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2장 제물론(齊物論) 13절
[본문]
지금 또 여기에 한 가지 이론이 있다고 하자. 그것이 이와 같은 것(밝은 지혜)인가 이와 같지 않은 것인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같은 것과 같지 않은 것이 모두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곧 궤변)과도 다른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한 번 얘기해 보기로 하자.
시작이라는 것이 있다면 일찍이 시작되지 않았던 그 이전도 있을 것이다.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면 일찍이 있고 없는 것도 없었던 그 이전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없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때에도 있고 없는 것 중에 과연 어느 것이 있고 어느 것이 없는지는 알지를 못한다. 지금 내게는 이미 이론이 있다. 그러나 내가 전개한 논리 중에 과연 이론이 존재하는 것일까, 과연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를 알 수가 없다.
[해설]
장자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이론(존재론, 우주론, 형이상학)은 시비를 가릴 수 없음을 이번 절에서 말하고 있다. 그 예로서 시작 이전의 존재를 들고 있다. 어떤 형태로 있든지 있는 것이 시작되기 전에는 없었다. 그러면 없음은 어디서 생겼는가? 없음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는가 무엇인가가 있었는가? 무엇인가 있었다고 해도 이론이고, 무엇인가 없었다고 해도 이론이다. 두 이론 중에 어느 것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노자 『도덕경』 20장
[본문]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왜냐하면 근심은 구분 짓는 일에서 생기는데 학문은 바로 구분 짓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분 짓는 일은 긍정(是)과 부정(非)을 분명히 가려서 중간을 없애는 것이다.
실재세계에 있어 긍정(唯)과 부정(阿)이 서로 떨어짐이 얼마이며, 가치세계에 있어 좋다와 싫다가 서로 떨어짐이 얼마이겠는가. 실제로는 이 두 세계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학문은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바를 두려워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학문이 허황하게도 아직 진리의 끝자락인 핵심에 이르지 못했는데도 진리인 것으로 인정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학문을 지닌 뭇 사람들은 밝게 웃으며 큰 소를 잡아 잔치를 하는 것 같고 봄철에 누대에 오르는 것 같은데, 나만 홀로 밝게 웃을 일이 일어날 조짐조차 없는 곳에 머무르는구나. 이것은 마치 갓난아이가 아직 웃지 못하는 것 같고, 지쳐 있는데도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다. 못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 홀로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나는 어리석은 마음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혼란스럽구나! 구분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세상의 물정에 밝은데, 나 홀로 어둡구나. 세상 사람들은 눈치가 빠르고 세련되어 있지만, 나 홀로 눈치가 없고 세련되지 못하구나. 담박하기 바다와 같고, 바람소리가 멎지 않는 것 같다.
뭇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만 홀로 쓸모없이 둔하며 어리석은 것 같다. 똑똑하게 남보다 앞서려는 다른 사람과 달리 나 홀로 먹는 것을 해결해주는 식모(食母)만 귀하게 여긴다.
[해설]
학문은 구분짓는 일에서 시작된다. 노자는 구분짓는 일은 현상에 불과하며 실재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뭇사람들은 구분짓는 일을 잘하면 더욱 똑똑한 것으로 알고 있다, 뭇사람들은 구분을 지을 뿐만 아니라 차별까지 하면서 잘난 위치에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거기에 비해 노자는 오직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만족하는 자신을 세상 사람들은 쓸모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구분지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구분지어야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분지음은 실재의 세계를 드러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실재(實在, 실제로 있는 것)의 세계는 구분지을 수 없고, 그 실재의 현상(現象,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구분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분지을 수 없는 세계를 노자는 현(玄)의 세계라고 한다. 노자는 이 현의 세계야말로 진정한 존재의 세계라고 『도덕경』1장에서 말하고 있다.
〈이어지는 강의 예고〉
▪575회(2024.04.16) : 장자 해설(20회), 이태호(통청원장/철학박사/『노자가 묻는다』 저자 ▪576회(2024.04.23) :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21회), 이태호(통청원장/철학박사) ▪577회(2024.04.30) :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22회), 이태호(통청원장/철학박사) ▪578회(2024.05.07) : 장자 해설(21회), 이태호(통청원장/철학박사/『노자가 묻는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