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5:22-27절 내 안에 엘림의 장막을 치자
오아시스 바나바/김경근
동트는 새날 / 가나안 명패 목에 걸고
황량한 사막 나그네 길 / 심신이 지쳐 헤맬 때
신기루 몰래 / 바람결에 기쁜 소식 전한다.
종려가지 손 흔드는 엘림 / 떼 마중 뜨거운 가슴에
바가지 들이키고 / 손 발 씻기우는 물두멍
흐르는 샘 곁에 천막을 둘러/ 단을 높이 쌓는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여 / 복 받을지어다
허기진 길손을 환대했으니 / 누가 너를 오아시스라 하였던가.
- 주님을 사랑하는 시 마을 -
오늘은 광야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늘로부터 내리는 큰 은혜가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저 우연히 이런 일들이 벌어지나 할 때에도 분명히 그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이 홍해를 출애굽 하는 사건, 역시 하나님이 주관하셔서 히브리민족을 노예에서 탈출을 시키는데 그 사건이 출14장에 나오고, 15장에 와서는 출애굽을 한 승리의 노래와 수르 광야에 들어가서 물이 없어 물을 찾다가 마라에 이르러 물을 찾기는 하였으나 써서 먹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때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건이 나오고 그리고 물을 고치는 사건과 엘림으로 들어가서 장막을 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잘 풀려 가다가 막혀버리는 황량한 사막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먹거리를 찾지만 만나지 못할 때 그 다음에 누구나 하는 것이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러다가 물을 만났는데 그물은 사망의 물이요, 죽음의 독이 있는 쓴물이었습니다. 그것을 마라라했습니다.
나오미가 고국을 떠났다가 며느리 룻을 데리고 올 때 사람들은 나오미가 돌아 왔다고 반겼으나 나오미는 나를 더 이상 나오미라 하지 말고 룻기1:20절에서 ‘마라’라 불러달라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인생의 쓴 강을 건너게 됩니다. 그 마라의 강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결국에는 우리 모두 엘림에 들어가서 장막을 치는 복이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1,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홍해’를 건넜습니다. ‘홍해’는 히 ‘미얌 숲’이라 합니다. 즉 갈대바다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결단나다. 진멸하다. 멸하다’의 즉 진멸시키는 물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바다가 어떤이에게는 구원의 바다가 되고 어떤이에게는 멸망의 바다라는 것입니다. 그 갈림길이 무엇 때문일까요?
창1:2절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여기서 땅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 땅에 흑암이 덮여서 혼돈스럽고 공허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중심에 계시지 아니하고 물위를 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어둠에게 잡혀있는 자는 진멸시키는 물속에서 멸망을 당한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소는 어디일까요? 나의 마음 땅에 있는 불합리한 속성들이 다 진멸되어 하나님의 법이 내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그자는 구원을 받는 자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신의 마음 땅을 기경해서 말씀의 씨를 뿌리고 성령의 생수로 물을 뿌리고 열매를 맺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마음 땅을 갈아엎지 아니하면 말씀의 씨가 뿌려져도 흙속에 묻히지 못하고 또르르 굴러서 새들의 눈에 띄면 새들의 밥이 되어 버리고 짐승의 발에 밟히기도 합니다. 결국은 내가 흘리는 말씀의 씨는 새들의 밥이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아지면 아멘.
홍해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슈르 광야로 들어갔다고 하십니다. 사흘 길을 행했는데 물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슈르’ 는 ‘돌아다니다, 순회하다, 여행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로 이곳은 정착할 곳이 아니고 지나가야 할 땅입니다. 여행할 때 그곳이 좋던지 나쁘던지 우리는 그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같은 이치로 우리는 이 땅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기도 하지만 지나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지나가는 슈르 같은 광야 길에 메마르고 배고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창1:2절을 보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나아가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매 순간순간이 형통하고 시온의 대로가 열려 있습니까? 아니면 술 광야같은 아니면 마라의 쓴물이 기다리는 고통의 터널입니까? 인생의 쓴물을 만나면
23절에서 마라의 쓴물을 만납니다. ‘마라’는 ‘괴로움, 쓰라림, 근심’등입니다. 사흘길이나 걸어서 겨우 발견했는데 먹을 수 없는 물이라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뭘 말씀하시고 싶을까요? 우리에게 영적인 교훈은. 우리가 사는 이 인생광야에는 목마름과 쓴 물이 있다고 하십니다. 각양각색의 목마름과 갈증이 있지만 이것을 만족시킬 진정한 생명수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인생들이 힘겹게 찾아낸 물은 죄악에 오염된 쓰디쓴 사망의 물뿐입니다. 생명수가 아닌 쓴 물을 마시고 살자니 인생이 메마르고 고달플 수밖에 없고 그 끝에는 죽음에 도달합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살면서 불평과 원망이 끝없이 우리의 내면에서 올라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는 은혜의 방도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고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여 모세로 하여금 그것을 쓴 물에 던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때 쓴 물이 단 물로 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한 '한 나무'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나무는 사망과 저주를 끊어내는 능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 희망을 주는 복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했습니다." (벧전 2:24 행 5:30).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마라의 쓴 물을 마시고 멸망으로 허덕이던 인생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의 복음을 통하여 생명의 단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깨달아지시면 아멘. 그것은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마실 쓴 잔, 죽음의 잔을 대신 마셔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치료자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나무라고...
2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아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아멘.
드디어 27절에서 물이 많고 편안한 쉼터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메마르고 괴로운 마라를 지나서 드디어 편히 쉴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영원한 안식처는 아닙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충전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가 아닐까요?
한주간 세상에서 고달프고 힘들었던 상한 심령을 주앞으로 나와 치유와 회복을 얻고 다시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은 편안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괴롭지만은 않습니다. 단지 여정일 뿐입니다.
원어를 보면 ‘엘림’은 ‘현관 문’을 의미합니다. 이 현관문은 내가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인지해서 출입을 하는 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보는 눈, 우리의 듣는 귀, 우리의 코로 숨 쉬고 냄새를 맡으면서 깨달은 나의 오감이 바로 ‘엘림’입니다. 그곳에 종려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종려나무는 말씀이신 예수님의 빛으로 어둠을 깨뜨려내고 그리고 그 말씀으로 내면을 꽉 채워서 쉼을 누리는 상태를 종려나무라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장막을 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안에 어둠은 떠나가고 말씀이신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진 것을 장막을 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가 엘림입니다. 엘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우고 익히고 삶에 적용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지혜가 밝아지고 인식과 분별력이 예리해져서 신령한 눈으로 밝히 보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됩니다.
마치려 합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성령의 빛으로 무지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말씀으로 아구까지 채워서, 그렇게 채우면 물이 포도주되는 것처럼, 심령이 변화되어 주님의 말씀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 엘림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
글을 읽으신후 댓글은 사랑의 표현 입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