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다면 다른 이름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같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가진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뭔가 같은 사람들이다. 한국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과 뭔가 다른 사람들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서로 섞여 산다고 해도 사고 방식과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언젠가는 서로 구별이 되게 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은 독특한 세계관이다. 불교인들의 세계관도 독특한 세계관이다. 불교인과 기독교인이 같은 생각을 하고 살 수는 없다.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길 가다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일을 한다고 해도 기독교인이 적선하는 것과 불교인이 적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사고 방식과 세계관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하늘로 부터 받은 것이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그것이 드러나겠지만, 대체로 잘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야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삿]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삿]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기드온은 자신이 용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는 적들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용사라는 것을 가르쳐 준 존재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자신이 용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눈물나게 알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냐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리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감이 온다면 자신의 이름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길을 곧바로 가게 된다.
기독교인은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인의 길을 곧바로 걸어간다. 그 모습은 아직도 자기의 길과 자기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휘청거리면서 동서남북 떠도는 사람들의 모습과 매우 다르다.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인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가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있어도 다른 것이다. 다른 데 어떻게 같게 보일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이라는 티를 내려고 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기독교인의 냄새가 난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고후]2: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다를 필요가 없다. 당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억지로 다르게 보일 필요가 없다. 그냥 다른 것이다.
형제는 형제를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는가? 생김새? 말투? 생각하는 방식? 몸에 붙은 습관? 살아온 여정? 그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나서 형제는 형제를 알아 볼 수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알아 볼 수 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벌써 냄새를 맡는다.
사람들은 촉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는 특히 감각적으로 아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위협적인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각적으로 사람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 본다. 저 사람은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저 사람은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인지, 저 사람은 큰 일을 할 사람인지, 저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사기꾼에게 당했다면 나도 사기꾼의 기질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사기꾼의 기질이 있기 때문에 사기꾼을 불러들인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 후임자를 데리고 왔다. 후임자에게 교회 담임목사직을 인계하고 원로목사가 되었을 때, 후임 목사가 상당히 정치적인 사악한 인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왜 그 목사를 훌륭한 후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데리고 왔을까? 사람들이 아무리 그를 훌륭한 목사라고 인정해도, 그는 정치적이고 사악한 기질이 있는 목사였기에 자기와 닮은 목사를 후임자로 앉힌 것이다. 그 하나의 행위로 그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질만 하다. 사람은 자기와 닮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다. 술 먹는 사람은 술먹는 사람과 어울리고 도박하는 사람은 도박하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