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10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왠지 모를 아쉬움에 노래 한 곡을 청해봅니다. 우리나라에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널리 알려진 원곡 ‘Serenade to Spring’는 노르웨이 가수 안네 바다(Anne Vada)가 처음 불렀는데요.
저는 이 멋진 노래를 결혼식장에서 축가로 처음 들었답니다. 너무나 멋진 멜로디에 반해 언젠가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날 직접 불러주고 싶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참 무모했던 거 같아요?
여름에 만나 겨울이 다가오자 ‘아무래도 겨울의 고속도로는 위험하니 이듬해 봄에 만나는 게 좋겠다’는 저의 한마디에 ‘그럼 내가 내려갈게’ 짐 싸들고 내려온 용감한 아내 덕에 우리는 불과 4개월 만에 부부의 연을 맺었답니다. ㅋ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광주에서 원주까지 장거리 연애도 힘들었지만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던 저의 불투명한 신분과 경제적인 궁핍은 지극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결혼식장 계약금마저 없었고 가족들이 모아준 몇 백만 원과 아내가 저축한 약간의 돈으로 40만 원짜리 장롱 맞추고 TV 등 살림살이는 최대한 저렴한 것으로 장만했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더군요.
나중에 듣을니 강원도에서 내려온 처가 식구들을 태운 버스가 결혼식장 주변을 몇 바퀴 빙빙 돌았다고 하더군요. 폐업한 지하볼링장 한편을 막고 예식장을 꾸린 까닭에 간판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쌍촌동에 있는 ABC 볼링장 자리랍니다. ㅋ
그날 장모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다른 데는 구름 타고 내려오던데 여긴 그런 것도 없나 보네”라고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죄송하던지. ㅜ 계속 웃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 쓰이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예식실과 식당조리실을 파티션 한 장으로 겨우 가리다 보니 사회자, 주례사,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는 소리와 음식 조리하는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음식 향과 곳곳에서 퍼져 나오는 지하 공간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어우러진 장터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예식을 마치고 나오니 그해 첫눈이 내렸어요.
첫눈치고는 꽤 많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함박눈이 내렸는데 다들 그러시더군요. 결혼식 날 눈 내리면 잘 산다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축복해주신 귀한 분들에게 기사식당 수준의 백반을 대접하지 못해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날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이웃과 함께 나누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을.. 그리고 아이는 하나만 낳고 둘을 입양하자고...
솔직히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혹자는 말하더군요. 여성에게 가장 아름다운 날은 결혼식 날이라고... 인생에서 한 번뿐인 특별하고 행복한 날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물론, 아내는 단 한 번도 바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푸르른 멋진 가을날,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지난날을 떠올려 봅니다.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때때로 몸서리치게 서럽고 힘겨운 시간들이었지만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깊어가는 10월의 마지막 밤에 ‘Serenade to Spring’ 노래 한 곡이 정겹게 느껴지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