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경행을 하였습니다.
어둠이 짙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아직 북두칠성과 오리온자리가 보입니다.
여름 같았으면 저 별들은 밝음 속에 묻혀야 하는
시각입니다.
실내 체육관을 두 바퀴째 돌았습니다.
앞에 보이는 단풍나무들과,
그리고 거대한 운동장 둘레의 가로등 불빛..
이 모든 것이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아는 마음을 안다,
아는 마음 안에 다 들어 있다라는 이해가
생겨났습니다.
저번에 농협마트에서 경험했던 '보이는 것'이
온통 다 사띠였다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오늘 아침에 좀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생각하는 것,
촉감, 느낌 등등 모든 것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 안에 다 있다』
일어나는 마음을 잡아서 보는 것,
네, 일어나는 마음을 잡아서 보지 않으면
번뇌에 먹히고 말지요.
일어나는 마음을 잡아서 보려면 아는 마음을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일어나는 마음과 그것을 아는 마음이 항상
함께 해야만이 일어나는 마음을 잡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더 많이 적용하고 확인해 볼 예정입니다.
_(답 글)_
언젠가 쉐우민 센터내 경행대에서 경행 중이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알아차림이 노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만큼 걷고 있을 때 바로 눈앞에 보이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다 사띠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길게 드러누운 풀잎파리들도 사띠로 보였습니다.
인터뷰 때, 사야도께서는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짧고 간단명료하게 '마음이 그런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왜-어떻게' 해서 그렇게 보였는가?는 자신이 스스로 답을 내고 얻어야만
됩니다.
사띠를 두라, 두라고 하니까 대부분 수행자들이 열심히 두기는 합니다만, 보이는 사띠, 보여지는 사띠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대상으로 보이는, 보여지는 사띠가 실은 더 힘이
있고 좋습니다.
두는 사띠에는 여전히 힘이 많이 들어가고 노력을 해줘야 되지만, 보여지는 사띠는 부드럽고
스무스하게 제가 그렇게 스스로 발현됩니다. 노력 없이 되는 사띠가 자연스런 사띠, 보여지는
사띠입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에 올바른 대상을 얻습니다.
알아차림의 가속도에 의해 있는 사띠, 되는 사띠, 할 줄 아는 사띠, 능숙한 알아차림으로 성장해가는 걸 지켜보기란 여간 재밌고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기 때문에 보여지며 알기 때문에 알아집니다.
나중에 ‘앎을 놓치지 않는 사띠’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이 얼마나 좋고 기쁘겠습니까?
윗글에서 ‘농협마트에서 경험했던 보이는 것이 온통 다 사띠였다’고 말했습니다. 보이는 것이
다 사띠로 보여지기 까지는 ‘어떻게-왜’가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단계별로 다양합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점진적으로 올라가다보면 어느 새 훤히 다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_(20201031 깊어가는 가을 날 오후 K수행자의 카톡메시지를 읽고 나서..사사나 스님)_
첫댓글 _()()()_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