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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이란 분은
증이라는 말은 증직이다. 사후에 생전의 벼슬을 올려주는 것을 말한다.
증 승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벼슬로 올려준 것이다.
강영숙이 죽은 후에 추증된 품계는 종 1품인 승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인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의 벼슬과 품계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행 빙고별제 선무랑이었던 것이다.
행이란 뜻은 품계보다 낮은 벼슬을 받았을 때 쓰는 말이다.
추증된 품계는 종 1품이나 실제로 받은 벼슬은 빙고별제 선무랑 이었던 것
이다.
빙고별제는 얼음을 제공하는 석빙고 같은 부서로 종6품이며 선무랑도 종 6품이었다.
그러나 비문에는 엄연히 증직품계인 승록대부 종 1품이니 그 부인도 외명부 1품인
정경부인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종6품이 종 1품 품계로 증직 될 수 있었을까? 필자는 강영숙의 족보를 분석해
보는 것이다.
(11세-①)강 형(姜 泂) : 대사간 ☞ 연산군에 의해 아들 셋과 죽임을 당함
(12세-①)강영숙(姜永叔) : 별제 ☞ 아버지 강 형(姜 泂)과 함께 죽임을 당함.
(13세-③)강 온(姜 溫) : 사인, 아들 - ①사상(士尙) ②사안[士安, 백부 호(滸)에게 출계]
(14세-①)강사상(姜士尙) : 우의정
강영숙의 아버지는 강형은 정3품, 그의 아들 강온은 사인(사인송을 심은 인물)
그의 손자( 강온의 아들 강사상)가 정 1품인 우의정이었으니 증직이 가능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강영숙이 연산군에게 참화를 당하지 않았다면 높은 벼슬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아깝게도 아버지와 함께 젊어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제야 강영숙이란 분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고 의문이 풀린 것이다.
탐구란 이래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문인석이다.
추원재 바오 뒤 50여 m 거리에 묘소가 있다. 묘소에서 내려다보면 솔 숲 사이로 추원재
가 보인다.
살아있을 당시의 존도리 소나무
고사한 존도리 사인송을 대전에 있는 '천연기념물 센터'에 전시하고 있다
고사한 존도리 소나무의 모습
이 소나무는 사인 벼슬이었던 강온이라는 사람이 심었다고해서 사인송이라 불리기도
한 것이다.
사인송과 이 추원재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몇 년 전 (2015년도) 이안을 지나다가 우연히 필자의 눈에 띈 추모비를 살펴보고 강영숙
이라는 분과 그 분의 아들 강온이 심었다고하는 존도리 일명 사인송에 대해서 말해보고
자 한다.
추원재(追遠齋)는 찬성공(박사공파 12세 諱 永叔)파 종중 재사(齋舍)로서 서기 1704년
창건 된 이래 300여년이 되었으며, 서기 2010년 3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 564
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며 퇴락한 건물을 지난 2011년도에 경상북도비와 상주시비 1억8
천만원을 투자하여 문간체 보수, 담장 개축, 협문 신축 등의 대 중수사업을 완료하였다.
진주강씨 영숙이란 분과 부인 익산 이씨 추모비인데 강영숙이란 분은 어떤 분이었을까?
그러자면 먼저 갑자사화에 대해 이해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연산군(燕山君)의 생모 윤씨 복위문제로 연산군이 일으킨 사화로
훈구파 중심세력이 화를 입은 사건인데 성종비 윤씨(尹氏)는 질투가 심하여 왕비의 체
통에 벗어난 행동을 많이 저질렀다하여 1479년(성종 10)에 윤씨를 폐하였다가 다음 해
사약을 내려 억울하게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폐비 윤씨의 사연을 잘 알고 있던 친정어머니인 신씨가 폐비 윤씨의 소생인 연산군에게
알리고자 하던 중, 이 사실을 임사홍(任士洪)의 밀고가 있었다.
연산군은 윤씨 사사(賜死)전에 관련된 성종의 후궁 엄씨(嚴氏), 정씨(鄭氏) 두 숙의(淑儀)
를 죽이고 후궁의 두아들 안양군(安陽君), 봉산군을 귀양보낸 뒤 사사하였다.
그리고 비명에 죽은 생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연산군은 왕비로 복위하여 성종묘(成
宗廟)에 배사(配祀)코자 하였다.
이 사건은 더욱 확대되어 윤씨 폐위 당시 이를 주장한 사람과 방관한 자를 모조리 색출
하여 다시 죄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 결과 윤씨 폐위와 사사에 찬성하였던 권달수(權達手), 윤필상(尹弼商), 이극균(李克
均) 등은 사형되고, 한치형(韓致亨), 김굉필(金宏弼), 정창손(鄭昌孫) 한명회, 정여창, 남
효온 등 이미 죽은자는 부관참시에 처해지고 그외 홍기달, 이유녕, 심 원, 최 부 등이
참혹한 화를 당하고 그들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연좌되었다.
이 사건은 생모 윤씨 폐위, 사사 사건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조정 신하간 암투가 사건을 조장, 격화시킨것이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연산군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낭비가 극심하여 나라의 재정이 궁핍해지자 이를 매우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한편 공신전(功臣田)과 노비를 몰수하기도
하였다.
임사홍은 궁중, 부중 양파의 대립양상을 교모하게 이용하여 음모를 꾸미고 신씨의 오빠
되는 신수근과 손잡고 훈구세력을 타도하기 위하여 옥사를 꾸몃다고 볼 수 있다.
성종 때 양성한 많은 사림들이 수난을 당하고 유교적 왕도 정치가 침체하고 학계가
위축된 점과 한글 서적을 모아 불사르는 등 문화의 정체와 인륜질서 파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연산군 10년(1504)년 3월부터 진행된 갑자사화 피바람의 막바지인 10월 4일이었다.
연산 임금은
"대사간 강형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르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죽은 생모
를 왕후로 복원하고 신주를 모시는 일에 반대하고 나서는가?"
" 마땅히 중벌을 받아야한다. 단근질로 심문한 뒤에 백관을 늘어세운 앞에서 능지 처참하
고, 그 자식은 모두 참형하라."
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강형은 아들 셋과 함께 졸지에 죽임을 당한다. 이 소
식에 충격을 받은 부인은 한 달 동안 음식을 끊고 울다가 죽었다.
온 집안이 풍비박산되자 강형의 맏아들 강영숙의 부인 익산 이씨가 집안을 추스른다.
시신을 수습하여 상주시 이안면 양범리에 묻고, 다섯 아들을 데리고 이곳 존도리로 내려
온다.
그러나 그녀가 피눈물을 흘린 세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복권되었으며, 드디어 중종 28년 (1533)에는 셋째 아들 강온이 의정
부 사인(舍人)이라는 높은 벼슬에 오른다. 임금의 정사를 돕고 의정부와 의견을 조율하는
정4품의 권력의 실세가 된 것이다. 억울하고 분함의 조금이나마 풀린 셈이다.
강온은 어린 나이에 멀리 이곳까지 쫓겨 오는 비극의 현장을 너무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
었다. 이제 지난 아픈 과거는 모두 떨쳐버리고, 사인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높이
도약할 큰 뜻을 가슴에 품었다. 소나무 한 그루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고
엄마의 한을 모두 담아서 땅 속에 묻어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지금의 이 소나
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사인송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무의 나이는
약 500년이 되는 셈이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2006년 8월 7일자로 고사(枯死) 상태에 이른 천연기념물 제425
호 "문경 존도리의 소나무"를 국가지정문화재에서 해제하였다.
"문경 존도리의 소나무"의 수세약화와 고사(枯死)의 주요 원인은 오래전에 이루어진 것으
로 추정되는 소나무 주변의 복토와 배수불량이며, 그 후 소나무좀 등 병충해에 의한 2차
피해를 받은 것으로 관계전문가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사인송이라 불렀던 것이다.
♣ 진주강씨 주요 세계도 (참고자료)
(시조)강이식(姜以式) : 고구려 명장, 수(隋) 문제(文帝)가 무례한 국서를 보내오자 5만 정병을 이끌고 수나라를 격파하였다.
[강씨의 대표적인 파는 ①박사공3형제파[박사공 강계용(姜啓庸), 소감공 강위용(姜渭庸), 시중공 강원용(姜遠庸)]
②은열공파[중시조 강민첨(姜民瞻)] ③인헌공파[강감찬(姜邯贊), 금천강씨]인데 각 파는 도시조 강이식으로부터 각 중시조
까지의 계보가 확실하지 않아 동보(同譜)를 하지 못하고 있다]
【박사공파 계보】
( 1세)강계용(姜啓庸) : 박사, 진산부원군
( 2세)강인문(姜引文) : 내급사
( 3세)강사첨(姜師瞻) : 감찰어사, 아들 - ①창부(昌富) ②창귀(昌貴) ③창수(昌壽)
( 4세-②)강창귀(姜昌貴) : 판도정랑
( 5세)강군보(姜君寶) : 정당문학, 봉산군, 문경공, 아들 - ①시(蓍) ②서(筮)
■( 6세-①)강 시(姜 蓍) : 문하좌찬성, 진산군, 아들 ①회백(淮伯) ②회중(淮仲) ③회순(淮順) ④회숙(淮叔) ⑤회계(淮季)
▣( 7세-①)강회백(姜淮伯) : 동북면도순문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아들 - ①종덕(宗德) ②우덕(友德) ③진덕(進德)
④석덕(碩德) ⑤순덕(順德)
□( 8세-②)강우덕(姜友德) : 아들 - ①맹경(孟卿) ②숙경(叔卿)
●( 9세-①)강맹경(姜孟卿) : 영의정, 문경공
(10세)강윤범(姜允範) : 경상도관찰사
●( 9세-②)강숙경(姜叔卿) : 집의
(10세-①)강인범(姜仁範) :
(11세)강 혼(姜 渾) : 대제학, 판중추부사, 진천군, 문간공
□( 8세-④)강석덕(姜碩德) : 지돈령부사, 진양부원군, 영의정 심온(沈溫)의 사위로 세종과 동서지간 아들 - ②희맹(希孟) ③희증(希曾)
●( 9세-①)강희안(姜希顔) : 집의원부사, 화가
●( 9세-②)강희맹(姜希孟) : 좌찬성, 진산부원군, 문량공
(10세-②)강구손(姜龜孫) : 우의정, 진원군, 숙헌공
(11세)강태수(姜台壽) : 부사, 생부-학손(學孫)으로 백부 출계
(12세)강 복(姜 復) : 사용
(13세-①)강극성(강극성) : 장단도호부사
▣( 7세-②)강회중(姜淮仲) : 보문각대제학
( 8세-①)강안수(姜安壽) : 예빈시소윤
( 9세-①)강 휘(姜 徽) : 대호군, 아들 - ①자평(子平) ②자정(子正) ③자순[子順, 문종의 부마(경숙옹주)]
(10세-①)강자평(姜子平) : 관찰사, 공조참의
(11세-①)강 형(姜 泂) : 대사간
(12세-①)강영숙(姜永叔) : 별제
○(13세-①)강 호(姜 滸) :
(14세)강사안(姜士安) : 병조정랑, 생부-온(溫)
(15세)강 신(姜 紳) : 좌참찬, 진흥군, 의간공, 생부 - 사상(士尙)
(16세)강홍립(姜弘立) : 5도도원수
○(13세-③)강 온(姜 溫) : 사인, 아들 - ①사상(士尙) ②사안[士安, 백부 호(滸)에게 출계]
(14세-①)강사상(姜士尙) : 우의정
■( 6세-②)강 서(姜 筮) : 의정부찬성사
☞강계용(姜啓庸, ? ~ ?)
강계용은 진주강씨 박사공파의 중시조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국자박사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원종 15년(1274) 10월
원나라가 일본을 정복하려고 할 때 고려군 도독 김방경(金方慶, 안동김씨 중시조)의 서장관으로 아들 인문과 함께 일본 정벌
에 참가하였다. 고려, 원나라 연합군 2만 6천의 병사가 10월 18일 대마도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이키시마에서도 용전하여
벼슬은 하지 않았다. 후에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은열공파 계보】
( 1세)강민첨(姜民瞻) : 부원수, 천수현개국남, 은열공, 삼한벽상공신, 살수대첩에서 소배압 대파
( 2세)강 단(姜 旦) : 태자태사, 아들-①항(恒) ②보(輔)
( 3세-②)강 보(姜 輔) : 대언, 예빈경, 아들-①정협(貞협) ②정길(貞길)
( 4세-①)강정협(姜貞협) : 좌승
( 5세)강여익(姜呂翼) : 판삼사사, 아들-①원감(元鑑) ②원찬(元鑽) ③원전(元鐫)
( 6세-②)강원찬(姜元鑽) : 보문각직학사
( 7세-①)강윤지(姜允祉) : 공조전서
( 8세)강 수(姜 壽) : 임파현령
( 9세-①)강일우(姜壹遇) :
(10세-①)강자위(姜自渭) : 북청판관
(11세-①)강문한(姜文翰) : 동지중추부사
(12세-③)서 린(姜 璘) :
(13세)강운상(姜雲祥) :
(14세-②)강 주(姜 籒) : 아들-①계년(桂年) ②백년(栢年)
(15세-②)강백년(姜栢年) : 예조판서, 좌참찬, 청백리, 문정공
(16세-③)강 현(姜 鋧) : 대제학, 좌참찬, 문안공
(17세-③)강세황(姜世晃) : 한성부판윤, 화가, 헌정공, 제자-김홍도(金弘道), 신위(申緯)
(18세-④)강 빈(강(姜 儐) : 정언
(19세)강이구(姜彛九) : 현감
(20세)강 노(姜 㳣) : 좌의정, 익헌공
【인헌공파 계보】
( 1세)강감찬(姜邯贊) : 문하시중, 천수군개국후, 인헌공, 귀주대첩의 영웅
( 2세)강행경(姜行經) : 사재경
( 3세)강원광(姜元廣) : 추밀원사
( 4세)강공간(姜公幹) : 소부감
( 5세)강신근(姜臣謹) : 태자소사
( 6세)강우창(姜遇昌) : 문하시랑
( 7세)강극충(姜克沖) : 문하시랑
( 8세)강영년(姜永年) : 판선도사
( 9세)강위경(姜渭卿) : 판도판서
(10세)강진보(姜眞保) : 공조전서
(11세)강 양(姜 揚) : 검교한성윤, 아들 ①비호(匪虎) ②비웅(匪熊) ③비룡(匪龍) ④비이(匪이)
(12세-②)강비웅(姜非熊) : 산음현감
(13세)강 희(姜 曦) : 정랑
(14세-②)강숙돌(姜叔突) : 호군, 청백리
(15세)강 뢰(姜 藾) : 소격서참봉
(16세)강유경(姜惟慶) : 삼등현령, 아들-①돈(焞) ②찬(燦)
(17세-①)강 돈(姜 焞) :
(18세-①)강석기(姜碩期) : 우의정, 문정공, 소현세자 장인(민회빈의 아버지), 생부 - 강찬(姜燦), 아들 - ①문성(文星)
②문명(文明) ③문두(文斗) ④문벽(文壁) ⑤문정(文井)
(19세-①)강문성(姜文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