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적지 현장답사(안보견학)를 다녀오고 나서
화창한 가을날 11월 24일과 26일 양일간에 거쳐 전몰군경유족회 제주지부에서 회원50여명이 ‘안보견학’ 차원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신요(자살보트)’부대 동굴 진지가 있었던 성산일출봉, 송악산 진지동굴 및 가미가제특공대 배행기 격낙고 등 답사를 다녀왔다.
첫 번째 답사현장 : 성산일출봉 일본군 동굴 진지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성산일출봉에는 그 빼어난 경관을 보러온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가끔 고향이라 친구들과 바람을 쐬러 일출봉을 찾곤 했지만 이번엔 좀 다른 이유로 일출봉을 찾았다. 답사를 한 곳은 전에 내가 몇 차례 일출봉을 찾으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는 코스에서 비켜나 해안가에 바짝 닿아있는 일출봉 절벽 면에 구멍이라 하기엔 조금 큰 몇 개의 굴이 뚫려 있었다. 그 곳에서 자연유산 팀장님과 해설사, 그리고 마을 어르신에게서 75년 전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답사를 하게 된다는 약간의 설렘과 기대로 출발하게 되었다. 사실 날씨도 좋았기 때문에 야외로 놀러 가는듯한 기분에 더욱 즐거웠다. 처음으로 가게 된 곳은 성산일출봉 일본군 동굴 진지였다.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이곳에 어두운 과거의 모습이 쓸쓸이 있는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성산일출봉, 송악산, 삼매봉, 사라봉, 서우봉 등 남아 있는 일본군의 동굴이 지금의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중학교 재학당시 바로 이곳에서 해양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서는 여러분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형님 같은 그들은 자살 보트로 매일 죽는 연습을 하고, 죽을 사람들이기에 인간적이지 않은, 정 없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간 기계들이였다고 설명했던 기억이 어려프시 난다.
기계적인 인간의 모습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지금 눈에 보이게 남아있는 것은 그저 동굴뿐인데 그 뒤켠에 슬픈 전설을 품고 있는 것처럼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둘째 답사일 : 송악산 진지동굴및 고사포진지,
다음다음날 (26일)이번에는 마지막 가을비가 아침부터 가볍게 내린다.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강행한다.
아닐까 목적지 가까우니 내리던 비가 멈추고 햇살이 곱게 돋아난다.
송악산진지 동굴은 낙석위험으로 통제되어 생략하고 고사포진지가 있는 섯앗 오름으로 오른다. 제주동중학생도 견학차 같이 동행 했다. 해설사 선생님 상세한 설명 듣고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견학,
많은 격납고가 있었지만 소실되고 지금은 13개가 남아있다는 설명, 그리고 비행장으로 사용했던 활주로는 모두 경작지로 변해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제주 주둔 일본군은 최후의 결전을 위해 육상에서의 진지 구축뿐만 아니라 해상에서의 특공작전도 대비한다. 해상 특공작전을 위해 제주도 해안가의 절경에는 자살 특공병기를 숨겨놓기 위한 기지가 비밀리에 건설됐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제주 동남부에 위치한 성산 일출봉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화산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일출봉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자살 특공기지였다는 역사적 아픔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왔다.
일출봉 동굴진지는 특공기지 관련 시설이 다양하게 남아있다는 점에서 역사 현장으로써 중요성과 상징성이 크다. 제주도내 다른 동굴진지에 비해 구조적으로도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당국의 무관심속에 방치되고 있지만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태평양전쟁 관련 역사 현장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일출봉과 연계한 정비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주민설명회에서도 지역 주민들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으면서도 일출봉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관광지에 불과하다"며 "동굴진지 등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가칭 '세계유산 일출봉 역사·지질관'과 같은 전시관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동굴진지가 위치한 해안선은 화산의 탄생과 형성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층리가 매우 발달해 있어 지질경관 답사를 위한 최적의 코스로 꼽힌다. 이와 연관 지어 해안선을 따라 답사코스를 개발 아픈 역사를 체험하고 지질경관자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당시 군사시설 구축에 강제 동원돼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 역사의 아픔을 온 몸으로 감내하고 있다. 그동안 제주도나 정부에서도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는 못했다. 최근에야 정부 차원에서 태평양전쟁희생자 진상조사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비록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에서 광복은 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정도다.
정부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상태다. 일제당시 거대 군사시설은 역설적으로 왜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나아가고, 동북아 평화의 중심지가 돼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근거이다.
알뜨르 비행장과 섯알 오름의 거대한 지하 갱도진지, 송악산 해안의 자살특공대 어뢰정기지와 함께 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사람발자국화석지대, 뛰어난 지질·화산학적 가치를 보여주는 송악산·산방산을 묶을 경우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중국의 경우 일제가 세균전과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 유적지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사실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에 따라 일제 전적지의 실태파악이나 구축과정은 물론 도민의 강제동원과 이로 인한 피해, 역사교훈의 장으로서 활용방안 모색 등 규명해야 할 많은 과제가 남겨져 있는 상태다. 제주도 등 자치단체와 정부차원의 조사·보존방안을 비롯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일본군이 제주도 전역에 조성해 놓은 군사시설의 실태를 조사하고,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일제 말기 일본군이 제주도에 조성해 놓은 군사 시설은 육군·해군의 비행장, 포대, 참호, 고사포진지, 훈련장 및 감시초소, 대피소, 진지갱도, 특공대기지, 비행기 격납고, 탄약고, 폭탄매립지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한라산 중턱에 ‘머리띠를 두른 형국’이라는 뜻에서 ‘하치마키[鉢卷]’라는 군사도로가 만들어졌으며, 각 진지와 진지, 진지와 포구를 연결하는 군사도로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것은 일본군이 우리 땅에 남겨 놓은 군사 시설의 가장 중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하며 규모도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일본군 군사 시설의 현황은 물론, 제주도 주둔 일본군의 실태, 군사시설의 구축 과정, 일본군과 제주도민과의 연관성,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 제주도에서의 일본군의 ‘본토 결전’ 준비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그동안 기초 조사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현황 조사에 머물렀고 역사적 접근 방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한편 당시 군사시설의 공사에 강제 동원되었던 주민들에 대한 폭넓은 면접 조사가 실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무관심 때문에 긴 세월 동안 방치되어 온 일제 군사시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지도 논의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태평양전쟁 말기 한반도에서의 일본군의 ‘본토결전’의 실상과,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를 분석하고, 일본군 전적지의 현장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당시 강제 동원되었던 제주도민들의 면접 조사를 통해 건설 당시의 상황과 이에 대한 주민들의 전쟁 경험과 인식을 재구성할 것이다.
안약, 태평양전쟁이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계속 결7호 작전을 아니 미군이 히로시마 원자 포탄을 투하하지 않았다면 일본군과 연합군(미군) 제주를 사이에 두고 전쟁을 계속했다면 과연 제주가 ......... 이 아름다운 절경이 송두리 채 망가지고 많은 도민이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직 해 진다.
이틀 동안 東에서 西로 이동하여 진지동굴, 고사포진지, 비행장, 격납고 등 견학을 마무리 하며 우리회원들이 안보의식도 많이 업 됐으리라 믿으며 즐거운 오찬장으로 이동 한다.
2020년 11월 30일
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