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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온천장 교차로에서 명륜로로 직진하면 공수 물소 공원[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2동]에 다다른다. 공수 물소 공원에서 오륜대길로 가면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일대 기찰 마을이 나온다. 부곡새마을금고[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60-16번지] 자리에 있던 기찰 양조장 앞의 거대한 정자나무인 무학송(舞鶴松)[수령 800년]이 기찰 마을의 수호목이었다. 또한 금정농협 기찰지점 자리에 십휴정 기찰(十休亭譏察)이 있었다. 이곳은 일종의 검문소로 기찰포교(譏察捕校)를 주재시켜 왕래하는 통행자의 증명서를 조사하여 외국 첩자나 수상한 사람을 검문하는 한편 상인들의 물품을 검사하였다. 이곳에서 동래여자고등학교 앞 체육공원로를 따라 가면 소산역에 이르게 된다. 태광산업 일대 들판을 역들이라고 하는데, 이 역들은 소산역의 자체 경비 조달을 위해 지급된 역전(驛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도로로 가다가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브니엘고등학교를 지나면 소산 고개를 만나게 된다. 소산 고개는 임진왜란 때 소산역을 지키기 위해 제일선에 진을 치고 방어한 소산 전투의 현장이다. 이 방어선이 무너지자 김정서(金廷瑞)[상현 마을 출신] 의병장은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을 토벌하였다. 소산 고개를 넘어 좌회전하여 경부 고속 국도로 굴다리를 지나면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 하정 마을이다. 하정길로 가다가 우회전하면 소산역이 있던 경로당이 나온다. 여기서 200m쯤 떨어진 하정길 개천 건너편에 마방(馬房) 터가 있고 여기서 마당제(馬堂祭)를 지냈다. 황산 찰방 조석목(趙錫穆)[재임 1780~1781]의 『정사 문집(精舍文集)』에 황산역의 폐정 개혁을 논한 내용 중 “휴산역과 소산역은 변방 관문에 위치하고 거주하는 호수가 몇 집만 남아 있으므로 매우 영세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역에서 수납하는 세금을 다른 역보다 삭감해 주었다고 한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 하정 마을 어귀 하정2길[비석길]은 현재 남아 있는 황산도로 도로 폭은 5m이다. 이 길에 이만식 영세불망비(李萬植永世不忘碑)와 황산 이방 최연수 애휼역졸비(黃山吏房崔延壽愛恤驛卒碑)가 있다. 첫 번째 비석에는 1878년(고종 15) 암행어사 이만식(李萬植)이 영세한 소산역에 세금을 면세해 준 은혜를 잊지 못해 송덕시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두 번째 비석은 휴산역·소산역 이름이 새겨져 있고 이방 최연수(崔延壽)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1679년(숙종 5)에 세웠다. 하정2길에서 다시 체육공원로로 가서 부산 영락 공원·금정도서관길을 만나게 된다. 갈록산 기슭 왼쪽 길섶에 선정 마애비인 조재민 선정 만고불망 마애비(趙載敏善政萬古不忘磨崖碑)와 그 위의 솟은 바위에 있는 동래 부사 정이검 청덕선정만고불망비가 황산도의 이정표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 대방산길을 따라가다 왼쪽으로 직진하는 노포동 고분길이 황산도 옛길이다. 고분길로 따라가면 금정로와 만나는 팔송 경찰 초소가 있다. 여기서 왼편 노포로가 지방도 1077호선인데, 일제 강점기 때 황산도를 덮어 신작로를 만든 도로이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작장 마을·대룡 마을을 거쳐 녹동 마을에 이르는데 이 마을을 지나면 부산과 양산 경계 지점인 지경 고개[사배야현]이다. 지경 고개 마루에도 경거 가선대부 양공유하 이혜불망비가 남아 황산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