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창작동화] 아빠의 목발

[권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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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고랑 권창순 창작동화]

                           아빠의 목발

오늘도 육교가 있는 큰 도로엔 많은 자동차들이 달린다. 육교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왼쪽에 재래시장입구가 있다.

장사를 하느라 바쁜 엄마와 아빠만 믿고 있다가는 공차는 재미마저 놓칠세라, 시장 입구 오른쪽 작은 공터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고 있다.

한 아이가 굴러오는 공에 헛발질을 하다 그만 넘어지고 만다.

“야! 잘 좀 차! 또 헛발질이야!”

“바보 같은 자식! 그것도 못 차냐!”

넘어진 아이가 일어나 두 손을 털더니, 이를 악물고 뻥! 공을 찬다.

“야! 큰 길로 공을 차면 어떡해!”

“이 자식아! 빨리 공 주워와!”

“알았어!”

공을 찬 아이가 큰 도로로 굴러가는 공을 잡으려고 뛴다. 저만치 자동차가 달려오는 것도 모른 채 공을 잡으러 차도로 뛰어든다.

“야! 자동차야! 차!”

“야! 조심해!”

“야, 그냥 와!”

아이들이 고함을 지른다.

시장 근처를 오가던 사람들도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바라다본다.

“어휴! 다행이다!”

“고생했어요!”

“장하십니다!”

사람들이 재빠르게 차도로 뛰어 들어가 아이를 안고 나오는 소라아빠에게로 모여들어 박수를 친다.

곧 울 것만 같은 친구의 손을 잡고 아이들이 고개를 숙인다.

“고맙습니다!”

소라아빠는 환하게 웃으며 안고 나온 아이의 머리를 몇 번이나 더 쓰다듬어 준다.

“얘들아, 이곳은 위험하니, 공원놀이터에 가서 놀도록 해라!”

“예!”

소라아빠는 아이들을 잘 타이르고, 머리를 긁적이며 육교 밑으로 오더니 그것을 주워든다.

“어, 엄마! 아, 아빠, 어떻게 된 거어야!”

아빠가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던 소라가 더듬거리며 묻는다.

“소라야, 그게, 저·······.”

“아빠~”

소라가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넘어질 듯 휘청거린다.

“소라야!”

아빠가 얼른 소라와 목발을 안아 세운다. 그러나 소라는 아빠의 손을 차갑게 뿌리친다. 그리고 따지듯 묻는다.

“아빠,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아빠는 한 손에 자신의 목발을 든 채 대답을 못하고 하늘만 쳐다본다.

“엄마는 알지?”

“소라야! 그러니까 말이다!”

엄마가 울먹이는 소라의 어깨를 조심스레 다독이며 입을 연다.

지난 해 여름, 온 가족이 무더위를 피해 해수욕장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소라야! 보트타기 재밌었지?”

“응! 내년 여름에 또 가!”

“그러자꾸나!”

아빠가 운전하던 차가 녹색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막 출발하는데, 황색신호가 적색신호로 바뀌는 순간에 신호를 어기고 달려드는 차와 충돌하고 말았다.

엄마와 아빠와 초등학교 5학년인 소라는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뒷좌석에 탔던 엄마는 다행스럽게도 다친 곳이 없었지만, 소라와 아빠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엄마, 나 못 걸으면 어떡해!”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소라는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훌쩍거리기만 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재활치료를 하면 좋아질 수 있다니까. 희망을 갖자.”

“그래, 아빠랑 함께 물리치료도 받고, 재활운동도 하자! 아빠가 언제나 곁에 있을 게.”

“난 몰라!”

역시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아빠가 아무리 위로를 해도 소라의 눈엔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과 엄마의 정성은 서서히 상처는 아물게 했다.

소라와 아빠는 퇴원을 했고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소라야! 오늘도 엄마랑, 병원가야지!”

“싫어! 어차피 걸을 수 없는데, 그런 걸 하면 뭐해!”

“아니야! 열심히 재활운동하면 걸을 수 있어!”

“아니야! 다 미워! 왜 나야! 왜 하필 내 다리냐고!”

소라가 또 목발을 거실로 내던지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소라야! 아빠도 생각해야지! 가족을 위해 목발을 짚고도 회사를 다니시잖아!”

“몰라!”

“소라야! 제발!”

엄마는 방문을 두드리며 몇 시간씩 소라와 실랑이를 하였다.

아빠는 목발을 짚고 열심히 회사 일을 하였다. 출근과 퇴근할 때는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고 반드시 계단을 이용했다.

목발을 짚고 4층 계단을 오르고 내려오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퇴근을 하면 회사 근처 재활센터에 가서 열심히 물리치료를 받았다.

“이보게 김 과장! 병가를 내고 더 쉬면서 치료를 하지 그래!”

“아닙니다. 사장님!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아빠는 전동차를 타러 내려갈 때도, 마을버스를 탈 때도 계단이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소라야! 정말 미안해! 아빠가 방어운전을 잘 했더라면! 다 아빠 탓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빠는 더 열심히 목발을 짚고 걸었다. 그렇지만 아빠는 소라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열심히 재활하는 모습을 소라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그리고 소라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저 목발을 짚고 걸으며 딸아이의 아픈 마음을 마음 깊이 간직할 뿐이었다.

“엄마! 아빠가 미워! 이게 다 아빠 탓이야!”

“소라야! 그게 왜 아빠 탓이야? 아빠가 얼마나 미안해하시는데.”

“아니야, 아빠는 자기 밖에 몰라! 나야 어떻게 되든지! 아빠는 내게 관심이 없어! 아빠 미워!”

시간이 흐를수록 소라의 마음에는 아빠에 대한 미움이 자랄 뿐이었습니다.

“소라 어머님! 어머님부터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다른 방도가 없단 말씀입니까?”

“받아들이고 목발을 짚든, 전동휠체어를 타든,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가는 게 소라를 위해서라도 좋을 것입니다. 당장은 소라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어머님부터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담담하게 아빠에게 전했다.

아빠는 고개만 끄덕일 뿐, 얼굴빛은 변하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만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여보, 뭐라고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봐요!”

“뭘, 말이오?”

“아님, 소라 좀 달래주든지!”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기다립시다!”

“여보! 이제 나도 당신한테 화가 나요! 그동안 목발을 짚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는 당신이 존경스러웠지만, 소라한테 너무 무관심한 당신이 미워지기 시작하네요!”

“여보!”

“소라하고 무얼 해볼 생각은 안하고, 나한테 다 떠넘기고, 소라의 말대로 자기 밖에 모르는 당신! 너무해요! 미워요! 소라가 나만의 딸 인가요!”

“여보, 미안하오!”

“몰라요!”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목발을 짚고 집을 나갔다.

“엄마! 내 말이 맞지! 아빤 자기밖에 몰라! 난 안중에도 없다고!”

“소라야!”

엄마는 소라를 안고 한참이나 울었다.

얼마 후, 엄마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배달되었다.

‘여보! 미안하오. 마음 내키지 않더라도 꼭 할 말이 있으니 공원으로 나와요.’

엄마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공원으로 나갔다.

“할 말 있으면 집에서 하지. 왜 불러내고 그래요!”

엄마의 마음엔 아빠에 대한 미움이 가득했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우리 오랜만에 손잡고 산책 좀 해요!”

아빠는 등을 돌린 엄마의 손을 잡아끌고 일어나 몇 발자국을 걸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엄마는 깜짝 놀라 휘청, 주저앉을 뻔했다.

아빠가 얼른 엄마의 허리를 안았다.

“당신목발은!”

“저 목발 말이오? 처음부터 필요 없던 것이오.”

“네?”

아빠가 의자에 가지런하게 세워둔 목발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걸으면서 이야기 합시다!”

아빠는 엄마의 손을 굳게 잡고 걸었다.

공원 쪽에서 재래시장 입구 작은 공터로 비둘기들이 날아와 앉는다.

“아빠, 그런 줄도 모르고, 미워만 해서 정말 미안해!”

“아니야! 오히려 아빠가 미안하구나. 자주 따뜻한 위로도 못해주고!”

“소라야! 엄마도 얼마 전에 알았단다.”

“엄마!”

의자에 앉은 소라가 엄마 품에 안겨 훌쩍거린다.

“네가 수술하던 날, 아빠는 네가 평생 목발 없이 걸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단다. 그래서 아빠도 타박상뿐인 발을 수술한 것처럼 붕대를 감고 네 곁에 입원했단다. 평생 목발을 짚고 살아야할 사랑하는 딸의 아픔을 함께하고 싶어서!”

“엄마!”

“그리고 아빠는 네가 용기를 내어 스스로를 인정하고 세상 속으로 나갈 수 있도록 어디서든 목발을 짚고 너를 기다리신 거란다.”

“엄마!”

소라는 한참을 엄마 품에 안겨 울었다.

시장바구니엔 가을 햇살이 소보록하니 쌓였다.

“우리 딸, 오늘 체육시간에 달리기도 했다고?”

“목발친구와 손잡고 뛰었어요!”

“목발친구?”

“저의 평생친구예요.”

“소라야! 엄마와 아빤 말이다. 항상 바닷가에 사는 것 같구나.”

“바닷가?”

“네 웃음도 그렇고, 네 말도 그렇고, 네 몸짓도 모두 소라의 노래 같거든!”

“아빠! 그 바닷가에 다시가고 싶다!”

“그래, 내년 여름휴가 때 엄마랑 셋이 그 바다에 다시가자구나! 이젠 기차를 타고!”

“이젠 기차를 타고!”

“기차?”

소라가 목발을 짚고 가더니, 자기방 벽에 걸어둔 아빠의 목발을 가져왔다. 그리고 거실바닥에 아빠의 목발을 가지런히 놓아 복선레일을 만들었다.

“엄마와 아빠! 내년 여름에 이 기차를 타고 가요!”

“그래, 소라노래 가득한 목발기차 한번 타보자구나!”

“출발!”

소라는 금빛모래밭에서 목발친구와 엄마와 아빠와 함께 오래오래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