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돌 탑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시리즈 25차 입니다.
더 이상과 이 이상
우리 주위에서 “더 이상 ~할 수 없다.”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가벼움은 없다.”라는 광고 문구를 본 일도 있습니다. 이 표현은 얼핏 보았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사 ‘더’가 명사 ‘이상’을 수식하는 이상한 문장입니다. 본래 부사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나 형용사를 수식하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 이상 더 가벼울 수 없다.”라고 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는 관형사이므로 명사 ‘이상’을 수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빨리 해 주세요.”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능한’은 관형어이므로 명사를 수식하는 표현인데, 부사 ‘빨리’를 수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능한 한 빨리 해 주세요.”라고 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때 ‘한’은 명사이므로 가능한의 수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짜깁기와 짜집기
여러분, 옷에 구멍이 뚫렸을 때 실로 구멍 난 곳을 깁는 것을 ‘짜깁기’라고 할까요? ‘짜집기’라고 할까요? 흔히 ‘짜집기’로 알고 있지만 맞는 표현은 ‘짜깁기’입니다. 즉, ‘짜깁기’는 본래 구멍이 뚫린 부분을 실로 짜서 깁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짜깁기’의 본래 뜻은 글이나 영화 따위를 편집하여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들 때도 ‘짜깁기’라고 합니다. 이 경우는 ‘짜깁기’의 본래 뜻에서 의미가 확대된 것이지요. 반면에 ‘짜집기’는 ‘짜깁기’의 잘못된 표현입니다. 즉 ‘깁다’를 ‘집다’라고 잘못 쓰는 데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껍데기와 껍질
여러분은 호두의 딱딱한 표면을 껍데기라고 하나요, 껍질이라고 하나요? 두 가지 표현을 모두 쓰는 사람도 있지만 ‘껍질’은 ‘껍데기’와 그 의미가 다릅니다. ‘껍질’은 딱딱하지 않은 겉을 싸고 있는 질긴 물질의 켜를 가리키는 말이고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호두는 껍질이 아니라 껍데기라고 해야 하고, 사과는 껍데기가 아니라 껍질이라고 해야 합니다.
소데나시와 민소매
여름철에 젊은 여성들이 즐겨 입는 소매 없는 옷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흔히 ‘나시’라고 하지요. 이 말은 일본에서 온 말로 ‘소데나시(そでなし)’의 준말입니다. 하지만 ‘나시’나 ‘소데나시’는 권장할 만한 표현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소데나시’를 ‘민소매’로 순화 하여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때 ‘민-’은 ‘아무것도 붙어 딸린 것이 없음’을 뜻하는 접두사로 ‘소매가 없는 윗옷’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소데나시’에서 ‘소데’를 떼어 버리면 ‘나시’가 되는데, ‘나시’는 ‘없음’을 뜻하는 말이므로 의미가 바르지 못할뿐더러 일본어에서 온 말이므로 가능하면 순화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올 여름에는 ‘소데나시’ 대신에 민소매를 사용하면 어떨까요?
어처구니없다와 어이없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 ‘틀리기 쉬운 맞춤법’ 1위에 오른 단어를 알고 계신가요? ‘어이없다’라는 단어입니다. 일이 너무 뜻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힌 상황에 주로 사용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단어는 ‘어처구니없다’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어처구니’는 “상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궁궐 지붕의 추녀마루 끝자락에 있는 여러 가지 짐승 조각이나 맷돌의 손잡이로 보는 설이 있습니다. 궁궐 지붕에 어처구니를 설치하지 않았거나 맷돌의 손잡이가 빠진 경우는 모두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실수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이없다’를 흔히 ‘어의없다’라는 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의’는 ‘임금이나 왕족을 돌보는 의원’이나 ‘임금이 입던 옷’을 뜻하는 한자말이고, ‘어이’는 ‘어처구니’을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어이없다’를 ‘어의없다’로 적을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와 가지가지
“사물의 수효가 많다.”를 이르는 말을 ‘여러 가지’라고 할까요, ‘여러가지’라고 할까요? ‘여러’는 “수효가 한둘이 아니고 많음”을 뜻하는 관형사이고, ‘가지’는 “사물을 그 성질이나 특징에 따라 종류별로 낱낱이 헤아리는 말”을 뜻하는 의존명사이므로 ‘여러 가지’라고 적는 것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반면에 ‘가지가지’는 명사로 “이런저런 여러 가지”를 뜻하는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합니다. 참고로 ‘각가지’와 ‘갖가지’는 모두 명사로 ‘각가지’는 ‘각기 다른 여러 가지’의 뜻을, ‘갖가지’는 ‘이런저런 여러 가지’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한 ‘갖가지’는 ‘가지가지’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뒷처리와 뒤처리
‘일이 벌어진 뒤나 끝난 뒤끝을 처리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을 ‘뒷처리’라고 할까요, ‘뒤처리’라고 할까요? 합성어의 경우 뒷말의 첫소리가 ‘ㅊ’과 같은 거센소리인 경우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뒷처리’가 아닌 ‘뒤처리’로 적어야 합니다. 참고로 ‘아래층, 뒤풀이’와 같이 뒷말의 첫소리가 거센소리이거나 ‘위쪽’과 같이 된소리인 경우에도 사이시옷을 적지 않습니다.
햇빛과 햇볕
여러분 ‘햇빛이 따사롭다.’와 ‘햇볕이 눈부시다.’에서 잘못된 표현이 무엇일까요? ‘햇빛’은 ‘해의 빛’을 뜻하므로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햇볕’은 ‘볕’을 뜻하므로 ‘피부를 따스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햇볕이 따사롭다.’, ‘햇빛이 눈부시다.’라고 해야 합니다. 참고로 ‘햇살’의 경우 사전의 뜻풀이만 놓고 보면 ‘햇빛’과 유사한 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눈부신 햇살’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따사로운 햇살’이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두 가지 경우에 모두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떼기시장과 돗떼기시장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돗떼기시장 같다.”라고 합니다. 신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돗떼기’란 무슨 뜻일까요? 일본어로 “시장에서 우수리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을 ‘도따(どた)’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본어를 대신해 ‘도깨비시장’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돗떼기시장’은 ‘도떼기시장’의 잘못된 말로 ‘도’는 “물건을 낱개로 팔지 않고 모두 모아서 판다.”라는 뜻이고, ‘떼기’는 “장사를 하려고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다.”를 뜻하는 ‘떼다’의 명사형입니다. 따라서 ‘도떼기’는 오늘날의 ‘도매’와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돗떼기시장’이라고 하지 말고 ‘도떼기시장’이라고 하세요.
첫댓글 도떼기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