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글로벌 제조 기업 대부분은 지속가능성을 경영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와 같은 가시적인 부분은 물론 재료나 제조 방식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친환경차 확대와 더불어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친환경 소재는 원료에서부터 제작 공정까지 적어도 한 부분에 환경친화적 요소를 반영한 것이다. 원료의 일부를 바꿨거나, 추출 또는 생산 과정을 기존보다 환경에 이로운 방법으로 변경한 것이다. 사실 친환경 소재로의 전환은 쉽지 않다. 기존 재료와 동등한 또는 더 나은 상품성과 경제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같이 내구성과 안전성이 요구되는 제품은 적용이 더욱 까다롭다.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과 수소전기차 넥쏘, 그리고 친환경 소재가 처음 쓰인 기아자동차 2세대 쏘울 EV를 중심으로 현대차그룹이 적용하고 있는 친환경 소재에 대해서 알아봤다.
2014년부터 적용된 현대차그룹의 친환경 소재
현대차그룹은 2014년 기아자동차의 쏘울 EV를 시작으로 친환경 내장재를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수소전기차와 같은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친환경 소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파워트레인뿐 아니라 소재에서도 친환경을 추구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친환경 소재 개발에 착수했으며, 2014년 기아차 2세대 쏘울 EV를 통해 처음으로 친환경 내장재를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준중형 이상 차종의 대시보드는 폭신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TPO(Thermoplastic Olefin) 플라스틱 시트로 마감된다. TPO는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이란 원료를 기반으로 여러 화학물질을 배합해서 제작되며,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PP와 PE는 원유 가공 시 나프타로부터 나오는 석유계 화학물로, 추출 및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쏘울 EV의 대시보드는 폭신하고 따뜻한 질감의 바이오 소재로 마감됐다
반면, 쏘울 EV의 대시보드에 쓰인 TPO는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두 핵심 원료 중 하나인 PE를 만들 때 석유계가 아닌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천연 원료를 사용했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지속적으로 재생 가능한 식물 자원(Biomass)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발생이 적다. 천연 원료의 경우 식물이 자라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소비하기 때문에 소재화 단계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일부 상쇄하는 것으로 본다. 이처럼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또는 반대로)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개념을 탄소 중립(carbon neutral) 또는 탄소 제로(carbon zero)라고 한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천연물로부터 원료를 추출해 형성한 폴리머(polymer)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된 제품이다. 현대차그룹은 원가 경쟁력, 물성 등을 고려해 바이오 플라스틱의 천연 폴리머 함량 비율을 10~25% 수준에 맞추고 있다. 참고로 자동차는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는 제품 특성상 빛 또는 미생물 등으로 100% 분해되는 소재를 적용할 수 없다.
쏘울 EV의 도어트림은 사탕수수와 목재 추출물을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마감됐다
쏘울 EV의 실내에는 대시보드 외에도 여러 친환경 마감재가 사용됐다. 도어트림 상부도 바이오 TPO로 마감되며, 앞좌석과 뒷좌석 콘솔의 플라스틱 일부에는 목재에서 추출한 원료가 쓰였다. 앞뒤 필러 마감재 및 도어 스커프 등 부위에 따라 천연 추출물 함량이 최대 25%에 달하는 소재도 있다. 친환경 내장재 또는 원료 사용 비중이 높을 수록 이산화탄소 및 휘발성 유기화합물 배출 저감에 유리하다.
사탕수수 추출물을 함유한 바이오 플라스틱은 석유계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친환경 소재다
실내 천장 마감재(헤드라이닝)와 시트 커버, 그리고 플로어 매트와 플로어 카펫도 사탕수수의 바이오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섬유로 제작했다. PET는 흔히 ‘페트병’이라고 부르는 음료수병의 재료와 같은 것으로, 다른 물질과 중합하거나 화학반응으로 물성을 바꿔 섬유로도 제작된다. 참고로 쏘울 EV는 바이오 소재 적용량 23.9kg, 바이오 탄소 함유량 10%(직물 시트 기준)로, 이를 통해 완성차 중 세계 최초로 친환경 소재 사용 여부를 확인하고 분석하는 미국의 UL(Underwriters Laboratories)로부터 환경 보증 마크를 받았다.
친환경차 확대와 함께 발전한 친환경 소재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에도 친환경 내장재가 들어갔다
2016년 출시된 현대차 아이오닉은 친환경 전용 모델 답게 친환경 소재 함유 비율도 높다. 특징은 탑승자가 친환경 내장재가 적용됐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이오닉 일렉트릭 도어트림의 경우, 일부 원료로 활용한 목재의 입자 크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석유계 소재를 대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쏘울 EV와 달리, 친환경 소재의 장점을 드러낸 것이다.
도어트림을 비롯한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실내 마감 플라스틱은 목재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섬유질)를 최대 25%까지 사용했다. 윈도 버튼 등도 역시 전체의 20%를 야자열매 씨앗 추출물을 활용해 만든 친환경 페인트로 마감했다. 시트 소재도 이전과 다른 천연재료로 제작했다. 유칼립투스의 셀룰로오스로 만든 텐셀이다. 텐셀은 여름용 이불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도어트림 어퍼 스킨은 부드러운 감촉의 친환경 소재인 바이오 TPO로 마감된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헤드레스트 폼패드(foam pad)도 바이오 폴리우레탄으로 제작된다. 폴리우레탄 폼패드는 폴리올(polyol)과 이소시아네이트(isocyanate)를 주 원료로 사용하는데, 석유계 화학물인 기존 폴리올을 피마자유에서 추출한 폴리올(최대 10%)로 대체한 것이다. 이렇게 제작한 바이오 폴리올은 1kg 생산 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2.0kg으로 석유계 폴리올(3.5kg) 대비 1.5kg 적다. 또한 제조에 사용되는 에너지 사용량도 바이오 폴리올이 약 28% 낮다. 피마자유의 단백질(리신) 포함으로 얻는 항균 효과는 덤이다.
수소전기차인 넥쏘는 궁극의 친환경차에 걸맞게 실내 대부분이 친환경 소재로 이뤄졌다
수소전기차인 현대차 넥쏘는 대시보드, 센터페시아, 하단 패널, 콘솔 커버, 스티어링휠 베젤 등 실내 마감재 대부분에 바이오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바닥과 만나는 카울 사이드 부분의 플라스틱까지 친환경 소재다. 이전보다 더 다양한 친환경 원료를 사용했고, 친환경 원료의 함량도 더 높다. 파워트레인을 넘어 마감재와 같은 부분까지 모두 환경 친화적이어야 진정한 친환경차라는 철학 때문이다.
넥쏘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높은 감성 품질이다. 넥쏘에 쓰인 친환경 소재들은 기존 소재 대비 사용감이 뛰어나다. 이전보다 많은 곳에 적용하기 위해 품질을 높인 것이다. 이처럼 친환경 소재를 확대 적용할 수 있었던 건 친환경 소재의 가격 경쟁력 향상 덕분이다. 기술 발달 등으로 성능은 더 뛰어나지만 가격은 더 저렴한 친환경 소재를 개발할 수 있었다.
넥쏘는 환경친화적인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과 소재로 완성한 진짜 친환경차다
물론 내구성, 내열성 등 자동차의 마감재로써 지켜야 할 기준은 모두 통과했다. 참고로 넥쏘는 선바이저 커버부터 카페트, 시트, 헤드라이닝 등 실내에 들어가는 원단 대부분을 바이오 섬유로 제작했다. 또한 앞서 소개한 두 친환경 차처럼 실내 마감에 바이오 페인트를 사용했고, 일부 외장 부품을 폐자동차 실내에 들어갔던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제작했다.
물론 친환경 소재는 친환경 모델이 아닌 일반 모델에도 들어간다. 피마자유를 활용한 쏘나타(7세대)와 그랜저(5세대)의 바이오 폼패드가 대표적이다. 또한 1990년대 중반부터 대부분 차종의 리어 패키지 트레이(트렁크 선반) 커버는 양마(kenaf)라는 식물을 사용해 제작된다. 양마를 이용한 복합소재는 석유계 플라스틱 보다 여러모로 경쟁력이 뛰어나며, 친환경 소재 함량을 최대 60%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참고로 양마는 이산화탄소 및 이산화질소 흡수력이 뛰어나 친환경 작물로 각광받고 있다.
넥쏘 대시보드의 가니시는 야자열매 씨앗 추출물이 들어간 바이오 도료로 마무리됐다
앞으로 자동차 산업에서 친환경 소재 적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환경친화적인 소비에 대한 의식과 책임감, 즉 ‘착한 소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의 재료개발센터를 통해 비식량자원의 바이오 소재와 더불어 폐자원 활용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특히, 타 산업에서 배출되는 페트병, 폐어망 등의 폐자원 업사이클링(up-cycling)으로 쓰레기를 줄이는데 기여할 방침이다.
원시시대를 석기, 청동기, 철기로 나누듯, 현재는 플라스틱의 시대 또는 합성고분자의 시대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석유계 화학물은 친환경 소재 대비 비용이 저렴해 유통, 패션,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석유계 화학물은 우리의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친환경 파워트레인과 함께 친환경 소재 개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빨대와 같은 일회용품부터 자동차와 같은 내구 소비재까지, 이제 친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