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잠언 21장 17절 제목 : 고난을 이기는 힘은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복된 자의 삶과 망하는 자의 삶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사는 것이 복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망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어 복된 삶의 길을 가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알 고 있으면서 자신의 욕심에 의해서 복된 길이 아니라 망하는 길로 가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볼 때 이는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린 성경에서 망하는 사람을 말한다면 저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기 전에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사울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었습니까?
사물엘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있으면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였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 합니까?
비참하게 전쟁을 통하여 자살이 아닌 자살 같은 죽음으로 죽음을 맞이 합니다.
사울은 왕으로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의 방법과 계획으로 하나님의 뜻에 불 순종하였고 그로 인하여 사무엘선지자에게 이런 말도 듣게 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두 번째로는 가룻유다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가룻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 3년 반 동안 함께 하였습니다.
3년반 동안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도 알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심을 아주 가까이에서 경험을 하였습니다.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는 것도 보았고, 죽은 나사로도 살아남을 보았고, 뿐만 아니라 세례요한이 오실 이가 당신이오리까 라고 할 때 이런 말씀도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3절에서 5절입니다.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리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6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더군다나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할 때 누가복음 9장 19절에 보면 이런 대답을 합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그런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또 질문을 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을 받고 베드로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5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가룻 유다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메시야 즉 창세기 3장 15절에서 예표하여 주신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분으로 사람을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 시켜 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선지자들 이사야가 말한 여자의 후손이면 동정년의 몸에서 태어나신 메시야임을 알았지만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팔아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6장 24절에 가룟 유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가룟 유다는 이런 주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자기 생각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2장 3절에 보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판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이는 유다가 주님과 함께 하고는 있었지만 그는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가 결국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생각대로 행하지 않자 결국에는 예수님을 팔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살기 보다는 자기 생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멀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자기 만족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축복이요 은혜가 아니라 부담이고 억압으로 받아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라고 하면 교회가 돈만 밝힌다고 하고, 결국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다른 데로 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십일조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푸른초장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 속에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하지만 내 것은 내 것이라는 것으로 그러니 하나님은 내 것에 달라 수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만족 자기 행복만 추구하는 사람이기에 결국에는 이런 사람은 스스로 힘든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청년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험을 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직장생활을 하면 십일조를 꼭 내라 하니 앞에서는 예하고 나중에 들려오는 말이 목사가 돈만 밝힌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은 가장 먼저 자기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만이 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셔야 내 살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복된 사람은 십일조를 하고 하나님의 복보다 단지 자기 만족 자기 손에 있는 것이 전부인 사람은 절대로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된 사람과 망하는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있어도 헌금에 대해서는 강조를 하지는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헌금을 믿음의 고백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이지 타의에 의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수를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다윗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분명히 지금도 역사하여 주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고난이 복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믿음의 고백을 바르게 하는데 내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복은 삶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여러분들에게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으로의 축복이 임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