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어나더 에피소드 S》의 저자 아야츠지 유키토의 호러 소설 『안구기담』. 괴기와 환상을 사랑하는 저자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호러 소설 7편을 담은 소설집이다. 1995년에 발표된 저자의 초창기 작품으로 저자가 드려낸 호러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로테스트, 오컬트, 환상, 탐미, 광기 등의 단어들이 떠오르는 몽환적이고 오묘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손가락을 잘라도 다시 살아나고 다리를 절단하고도 다시 다리가 나오는 괴상한 재생 능력을 가진 유이와 남편의 비밀을 담은 《재생》, 노신사의 소개로 포유류의 뇌 요리를 포함하여 파충류, 기생충 요리 등 일반인들이 보면 기겁할 음식이 나오는 ‘YUI’라는 레스토랑을 찾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특별 요리》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책 속으로
내 눈앞에는 지금 아내 유이의 육체가 있다.
난로 앞 낡은 흔들의자에 그녀는 있다. 결혼 전에 내가 선물한 하얀 드레스를 가냘픈 몸에 걸치고서 앉아 있다. 인형처럼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두 손을 팔걸이에 올려놓은 채로 있다.
이 방 이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 그 앞 카펫에 드러누워 난롯불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나른한 한때를 즐겼다.
_ 9쪽, 「재생」 중에서
그것은 기묘한 물고기였다.
몸길이가 20센티는 넘었으므로 그런 작은 연못에서 낚은 것치고 꽤 대물이었다. 미끼도 없는 바늘을 어쩌다 물었는지 바늘은 지느러미나 아가미가 아니라 정확하게 입에 걸려 있었다.
_ 54쪽, 「요부코 연못의 괴어」 중에서
예컨대 아파트 복도에서 잡은 도마뱀붙이를 간장에 조려서 먹었다고 해보자. 중요한 것은 그 맛의 좋고 나쁨이 아니다.
지금 도마뱀붙이를 먹고 있다
라는 생생한 실감이 나의 허기진 마음에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충족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_ 94쪽, 「특별 요리」 중에서
6층짜리 맨션의 4층 방. 조금 열린 커튼 틈으로 어둠에 물든 유리창에 내가 비쳐 보인다.
읽어주세요.
한밤중에 혼자서.
편지글을 다시 한 번 본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섰다. 피곤하긴 하지만 졸음이 쏟아져서 못 견딜 지경은 아직 아니다.
읽어볼까?
‘안구기담’이라는 제목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고 나는 원고를 집어 든다.
_ 231쪽, 「안구기담」 중에서
신본격 미스터리의 전설 아야츠지 유키토가 쓴
요염하게 아름다운 7개의 호러 이야기!
아야츠지 유키토는 1987년 발표한 『십각관의 살인』으로 당시 일본 미스터리계의 주류였던 사회파 리얼리즘 스타일의 변격 미스터리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다. 『십각관의 살인』을 통해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계의 대표기수로 자리매김하였으며 고전과 신감각의 절충을 통해 미스터리의 신경지를 열었다. 이에 자극받은 수많은 작가들이 ‘신본격’을 지향하는 작품들을 쏟아내면서, 일본 미스터리계는 바야흐로 신본격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아야츠지 유키토가 본격추리 작품만을 썼던 것은 아니다. 『십각관의 살인』이 나온 다음 해에 발간된 『진홍색 속삭임』(1988)이란 작품은 여학교 기숙사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그린 서스펜스 색채가 짙은 소설이다. 같은 서스펜스 노선의 작품인 『암흑의 속삭임』과 『황혼의 속삭임』을 묶어서 ‘속삭임’ 시리즈라고 불린다. 그 후 2010년대에 발간한 『어나더』 및 『어나더 에피소드 S』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두 가지 작품 경향 - 본격추리와 호러 - 을 잘 버무려 정통적인 본격 미스터리 독자뿐만 아니라 10~20대 젊은 독자들을 대거 자신의 팬으로 만들어버렸다.
『안구기담(眼球綺譚)』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비교적 초창기 작품으로 1995년에 발표되었다. ‘기담’의 기가 기이할 기(奇)자가 아니라 비단 기, 아름다울 기(綺)자를 쓴 데서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듯, 단지 괴이하고 무서운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아름다운 호러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같은 호러 단편집인,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프릭스』(2013, 한스미디...어)가 미스터리와 호러를 적절하게 섞어 논리적인 맛을 준다면 『안구기담』은 작가의 호러 세계를 좀 더 드러내놓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로테스크, 오컬트, 환상, 탐미, 광기 등의 단어들이 떠오르는, 어딘가 몽환적이고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런 이야기집이다. 번역본의 표지에서도 그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엔타 시호의 몽환적인 일본 표지 일러스트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 재생
내가 유이와 처음 만난 때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친구가 주치의로 있는 신경정신과 대기실이었다. 그때 난 사랑에 빠져 유이와 결혼했다. 그러나 유이에게는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이상한 능력이 있었다. 괴상한 재생 능력. 손가락을 잘라도 다시 살아난다. 다리를 절단하고도 다시 다리가 나온다. 그런 유이가 희귀병으로 죽어간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이와 나 사이의 놀라운 비밀은 계속 된다.
■ 요부코 연못의 괴어
유산을 해서 아이가 없는 어느 부부 이야기. 어느 날 남편이 요부코 연못에서 붕어 같지만 전혀 다른, 이상한 모양의 물고기를 낚아 집으로 가져온다. 며칠이 지난 후 수조 속에서 키우던 그 물고기에게 갑자기 다리가 생긴다. 또 며칠이 지나니 눈이 들어가면서 눈꺼풀이 생기고……. 무려 그 물고기는 진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내 유이는 그에 집착하는데…….
■ 특별 요리
독특한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 노신사의 소개로 ‘YUI’라는 레스토랑에 가게 된다. 포유류의 뇌 요리를 포함하여 파충류, 기생충 요리 등 일반인들이 보면 기겁할 음식이 나오는 레스토랑이다. 레벨 C부터 점점 단계를 높여 음식을 맛보는 나는 이 레스토랑 최후의 음식이 무엇일까 궁금해 한다. 마지막 한 문장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 생일 선물
12월 24일 유이의 스무 번째 생일, 이날 대학 문예 동아리의 크리스마스 파티 겸 송년회가 열린다. 유이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참석을 승낙하고 만다. 남자친구가 나온 어젯밤 꿈이 몹시 기분 나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송년회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사람들이 유이에게 선물을 건네는데…… 과연 그 선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 철교
두 커플의 대학생이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리조트 호텔로 놀러 간다. 야간열차를 타고 가던 중 고이즈미가 괴담을 꺼낸다. 괴담을 듣지 않으려는 여자 친구 유이에 따르면 고이즈미가 괴담을 마치고 나면 현실에서 꼭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 인형
서른세 살 봄, 작가인 나는 처음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다. 아내가 해외 취재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돌아가 요양을 한다. 강변을 산책하고 있을 때 인형 하나를 주웠는데, 얼굴이 없는 이상한 인형이다. 기분 나쁜 밋밋한 얼굴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
■ 안구기담
“읽어주세요. 한밤중에 혼자서.” 출판사 편집자인 나에게 대학 후배의 우편이 도착했다. 한밤중에 혼자 읽어달란 편지글과 함께 ‘안구기담’이라 쓰인 책자가 동봉되어 있다. 자정을 넘어선 시간, 요란한 빗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원고를 읽어나간다.
“십수 년 만에 고향에 온 나는 택시 기사로부터 이곳 산간 소도시에서 피해자의 눈을 도려낸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음을 듣는다. 과거를 회상하며 거리를 걷던 중 폐가를 발견한다. 사실, 이 폐가는 어머니의 자살로 방황하던 고등학생 때의 내가 그 상처를 치유한 비밀의 공간이었다. 그 폐가의 지하실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어느 여자와 은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여자는 자신의 눈을 파내고 떠나고 만다…….”
안구에 얽힌 비밀은 무엇인가? 그리고 현실의 나와 소설 속의 나는 과연 어떤 관계인가?
추천사
청춘이 응축되어 있다. 안구에 건배! _오츠이치(미스터리 작가)
옮긴이의 말
아주 깔끔한 엔터테인먼트 호러 소설이다.
말재간 좋은 친구가 들려주는 도시 괴담 같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