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 인간 정신의 순례자
황경순(시인)
이향아 시집 『순례자의 편지』
시문학사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사공아
떠날 배에 그를 싣고 돛대를 올리다니
대동강이 얼마나 넓은지 몰라서 그러느냐
떠날 배에 그를 싣고 삿대를 젓다니
대동강이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그러느냐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텐데
네 각시 너 없을 때 바람날 텐데
그렇게도 준치코치 분간할 줄 모르느냐
사공아, 너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냐
뱃삯 받고 태우고 뱃삯만큼 건너는 일
실어 가고 오는 것이 네 일이라 하지만
떠나지 못하리, 떠날 배를 막으리
세상 물절 모르는 철없는 사공아,
그래도 배는 가네 그 사람을 싣고 가네.
-「나를 두고 떠나는 배」 전문-
이향아 시인이 시집 『순례자의 편지』를 상재했다. 이번 시집은 고전시가를 시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읊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공무도하가, 처용가, 정읍사, 정과정곡, 청산별곡, 서경별곡, 제망매가, 동동, 헌화가, 사미인곡, 안미가, 찬기파랑가” 등 향가, 고려가요, 가사 등 12편을 다루어 12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마다 ‘물건너는 노래-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춤을 추는 달밤의 노래-처용가處容歌’ 등 ‘~노래’ 라는 말과 고전시가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 노래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대로 민족의 노래라는 느낌이 강하고, 원래 고전시가를 재해석한 노래임을 밝히고 있다.
시인은 서문에서 시집 제목을 “순례자의 편지”라고 하는 이유를 “순례의 대상은 우리 고전시가와 그 작자들이 정신이며 순례자는 우리 시대의 독자들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들 시인의 마음에 잠입하여, 혹은 뜨겁고 절절하며 혹은 달관한 듯 의연한 심경에 젖어들곤 합니다.” 라고 하여 우리 고전 시가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피력하고 있다.
이 시는 5부, ‘허무한 사랑의 노래-서경별곡西京別曲’ 에 수록된 제3편이다. 서경별곡은 대부분 알고 있듯이 고려가요이고 이 시는 3연에 해당된다. 어느 가수가 부른 “떠나가는 배”를 좋아하는데, 그 곡에 이 서경별곡을 붙여서 불러보니 애절한 마음이 들었다. 이별만큼 허무한 사랑도 있을까? 특히 고려가요는 글자수도 노랫말 같고, 각 행이 끝난 후 후렴구가 있어 각 행의 의미를 더 절절하게 표현하는데, 님을 싣고 떠나는 배를 원망하고 막으려고 간절히 소망하지만, 그예 배는 떠나고 만다.
오래 전 전공으로 배웠지만 잊고 지내던 12편의 고전시가에 대해 생각도 해 보고, 시공을 초월한 시에 대한 감정이입이 되어 아련한 슬픔이 몰려들었다. 이별의 아픔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시대를 불문하고 아프고 절절하다. 고전시가의 매력에 빠져들어 다시금 읽어보게 해준 시인에게 감사드리며, 모든 독자들도 우리 시가를 다시 찾아 돌아보고 시대를 넘나드는 신비한 세계에 빠져드는 인간 정신의 순례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서경별곡西京別曲의 후렴구가 입안에 자꾸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