라 화랑의 미륵신앙을 숭배한 인생이라 할 수 있겠다.
진공대사는 귀족가문의 30십년 유학파로 왕건이와 손을 잡게 된다. 왕건의 왕사인 진공대사는 원주 흥법사지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입적을 하는데......
“만법은 모두 공한 것이니 너희는 일심을 근본으로 삼아 부지런지 정진하여라!”
도선국사와 진공대사, 궁예는 신라인이라는 공통분모이며 대국의 꿈꾸었던 자리 원주 신의 숲 신림 석남사 그리고 안창리에 진공대사의 흥법사지, 기이한 기린 같은 짐승이 봉황이 울었다는 명봉산에서 내려와 문막 건등산에 올랐다는 것과 왕건의 이야기를 볼 때 원주가 신비로운 산세의 지역임에는 틀림없다.
산봉우리에서 봉황이 울고 산 끝자락에서 봉황이 춤을 추고 산허리 언덕에서 봉황이 쉬고 명봉 무봉 봉미 봉현 나의 고향은 봉황동네이자 도선국사가 다녀간 풍수의 고장으로 전해오고 있다.
도궁진왕
삼새
인생은 바람과 물 풍수비보이요
나는 오로지 화랑에 미륵사상이라네
만법은 공한 것이니 일심이거늘
국란극복에는 화친교류가 최고이지요
도선국사 827년 --898년
궁예 5월 5일 탄생 ------918년
진공대사 855년--937년
왕건 877년--943년
역사는 살아서 숨 신다. 인골은 간 곳 없지만 산세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