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남양주 서리산 산행후기
일시: 2019. 4. 21
참석: 109명 (25회 9명)
산행: 7.5Km (4시간 30분)
생명의 계절, 잔인한 달, 4월은
변덕스런 날씨를 이겨내며 꽃 피우고, 새싹 튀우고, 여린 잎 키우느라 몹시 바뿌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은 참 신비롭다.
봄처녀 단장해 내보내는 데에도 정해진 순서가 있으니 말이다.
복수초, 유채꽃, 개나리, 생강나무, 산수유 노란 꽃들을 앞세워 시선을 끌어당기고,
매화, 벚꽃, 이화, 목련 하얀 꽃으로 이곳저곳 화사하게 분칠하여 단장해 놓고,
도화, 제비꽃, 얼레지 붉은색, 보라색으로 단숨에 유혹해 버리고는 순식간에 도망간다.
그래도, 차례로 오고가며 잔인하단 소리는 듣기 싫었는지
그 짧은 시간에 바람 피우고 사방천지에 연두빛 여린 쌔끼들을 잔뜩 내질러 놓았다.
꽃향기 휘날리며 온 봄을 수놓는 화사한 꽃들은 매년 왔다 가고 다시 오지만,
우리의 인생은 오로지 한 번 오고 가는 것 뿐이다!
얼마전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기사가 떠오른다.
항공산업의 개척자, 평창올림픽 유치자, ---
생전에 어찌 살았던 간에 마지막 여러 모습들에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자식들, 마누라로 인해 갑질 집안, 갑질 회사로 이름 붙여지고,
정부의 미움까지 받아 끝내는 회장자리마저 쫒겨나는 굴욕까지 당해,
아픈 몸이 더 아파져 일찍 죽음에 이르러 잔인한 달에 따났으니 .....
한 번 인생!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니 길바닥에 물기가 촉촉하다.
어제 저녁 이슬비가 새벽까지 이어지고는 그쳐있는 소강상태이다.
하지만, 하늘은 온통 쟂빛 구름으로 덮혀있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 같았다.
우산을 챙기지 않아 다시 갔다 올까 망설이다가 낮에 개인다는 예보에 그냥 나섰다.
동기산악회에서 철쭉을 보러, 더덕을 캐러 서리산을 여러번 가보았지만
총동산악회 따라 서리산에 가는 것은 처음이다.
강변역에 도착해 관광버스를 타고, 아침식사 대용 떡을 천천히 먹는 사이
마석, 수동을 지나 벌써 축령산입구 마을길이다.
축령산, 서리산에는 봄이 지금 막 시작하는 것 같았다.
입구부터 산능선까지 서울에서는 끝물도 지난 벚꽃, 개나리,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1시간만에 너무도 빠르게 서리산 버스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져 일부는 우산을 꺼내 들었다.
조금 걸어 올라 명물 무당벌레 화장실 앞, 언덕배기에 개나리, 진달래가 피어 있는
제2주차장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구호를 외치고 바로 산행에 나섰다.
화사한 봄꽃을 제대로 못보고 아쉬운 채로 봄을 떠나보내려나 했는데,
4월 하순에 서리산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다 볼줄이야!
아스팔트 길따라 휴양관이 좌우로 줄지어 들어서 있다.
주차된 자동차만 보이고, 놀러온 사람들도, 등산객들도 보이지를 않는다.
A코스팀들은 철쭉동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능선길로 접어들고,
B코스팀들과 거꾸로 오르려는 우리들은 산림휴양관 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여리디 연한 연두빛 새 이파리들은 어느새 산을 신록으로 변화시키려 한다.
문득, 학창시절에 읽었던 이양하 선생님의 수필 "신록 예찬"이 생각났다.
그렇게 예찬하였던 완전한 신록은 아니지만 조금있으면 그렇게 될 것은 분명하다.
쟂빛 하늘아래 우뚝 솟아 있는 연두빛 축령산을 바라보며
산림휴양관을 왼쪽으로 돌아, 제2목교를 건너서 시멘트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굽이굽이 임도를 따라 가볍게 오르는 선후배들은 언제나 청춘인양
연두빛 새이파리들 보다도 더 아름답고 싱싱해 보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으로 향하지만, 마음은 자꾸 앞뒤 친구들에게 향해진다.
몸은 점점 예전만 못해가도, 마음만은 예전보다 더 풍성해졌으면 --- .
임도를 가로지르는 지름길, 물기 머금은 바위 길은 미끄러워 조심조심 올랐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곡의 물줄기는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매달 산을 오르는 것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젠 나 스스로에게 조그마한 다짐을 하며 따라 다닌다.
사실, 허리 아픔 때문에 매번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을 한다.
오르다 말면 사진도 산행기도 반토막이 될지라도 절대 무리는 말자!
임도삼거리에서 잔디광장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갔다.
전망대 오르는 갈림길 지나, 계곡을 건너 임도 따라 오르다가 도로 계곡을
건너 잣나무 언덕을 오르면 B코스 종점 오두막집이 있는 잔디광장이다.
비는 그쳤지만 올라갈수록 옅은 운무가 깔리기 시작하였다.
오두막집에서 잠시 쉬면서 성일이표 맥주 한 모금 나누어 마셨다.
우리 친구들은 이 맛을 보려고 성일이 쫒아 열심히 산행하는 것 같다.
도로 내려갈 선후배들 남겨두고 다시 산행에 나섰다.
뒤돌아 보니, 오두막, 잔디 광장, 커다란 소나무가 이국적 분위기를 풍긴다.
잣나무 숲 초입이다.위를 보면 연두빛 신록과 푸른 잣나무 숲이요, 아래는 봄꽃들이 천지이다.
현호색, 동의나물, 얼레지, 제비꽃, 개별꽃, 등이 물기에 젖어 여기저기 피어있다.
얼레지꽃은 한두 송이가 아니라 아예 밭을 이루고 산길까지 침범하고 있다.
잣나무 숲 끄트머리는 절고개로 이어진 된비알길이다.
한발 두발 꾸준히 올라야 하는 고갯길이라 오랫만에 허리 힘을 쓰게 생겼다.
나는 무리할 수가 없어 뒤쳐저 쉬엄쉬엄 천천히 올랐다.
쉴때마다 습기를 머금은 맑은 공기가 부드럽게 긴 숨을 쉬게 해준다.
뒤따라 올라오는 여동들 뒤로 한무리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드디어, 서리산과 축령산의 갈림길이 있는 절고개 능선에 올랐다.
절고개 넘어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가평군이다.
절고개에서 쉬는 동안 뒤따라 올라온 등산객들은 바로 축령산으로 향했고,
우리들은 그 반대편 서리산으로 향했다.
서리산 가는 능선길은 널찍하고 걷기에 좋은 흙길이다.
뒤로 보이는 연두빛 축령산도 운무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 갈림길인 헬기장 사거리까지 단숨에 걸어 가서 잠시 쉬었다.
45회 한 후배가 벌써 서리산 정상을 찍고 내려왔고,
임도길에 한무리의 MTB족들이 경사진 길을 올라왔다 곧 사라졌다.
다들, 우리도 20년 전에 저랬었는데 하며 부러워 하였다.그 대단한 젊음을 부러워 한들 무엇하리, 있는 것이나 제대로 지켜야지!
다시 길을 나서, 바위로 오르거나 우회하여 능선길에 올라 걸어갔다.
좌측 산기슭에서 올라오는 운무는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며 능선을 넘어간다.
나무 두 가지 사이에 자란 개별꽃을 보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운무가 몰려왔다.
순식간에 연두색 신록은 사라지고 사방이 온통 회색빛이 되어버렸다.
우리들 세상사 한치 앞을 모르는 것 처럼 자연도 정말 변화무쌍하다.
능선길이라 전망은 별로 없었지만 운무에 더욱 꽝이 되었다.
헬기장에선 그나마 축령산을 멋지게 조망할 수는 있었는데 ---
걷기 좋은 흙길 능선은 계속되었다.
운무 속을 헤치고 능선길 따라 오르내리며 계속 앞으로만 나갔다.
뒤따라 가며 친구들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내 사진은 하나 없다고 해정이 핸드폰을 뺏어 한 장 찍어 주었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긴 하다.
운무가 걷힌 사이 길가에 서있는 커다란 서나무도 잠시 들여다 보고,
전나무 숲길을 지나며 피톤치드 향기도 마음껏 맡으며 걸었다.
앞서 넘어 오시는 이종구, 유성삼 선배도 만나고,
곧 뒤따라 오신 김태무 선배도 만나고 ---
80 이신 데도 우리들 보다 산을 더 잘타시는 참 대단한 선배들이시다.
다시 나타난 운무 속에 옛날 힘들게 내려왔던 바위지대에 돌고돌아
오르내릴 수 있는 나무계단을 멋지게 만들어 놓아 편하게 올랐다.
짙어진 운무 속에 서리산 정상 직전의 언덕을 오르기 전에 잠시 쉬었다.
어찌보면 인생은 수많은 고개를 넘어야 하는 등산과도 닮은 꼴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다왔나 싶어도 늘 또다른 고개가 버티고 있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내일은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시간으로 오고가고,
결국에는 가고오는 세월 속에 자신과 씨름하다가 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
우리는 내일 이라는 기대 속에 끝없는 희망을 품으며 오늘을 살다 갈 뿐이다.
마지막 언덕을 올랐다.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평평한 갈대밭에는 사람들로 한가득이다.
철쭉동산으로 올라온 동문들과 다른 산악회 사람들이
군락을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과 술을 마시며 큰소리로 낄낄대고 있다.
때 마침 일어나시는 20회 선배들 자리를 물려 받아 재빨리 자리 깔고
돼지머리 수육, 계란말이, 김치를 안주 삼아 술 한 잔씩 하였다.
선배들, 후배들과 오가며 술과 간식을 먹고, 선후배들 절고개로 다 떠난 후,
맨마지막으로 자리를 걷고 일어나 서리산 정상으로 향했다.
간만에 정상을 밟아 감격스런 사람들이 많다.
요음은 둘레길이나 B코스를 찾는 친구들이 많다보니---
개인별, 단체로 인증사진을 찍고, 바로 철쭉동산으로 향했다.
철쭉은 없고 처녀 젖꼭지 마냥 붉은 몽우리들만 돋아있다.
양지바른 곳, 몇 그루 큰나무에 매달린 붉은 것은 철쭉이 아니라 진달래이다.
긴 철쭉나무 터널을 빠져 나와 전망대에 올랐다.
한반도 모양의 철쭉동산의 모습은 철쭉이 만개해야 볼 수 있다.
사람들과 부딪치기 싫어 옛날 임도종점에서 올라오던 길을 생각하고,
전망대 앞 계단으로 하산을 하였는데 내려오다 보니 길이 없어졌다.
흐미한 옛길을 더듬으며 낙엽 쌓인 길을 내려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내려가면서 계속 우측으로 가니 곧 임도종점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아! 이제 알겠다.
빤히 보이는 100 미터 아래가 임도종점이다.
임도종점에서 이곳 삼거리를 통해 철쭉동산으로 오르게 길을 새로 내었다.
임도종점으로 내려가지를 않고,
안내 표시판에 적혀있는 최종 목적지 매표소를 향해 계곡길로 내려갔다.
머리 위로 가파른 능선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지만
계곡길에는 올라오는 사람이 드물어 조용하기만 하였다.
길 안 숲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고로쇠 수액 채취용 굵은 호수와
길가 돌틈사이, 안쪽 흙 위의 야생화들이 내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한참을 내려와 서리산 간이목교로 빠져나오니 임도와 만났다.
지그재그로 임도를 걸어 내려가며 맞은편 축령산 봉우리들 뿐만 아니라
처절할 정도로 요염한 색기 도는 개복숭아꽃, 막바지 벚꽃에 눈길을 빼앗겼다.
커다란 바위 틈에 비스듬이 자란 굵은 소나무에도 눈길이 갔다.
햇볕이 나기 시작하는 굽이굽이 임도를 따라 편하게 걸어 내려갔다.
임도삼거리에서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선후배들과 만나
같이 임도를 따라 돌고, 탑들을 잔뜩 쌓아 놓은 곳으로 가로 질러 내려갔다
정상에도 탑을 쌓고 있더니만, 누가, 왜 이런 곳에 탑들을 쌓았을까?
여기저기 많은 산을 다니다 보면 이런 탑들을 참 많이 본다.
탑을 쌓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 정성 하나 만큼은 알아주자!
세족을 위해 물가를 찾아았지만 산림휴양관 직전 제2목교 아래가 딱이었다.
때로 몰려가니,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두 후배들 슬그머니 물러선다.
양말 벗고 두발을 담그니 너무 차서 10초도 안되어 오금까지 짜릿해졌다.
역시 등산후에는 이 맛이 최고! 한순간에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휴양관을 지나고, 금낭화, 조팝나무꽃, 벚꽃을 구경하며
매표소를 지나 축령산 계곡가든 식당으로 내려갔다.
매표소 아래 100미터 지점, 오르막 시작점 왼편에
축령산 계곡을 끼고 오래된 식당이 바로 축령산 계곡가든이다.
먼저 가평 잣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비빔밥으로 식사를 하였다.
이것저것 산채나물을 넣어 생각보다 괜찮았고, 된장국이 시원하였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1호차는 벌써 서울로 출발하고 없다.
먼저 내려 온 일승이네는 계곡으로 내려가 세족을 하고,
나머지는 계곡을 둘러보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선후배들과 술을 더 마셨다.
장사속에 댐을 쌓아 계곡물을 가두고, 자리장사를 하고 있다.
아랫집도 계곡을 끼고 길을 내고 있어 넘쳐난 흙들이 계곡을 덥치고 있다.
3시에 서울로 출발하여 강변역에 일찍 도착해 집으로 향했다.
간만에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