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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주일설교
본문: 마 13:18-23
제목: 씨 뿌리는 비유
주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비유로 말씀을 많이 하셨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씨는 영생의 말씀이요 천국의 말씀이요,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축복하는 말씀이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요, 그리스도인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이 말씀으로 산다.
이 진리를 가르치고 새기고 살게 하기 위해 주님은 고난을 주시고 광야 길을 걷게 하신다.
씨를 뿌리는 분은 인자라고 하셨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지금은 택한 종들을 통하여 씨를 우리 심령 밭에 뿌리고 계신다.
주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밭은 네 종류이다.
길가 밭이요, 돌밭이요, 가시떨기 밭이요, 좋은 밭이다.
길 바닥처럼 굳은 땅을 부수고, 돌맹이들과 가시들을 걷어내야 좋은 밭이 된다.
1. 길 가에 뿌려진 씨는 악한 자가 와서 빼앗아 가고 만다.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마13:4)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씨요”(19)
주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하셨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니 이 천국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 땅에서 행복하고 성공하고 잘 사는 법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곳은 교회가 아니다.
형통신학, 믿음신학, 신비주의를 가르치는 곳은 이름만 교회일 뿐 ‘사탄의 회당’이다.
“내가 네(서머나교회)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계2:9)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빌라델피아교회) 주어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3:9)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 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들이 와서 빼앗고
그 마음에 다른 씨들, 곧 가라지들을 뿌려서 미혹하는 것이다.
그 가라지들은 세상 끝날 거두어 풀무 불에 던저져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예배 드리면서도 설교가 시작되면 졸다가 찬송 소리에 깨나는 이들이 있다.
밤 늦게 까지 오락물들을 즐기며 자기 심령을 길바닥으로 만드느라 수고한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은 토요일 밤부터 주일을 준비하여 심령을 뜨겁게 만들었다.
“주일날 졸지 않도록 제 때에 자라.”(리차드 박스터)
“밤새워 구워진 그대 심령의 솥은 다음날 아침에 쉽게 뜨거워질 것이다.
만일 토요일 밤에 그대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긴다면
주일 아침에 그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조지 스위노크)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사탄은 그 심령을 길바닥으로 만들어 졸게 만들고
한 말씀도 심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묵은 땅, 굳은 땅은 쟁기로 갈지 않으면, 씨를 뿌릴 수도 없고 뿌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10:16)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4:4)
2. 돌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가 없어 말라 버린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20-21)
그 심령 밭이 길바닥 수준은 넘어섰으나 돌맹이가 많은 심령이다.
혹은 돌 위에 흙이 얕게 깔려 있는 밭은 밭이되 이름 그대로 돌 밭이다.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는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버린다.
말씀을 들으면 즉시 기쁨으로 받고 감동도 받는다.
그러나 그 말씀이 심령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까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이 축복을 하고 좋은 것들을 주실 때는 기뻐하고 감사하다가,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고 고난으로 연단을 하실 때에는 곧 넘어지고 믿음을 잃고 만다.
하나님은 광야 훈련을 통과하여 가나안 축복에 이르게 하심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윗의 위대한 왕권은 하나님이 배열하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연단을 통과한 후에 세워졌다.
요셉의 축복도 하나님이 배열하신 억을한 노예살이, 감옥살이를 통과한 후에 주셨다.
모세의 놀라운 축복도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의 연단과 인내 끝에 주셨다.
고난 없이 축복 없다.
광야생활의 고난과 연단 없이 가나안에 이를 수 없다.
고난 속에서 내가 바뀌고 성숙하지 않으면 축복을 주어도 감당할 수 없다.
마침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알고 믿기에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즐거워할 수 있고,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줄을 믿고 기다릴 수 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신다.
우리가 받을 영광과 축복은 우리가 지금 받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낙심과 포기와 불안의 돌맹이들을 심령에서 말씀으로 뽑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강하고 지극히 담대하라 하신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며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신다고 하신다.
말씀으로 심령의 밭을 갈고 또 갈아서 어떤 고난과 박해에도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3. 가시떨기 위에 뿌려진 씨는 가시가 기운을 막아 결실을 못한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7)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22)
심령에서 길바닥 같은 묵은 땅, 굳은 것들을 제거하고
또한 흙이 얕은 돌밭을 말씀으로 같아 엎은 사람들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
곧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가시떨기이다. 이것이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게 한다.
오래 믿음 생활을 해온 사람들도 세상의 염려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는 넘어지기가 십상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로 염려와 걱정들이 몰려와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
또한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재물의 위력은 크고 재물은 곧잘 하나님 노릇을 한다.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는데도, 겸해서 섬길려고 한다.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긴다는 사람은 사실은 재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면서도 돈을 좋아하고 탐욕과 방탕으로 속을 채웠다.
입술로는 나를 가까이하면서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하신다.
마음은 세상에, 재물에 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 탐욕은 욕심으로 탐하는 우상이 내 속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래서 다윗은 내 마음이 탐욕에 향하지 말고 말씀에 향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사람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른 것을 경외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른 것을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세상을 염려한다고, 재물을 탐한다고, 해결되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일시적으로 해결되고 얻어질 수는 있어도 결국은 원래 그 자리로 아니 더 험악한 쪽으로
멸망에 이르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기루를 쫓듯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만을 쫓고 가득 채운다.
내 마음을 이런 것들로 채우고 쫓아가는 한,
그 심령에는 평안이 없고, 가시에 찔리는 고통과 이루지 못한 낙심과 우울만 쌓이게 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세상 염려도 결국은 재물의 유혹에서 온다.
재물의 유혹을 믿음으로 해결하면 세상 염려도 자연 사라지게 된다.
돈을 사랑하면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르는 것을 본다. 그래서 가시인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악은 돈을 사랑하는 데서 오고 있다.
세상의 모든 염려도 근심도 다 돈을 사랑하는 데서 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수23:13)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탐하면,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면,
그것들이 인생에 올무와 덫이 되고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어서,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기업에서 멸망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땅과 기업을 준비하고 주실 것인데,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끌려가면 그것이 올무와 덫이 되고, 채찍이 되고 가시가 되어
멸망에 이르고 마는 것을 구약성경은 역사로 보여주고, 인류역사도 사필귀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눈을 세상에만 돌리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그 사람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2:13)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9)
하나님은 복과 저주를, 생명과 사망을 우리 앞에 두고 선택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경외하며, 말씀을 법과 원칙으로 삼고 살 때
그토록 원하는 복과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들은 인생과 자신을 찌르는 가시요 멸망에 이르게 하는 가시떨기이다.
듣고 깨닫고 깨어나기 바란다.
4.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한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8)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이다.
길바닥 심령, 돌밭 심령, 가시떨기 심령은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이다.
마음 속 묵은 땅을 갈아 엎고, 작은 고난에도 못 견디는 돌맹이들을 골라내고,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의 가시떨기들을 걷어내야 심령이 옥토가 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이렇게 하는 것이 사는 길이요 축복의 길이요 영광으로 높여지는 길이다.
하나님은 째째한 분이 아니시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백 배의 결실, 육십 배의 결실, 최소 삼십 배의 축복의 결실을 안겨 주신다.
굳은 마음, 연약한 믿음,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살아 봐야
어둠과 혼란과 공허의 결실을 할 뿐이다.
말씀을 듣고 깨달아 결실하여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되는 길로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