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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에스더!
한밤 에스더(하야해러릿(Haye Harareet)를 만났다
참 반갑다
50여 년 전 고등학교 단체 관람 극장에서 처음 본 것 같다.
아니 방금 잠들기 전 책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벤 허는 막 일부가 끝나가고 있었고 성가대 발소리는 멀어져 가는 2시가 지나는.
오늘까지 이름도 모르던 하야해러릿이 화면 속으로 빨아드린다.
그러니까 정확이 크리스마스 이부라는 어제 오후 폭우가 찾아왔다.
실로 오랜만에 끊임없이 쏟아져 뜨거움으로 사정없이 들이치던…….
*나무의 무릎 까지 더듬다 홍수가 나고 사태로 무너질 것 같아 빠져나왔었다.
불편하지 않으면서 어설프지 않은 비유의 마차를 능란한 말들이 끌고 가는 사유의 계곡.
깊으며 맑은 계곡.
태양계가족
어느 태양계
위성을 셋 거느린 1억년을 늙어 보이는 오빠별
술 마신 날 빼고는 삐딱하게(23.5도) 돌고 있다는 삐딱하다고 하나 지구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는 별
지금은 경마장과 경로당의 경자 궤도를 돌고 있는 한 때는 자체 발광으로 빛났었다고 하는 아버지라 명명된 별
이 별들이 우주에 수없이 많은 은하계처럼
어머니별을 태양으로 운행된다.
혹여 태양에 흑점이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주에는 이런 태양계가 셀 수 없이 많다고 해도 여기서는 여기가 우주의 전부다
조우연
어느 배우고 첫 작품부터 주연으로 출연하여 명배우로 오래오래 명성을 유지 하기는 힘들다
조연으로 시작하여 오랜 세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갈파한 연출가 할아버지.
애정 결핍으로 인해 애정이 더욱 결핍되고 마는 고난위도 연애 연기도 무난히 히 마스터 했다는.
조우연 아재비
누가 안 그렇겠는가?
누구인들 내가 나같이 않고 그저 흉내나 내는 것 아닌가?
참 박달나무가 아닌 개발달이거나 미나리가 아니라 미나리아재비 범이 아니라 버마재비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본인은 뒷줄에 서서 언제든 돌아 설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란다.
문의 말
문 안에서도 문 밖에서도 고독한 말들
그것은 말을 섞을 줄 모르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다
허연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저 달이
오늘 밤은 문의 말이다
저 달을 보고 우리 모두 허연 잇몸을 드러내고 웃을 날은 요원할까?
바느질의 달인
내 바느질은 어디에서부터 잘 못 되었을까
부쩍 뒤집어 보는 밤이 많다 나이 탓일까?
다 뜯어내고 다시 짖기에 이미 늦었기 때문일까?
다시 돌아 갈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도록 일정 한 초침을 또박또박 박을 수 있는 시계를 이마에 박고 싶다.
그리고 더불어 변명이 새 나가지 않게 한 땀 한 땀 바느질 해 보겠다.
반구대 암각화
자본주의 바다에서 고래를 놓친 남편의 등가죽에 붙은 따개비를 밤새 뜯어내는 아내
귀신고래 같은 그 슬픈 아내가 어둡고 차가운 심해를 헤맨 남편의 낮은 휘파람 소리를 밤새도록 듣는 시대
동굴 밖으로 비가 내리고
또 어느 누가 고래를 잡지 못 하여 우는 소리를 듣는 시대
고래고래 울기만 하는 고래가 되어 빈 소주병처럼 누워 영
영 표류하는 시대
녹슨 작두가 유품처럼 쓸모를 잃고 쓸쓸히 비를 맞는 시대
깜깜한 하늘 귀퉁이가 찢어져 번쩍하고 번개가 칠 때
고래들이 벽지를 찢고 나와 밤바다로 멀리멀리 헤엄쳐 가
는 것을 본다고 환각하는 시대
그러나 모두 잠이 들면
흰수염고래 무리를 몰고 돌아오는 꿈을 다큐처럼 꾸는 시대
아직 고래를 잡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냐며 소리까지 내며
웃는 꿈을 꾸는 시대
아이의 벽지 그림이
어느 날 울산 태화강 지류 반구대에 암각화로 솟아오르기도
하는 시대
예나 지금이나
기록에 없는 선사시대.
조어(鳥語)학원
새의 언어를 가르치는 학원은 왜 없나
영국인들의 언어처럼 돈 내고 배울 텐데
구강구조의 차이를 극복할 만큼 발음 연습을 할 텐데
찌르륵과 치르릇의 미묘한 어감과 강약을 놓치지 않을 텐데
하아유 파인 탱큐 앤드유처럼 가벼운 안부를 묻고
그럴듯한 날갯짓을 해가며 대가리를 돌려가며
새스럽게 새답게 새들과 대화를 나눌 텐데
부전나비 애벌레와 호랑나비 애벌레 맛을 차이와
먹잇감을 발견하는 남다른 시력을 화제 삼아
자연스런 화법을 구사해볼 텐데
새 고운 조어랍니다 거들먹대며
몇 마디 구사하면 입소문으로 전파를 탈 테고
조류독감 예방법 메시지를
서해안 철새도래지에 가서 직접 알리기도 할 테고
멸종된 마다가스카르 섬 마지막 도도새의 유언을 받아 적었을 텐데
새대가리 모인 국회에 가서
요란한 잡새 소리에 일침을 놓을 텐데
새의 말에 귀가 열린다면
봄날 새순 돋는 나뭇가지 사이사이 오목눈이 한 쌍
뭔 뜻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가슴 한편을 콕콕 찌르는 저 소리들을 알아들을 텐데
비 오던 그날 저녁 절망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비자나무 아래서 무어라 애기해주던
찌르레기의 속 깊은 위로를 알아들었을 텐데
고가의 특강으로만 개설한대도
새의 언어를 가르치는 학원에
제일 먼저 등록하고 싶다
말은 곧 정신이라 했는데
속성코스라면 더 좋겠다.
조어(鳥語)학원 전문
언어 부재의 시대, 소통 부재의 시대, 더불어 삶이 없는 시대.
정치 부재의 시대. 학교 교육이 무너지는 세대. 생명 고리가 끊어져가는 시대를
치유하기 위해 네 말을 민중의 말을 자연의 말을 새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속성과 족집게 사교육 전당 학원 보다 학교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말 공감하며 박수를 보낸다.
기회가 온다면 나도 새말속성학원에 등록하여 극락조의 세레나데를 배워보고 싶다. 춤까지 배울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말 주머니
밑동 썩은 아버지 말 주머니
말더듬이 동생의 구멍 난 말 주머니
공갈빵으로 부푼 언니의 말 주머니
달 사금파리. 흰 눈동자.
유년의 보물로 채워지던 내 말 주머니
타고난 말주변이 없는 어머니 말 주머니
애들은 많고 무능한 남편
어찌 어머니의 말 주머니가 금방 빨은 옥양목 같았으랴
식구들의 말 주머니에서 덜어내어 채워진 내 말 주머니
그 안에 든 온갖 씨갑시를 꺼내 이제 시로 키워내는 시인.
크게 크게 키우리라.
숟가락
숟가락으로 한 쪽 눈을 가리게 하고 보이느냐 물으면
안 보인다고 하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숟가락 안에서 누룽지라도 찾고 있었을까?
남이 보면 볼록 거울이고 내 쪽에서는 오목 거울이다.
요즘 보수, 진보, 정치인이라는 자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나는 양말족
지하 공장에서 종일 양말을 뒤집는 엄마
악어에게 물어뜯기는 마사이마라의 얼룩말의 구멍 난 양말은 뒤집혀 버려지지만, 어려서 엄마의 불량 양말을 신고자란 아이.
발가락이 튀어나오는 양말을 신었어도 시인된 발은 절대 뒤집어지지 않고 대지를 튼튼히 받치리라.
관상용
나도 나무일까
비록 태백산의 오래된 갈매나무가 아닐 지라도 나무는 나이가 먹을수록
묵으면 묵을수록 당상목이 되기도 하는데 나는 어쩐 일인지 날이 갈수록 아내에게도 무시를 당한다.
그렇다고 언감생심 백석이 되지 못하고
박차버리고 자연으로 떠나지도 못 한다.
약국(藥局)
아픈 자가 이 나라의 일개 서민들이다.
그들은 아프지 않은 날이 없으므로 약 없이는 살 수 없다
중 략
눈 뜨면 약을 삼킨다. 눈을 위해, 간을 위해, 먹고 살기위해,
약발로 버티는 약국의 일개 소시민으로서 삼키고 삼키고 또
삼킨다.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탈모쯤이야.
문제는 내성이다. 몸속의 어떤 슬픔이 약에 저항하는 지 다
량의 복용으로 끝내 생을 놓고 가버린 사람을 생각한다. 어떤
사회학자은 그들을 약자라, 사회적 약자라 기술했으나
무정부주의자, 난 그렇게 생각한다. 모두가 환상통에 끙끙대
는 나라, 지금 약국은
전성기다.
현문우답일까?
난 독감예방주사를 생각한다.
65세 이상 무료인데 왜 안 맞느냐고 질책이다.
음모가 아닐까 공룡의 다국적 기업과 정치가 결탁한
공짜라는데 더욱 안 맞을 수 없고 위정자가 바뀌어도 전임자가 하던 좋은 것을 바뀔 수 없고…….
자본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겠다고 난 influenza 예방주사를 아직 맞지 않는다.
그리고 약국에 갈 때 마다 늘 의문이 든다.
의사 처방전에 글자 한자 틀림없이 약을 내주면 되는데 왜 대학 나온 약사가 필요한지?
그 많은 봉급이 내 약값에 포함 될 텐데…….
만첩홍매(萬牒紅梅)
소문 무성하던
표지도 속지도 빨간 만첩의 홍매가 출판되었다.
오, 이런 뜨거운 내통!
만장의 편지에는 가히 사무치는 문장들이 절창이다
발간되기 무섭게 베스트셀러다
고려 말 조선 개국을 두고 원수 집안이 된 사내를 사모한 여
인의 연서란 추측이 있고, 결혼한 사내를 사랑한 개화기 신여
성이 썼을 거라 믿기도 했댜
누가 누구에게 쓴 편지인지는 정확하지 않았으나
그럴수록 붉은 연서의 구독률은 올랐다
한 첩(牒) 한 첩(牒)
붉은 염료를 먹이고
햇살 고운 날 바람에 펼쳐 말린 후
노란 비단실로 수를 놓고
총총 적어 내려갔을 활자를 생각한다
지는 꽃잎을 쓸어 모아
수만 개의 그리움을 적고 또 적어 보내고 싶은
얼굴도 마음도 말도 붉어지는
봄날 저녁
한 차례 비 오고 나면 절판이 임하다 하니
아직 못 읽었다면 서두르는 게 좋다
마지막 장에는
끝내 연서를 받지 못하고 죽은 그가 동박새로 환생해 그제
야 편지를 읽느 만첩홍매를 찾아와 운다는 설화가 짝막하
게 소개되어 있다
(만첩홍매 전문)
표지까지 시인의 마음이 진하게 물든 시집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얼마나 만이 피고 졌을까?
사랑!
수많은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었기에 첩 첩 뼛속 까지 물들고 물들다 죽어도 죽어서도 썩지도 못하고 화석이 되었을까
그 화석을 동백꽃 속에서 발견하는 시인은 고려와 함께 묻힌 낭자이거나
현해탄에 몸을 던진 여인의 환생이거나…….
나도 절판되기 전에 어느 외진 바닷가 동백을 찾아 동박새의 노래를 같이 불러야 될 가 싶다.
위 신
청동기시대 권력자들은 비파형 청동검을 허리에 폼 나게
차고 구리거울을 몸에 거는 것으로 위신을 세웠다 한다. 그
들은 죽어서도 육중한 고인돌 밑에서 썩어가며 두고두고 위
신을 지켰다.
지금 어는 단군 후손은 왼쪽 가슴에 금배지를 달기도 하고
지갑에서 손바닥만 한 증을 꺼내 보여주기도 한다. 그걸 보는
아버지를 보면 번쩍거리는 구리거울을 처다 보던 없는 자들
의 녹슨 눈빛이 상상된다. 기분이 구리다.
큰 소리를 지르고 상을 엎는 것으로 위신을 세우던 앞집 영
래 아버지, 그런 게 위신입니까, 보란 듯이 영래는 벤츠를 끌
고 나타나 엄마와 여동생을 태우고 갔다. 벤츠 바퀴가 기하학
적 멍 자국을 남기며 가버렸다. 그러는 영래 기분도 구렸을 것
이다.
위신은 무엇으로 세워지나 비싼 장신구 하나 없는 우리 엄
마나 이태석 신부 같은 사람들의 위신 세우는 방법을 생각하
면 구리 기분이 환해진다.
그럴듯한 구리거울이 내겐 없다. 세상 그 어떤 거울보다 맑
은 어아들이 선생님, 하고 날 불러주니 그나마 그게 내 위신
재일까. 내세울 위신이 없을 때 쓸데없이 많이 웃는다. 웃다가
문득, 아, 그래서 정치인들이 금배지를 달고도 쓸데없이 웃는
거구나 이런, 구린!
몸이 얼마나 부실하고 추우면 밍크 털을 걸쳐야 사람들 앞에 나 설 수 있을까
얼마나 허약하기에 악어가죽 가방을 방패로 메어야 할까
얼마나 가볍기에 치렁치렁 쇠붙이에 돌부치를 목에 팔에 감어야 할까
비싼 카페 커피가 마늘과 쑥일까
웅녀의 후예의 그미는.
거울보다 맑은 아이들이 웃음으로 선생님 하며 부르는 소리
위신이 아니라 자랑이다.
자랑 할 만 하다.
나무의 무릎
*위 생략
도마는 나무는 무릎을 굽히지 않았을 것이다. 썰물이 되어
밀려가는 굳은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만한 난도질에
한 둥치 사상이 쓰러진 줄 알겠지만 그저 무릎 한 편(片)을 내
어주었을 뿐
네게는 밑줄이 많은 새 공책 크기 딱 그만한, 고공의 산허
리에서 투쟁시를 쓸 딱 그만한 나무의 무릎이 하나 있어 무릎
을 세우면 종지뼈 검은 옹이 안에서 동고비 울음이 눈아(嫩
芽)처럼 쏟아지고 탯줄 같은 생명의 뿌리가 내릴 것 같은 사
람, 세상의 등 돌린 벽과 싸우다 남은 도마 같은 무릎 한 그루
가 있어
앞으로도 쭉 장시를 옮겨 적고 그림도 그려 넣을 도마이기를…….
그 이상은 이야기 하지 않기로 한다.
나무고 산이고 간에 무릎 아래고 위로 더 가다가는 어는 노 시인이나 배우 꼬락서니 될 가 싶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