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봄호 문학과창작 좋은시집 좋은 시 전윤호
돌아옴과 떠남의 시의 근황과 시인의 근황
박해림(시인)
전윤호 시집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
‘깊은 밤/ 시가 나를 쓴다/ 그는 잠들었다고/ 세 끼 밥 다 먹고/ 한 봉지 쓰레기 만들며/ 오늘도 잠들었다고/ 탁자엔 치우지 못한 술병과/ 무고한 동물의 살들/ 자동으로 돌아가는 보일러는/ 알아서 불을 피우고/ 혼자 떠드는 라디오에서/ 역병으로 힘든 자들이 기도하는데/ 깊은 밤/ 시가 나를 쓴다/ 만들기만 해 놓고/ 그는 잠들었다고’ 시 「근황」(전문)에서 시인은 ‘나’를 무연히 들여다본다.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외로워하고 있다. 아니, 외로워하고 싶어 한다. 이번에 펴낸 시인의 시집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은 시집 전반에 골고루 펼쳐놓은 ‘외로움’과 ‘기다림’ 그리고 ‘비움’의 시학을 맛볼 수 있다.
시인은 1991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순수의 시대』『연애소설』『늦은 인사』『봄날의 서재』『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등을 펴냈다.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편운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가 가진 시의 무게와 역량을 확인하게 한다. 이번에 펴낸 시집은 그의 일곱 번째의 시집으로 시력 30년에 그리 많은 시작 활동도 아니다. 그렇다고 과작도 아니다. 하지만 잠시도 시작의 끈을 놓은 적이 없는 것은 알겠다. 시집을 읽으면서 확인한 것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항상성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 의한 일상을 위한 삶을 살아가거나 진득한 삶의 자리에 발걸음을 거두거나 모른 척하며 딴눈을 판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발걸음을 둔 곳에서 치열한 내적 정서의 지향을 위한 모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시인의 시작에 전념한 시인의 열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가 추구하는 세계에 가 닿기 위해 부지런할 뿐 아니라 작품을 통해 드러낸 세계 인식의 탐색 경로가 촘촘하기 그지없다는 데서 시인의 현황을 확인하게 한다. ‘가을엔 춘천에 있었고 겨울엔 강릉에 있었다./ 어디에도 너는 없고 폭설만 내렸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는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봄은 정선 시장에서 나고,/ 서울로 끌려가 여름을 견디면/ 몇 해 더 살 수 있을까?// 밤마다 머리에서 글자들이 시든다.’의 <시인의 말>이 그것이다.
누가 어깨를 친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데
지나온 길이 두려운데
안목항 커피 집에서
큰 창 열고
바다를 보았던가
파도를 보았던가
덜컥 네가 나타난다
나는 갈매기처럼 지쳤는데
덜컥 구름이 물들고
해가 뜬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겠다
-「덜컥」 전문
너 아직 거기 있니
날 저물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데
불탄 빈집만 남은 공터에
너 아직 남아 있니
셀 수 없는 가을이 다시 와
문득 깨는 한밤
머리맡에 흐르는 울음소리
잘못하지 않았는데 죽으라 하고
억울해 싸우다 따돌림당하는
참 단순한 놀이들
저물녘 모두 불려 갈 때
아무도 호명하지 않은 아이
너 아직 거기 있니
금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나방처럼 밤 골목을 바라보는
너 아직 거기 있니
-「너 아직 거기 있니」 전문
시집 전반에서 펼쳐지는 시 세계는 ‘자아 찾기’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시인은 걷고 또 걷기를 멈추지 않으나 문득 일상의 한가운데서 잠깐 멈추어 자책하기도 하고 먼눈을 하는 것으로 전환점을 만든다. 돌아오기 위해서 달려갔다가 되돌아오는 형국이다. 시 「덜컥」에서 ‘누가 어깨를 친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데/ 지나온 길이 두려운데’라는 고백은 걷는 것이 두려우나 앞으로 걸을 수밖에 없음을 내포하고 있다. ‘창’ 안에서 바다를 보는 행위도 그렇다. 밖에서 볼 수 있는 바다를 시인은 건물 안에서 보고 있다. 강릉의 커피 거리로 유명한 ‘안목항’에서의 바다는 시인에게는 또 다른 방향점의 기로라 할 수 있다. ‘바다를 보았던가/ 파도를 보았던가/ 덜컥 네가 나타난다/ 나는 갈매기처럼 지쳤는데/ 덜컥 구름이 물들고/ 해가 뜬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겠다’하며 앞으로 걷기 위한 모색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적 자아는 ‘나’를 마주하면서 시선은 딴 곳을 향하고 있다. 가야 할 곳을 알면서 가야 할 곳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가야 할 곳이기에 마땅히 닿아야 할 곳이기에 주저 없어야 하나 두려움에 잔뜩 휩싸여 있다. ‘너 아직 거기 있니/ 날 저물고/ 모두 집으로 둘아갔는데/ 불탄 빈집만 남은 공터에/ 너 아직 남아 있니’하고 자아에게 묻는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죽으라 하고/ 억울해 싸우다 따돌림당하는/ 참 단순한 놀이들’을 눈을 부릅뜨고 마주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저물녘 모두 불려 갈 때/ 아무도 호명하지 않은 아이/ 너 아직 거기 있니/ 금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나방처럼 밤 골목을 바라보는/ 너 아직 거기 있니’ 외치고 또 외친다. 묻고 또 묻는다. 시인은 자아를 벽에 밀어붙이면서 기어이‘나’를 확인하고자 한다.
전윤호 시인의 시집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은 ‘너 아직 거기 있니?’ 확인하며 끊임없이 자아 찾기를 한다. 종내에 가 닿아야 할 그가 추구하는 세계에 가 닿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나’를 위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