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스펙
모항: 리버풀(Liverpool)
- 총 톤수: 46,328 GRT[3]
- 배수량: 52,310t
- 전체 길이: 269.1m
- 전체 폭: 28m
- 최대 속도: 23노트 (43km/h)[4]
- 굴뚝 수: 4 (단, 끝의 하나는 장식 및 환기용)
- 마스트 수: 2
- 통신 시스템: 밤에는 3200km까지 연락 범위 확대.
- 재질: 강철
- 기관: 스카치식 보일러 24기, 보조 5기, 레시프로 4기, 통 엔진 2기, 증기터빈 1기, 혼성 3축, 프로펠러 3기[5]
- 출력:46,000HP (설계) – 59,000HP (최대출력)
- 최대 탑승가능 인원: 3547명 (승선객, 승무원 모두 포함)
- 선실수
- 1st-class(1등실) 416
- 2nd-class(2등실) 162
- 3rd-class(3등실) 262
- cabin area(전용실, 갑판실 등) 40
- 1st-class(1등실) 416
1.2 건조
1.2.1 설계의 변경
오른쪽이 타이타닉 호, 왼쪽은 자매함이자 1번함 올림픽 호.
1.3 시설
1.3.1 층별 구조
- 보트 갑판 - 최상층으로, 구명보트들은 모두 여기에 나열되어 있었다. 맨 앞쪽에는 선교와 조타실이 있었으며 선장 & 간부(항해사) 숙소와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중앙계단의 최상층과 체육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넓은 산책로를 가지고 있었으며, 1등실, 2등실, 항해사, 기관사 저마다 산책로의 영역이 정해져 있었다. 1등실 산책로의 경우 외관을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구명보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때문에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A 갑판 - 산책 갑판이라고도 불렸다. 거의 모든 영역이 1등실 전용이었고, 1등실 객실들과 라운지, 흡연실, 독서실, 그리고 야자수 코트가 놓여져 있었다. 산책 갑판이라는 이름답게 승객들은 기나긴 산책로가 놓여져 있었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앞쪽의 산책로에는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 B 갑판 - 선교루 갑판이라고도 불렸다. 객실은 1등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어떤 객실들은 개인 산책로를 보유하고 있었다.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었다. 이 갑판에는 선두와 선미 윗쪽도 포함하고 있는데, 선미는 3등실 산책로로 쓰였지만 선두는 당연히 안전문제상 선원 외 출입금지였다. 그러니까 97년판 영화
애초에 출입금지라고 해봤자 들어갈 사람은 다 들어가기 마련 - C 갑판 - 배에서 선두,선미와 분리되는 지점이자 하얗게 칠한 곳이 시작하는 지점으로, 3등실의 산책로로 쓰이고 선두와 선미로 각각 이어지는 요갑판과 이어져 있었다. 선두는 주로 선원들의 숙소로 쓰였고, 선미는 3등실 전용 휴게실과 흡연실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1등실 객실들과 2등실 도서관이 있었다.
- D 갑판 - 3개의 넓은 공공시설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1등실 대합실, 1등실 식당과 2등실 식당이 있었다. 3등실을 위한 오픈 스페이스도 있어 밤만 되면 신나는 연회가 열렸다. 1등실, 2등실, 3등실 객실들과 화부들의 숙소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방수격벽이 위치해있던 가장 높은 갑판이기도 했다.
- E 갑판 - 주로 1등실, 2등실, 3등실 모두의 객실들과 선원들의 숙소로 차지되어 있었다. "스코틀랜드 로드"라고 불리던 아주 긴 복도가 있어 선원들과 승객들이 오고갈수 있었다.
- F 갑판 - 객실은 3등실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2등실 객실과 선원들의 숙소도 있었다. 3등실 식당은 여기에 위치했다. 또 1등실 승객들을 위한 수영장과 터키탕도 있었다.
- G 갑판 - 수면 위에서 가장 낮은 층으로, 선원들과 승객들의 객실이 있는 가장 낮은 갑판이었다. 스쿼시 코트도 있엇으며 우편 저장소도 여기에 있었다. 대다수의 영역이 보일러실이 있는 최하 갑판과 겹쳐 있어 선미와 후미가 각각 따로 떨어져 막혀있었다.
- 최하 갑판: 주로 창고가 대부분이였다.
- 탱크 톱: 보일러실과 기관실이 위치해 있었다.
1.4 승객과 선원들
- 1등실에는 총 329명의 부유한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급한 사정보다는 즐기려고 승선한 승객들이 많았다. 객실은 최상층인 보트 갑판부터 갑판 E(상갑판)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며 호화 호텔 수준이었고 개인 목욕탕이 있었다.
- 2등실에는 총 285명의 중산층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1등실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배들의 1등실에 견줄 만한 많은 편리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객실은 갑판 D부터 갑판 G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흡연실(갑판 B), 레스토랑(갑판 B), 도서관(갑판 C), 상점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 3등실에는 총 710명의 가난한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주로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기 위해 승선한 승객들이었다. 객실은 2등실과 마찬가지로 갑판 D부터 갑판 G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시설은 1등실과 2등실만 못하고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가 울려퍼졌으나 다른 배들에 비해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배에 탑승하기 전에는 검역을 걸쳐서 전염병이나 이/벼룩을 확인했고 여자와 남자는 배의 앞머리와 뒷머리에 각각 따로 떨어져 승선했으나 가족 단위일 경우 같이 승선할 수 있었다.
1.5 항해와 침몰까지
1.5.1 출항과 항해
그러다가 화물선 캘리포니안 호가 무선을 보낼 때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한 통신사 필립스가 "닥쳐요! 지금 그쪽이 통신을 방해하고 있다고요!"...라고 일침을 놓았고 캘리포니안 호의 통신사 에반스는 빡쳐서 무전 스위치를 끄고 잠이 들었다(...). 문제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가 캘리포니안 호였는데, 하나뿐인 통신사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구하러 오지 못했다. 이 설에 따르자면 겨우 통신사의 불친절함 때문에 1500여명이 죽어간 참사가 일어난 것이 되는데, 사실 이 주장에 대해서 사건 직후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간 통신사 에반스는 '그런 정도 문제 가지고 화를 낸 건 아니다'고 증언한 바가 있다. 애초에 통신장비를 갖춘 선박의 통신사는 24시간 근무를 하도록 되어 있었고, 당연히 혼자서 24시간 근무가 가능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통신사를 1인만 탑승시킨 캘리포니안 호가 규정을 위반하고 있었던 것. 다만 당시의 해운 관행상 이런 경우는 흔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안 호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이때 억울하게 캘리포니안 호의 선장만 비난받기도 한 적이 있다. 당시 에반스는 빡쳐서 무전을 끄고 잔 게 아니라 그냥 고된 근무로 피곤해서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1.5.2 충돌
플리트가 빙산을 발견하고 급히 무전을 쳤고, 6등 항해사 제임스 무디가 조타실에서 그것을 받고 윌리엄 맥매스터 머독 1등 항해사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그는 바로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에게 우현 전타를 명령하고(그런데 2010년쯤에 2등 항해서 찰스 라이톨러의 손녀(소설가)의 말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조타수가 하필이면 실수로 키를 그대로 오른쪽으로 돌리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오른쪽으로 돌려면 왼쪽으로 돌려야 했으므로 명백한 삽질. 물론 잠깐 후에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제대로 왼쪽으로 돌렸지만 결국에는 배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8] 텔레모터(원격 조정 장치)를 "전속 후진"로 돌려놓아 엔진 역추진을 시도했다. 그러고 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일러실에 방수 격벽이 닫힐것을 알리는 알람을 울렸다.
"속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있으면 빙산과의 충돌은 회피할 수 있었다."라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이었다.
게다가 횡단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화이트 스타 라인 사의 회장이자 배의 이사 브루스 이스메이가 그대로 전진할 것을 지시하고 선원들은 이를 그대로 따르는 병크를 저질렀기 때문에 침몰이 가중되었다.[9] 바로 멈췄다면 침몰 시간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1.5.3 탈출
정원을 초과해도 모자를 판에 많은 보트들이 정원을 채우지 않은 채로 바다에 내려졌다. 만약 정원이 완전히 채워졌다면 반이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1.5.4 대피와 혼란
배수를 시작하고 얼마 후 5번 보일러실에서 첫번째 사망자들이 발생했다. 기관사 몇명이 펌프질을 하다가 6번 보일러실의 석탄 저장고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익사한것. 화부 대장이었던 프레드릭 바렛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또 한편 우편 직원들은 침수하는 우편물 저장고에서 우편물을 물에서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그리고 하갑판에 남아있던 몇몇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물이 복도 구석구석에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했다.
혼란이 점점 가속화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사고도 약간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여성은 구명보트 10호와 배 사이에 떨어져 끼었다가 구조되었다.
물론 후에 지시가 내려지고 대부분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구명보트가 떠나간 상태였다. 3등실 승객들의 사망률이 높은 건 이때문.
1시 45분에는 구명보트 2호가 내려졌다. 이때 몇몇 외국인들이 타려 했지만, 2등 항해사 라이톨러가 권총으로 위협해 쫓아냈다. 존 제이콥 애스터는 어린 아내를 태우고 아직도 빈 공간(40명 중에 25명이 타고있었음)이 많은 것을 보고 타도 되냐고 물었으나, 라이톨러에 의해 거절당했다. 마지막 구명보트(선교 위에 비상용으로 있었던 접이식 보트 2개는 제외)는 접이식 보트 D로, 2시 5분에 내려졌다.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은 "백만장자인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11] 현지처와 하인을 보트에 태우고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하고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고 하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1.5.5 최후의 순간
선장은 확성기를 쥔 채로 선교에 들어가 그대로 그곳에 남았다고 하며 배의 설계자 토마스 앤드류스는 흡연실에서 구명조끼를 벗은 채 그림을 응시하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고 한다.
남은 접이식 구명보트 두 척은 파도갑판 위를 떠다녔는데 접이식 보트 B는 30여명의 사람들이 선 상태로 뒤집혔고, 접이식 보트 A는 제대로 뜨긴 했으나 물이 반쯤 찼다. 이때 몇몇 사람들(아치발드 그레이시, 2등 항해사 라이톨러, 잭 테일러 등)이 환기구 때문에 빨려들어갔지만 다시 보일러실에서 발생한 뜨거운 공기가 올라오면서 물속으로 빠져나와 뒤집어진 구명보트에 도달할 수 있었다.
1.5.6 구조
이후에는 물이 차거나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A와 B의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근데 사실 조난 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위이다. 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 체온이 상승하지만 혈관이 확장되기 때문에 그만큼 체온 손실도 빨라진다. 술 마시고 길에서 자다가 동사하는 사람들이 왜 많은지 생각해보자(...). 단기간이라면 모를까 3시간 동안 영하의 바닷물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살아 남은 것은 그냥 기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하나도 젖지 않은 것이 생존에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체온 손실의 40%는 두피의 노출로 이뤄지기 때문.
1등실, 어린이 | 6 | 83% | 17% | 5 | 1 |
2등실, 어린이 | 24 | 100% | 0% | 24 | 0 |
3등실, 어린이 | 79 | 34% | 66% | 27 | 52 |
1등실, 여성 | 144 | 97% | 3% | 140 | 4 |
2등실, 여성 | 93 | 86% | 14% | 80 | 13 |
3등실, 여성 | 165 | 46% | 54% | 76 | 89 |
1등실, 남성 | 175 | 33% | 67% | 57 | 118 |
2등실, 남성 | 168 | 8% | 92% | 14 | 154 |
3등실, 남성 | 462 | 16% | 84% | 75 | 387 |
승무원, 여성 | 23 | 87% | 13% | 20 | 3 |
승무원, 남성 | 885 | 22% | 78% | 192 | 693 |
어린이 총합 | 109 | 51% | 49% | 56 | 53 |
여성 총합 | 425 | 74% | 26% | 316 | 109 |
남성 총합 | 1690 | 20% | 80% | 338 | 1352 |
전체 총합 | 2224 | 32% | 68% | 710 | 1514 |
3등실의 사망률이 월등하게 높다. 이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 빙산 경고 메세지가 선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항로를 바꾸지 못했다. 게다가 배는 당시 전속력으로 가는 중이었다.
- 망원경 열쇠도 항구에 두고 왔고, 달빛도 없었는 데다가 파도까지 잔잔해서 보초들이 맨눈으로 식별하기 매우 어려웠다.
- 게다가 빙산의 대부분은 바다 밑에 있기 때문에 알아냈을 때는 늦었다.
- 조타수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깐동안 우현 전타와 좌현 전타를 헷갈려했다.
- 리벳 또한 불량이었다.
- 게다가 충돌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 그나마 가장 가까웠던 배인 캘리포니안 호의 유일한 전파사는 타이타닉호의 전파사에게 일침을 들은 후 침몰 당시 자고 있었다.
- 3등객 승객들이 탈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일단 후에는 대부분 나오긴 했지만 이미 많은 구명보트가 떠난 상태였다.
- 구명보트의 정원이 탑승객들의 절반 밖에 안됐다.
- 정원을 초과해도 모자를 판에 많은 수의 구명보트가 꽉 채우지 않은 상태로 보내졌다.
1.6 시신 인수
1.7 사고의 영향
1.8 발견
1.9 유명한 승객과 선원들
1.9.1 부록: 영웅들
-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구명보트에 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승객들을 지도하다가 끝까지 배에 남아 죽었다. 참고로 스미스 선장은 낮은 계층 출신이었으나 그 기품과 카리스마 덕분에 화이트 스타 라인의 고객 중에도 오로지 스미스 선장의 배만을 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원래 1911년에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회사측의 설득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항하기로 한 것이 바로 타이타닉호의 처녀항해였다. 항해사 절반 또한 죽었다.
- 배의 설계자인 토마스 앤드류스는 승객들의 구명보트 탑선과 뜰 만한 물건들을 던지는 것을 돕다가 1등실 흡연실에 조용히 들어가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 흡연실에 고귀하게 남기로 한 사람은 앤드류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1등실) 승객들도 있었다. 어떤 승객들은 카드 게임을 계속했으며 당대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T. 스티드는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 이들 또한 모두 배와 함께 죽었다.
- 기관장인 조셉 G. 벨을 포함한 많은 기관사들과 화부들이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2분 전, 그러니까 배의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배의 전기를 작동시키는 작업을 하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8명의 연주대는 배가 침몰하기 고작 10분 전까지 곡을 연주하고 서로에게 행운을 빈 후 헤어졌으나 비극적이게도 모두 죽었다.
- 토마스 바일스 신부는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고 사람들의 구명보트 승선을 돕고 구명보트를 타지 못하고 죽을 운명만을 기달리는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갑판 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다가 죽었다.
- 백만장자인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은 자신은 살 수 없음을 직감하고 현지처와 하녀를 보트에 태우고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하고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고 하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딸 페기 구겐하임이 여기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콜렉션한 예술작품들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노부부 스트라우스 부부는 금슬이 좋은 노부부였다. 이지도르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자 그의 부인인 아이다 스트라우스도 선원의 구명보트 승선 제안을 거절하고 하녀 엘렌 버드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주고 자기 대신 구명보트에 태운 뒤 남편과 함께 죽었다. 영화에서는 물이 들어오는 선실 침대에 둘이 함께 껴안고 누워 있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참고로 이 때는 아직 배의 운명을 깨닫지 못하고 구명보트에 타기보다 배에 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였지만, 아이다 스트라우스는 엘렌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며 "나에게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했으므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 두명의 전파사들도 선장이 이만 물러나가도 좋다고 한 후에도 끝까지 남아 전파를 보냈다. 이 중 해롤드 브리드는 살아남았지만 잭 필립스는 죽었다.
- 남편이 금광을 발견해 하루아침에 떼부자가 된 1등실 승객 마가렛 몰리 브라운은 구명보트에서 가장 앞장서서 노를 저었으며 생존자를 구조하자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지만 보트를 맡고 있던 조타수 히친스의 기를 죽여놓았다.
- 젊은 로테스 백작부인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노를 앞장서 열심히 저었으며, 3등실 승객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해 보트에 타고 있던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1.10 부록: 타이타닉 자매선들의 운명
원래 항목에는 귀부인의저택이 되었다가 2000년에 크루즈 선사로 유명한 로열 캐리비안 사가 구매하여 자사의 크루즈선인 밀레니엄호의 부속 레스토랑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배 자체로서의 올림픽이 아니라, 1934년에 배가 폐함처분될 때 철거된 올림픽 호의 인테리어 파트, 특히 부설 레스토랑의 목제 내벽을 가리키는 것[19]이 아니면, 1969년에 퇴역해서 장기간 수상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아일랜드에서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올림픽 호의 1, 2등실 승객용 셔틀 선박인 SS 노매딕의 이야기가 복합된 착오라고 보인다. 수정바람
1.11 불길한 징조?
로버트슨의 그 소설 내용이 '타이탄'이란 초호화 여객선이 대서양으로 처녀항해에 나섰다가 빙하와 충돌하여 대형 인명 사고를 낸다'는 것이었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탑승객 숫자와 구명 보트 수, 출발 항구, 사고 원인과 사고 지점, 배의 규모와 사고 시기가 14년 뒤에 실제로 일어난 타이타닉호 사건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그리고 로버트슨은 '타이탄 침몰'에 관한 소설 뿐 아니라 '비행기가 한 도시를 폭격한다'는 내용의 단편 소설도 썼는데, 그로부터 30년 후인 제 2차 세계 대전 때 진주만 습격 사건흠좀무
1.12 타이타닉과 관한 도시전설
2 각종 매체에서
2.1 영상화
케네스 모어가 2등 항해사 라이톨러(주인공) 역으로 등장한다.
오래된 영화지만 연출이 뛰어나며, 1997년판 타이타닉도 이 영화에서 오마쥬한 것이 많다. 예를 들자면 토마스 앤드류스가 흡연실에서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최후를 맞이한다던가, 악단이 월레스 하틀리를 중심으로 하나 둘씩 돌아와서 끝까지 연주한다던가.(사실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했지만 연출 부분에서 비슷하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은 당대 독일에서 성공한 감독이었는데 이 영화를 찍은 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요제프 괴벨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는 소련에서도 방영됐다(!).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서라고...또 한 가지 사실은 이 배의 배경이 아르코나 호(SS Cap Arcona)에서 찍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죄수선으로 쓰였다가 소련 잠수함에 격침당하여 무려 5000명이나 죽는 해양 참사로 기록된다. 타이타닉보다 무려 4배나 더 많이 죽었고 비율로 따지면 더하다. 흠좀무
여담으로 이 영화에서도 다른 타이타닉 관련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제임스 카메론이 따온 연출이 많다. 1958년도판 영화도 이 영화에서 나온 장면을 일부 첨부하였다.
2.2 기타 이것 저것
3 닥터후의 함선
[2] http://www.atlanticliners.com/titanic_home.htm
[3] 선박의 등록톤수. 구글 검색에 GRT를 치면 1 register tonne = 2.83168466m³가 뜬다.
[4] 길이와 폭, 속도의 미터 단위 표기는 피트 단위 및 마일 단위의 환산이기 때문에 인용 매체에 따라 소수점 단위의 차이가 존재함.
[5] 현대의 비슷한 배수량의 선박들이 보통 메인엔진 1기, 보조엔진 1기로도 타이타닉과 비슷한 속도를 낸다는 점을 떠올려보며 20세기 내연기관의 발달에 감탄하도록 하자. 사실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를 떠난지 26년후(1936년)에 경쟁회사인 큐라드 라인에서 발주해서 처녀항해를 한 퀸메리(RMS Queen Mary)호 만해도 160,000shp 마력이다.
[6] 공교롭게도 이날,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모 반도 국가에서 주체사상을 이끄신 어버이 수령 혹부리우스
[7] 타이타닉 호의 높이는 배 밑바닥으로부터 굴뚝 위까지 52.2미터이고, 빙산은 수면 위로 1/10만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에 수면 아래에 충돌할 위험이 높다.
[8] 이게 그때까지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가 동료들과 부하들이 직장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였다고...
[9] 이 사실 또한 찰스 라이톨러의 손녀의 증언에서 나왔다.
[10] 영화에서는 물이 들어오는 선실 침대에 둘이 함께 껴안고 누워 있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11] 그의 딸 페기 구겐하임이 여기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콜렉션한 예술작품들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12] http://www.titanicinquiry.org/USInq/USReport/AmInqRep03.php#a8
[13] 경제적 어려움을 잠깐 겪으셨는데, 이에 97년판 영화의 제작진들과 타이타닉 탐사협회가 자금을 지원해줬다.
[14] 이 사람의 손자가 바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15] 물론 아래 나오는 영화는 아니다. A Nighy To Remember라고 이 주제를 다룬 고전 작품. 한국에서는 SOS 타이타닉이나 타이타닉호의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번 방영되었다.
[16] 자연적 재해--아무래도 빙산을 사람이 만들거나 한 게 아니니까- 분야 최대 선박 사고 사망자이다. 다른 사고로는 1945년 한국인 5천명 이상이 죽은 우키시마 호 자침 사건 같은 일이라든지 4천명 이상이 죽은 1987년 12월 필리핀 도나 파즈 호 침몰 사건 같은 비극은 사망자 수를 타이타닉 4배 가까이 된다...사상최악의 단일함선 침몰 사망숫자는 빌헬름 구스틀로프호(1945년에 발트해 연안에서 피난가던 독일피난민을 태우고 가다가 소련잠수함에 침몰)(최대 1만명이 넘게 타고 있었다고 하는데 2000명 정도가 구조), 고야호(같은 지역에서 침몰)(이쪽은 6000~8000명은 넘게 타고 있었는데 그 중 180명 정도만 생존)
[17] 이 조약은 수없는 개정과 보강을 거쳐 현재까지도 효력이 지속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해상 규약 중 하나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이뭐병
[18] 당시 한국어판 뉴턴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19] 현재 영문판 위키페디아에 해당 내용이 기재돼 있으나 선사가 다르며, 또한 귀부인의 저택 관련은 출처 필요라는 조건이 부기돼 있다.
[20] 여기선 최소한 침몰은 한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NC가 씹은 타이타닉의 전설에서도 잠깐 나오는데 이게 저 애니보단 조금은 낫다고 언급한다.
[21] 71분으로 재편집된 영미권 버전 한정. 84분 오리지널에서는 뱅크샷은 나오지는 않으나 그에 만만찮은 작붕과 광기가 들어가 있다.
[22] 또한 잭과 로즈의 동작중 몇몇은 KOF 시리즈의 쿠사나기 쿄와 아사미야 아테나
[23] 영화는 뮤지컬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