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2월 11일(화)■
(예레미야 14장)
13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망함이라
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읍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알지 못하는 땅으로 두루 다니도다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묵상) ◇ 어떤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인가?
지금 백성들은 오랜 가뭄과 기근으로 고통 속에 빠져있다. 이런 백성에게 희망을 던지고, 위로를 주고 있는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거짓선지자라니!
도대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를 기준으로 나를 기쁘게 하는지 아닌지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건방진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미혹되기 십상이다. 참과 거짓은 오직 기준이 하나다.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아닌지이다.
14절에서 거짓선지자들의 예언을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로 나누어서 알려주신다.
첫째는 거짓 계시다. 이것은 미혹의 영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존재다.
둘째는 점술과 헛된 것이다. 이것은 카드나 주사위나 여러 도구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것으로서 단순히 확률게임에 불과하다.
세째는 자기의 마음의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소위 선지자를 자처하며 예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번째 유형에 속한다.
이들의 가장 큰 죄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악을 행했는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지도 않으셨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기 말에 권위를 부여한 명의도용죄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지옥이 본래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인데(마 25:41) 마귀의 사자들이란, 거짓 선지자가 포함된다(계20:10).
거짓선지자의 여부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주님께서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7)고 하셨다.
열매란 종교적으로 열심을 내게 하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혹이란, 내가 예수님을 붙잡지 않고 엉뚱한 것을 붙잡고 내 열정을 엉뚱한 곳에 투자하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믿기 전에는 그의 지도자들의 말만 믿고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이고 그들을 잡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은 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그는 주님의 은총을 받아 회개하고 위대한 사도가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으로 섬김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자매는 기도원에 갔다가 소위 예언자라는 사람을 만나서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예언을 받고는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았다. 자식이 조금만 아파도 자기가 예언에 순종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고, 몸이 조금만 아파도 거기에 연결해서 생각했다. 결국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서 나이 오십이 되어서 어렵게 결단을 내려서 신학교를 가고 안수받아 목사가 되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그 자매는 목사가 되면 안될 사람이었다. 성경은 그것에 대해 분명히 교훈하고 있을 뿐더러 그 자매는 목자나 교사의 은사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마귀가 거짓예언으로 사람을 농락하는 것은 다반사다.
사람이 미혹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확고하게 붙잡지 않고, 그 마음이 바닷물에 요동하는 배처럼 늘 흔들리기 때문이다. 올바른 복음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확신가운데 굳게 서야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신령한 척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욕심과 야망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 명의도용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 진정한 선지자란 어떤 자인가?
17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거짓선지자들과는 전혀 다른 예언을 전하라고 시킨다. 평강을 외치지 않고 오히려 칼과 기근으로 망할 것을 말하라고 하신다. 이것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있을까? 예레미야라고 백성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목이 메게 하는 고구마 중에 반고구마같은 선지자였다. 그래서 선지자 중에 가장 불쌍한 선지자가 예레미야다. 단 한번도 백성들에게 대접받지 못하고 단 한번도 따뜻한 말을 들어보지 못한 선지자다. 벌레처럼 취급받고, 가는 곳마다 욕을 먹었으며 매 맞고 옥에 갇힌 선지자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라고 하시니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예언자들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 예레미야의 기도
19절부터는 예레미야의 기도다. 백성들이 그렇게 자신을 핍박하고 미워해도 예레미야는 여전히 백성들을 위해 기도한다. 예레미야는 자기 자신이나 백성들의 '의'를 의지할 수 없었다. 온통 죄와 허물뿐인데 무엇을 내밀면서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돌아보아주실 것을 간구한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이러한 기도는 자기 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품성과 하나님의 의를 의지한 기도다. 철저하게 겸비한 자의 기도이며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만을 간구하는 겸손한 자의 기도다.
주 예수님, 조금만 방심해도 율법적이 되며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의 옛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