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린 밤, 건율(乾栗), 황율(黃栗)과 동의보감(東醫寶鑑), 의서(醫書)와 사서(史書) 기록
자료정리, 장락산인(長樂山人 010-9420-9632) 다송원 천연발효식초, 토종꿀
------------------------------
#1. 말린 밤, 건율(乾栗), 황율(黃栗)에 대한 동의보감(東醫寶鑑) 사서(史書) 기록
#2. 세종 지리지(世宗地理誌)
#3. 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2월 7 丁丑 5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4. 세종 지리지(世宗地理誌) II
------------------------------
#1. 말린 밤, 건율(乾栗), 황율(黃栗)에 대한 동의보감(東醫寶鑑) 사서(史書) 기록
사진 밤[건율(乾栗), 황율(黃栗)] 1-4
------------------------------
말린 밤, 건율(乾栗), 동의보감(東醫寶鑑), 이광연 한의학박사(2018,05,04)
1)율자(栗子, 밤)는 성질이 따뜻하고(溫) 맛은 시며(酸) 독이 없다
2)기(氣)를 도와주고 위장을 든든하게 하며 노화 지연
3)율피(栗皮, 밤속껍질), 부(扶), 꿀에 개어 바르면 피부 수축, 주름살 편다, 항산화
4)율모각(栗毛殼, 밤송이) 반위(反胃, 음식물 토하는 병증), 소갈증, 독종(毒腫) 치료
5)율설(栗楔, 3알중 가운데 톨) 힘줄 뼈 풍 아픈 것, 나력(瘰癧, 림프절 종양) 치료,
6)비위(脾胃) 위기능 촉진, 설사 증상완화, 소화기, 소화력 증진,
7)신장(腎臟)기능, 허리, 무릎, 다리 힘이 없을 때, 기능강화, 만성 허약증 기침,
8)오과차(五果茶) 밤, 대추, 은행, 호두, 생강 다섯 가지 차, 폐 기침, 가래 완화
------------------------------
밤쌀[건율(乾栗), 황율(黃栗)] 만들기
1)햇밤 말리기를 시작 합니다, 햇볕에 바싹 말려서
※건조기로 바싹 말린다(1주)
2)기계로 껍질을 깐다(마대자루에 넣고 밟습니다, 절구에서 찧는다)
3)밤쌀[건율(乾栗), 황율(黃栗)]선별 작업
4)밤쌀, 건율(乾栗), 황율(黃栗)
------------------------------
밤나무 위패(位牌)
밤나무 신주(神主)
사진 밤나무 위패(位牌) 1, 밤나무 신주(神主) 1-3
※밤나무, 줄기와 뿌리, 형태 유지, 자손들 조상 뿌리 상징 의미,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 호號, 성씨, 先生 등 극히 간략
※밤나무 신주(神主), 위패(位牌) 만들어 사용(왕실 및 민간),
※신주(神主), 사대봉사(四代奉祀), 4대손 까지 사당 모시고 산소에 묻는다,
------------------------------
#2. 세종 지리지(世宗地理誌)
공물(貢物) 황밤 충청도(忠淸道)
전라도(全羅道) 부세(賦稅)
누런밤(黃栗)이 황율이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조선(朝鮮)충청도(忠淸道)와 전라도(全羅道)에서 자라는 과수열매인데 공물(貢物)로 바쳐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황율(黃栗)에 대해 명확하게 잘 모른다
실제로 세계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조선시대의 모든 생물학적 기록이 이렇듯 왜소화된 것은 물론이고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쪽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이 황율 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생물개체구분에서 세종지리지에 기록된 명칭과 더불어 디테일한 개체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한반도 역사가 지니고 있는 역사사실의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
역사기록 정보소통이 가능한 실체를 파악함에 있어 매번 이러한 난해한 문제에 봉착되고 있지만 세종지리지로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모든 것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엄연히 일반 백성들이 지방관리를 통하여 황율(黃栗)을 임금에게 공물(貢物)로 조공한 사실에 기초할 때 분명한 것은 이 누런 밤, 황율(黃栗)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방 약제 말린밤 건율(乾栗)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황율을 어떤 밤일까?
일반적으로 밤(栗)이라고 하면 견과의 일종으로 가시가 난 송이에 싸여 있고 갈색 겉껍질 안에 얇고 맛이 떫은 속껍질(보늬 the inner skin)이 있으며 날것으로 먹거나 굽거나 삶아서 먹는데 생물학적으로는 참나무과의 낙엽(落葉) 활엽(闊葉) 교목(喬木)으로 설명된다
특히 밤(栗)은 전통적으로 제사상에 올려지는 제물(祭物)의 하나이기도 한데 지방과 집안마다 제사나 차례상을 올리는 풍습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꼭 제사상에 오르는 것이 바로 껍데기를 제거한 깎은 밤이다
물론 식용이 가능해야 한다. 옛 조상님들이 밤을 제물로 사용하는 이유를 보면 밤나무의 씨앗(열매)이 땅 속에서 위아래로 줄기와 뿌리를 자라게 하면서도 형태를 유지한다는 특성을 신성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나무 밑에 생밤인 채로 오래오래 그냥 달려있는 것처럼 자손들이 조상의 뿌리를 기억하라는 의미가 있고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옛 부터 밤나무 열매를 까서 각을 쳐 공손하게 제사상에 올렸다는 사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그렇듯 어려운 것이 아님도 알 수가 있다. 조율이시(棗栗梨柿)의 진설차례에서 왼쪽편에서 첫째는 후손들의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대추이며 이어 두번째로 놓이게 되는 것이 밤이다. 여기에 끝이지 않고 또한 윗 조상님들은 땅속에서 형태를 유지하는 상징성의 밤나무로 된 위패位牌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알려지며 밤껍질은 자식을 보호하는 부모가 되고 나중에 자라 열매가 열리면 자식들이 독립하여 삶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도 큰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밤에는 우리가 한반도 역사사실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밤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하나의 깍정이(각과殼果)
:밤송이 속에 씨알이 세 톨이어서 3정승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의미한다고 하는 사실과 더불어 밤나무의 종(種)에 따라 밤 깍정이 속에는 1~3 혹은 5개의 열매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며 때문에 밤이라고 하면 무조건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깍정이(殼果:밤송이 속에 밤톨이 일률적으로3 개가 있는 것도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세종지리지 뿐만 아니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찾아보았는데 일반 밤(栗)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일본밤(日本栗)이 재배되었고 전라도(全羅道)익산군(益山郡)에는 삼률(三栗)이라고 하는 밤나무, 특히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에는 적률(赤栗)과 가시율(加時栗)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님들은 황율(黃栗)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을까? 마찬가지로 제물(祭物)로 사용했다
------------------------------
#3. 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2월 7 丁丑 5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예조에서 산릉의 개토·참토 제의(開土斬土祭儀)를 제정하여 아래와 같이 계하였다
禮曹啓開土 斬土祭儀曰:
次設祭器實饌具 籩八在左, 爲三行右上,
【第一行, 形鹽在前, 魚次之第二行, 乾棗在前, 黃栗 榛子次之第三行, 菱仁在前, 芡仁 鹿脯次之。】 豆八在右, 爲三行左上。 【第一行, 韭菹在前, 醯醢次之第二行, 靑菹在前, 鹿醢 芹菹次之第三行, 兔醢在前, 笋菹 魚醢次之。】 簠簋各二在籩豆間, 簠在左, 簋在右,【簠實以稻粱, 梁在藉) 〔稻〕前, 簋實以黍稷, 稷在黍前。】 爵在簠簋前設尊於神位東南, 北向, 又於東南設盥洗二, 北向。 【獻官洗在東, 執事洗在西。】
제기祭器)와 찬饌)을 진설陳設)하는데, 변籩) 여덟 그릇을 왼편에 석 줄로 놓되 오른편으로부터 놓는다. 【첫 줄은 형염(形鹽)을 앞에 놓고, 생선포를 다음에 놓으며, 둘째 줄은 마른 대추를 앞에 놓고, 황률(黃栗)과 개암[榛子]을 다음에 놓으며, 셋째 줄은 능인菱仁)을 앞에 놓고, 검인芡仁)과 녹포鹿脯)를 다음에 놓는다. 】 두豆) 여덟 그릇은 오른편에 석 줄로 놓되, 왼편으로부터 놓는다. 【첫 줄은 달래 김치를 앞에 놓고, 젓갈을 다음에 놓으며, 둘째 줄은 무우 김치를 앞에 놓고, 사슴 젖과 미나리 김치를 다음에 놓으며, 셋째 줄은 토기 젖을 앞에 놓고, 죽순 김치와 생선 젖을 다음에 놓는다. 】 보簠)·궤簋) 각 두 그릇은 변과 두 사이에 놓되 보를 왼편에, 궤를 오른쪽에 놓는다. 【보기에는 벼와 기장[粱]을 담는데, 기장을 벼 앞에 두며, 궤에는 메기장[黍]과 피[稷]를 담는데, 피를 메기장 앞에 둔다. 】 작爵)은 보와 궤의 앞쪽에 놓고, 준소樽所)는 신위 동남쪽에 북향으로 진설하고, 또 동남쪽에 북향으로 관세(盥洗)를 두 곳에 설치한다. 【헌관의 관세는 동편에, 집사의 세는 서편에 둔다. 】 위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을 보면 이 황율(黃栗)을 오례의五禮儀) 즉 길례吉禮)·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嘉禮) 중에 천天)·지地)·신명神明))에게 올리는 제사가 주축인 길례의식(吉禮儀式에서 친협 종묘의(親祫宗廟儀)
※형염(形鹽), 서해 남양만 일대 개펄 염전에서 바닷물을 햇볕에 말려 소금우물[鹽井]에 모은 다음에 이것을 솥에 넣고 끓여서 소금 결정체를 만들었다. 왕실의 제향에 사용할 형염(形鹽)은 소금으로 범의 모양을 만들어서 대광주리로 만든 변에 담아서 진설하였다
협향종묘 섭사의祫享宗廟攝事儀등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보이며 진설에는
둘째 줄에 마른 대추를 앞에 놓고 황률과 개암(진자榛子)을 다음에 놓는다고 되어 있다.
친협 종묘의(親祫宗廟儀)이라 함은 임금이 조상의 신주(神主)를 천묘(遷廟)에 함께 모셔 제사지내는 것이며 협향종묘 섭사의祫享宗廟攝事儀)는 임금이 3년에 한 번씩 조상의 신주를 모두 태조(太祖)의 사당에 모셔 놓고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이렇듯 조선땅 충청도(忠淸道), 전라도(全羅道)에서 자생하거나 산출되어 나라의 부세로 백성들이 임금에게 공물로 바치게 한 이 황율을 우리가 잘못알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서두에서 주지하였듯이 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밤나무에서 열매가 맺는 일반 밤(栗)이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에 자라고 있는 밤나무는 일단 개량된 밤나무로 변형된 일본밤나무日本栗:Castanea crenata Siebold & Zucc.)이거나 중국밤나무 혹은 평양밤나무板栗:Castanea mollissima Blume)라 하는 동양종(東洋種)으로 밝혀진다 즉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자생한 재래종(在來種)이 아닌 변형된 종(種)으로써 한반도에 이식(移植)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
#4. 세종 지리지(世宗地理誌) II
경기(京畿) 토공(土貢)밤[栗]
충청도(忠淸道)
공주목(公州牧) 은진현(恩津縣) 토의(土宜)밤나무
청주목(淸州牧) 청안현(靑安縣) 토의(土宜)밤[栗]
강원도(江原道) 회양도호부(淮陽都護府) 이천현(伊川縣) 토의(土宜) 밤[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기(京畿) 광주목(廣州牧)【토산】밤[栗]
경기(京畿) 여주목(驪州牧) 밤톨이 주렁주렁. 홀로 찾아감을 내 일찍 기억하니, 금탄환(밤알)이 땅에 떨어질 때로세.” 하였다.
경기(京畿) 과천현(果川縣)【토산】밤[栗]
충청도(忠淸道) 연산현(連山縣)【토산】밤[栗]ㆍ
경상도(慶尙道)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토산】 밤[栗]
율도추연(栗島秋煙) “누 앞의 10리 앵무주(鸚武洲)에는, 밤 꽃이 눈 같고 향기 넘치네. 늘어진 밤송이 별같이 많다. 앞 교외에 밤나무 숲이 있어 몇 리에 가득 찼는데, 해마다 수확이 매우 많고 그 품질 또한 좋아서 세상에서 밀율(密栗)이라고 부른다.”
경상도(慶尙道) 청도군(淸道郡)【토산】밤[栗]
경상도(慶尙道)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토산】밤[栗]
경상도(慶尙道)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일본 밤[栗] 고려 원종(元宗) 때에 조양필(趙良弼)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밤 열매 전라도(全羅道) 익산군(益山郡)【토산】삼률(三栗).하나의 밤송이 속에 알갱이 셋이 들어 있는 밤일년에 세번 꽃이 피고 결실을 했다는 삼률(三栗)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구실잣밤나무(Castanopsis sieboldii, Itajii Chinkapin 또는 Itajii)열매, 밤 적률(赤栗)ㆍ가시율(加時栗) 가시나무의 열매, 두어 종류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경도(京都) :신주(神主)의 재목인 밤나무 생산지에 경차관(敬差官)ㆍ범철관(泛鐵官)을 보내는데, 경상도에는 식년(式年)마다 한번씩 채취하며, 충청도ㆍ전라도는 식년을 건너서 한 번씩 채취하고, 강원도는 국가 수요가 부족하면 간혹 별도로 베어 취하기도 한다.경상도(慶尙道)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시내 양쪽 가에는 밤나무 천여 그루가 있어서 층층의 푸르름이 어지럽게 펴지고 있으며, 정자 아래에는 벼 논과 보리밭이 있어서 봄이면 푸른 싹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누런 구름 같은 벼가 물결친다. 경상도(慶尙道) 진주목(晉州牧):대체로 산 밑에는 감과 밤나무가 많고, 조금 위에는 모두 느티나무이다. 황해도(黃海道) 우봉현(牛峯縣):"국청로(國靑路) 북쪽엔 밤나무도 많구나. 한 차례 더운 비 개고 나니, 가는 곳마다 훈풍(薰風)에 벌써 보리가을일세.” 하였다.
위 사서(史書) 세종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는 조선초기에 밤이나 밤나무가 자랐던 곳의 지명들을 알려주고 있고 그곳에서다. 먼저 세종지리지에서는 밤이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의 공주목과 청주목에서, 그리고 강원도(江原道)의 회양도호부 이천현에 밤 또는 밤나무가 자랐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기(京畿)에는 광주목, 여주목, 과천현, 충청도(忠淸道)의 연산현, 경상도(慶尙道)의 밀양도호부, 청도군, 선산도호부, 창원도호부, 전라도(全羅道)에는 익산군과 제주목에 밤 또는 밤나무가 자랐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신주(神主)의 재목을 경차관(敬差官)과 범철관(泛鐵官)등의 관리들을 보내 채취하도록 하였는데 경상도(慶尙道), 충청도(忠淸道), 전라도(全羅道), 강원도(江原道)를 가르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경상도(慶尙道) 안도대도호부, 진주목, 황해도(黃海道) 우봉현에 국가가 밤나무를 계획적으로 채취하거나 관리하도록 하고 있었음도 알 수가 있다. 조선(朝鮮) 시대에, 지방(地方)의 토산물(土産物)을 바치는 공물(貢物)인 토공(土貢)이라 하고, 그 지방 토질(土質)이 곡식(穀食)이나 과실(果實)나무를 심는데 알맞다는 토의(土宜)와 지방(地方)의 산물(産物)인 토산(土産)등으로 표시되고 있는데 정확한 문어(文語)는 토의(土宜)가 가장 토착적인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즉 토질이 토산을 말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주로 토의(土宜)는 세종지리지가 말하고 있는 지방으로 충청도(忠淸道)와 강원도(江原道)이다.
[이하 생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