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의 정신에 따라 예술이 삶의 최고의 과제이며 진정한 형이상학적 활동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진지한 독자들을 계몽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이러한 길을 앞서 나간 고상한 투사인 당신에게 이 책을 헌정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아폴론은 질서 정연한 형식의 신, 꿈의 신으로 조형적인 미, 질서, 형식의 예술을 통해 미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며 개별적인 것의 원리가 된다. 반면 디오니소스는 카오스(chaos)와 황홀경의 신, 술의 신이다. 도취적이고 형식을 파괴하며 통제되지 않는다. <출처: wikipedia>
니체는 자신의 사상이 바그너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음악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1872)] 서문에 남겼다. 뿐만 아니라 [반시대적 고찰]의 4부에 해당하는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와 이 작품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유고를 통해 바그너 음악의 위대성을 열정적으로 주장했다. 무엇이 니체를 바그너에게로 이끌었을까. 이 무렵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극에서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었던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조화를 보았다. 아폴론은 질서 정연한 형식의 신, 꿈의 신으로 조형적인 미, 질서, 형식의 예술을 통해 미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며 개별적인 것의 원리가 된다. 조각, 회화 등 조형 예술에 관련한다. 반면 디오니소스는 카오스(chaos)와 황홀경의 신, 술의 신이다. 도취적이고 형식을 파괴하며 통제되지 않는다. 비조형적인 음악 예술의 영역과 관계한다. 니체가 생각하는 예술은 이 두 가지의 조화 속에 이루어진다.
니체와 바그너의 만남에서 바그너가 니체의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은 없지만 니체는 그의 사상을 형성해가는 데에 바그너의 영향을 지대하게 많이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니체의 작품에 고스란히 등장하며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로 대표되는 바그너 숭배적 경향에서부터 [바그너의 경우],[니체 대 바그너]에서 보이는 반바그너 경향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바그너는 니체 사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니체와 바그너가 교류하면서 가졌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그리스 문화와 고대 비극이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니체의 관심은 바그너의 음악극(Musikdrama)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바그너는 그의 음악극에 독일과 북유럽의 신화를 소재로 사용했다. 음악과 비극에 대한 니체와 바그너의 공통적인 해석과 관심은 둘을 연결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였다. 니체가 고전학 교수에 오를 정도로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바그너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며 니체는 음악의 대가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을 것이다.
니체와 바그너 <출처: Wikipedia>
니체와 바그너의 이러한 교류를 통해 탄생한 니체의 작품이 [음악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 1872)이다. 이 작품의 예비적 성격을 갖는 작품으로는 [그리스적 음악극](Das griechische Musikdrama, 1870), [소크라테스와 비극](Sokrates und die Tragödie, 1870)의 두 개의 강연문과 [비극적 사유의 탄생](Die Geburt des tragischen Gehanken, 1870)이 있다. 그리스 비극과 음악에 대한 니체와 바그너의 관심사가 일치하지 않았다면 둘의 관계가 성립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충동인 “삶에의 의지”와 음악의 본질
쇼펜하우어. 칸트의 철학을 계승한 쇼펜하우어에게 음악은 가장 물자체에 근접한 본질적인 것이다. 의지는 왜곡되어 현상으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음악은 의지 그 자체가 드러나는 유일한 부분이다. <출처: wikipedia>
1848년 3월 바쿠닌과 함께 했던 혁명의 좌절을 경험하고 도피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던 바그너는 1858년 가을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한다. 바그너가 가졌던 혁명적이고 낙관적인 세계관에 비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때, 인간 세계가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로 가득 차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은 바그너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이 세상에 퍼져있는 인간 사회의 가치는 왜곡되어 있으며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왜곡된 세상에 시선을 두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음악만이 진리를 담고 있다. 세상에 환멸을 느끼던 바그너에게 이보다 좋은 힐링은 없었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음악은 다른 예술과 달리 현상을 모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의지가 현상을 빌리지 않고 직접 의지의 모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는 물자체와 현상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칸트의 철학을 계승한 쇼펜하우어에게 음악은 가장 물자체에 근접한 본질적인 것이다. 의지는 왜곡되어 현상으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음악은 의지 그 자체가 드러나는 유일한 부분이다. 바그너와 니체가 공감한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음악은 둘 모두에게 사상적 밑거름이 된다. 물론 니체는 바그너와 결별하면서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사상이 퇴폐적이고 삶의 의지를 끌어올리지 못한다는 맹렬한 비난을 퍼부으며 독자적인 길을 간다.
바그너가 필요로 하고 추구했던 것은 당시의 시대, 근대를 해체시킬 수 있을 만큼 고대적인 것, 정통 그리스적인 요소를 지녀야 했다. 즉 이상적 상황으로서의 신화성이 필요했던 것인데, 바그너에게 그것은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이었다. 바그너는 아이스킬로스를 음악정신으로부터의 탄생이라고 명명하고 에우리피데스를 데카당스라고 정의내린다. 바그너의 이러한 해석은 음악적인 근원이 절정을 이루는 아이스킬로스에서 비극이 탄생하고, 음악적인 요소가 퇴화하는 에우리피데스에서 종말에 이르렀음을 의미하고 있다. 니체는 바그너와 의견을 같이 하며 에우리피데스의 소크라테스적 경향이 바로 비극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에우리피데스 <출처: Wikipedia>
니체는 아이스킬로스 비극에 등장하는 합창단과 비극적 주인공을 보면서 지금까지는 “우리의 습관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도 (그리스 비극을) 조화시킬 수 없었다 - 우리가 결국 이 이중성 자체를 그리스 비극의 근원과 본질로, 다시 말해 서로 얽혀 있는 두 가지 예술 충동,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표현으로 재발견할 때까지 말이다”([비극의 탄생], 책세상전집 2권, 96쪽)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비극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해석하기 전까지 그리스 비극의 본질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극의 탄생] 12절에서 니체는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서곡을 가장 비난하는데, 이를 합리주의적 방식의 생산성으로 분석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서곡에는 한 사람이 혼자 작품 서두에 등장해 자신이 누구이고 앞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먼저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 이제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되면 비극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줄거리 다 이야기해놓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니 긴장하라는 건 지금 생각해도 넌센스다.
니체는 근대인이 예술을 수용하는 감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내세운다. 근대의 예술은 사람들을 더욱 둔감하게 하고 탐욕스럽게 되도록 할 뿐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근대 예술의 부적절한 감성이 사람들을 끊임없이 잘못된 길로 이끌고 사람들은 의지조차 갖지 못한 부적절한 감성의 노예로 전락한다고 보았다.([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책세상 전집6권, 47쪽)
“사치사회는 자신의 권력을 극도로 냉혹하고 교활하게 이용함으로써 민중이라는 권력 없는 자를 더욱 예속적으로 더욱 저속하고 비민중적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러한 민중을 근대적인 ‘노동자’로 만들어낼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똑같이 사치사회는 민중에게서 가장 위대하고 순수한 것을 앗아갔는데, 즉 민중의 신화, 가요, 춤, 언어의 발명을 앗아갔다. 그러고는 현존재의 탈진과 권태에 대항하는 음탕한 수단, 즉 근대 예술을 만들어냈다.”-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책세상 전집6권, 64쪽
바그너가 신화와 음악 속에서 예술의 발전방향을 찾은 것에 대해 니체가 대단히 고무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그의 철학이 기독교와 물질문명이라는 근대를 비판하는 내용을 갖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노예도덕에 허우적대며 패배적일 수밖에 없는데 신화 속 조상들은 힘에의 의지를 마음껏 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니체가 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영향으로 니체는 전통 형이상학적 철학 풍토에 반기를 들게 된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반시대적 고찰]과 아울러 삶의 부정을 긍정으로 돌리는 계기를 구성한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통하여 전통적인 현상과 물자체의 이원적인 대립을 해소시키며 한층 더 나아가서 근본적인 요소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니체 철학에서 후기에 절정을 이루는 초인개념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특히 소크라테스적 요소를 가장 비가치적인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니체는 현대문명이 품고 있는 이성 중심의 일차원적인 사고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결국 니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극의 본질, 곧 디오니소스적인 내용과 아폴론적인 형식의 조화를 통해서만 삶의 가치가 긍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힘에의 의지’를 강화하는 니체의 미학
니체는 본인이 작곡을 할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년기에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으며 소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동안 70여편의 가곡, 피아노곡 및 기악곡을 창작하기도 했다. 물론 전통적인 작곡기법을 공부한 일이 없었기에 그의 음악들이 형식면에서는 불완전하다고 할지라도, 그 안의 음악정신은 니체의 음악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니체는 자신을 예술가 - 철학자라고 하였지만 단지 자신이 창작한 기악곡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의 정신을 가지고 힘에의 의지를 드러내는 자신의 열정과 창작에의 노력일 것이다.
그 자체가 생기이자 생성인 ‘힘에의 의지’는, 모든 것을 생기있는 것으로, 생성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따라서 모든 것은 힘 증대를 위해 활동하고 운동하며 그런 한에서 살아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삶은 힘의 증대 형식일 뿐이다."(유고, 책세상전집21, 16[12], 347쪽)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니체에게서는 ‘힘에의 의지=생기=생성=삶’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음악이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게 만들고 생각에 날개를 달아준다고 했을 때(『바그너의 경우』, 책세상전집15, 19쪽) 음악은 곧 힘에의 의지가 드러나는 장소일 수 있다.
병든 정신과 육체를 치유하고자 한 니체의 미학
니체가 극찬한 비제의 ‘카르멘’ 중 한 장면 <출처: gettyimages>
니체는 건강의 악화와 회복을 되풀이하며 삶은 영원히 회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음악을 통해 삶의 기쁨과 정신의 해방을 느꼈다. 병든 정신과 육체는 그야말로 그 자체가 비극이다. 이러한 인간의 비극은 그대로 현대사회의 비극으로 등장한다. 도저히 헤쳐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 속에서 삶의 의지를 찾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니체에게는 음악이며 비극이었다. 비극의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할 수 없지만 관객은 비극을 통해 삶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니체가 극찬한 비제의 ‘카르멘’에서 남자 주인공 호세는 사랑하는 여자 카르멘을 제 손으로 죽이는 비극을 맞이하고 절망한다. 관객은 호세의 돌이킬 수 없는 슬픔에 공감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땐 삶의 희망을 찾으려 한다.
철학적 사유의 목적은 언제나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인간의 자유, 해방, 인간성을 실현하는 데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소비와 물질에 대한 맹신으로 이러한 것들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오직 부자되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니체의 음악과 예술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병들어가는 현대사회를 향한 힐링의 메시지를 니체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생각하기에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음악과 문화를 망치로 두들겨 부숴야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현실의 장벽을 넘어설 수 없는 허무주의와 물질문명의 퇴폐주의를 극복할 대안, 그것이 니체가 바라는 예술이며 음악이다.
‘음악으로 철학하기’는 ‘청춘의 고전’을 만들어가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정독도서관 그리고 알렙과 함께 합니다. <청춘의 고전>은 지난 두 해 영화와 미술을 고전과 함께 읽어가며 젊음의 공간 홍대 앞에 철학의 열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이번 시즌 3(음악으로 철학하기)은 정독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음악의 선율과 철학 고전의 만남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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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강지은 | 건국대학교 외래교수
-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칸트 미학에서 반성적 판단력과 의사소통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방송통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자의 서재](공저), [다시 쓰는 서양근대철학사](공저), 역서로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