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우리 성가대
매주 교중미사 때마다 성가를 부른다.
‘코로나19’로 한참동안 성가 합송이 금지 되었 때 얼마나 삭막한 미사였던가?
지난 5월부터 성가대 활동이 허용되고 지휘자가 성가대를 이끌어 참 보기 좋았다.
그러나 언잰가부터 성가대 단장님이 성가를 연습을 시키고,
신부님 영영축일 때부터 그전 지휘자님이자 총회장님이 성가대를 이끄심에 불길했다.
내가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것은 과거 모 합창단 단원이었고,
우리 성가대의 대원이었으며, 음악을 몹시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말 못할 사연으로 성가대는 그만 두었지만,
성가대는 내 마음의 고향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화음으로 드러내기에 여기엔 정년이란 말도 존재하지 않지만...
교회는 신앙으로 엮어진 믿음의 공동체이다.
더욱이 성경의 구절마다 사랑을 외치며 하느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구성원의 성향이 모두 하나일 수는 없지만,
이해와 용서로 하나 될 수 있음은 신앙의 끈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가는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를 지향”하기에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회 안에서 신자들의 마음을 아우르지 못해 신앙의 화음을 이루지 못함은
성가대원 및 성가를 부르는 신자들까지 ‘공동보속’의 대상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내가 오래전에 모 성당 사목회장으로 있을 때, 성체함을 도난당해
신부님을 비롯하여 온 신자가 한 달 동안 ‘공동보속’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우리는 미사 때마나
‘내 탓이요’를 외치고 가슴을 치며 참회의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던가?
그것은 성가대만의 문제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신자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성가는 같은 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신앙을 고백하며
특별한 전례를 모실 때는 우리 모두 대영광송을 교대로 노래하지 않던가?
우리 모두 기도와 함께 ‘공동보속’의 마음으로 성가를 더욱 우렁차게 불러
성령의 뜻으로 지휘자가 자원해 지휘대에 서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는 기도를 양식으로 삼아온 신앙인이 아니던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성가대에 평화를 주소서, 신자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