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17] 전세정(全世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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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정묘 14년(1327) (1/1)
정묘 14년(1327) 여름 5월에 첨의 중찬 김이가 죽었다.
겨울 11월 무자일에 왕이 교서를 내리기를
“내가 원나라 서울에 체류한 지 5년간 간신들이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려고 음모할 때에 시종하던 신하들이 시종일관 절개를 지켜 나를 도왔으니 그 공로를 기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첨의 정승 윤석, 화평군 김심, 상당군(上黨君) 한악, 서하군 임자송, 찬성사 원충, 전영보, 참리 안문개(安文凱), 이공(李恭), 최준(崔濬), 감천군 전언(全彦), 풍양군(豊壤君), 조경(趙瓊), 밀직사 손기(孫琦), 박중인, 동지밀직사사 조석(曹碩), 밀직부사 김지경(金之鏡), 군부판서(軍簿判書) 이나해(李那海) 판 사재시사(司宰寺事) 이인길(李仁吉), 판선공시사(繕工寺事) 장일(張逸), 우부대언(右副代言) 봉천우(奉天祐), 응양 상호군 최안도, 상호군 신시용(申時用), 한계보(韓季輔), 상호군으로 치사한 강언(姜彦), 호군 전세정(全世貞), 박송(朴松), 중랑장 최손우(崔孫祐) 등을 1등 공신으로,
찬성사 정방길(鄭方吉), 밀직부사 정손영(鄭孫英), 내부시사(內府寺事) 나영수(羅英秀), 순창군 이중윤, 통화군 김천보, 정당문학 박원(朴遠), 밀직부사 이규, 판 전의시사(典儀寺事) 조석견(趙石堅), 검교 평리 김부, 민부 전서 권겸(權謙), 정순(鄭順), 판전교시사(典校寺事) 이조년, 봉익(奉翊)으로 치사한 배영지(裴英之), 이련(李連), 검교 판서 한영(韓永), 나주 목사 장항(張沆), 상호군 최덕부(崔德符), 유방세(劉方世), 검교 상호군 박련(朴連), 윤길보, 집의(執義) 정호(鄭瑚), 대호군 장영백(張英伯), 김언구(金彦丘), 홍찬(洪贊), 김재(金梓), 전 전객영(典客令) 박영림(朴永林), 호군 오정인(吳挺仁), 송선장(宋善莊), 최창의(崔昌義), 이중양(李重陽), 이휘(李暉), 정인백(鄭仁伯), 윤안숙(尹安淑), 조보(趙甫), 전의부정(典醫副正) 김석(金碩), 평해 부사(副使) 박현주(朴玄柱), 중낭장 최운(崔雲), 환윤전(桓允佺), 백원태(白元泰), 김수(金壽), 김성걸(金成傑), 문성주(文成柱), 고종보(高宗甫), 김적(金迪), 박성서(朴成瑞), 김천경(金天鏡), 유양준(庾良俊), 밀성 부사 유신계(劉臣啓), 낭장 백인비(白仁庇), 김계(金㻑), 한진(韓璡), 유춘(劉椿) 산랑(散郞) 김인경은 각각 2등 공신으로 삼고 토지와 노비를 줄 것이며 그 부모와 처자들에게도 차등 있게 작위를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