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선교사, 선교지를 고민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요즘 선교와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에 대한 생각에 고민과 고뇌가 많아졌다. 그리고 2주 동안 수많은 분들과 대화하고 만나고 여러 생각들을 경청하면서 보냈다. 교회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또 오늘 우리 시대 속에서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할런지 계속 묵상과 기도 가운데 새벽에 하나님께서 내면에 들려주시는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묵상 가운데 선교, 선교지 선교사님들에 대한 선명한 그림들이 2주간의 대화와 나눔이 어우러지면서 정리가 되었다.
선교, 선교사, 선교지를 고민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1. 돈으로 하는 선교는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퍼주기 선교를 많이 하였다. 방문하는 장소마다 돈을 쥐어주고 선교지에서 한국 사람을 돈으로 인식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돈이 사라지자 그들도 사라졌다. 돈때문에 일시적으로 모인 것이지 제자가 아닌 것이다. 돈으로 하는 선교는 자제해야 한다.
지난 15년간 선교를 하면서 일반적으로 돈으로 하는 선교는 배제하였다. 정말 선교지에서 필요한 돌파를 돕는 사역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베이스로 삼아서 그곳에서 모든 사역을 감당하곤 하였다. 감사헌금도 50만원 내에서 하였다. 돈으로 하는 선교는 계속 영적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꼭 필요한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2. 건물만 짓는 선교는 고민해야 한다.
제3세계 도처에 교회만 지어 놓고 창고로 사용되는 곳이 수두룩 하다. 안타깝게도 1회용 행사로 전락한 곳이 많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방문하면 사람들을 돈을 주고 모아서 사진찍기용으로 또 홍보용으로만 사용되는 허다한 교회당이 많다. 그런데 그 교회를 지은 모든 비용은 성도들의 눈물, 피, 땀이다.
그러나 교회 성도들이 차고도 넘쳐서 짓는다면 문제가 없다. 자립, 자생, 자치에 의해 건축하는 경우에 재료비는 일정한 부분 후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이름도 후원교회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현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다고 본다. 건물만 짓는 선교, 센타만 짓는 선교는 허영에 불과하다고 본다.
실제적인 신앙이 자라는 방식이어야 한다. 공짜로 지어주는 예배당은 결코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함께 울고 웃고 기도하면서 수고하면서 지어지는 교회야말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어져 간다.
3. 현장을 떠난 선교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선교는 현장에서 현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치열하게 목회하듯 현장에서 몸으로 부디끼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짜 목회가 된다. 1주일에 6일은 현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전시용으로 전락한 선교는 타락을 부추긴다. 과시용으로 전락한 선교는 허영과 허세일 뿐이다. 현장에서 제자삼아야 한다. 1주일에 1번 들리는 방문자 선교가 아니라 현장에서 더불어 살아가면서 제자화 하는 사역이 절실하다. 그들과 동행하면서 삶으로 보여주는 선교에 실패는 없다.
4. 선교보고는 투명해야 하고 더 철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가 세금과 관련되면서 좋은 교회는 더 투명해져 간다. 문제가 있는 교회는 감추고 숨기고 이중장부를 사용하려고 한다. 교회가 교회다우면 더 맑고 밝고 투명한 것이 정상이다.
선교지의 선교보고도 정확해야 한다.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것은 정확하기 위해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20년동안 선교지를 관찰한 바로는 선교지가 한국교회 목회보다 더 바쁜 경우는 드물다. 물론 단기선교가 집중되는 경우에는 예외다.
선교지에서는 교회에서 재직회에서 재정 사용을 보고하듯 재정의 흐름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영수증 처리를 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재정에 있어서는 그것이 성도들의 눈물, 피, 땀인만큼 목적에 부합하게 사용하고 보고하는 것은 성도에 대한 예의라고 본다.
내가 아는 선교사님의 경우에는 사례비(생활비)로 들어오는 재정외에는 교회 후원과 개인 후원을 이름과 액수까지 밝히며 선교 단체 수준의 재정보고를 하면서 사역을 하는 것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보고 한다. 이것이 신뢰를 형성한다.
5. 선교사의 정치꾼화를 조심해야 한다.
선교사들 가운데는 후배선교사에게 갑질하고 길들이는 선교사가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선임 선교사의 종노릇 하도록 하는 정치꾼들이 종종 있는 모양이다. 정치꾼들을 늘 세력화하고 편을 가른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일한다.
선교사가 현지의 영혼들에게 관심이 있지 않고 자기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부터 부패하고 타락한다. 이 점은 목회자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좋은 선교사는 현지의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긴다. 성공이 아닌 성육신을 추구한다.
선교 후원을 받기 위한 비지니스만 하는 선교사는 주의해야 한다. 진정한 선교사는 자신을 위하여 선교 현장의 영혼을 위하여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절제하며 근신하며 섬긴다. 좋은 선교사는 선교 현장에서 더불어 살면서 함께 울고 웃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쓰임받음이 은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생활을 위해 받는 사례비 조차도 아낌없이 선교를 위해서 사용한다. 그러나 정치꾼은 선교를 고생으로 포장하고 헌신으로 확대해서 상품화 하고 그것을 소비 시킨다. 그들은 후원비를 사적인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사용한다.
6. 선교사님들 후원이 급격하게 끊어지고 있다.
선교사님들 후원이 끊어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동력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는 점점 고령화 되어 간다. 선교적 열정을 품었던 분들이 은퇴를 한다. 많은 교회의 경우에 재정은 앞으로 갈수록 악화될 것이다. 그것은 예측 가능한 수준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긍휼로 부흥을 경험하지 않으면 회복하기 힘든 수준의 영적인 상태라고 본다.
어떤 일부 몰지각한 선교사님들은 비지니스를 잘해서 후원이 많고 그것을 사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선교사님들은 선교 후원이 끊어져 가고 선교지에서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간다. 2주일 동안 조사한 바로는 대부분의 선교사님이 100만원 전후로 파송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좀 많이 지원 받는 경우가 150만원이였다. 드물게 200만원 정도를 받는다. 250만원 이상은 아주 드물었다. 내 주변에 선교사님들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통계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선교사로 간 제자 가운데 1명은 파송 교회 후원이 50만원이었다. 또 선교사의 꿈을 키우고 후련 받았지만 1명의 제자는 최소 경비인 120만원 후원을 받지 못해서 결국 선교지로 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선교사님들이 현장에서 버틸 수 있도록 파송 선교사님은 150-250만원선(지역마다 다르겠지만)으로 후원하고 협력 선교사님들에 대한 후원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협력선교사님들은 20-50만원으로해서 선교지에서 버틸 수 있는 점 더 건강한 구조가 도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선교사님들도 후원교회를 파송교회와 더불어 협력교회가 많은 것이 더 좋다고 느껴진다. (파송1+ 협력 3~5. 개인 후원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교회의 300만원 후원보다 10교회의 30만원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짐을 같이 지어주고 중보기도가 함께 가기 때문이다. 청년부를 섬길 때도 청년이 선교지에 갈 때 30만원을 후원한다면 5천원 후원자 20명 10만원, 1만원 후원자 20명 20만원식으로 전체 30만원 후원을 하는 방식으로 섬기곤 했다.
만일 한 교회가 과중에게 섬기다보면 대부분 재정적인 시험에 들기 쉽다. 그래서 여러 교회들이 점점 선교 후원의 부담을 느끼기에 버티고 버티다가 후원을 중단하곤 한다. 또 지구촌 시대가 되고 SNS시대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정보를 듣고 투명성과 현장의 선교가 확인되지 않으면 후원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수십년 동안 매월 200-300만원의 재정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선교를 위하여 후원을 해 오셨다. 은퇴를 하시면서 이제는 그 후원을 줄여야 됨을 아쉽고 안타까워 하셨다. 너무 깊은 감동이 되었고 또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숨겨진 축복의 사람들로 인해 세워진다고 믿는다. 곳곳에서 보석 같은 분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여전히 한국교회도 선교지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청년사역연구소, 이상갑목사
P.S. 선교사든 목사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재정은 성도들의 눈물, 피, 땀임을 기억해야 한다. 혹시라도 그릇된 인식이나 잘못 사용된 정보가 있으면 경청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