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4월10일(금)■
(예레미야 38장)
1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4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5 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
6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
7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10 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
12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묵상/렘 38:1-13)
◇ 우유부단한 시드기야
예레미야는 성문에서 붙잡혀서 요나단의 집에 있는 뚜껑 씌운 웅덩이에 갇혔었다. 그리고 시드기야 왕의 선처로 거기서 나와서 보다 환경이 나은 감옥 뜰에 갇히게 되었다. 그런데 신하들이 통치적 차원에서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고 건의하자 시드기야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5)
시드기야의 허락 하에 신하들은 예레미야를 현재 있는 감옥 뜰에서 가장 가혹한 곳인 말기야의 웅덩이에 집어넣는다. 물도 없고 무엇을 건네줄 수도 없는 깊은 웅덩이로서 이것은 결국 물없이, 굶겨죽이려는 심사다.
시드기야는 한마디로 왕으로서의 주관도 없고, 원칙도 없는 자였다. 그는 하나님도 두려워했고 , 사람들도 두려워했다. 예레미야 앞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듯 했으나, 신하들 앞에서는 그들의 반발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들었다. 양쪽을 만족시킬 방법은 없건만, 그는 끊임없이 우왕좌왕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 그렇게 하려면, 이 사람 앞에서는 이 사람 말을 듣고, 저 사람 앞에서는 저 사람 말을 들어야 한다. 우유부단하고, 변덕스럽고, 원칙없는 자가 된다. 오로지 사람들의 인기만을 추구하는 이런 모습은 거짓선지자들의 특징이다. 그런데 왕이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한심하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고 하셨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 우리는 오직 진리를 따르겠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칭찬만을 추구하면 우리는 시드기야처럼 우왕좌왕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일까에 초점을 맞추면 예레미야처럼 죽을 위험에 처해서도 오로지 한가지 메시지를 전하며 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
◇ 구스인 에벳멜렉
구스는 현대의 에디오피아로 알려져있는 나라다. 하나님께서도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23)하신 것을 보면 알수 있듯이 구스인은 피부가 검은 흑인이다. 그런데 이 이방인이자 흑인인 내시가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를 염려했다. 그가 시드기야보다 더 나은 자다.
그가 시드기야에게 예레미야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자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웅덩이에서 끌어낼 것을 허락했다. 에벳멜렉은 왕궁 곳간 밑 방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와서 그것을 예레미야에게 먼저 건냈다. 그리고 밧줄로 올릴 때 밧줄을 걸칠 겨드랑이에 그것을 대라고 했다. 심히 쇠약해진 예레미야를 그냥 밧줄에 끌려올리면, 그의 몸이 심하게 멍이 들거나 다칠 우려가 있는 것을 배려한 것이다. 참으로 사려깊은 자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려깊은 구스인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스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붙이우지 아니하리라 내가 단정코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9:15-18)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에게 물 한그릇만 주어도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막 9:41). 에벳멜렉은 이 사려깊은 행동으로 그의 목숨을 건졌다.
바이러스 사태로 온 세상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수입절벽 속에서 어떤 이는 예레미야처럼 굶주리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에벳멜렉처럼 사려깊은 형제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큰 위로다. 형제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도울 때,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다윗. 시 4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