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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웨살리의 재앙
웨살리에 심한 가뭄이 들어서, 농작물은 모두 말라 죽어 아무것도 거두어들일 것이 없었고, 나무들도 열매를 맺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 나갔다. 그리고 뒤따라서 몹쓸 병이 유행하여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 갔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시체들을 치우는 일만 해도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고도 채 치우지 못한 시체들이 많았던 탓에 웨살리의 이곳저곳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대단했다. 이 악취는 다시 많은 잡귀들을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원한 맺힌 귀신들이 집안 가득 우글거리게 되어, 사람들은 흉년에 따른 굶주림과, 유행병의 위험, 그리고 잡귀의 공포에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시민들은 절망과 슬픔 속에서 의지할 무엇인가를 찾아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공회당에 모여 이에 대해 토론했는데, 이 같은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전 국민의 이름으로 큰 짐승을 잡아 제사를 올리는 한편, 당시의 유명한 여섯 종교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종교 의식을 행하며 설법을 듣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제안을 흡족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 한 지혜로운 사람이 나오더니 말했다.
“지금 라자가하에는 우리나라의 마할리 왕자님이 머물고 계시오. 그리고 그곳에는 위대한 스승 고따마 붓다가 계십니다. 그러니 마할리 왕자님을 통하여 라자가하의 빔비사라 왕께 승낙을 얻어 부처님을 이곳으로 모셔 오십시다. 그러면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재난과 액운은 다 사라질 것이며, 우리에게는 길이 평화와 번영이 찾아올 것이라 믿소.”
많은 사람들이 이 제안에 동의했다. 그래서 왕실의 제사장과 바라문, 그리고 다른 왕자들로 사절단을 구성하여 라자가하에 파견하여 부처님을 모셔오게끔 했다. 사절단은 먼저 빔비사라 왕을 찾아가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자세히 설명하고 부처님을 웨살리로 모셔 가려 하니 왕께서 협조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자 빔비사라 왕은
“당신들은 참으로 지혜롭소. 그러시다면 부처님께 가서 직접 허락을 얻도록 하시오.”했다.
이에 사절단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웨살리를 방문하시어, 자기들을 절망과 비참한 상태에서 구해 주십사고 청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고, 이번에 웨살리를 방문케 되면 많은 중생에게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시어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셨다.
부처님께서 웨살리를 방문하시기로 결정되자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은 라자가하에서 갠지스 강에 이르는 도로를 반듯하게 수리하고 새로 황토 흙을 깔아 길을 부드럽게 만드는 한편, 매 1요자나마다 부처님과 비구 일행이 하룻밤을 쉬어 갈 수 있도록 간이 숙박시설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처님을 맞을 왓지 국(웨살리는 왓지 국의 수도)에서도 이 같은 준비를 부탁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다 끝나자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여행을 떠나시라고 권했고,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장로를 비롯한 오백 명의 아라한 비구들과 함께 웨살리로 향하셨다.
라자가하에서 갠지스 강까지의 거리는 5요자나(1요자나는 약 20킬로미터), 갠지스 강을 건너는 데만 뱃길로 1요자나, 그리고 갠지스 강에서 웨살리까지는 3요자나의 거리였다. 부처님 일행의 호위는 빔비사라 왕이 직접 지휘하는 왕실의 군대가 맡았는데, 부처님과 비구 일행에게는 각각 일산과 수레가 따라서 행렬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하여 일행은 닷새째 되는 날 갠지스 강변에 도착했는데, 빔비사라 왕은 왓지 국의 왕자들에게 부처님께서 도착하였음을 통보했다. 그러자 웨살리 쪽에서도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을 보내드리는 것보다 더 장엄하고 정중하게 부처님을 맞았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릭차위 왕실에서 특별히 준비한 배에 오르시자 빔비사라 왕은 강물 속에 들어가 물이 그의 목에 차오를 때까지 배를 밀며 부처님의 뱃길이 무사하도록 기원하며 전송하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갠지스 강의 긴 뱃길 여행을 끝내시고 웨살리 쪽 강가에 도착하셨을 때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한 억수 같은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리하여 그동안 가뭄으로 인해 쌓였던 먼지가 씻긴 것은 물론, 말라 있었던 풀과 나무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 치우지 못하고 있던 시신과 많은 오물들이 전부 갠지스 강물로 쓸려 들어갔다.
갠지스 강가에서 웨살리 성까지는 3요자나로서 매일 1요자나를 가시는 부처님의 여행으로 3일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갠지스 강에서 출발하여 웨살리에 도착하실 때까지 3일 동안 비가 계속 내려서 웨살리 성뿐만 아니라 왓지 국 전체가 싱그럽고 밝게 되살아나게 되었다. 그러자 왓지 국의 국민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크게 감탄하여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부처님께 예배 공경을 올리는 것이었다.
부처님 일행은 마침내 웨살리 성에 도착하시어 특별히 마련된 곳에 머무셨다. 이때 삭까 천왕이 그의 권속을 거느리고 부처님을 뵙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그러자 온갖 잡귀들이 그를 피해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그 까닭은 삭까 천왕이 부처님을 뵙기 위해 내려오면서 잡귀를 물리치려고 위력 있는 야차들과 동행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부처님께서 곧 아난다의 비구 일행에게 보배경(http://cafe.daum.net/satisamadhi/8fL2/460)을 설법하시고, 아난다로 하여금 각 성문을 돌면서 이 경을 외고 성수를 뿌리게끔 이르셨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이 보배경은 모든 재난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며 삼보의 위신력을 나타나게 하는 경이었다. 비구 아라한들이 이 경을 일념으로 독송하자 괴질을 앓거나 유행병에 걸린 사람들은 심신이 상쾌해지면서 병이 깨끗이 낫게 되었고, 그들은 아난다 장로를 따라 부처님을 찾아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경을 직접 독송하시면서 이레 동안 이 경을 가르치시고, 아라한 비구들로 하여금 경을 계속 독송케 하셨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는 웨살리 도시 전체가 모든 면에서 예전과 같은 정상적인 도시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업에 전념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불안과 근심이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릭차위 왕자와 웨살리 백성들은 부처님과 비구 일행에게 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 한편 부처님께서 웨살리에 머무시는 동안 백성들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다투어 공양을 올리며 여러 가지 법문을 들어 큰 이익을 얻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웨살리가 모든 면에서 정상을 되찾자 부처님께서는 다시금 라자가하로 돌아오셨다. 이때 릭차위 왕자들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는 길을 오실 때보다 더 장엄하고 화려하게 준비하여 갠지스 강가까지 모셨고, 갠지스 강에서는 강을 지키는 용왕과 여러 신들이 부처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해 맞이하였다. 또, 빔비사라 왕도 마중을 나와 있었으며, 여러 천상의 천왕들도 부처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부류의 중생들이 부처님을 환영하였는데, 특히나 천신들은 부처님 주위에 하늘나라의 꽃을 뿌리는 한편 꽃으로 일산을 만들어 부처님의 머리 위를 가리며 공경예배를 올리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갠지스 강의 용왕은 강물 위에 다섯 가지 색깔의 연꽃을 띄워 아름답게 장식하는 한편, 갖가지 향수와 꽃으로 장식된 오백 척의 배를 준비했기 때문에 갠지스 강은 장엄한 연화세계(蓮花世界)가 벌어진 셈이었다. 그리고 용왕은 금은보석으로 장식된 배를 준비하여 부처님 일행을 용궁으로 초청하였다.
이같이 갖가지 부류의 중생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부처님을 찬탄한 예는 부처님의 전 생애를 통하여 단 세 차례뿐이었다.
첫 번째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장엄한 쌍용이 나타나 부처님께 여섯 줄기의 광명의 빛을 놓으면서 사방에 물을 뿌린 일인데 이를 쌍둥이의 기적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부처님께서 삼십삼천에 가시어 어머님을 위해 아비담마를 설법하시고 지상으로 내려오신 일이고(게송 181번의 이야기 참조 http://cafe.daum.net/satisamadhi/8l9L/498),
세 번째가 웨살리 여행 중에 보이신 위신력이었다.
부처님을 왕궁으로 초청하는 것은 용왕이 비할 데 없는 큰 영광으로 여기는 일인 줄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용왕의 초청에 의하여 용궁에 가셨다. 부처님 일행은 용왕이 마련한 오백 척의 배를 타시고 용궁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설법을 하시고 공양을 받으신 다음 용왕의 전송을 받으시며 빔비사라 왕이 기다리는 강가로 나오셨다. 부처님께서는 빔비사라 왕의 영접을 받으시고 여행을 다시 시작하시어 강을 출발하신 지 닷새 만에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정사에 도착하셨다.
부처님 일행이 정사에 돌아오신 이튿날 비구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웨살리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부처님과 관련된 장엄하고 찬란하며 웅장했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들어오시어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물으셨다. 그래서 비구들은 웨살리 여행 중에 본 상상을 초월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씀드리면서 이것은 모두 부처님께서 지니신 위신력과 복력 때문이라고 찬탄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범천이나 천신의 왕들과 인간들이 모두 함께 여래를 존경하며 그들이 그같이 장엄하게 크나큰 공양을 올리게 된 것은 여래가 과거 보살 시절에 지었던 작은 공덕의 결과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신 다음 당신께서 전생에 ‘상카’라는 바라문이었을 때 지으신 공덕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한때 딱까실라(지금의 파키스탄 북부 지방) 시에는 ‘상카’라는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의 이름은 수시마였다. 이 수시마가 자라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상카는 아들을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려고 소개장을 써서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자기 친구에게 보냈다. 상카가 아들의 교육을 의뢰한 바라나시의 친구는 유명한 점성학자이자 종교와 철학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카는 그가 자기 아들을 잘 교육하고 지도해 주리라 믿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수시마는 바라나시에 가서 몇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스승이 아는 모든 지식을 다 배웠다. 그러나 수시마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배움에 목마른 나머지 스승에게 다른 스승을 천거해 주십사고 부탁했다. 그러자 스승은 그에게 이시빠따나에 계시는 벽지불 한분을 수시마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수시마는 행장을 챙겨 이시빠따나에 계시는 벽지불을 찾아뵙고 자기에게 최상의 진리를 가르쳐 주십사고 청했다. 그의 청을 받으신 벽지불은 최상의 공부는 오직 비구가 되어야만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수시마는 비구가 되었다. 비구가 된 수시마는 벽지불로부터 비구로서의 모든 법도를 배운 다음 최고의 진리를 수행하기 시작하였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성제를 깨닫고 깨달음의 지혜를 성취해 자기도 벽지불이 되었다.
수시마는 그와 같이 과거 전생에 지은 인연에 의해 벽지불이 되었으나 오래 살지는 못하고 얼마 후에 바로 반열반을 실현했다. 그러자 수시마 벽지불을 가르치신 벽지불께서는 그의 사리를 수습하여 조그만 사리탑을 세우셨다.
한편 상카는 아들을 딱까실라로 보낸 이후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으므로 아들을 한 번 보려고 바라나시로 갔다. 그러나 그는 아들 대신 아들이 벽지불을 이루고 남겨 둔 사리탑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아들 벽지불의 사리탑 위에 정중하게 예를 올리고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라앉혔다.
그는 아들의 사리탑 곁에 머물면서 탑 주위의 흙을 고르게 다지고 모래와 물을 뿌리는 등 사리탑을 관리했다. 그리고 그는 천을 준비하여 깃대에 매달아 높이 꽂고 가까운 숲에 들어가 야생화를 꺾어다 탑 주위를 아름답고 향기롭게 꾸몄다. 이렇게 그는 한때 자기의 아들이었던 벽지불을 공경 예배하면서 벽지불의 사리탑을 지극 정성으로 관리해 나갔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살의 이러한 공덕행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금생에 붓다가 되어 엄청난 이익을 얻은 것이니라. 보살이 그때 탑 주변의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른 공덕으로 큰비가 내린 것이며, 그때 꽃을 꽂아 공양한 공덕으로 거리에서 군중들이 꽃을 뿌리고 용왕이 갠지스 강을 오색 연꽃으로 장엄했던 것이며, 그때 깃대를 만들어 꽂았던 공덕으로 수많은 일산과 깃발이 여행길을 장엄했던 것이니, 이러한 모든 장엄은 여래가 과거 전생에 보살로서 쌓았던 여러 가지 공덕행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욕망을 버리고 여래에 대한 바른 믿음과 공경심으로 착한 공덕을 지을지니,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쉬지 않고 계속 실천하면 결국은 엄청난 이익으로 되돌아오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작은 행복을 버림으로써
큰 행복을 얻는다면
현자는 큰 행복을 위해
작은 행복을 버려야 한다.
참고 자료
1. 전재성 역주, 『법구경-담마파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8.
2. 일아 옮김, 『빠알리 원전 번역 담마빠다』, 불광출판사, 2018.
3. 김서리 옮김, 『담마빠다 빠알리어 문법과 함께 읽는 법구경』, 소명출판, 2016.
4. 난다라타나 스님, 위말라키타 스님 옮김, 『팔리어 직역 법구경』, 佛사리탑, 2008.
5. 무념/응진 역, 『법구경 이야기 3』, 옛길, 2008.
6. 거해 스님 편역, 『법구경 2』, 샘이 깊은 물, 2003.
7. Ācharya Buddharahhhita, 『Dhammapada』, Buddha Vacana Trust, Maha Bodhi Society, Bangalore, India, 1986.
8.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02
9. https://www.accesstoinsight.org/tipitaka/kn/dhp/dhp.20.budd.html
10. https://blog.naver.com/byunsdd/60211297463
11. http://tipitaka.wikia.com/wiki/Dhammapada_Verse_290_-_Attanopubbakamma_Vat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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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ammapada Verse 290 - Attanopubbakamma VatthuEdit
The Story of the Buddha's Former Deeds
While residing at the Jetavana monastery, the Buddha uttered Verse (290) of this book, with reference to the power and glory of the Buddha as witnessed by many people on his visit to Vesali.
Once, a famine broke out in Vesali. It began with a serious drought. Because of drought, there was almost a total failure of crops and many people died of starvation. This was followed by an epidemic of diseases and as people could hardly cope with the disposal of the corpses there was a lot of stench in the air. This stench attracted the ogres. The people of Vesali were facing the dangers of destruction by famine, disease and also by the ogres. In their grief and sorrow they tried to look for a refuge. They thought of going for help from various sources but finally, they decided to invite the Buddha. So a mission headed by Mahali, the Licchavi prince, and the son of the chief brahmin were sent to King Bimbisara to request the Buddha to pay a visit to Vesali and help them in their distress. The Buddha knew that this visit would be of much benefit to many people, so he consented to go to Vesali.
Accordingly, King Bimbisara repaired the road between Rajagaha and the bank of the river Ganga. He also made other preparations and set up special resting-places at an interval of every yojana. When everything was ready, the Buddha set out for Vesali with five hundred bhikkhus. King Bimbisara also accompanied the Buddha. On the fifth day they came to the bank of the river Ganga and King Bimbisara sent word to the Licchavi princes. On the other side of the river, the Licchavi princes had repaired the road between the river and Vesali and had set up resting places as had been done by King Bimbisara on his side of the river. The Buddha went to Vesali with Licchavi princes but King Bimbisara stayed behind.
As soon as the Buddha reached the other bank of the river heavy rains fell in torrents, thus cleansing up Vesali. The Buddha was put up in the rest-house which was specially prepared for him in the central part of the city. Sakka, king of the devas, came with his followers to pay obeisance to the Buddha, and the ogres fled. That same evening the Buddha delivered the Ratana Sutta and asked the Venerable Ananda to go round between the threefold walls of the city with the Licchavi princes and recite it. The Venerable Ananda did as he was told. As the protective verses (parittas) were being recited, many of those who were sick recovered and followed the Venerable Ananda to the presence of the Buddha. The Buddha delivered the same Sutta and repeated it for seven days. At the end of the seven days, everything was back to normal in Vesali. The Licchavi princes and the people of Vesali were very much relieved and were overjoyed. They were also very grateful to the Buddha. They paid obeisance to the Buddha and made offerings to him on a grand and lavish scale. They also accompanied the Buddha on his return journey until they came to the bank of the Ganga at the end of three days.
On arrival at the river bank, King Bimbisara was waiting for the Buddha; so also were the devas(angels) and the brahmas(archangels) and the king of the Nagas with their respective entourage. All of them paid obeisance and made offerings to the Buddha. The devas(angels) and the brahmas(archangels) paid homage with umbrellas, flowers, etc. and sang in praise of the Buddha. The Nagas had come with barges made of gold, silver and rubies to invite the Buddha to the realm of the Nagas; they had also strewn the surface of the water with five hundred kinds of lotuses. This was one of the three occasions in the life of the Buddha when human beings, devas(angels) and brahmas(archangels) came together to pay homage to the Buddha. The first occasion was when the Buddha manifested his power and glory by the miracle of the pairs, emitting rays of light and sprays of water; and the second was on his return from the Tavatimsa deva(angel) world after expounding the Abhidhamma.
The Buddha, wishing to honour the Nagas, then paid a visit to the realm of the Nagas accompanied by the bhikkhus. The Buddha and his entourage went in the five hundred barges brought by the Nagas. After his visit to the realm of the Nagas, the Buddha returned to Rajagaha accompanied by King Bimbisara. They arrived at Rajagaha on the fifth day. Two days after their arrival at Rajagaha, while the bhikkhus were talking about the amazing grandeur and glory of the trip to and from Vesali, the Buddha arrived on the scene. On learning the subject of their talk, the Buddha said to them, "Bhikkhus, that I have been revered so much by brahmas, devas(angels) and human beings alike and that they have made offerings on such a grand and lavish scale to me on this occasion is not due to the power I now possess; it is simply because I had done some small meritorious deeds in one of my previous existences that I now enjoy such great benefits". Then the Buddha related the story of one of his past existences, when he was a brahmin by the name of Sankha.
Once there was a brahmin named Sankha who lived in the city of Taxila. He had a son named Susima. When Susima was sixteen years old, he was sent by his father to another brahmin to study astrology. His teacher taught him all that should be learnt, but Susima was not fully satisfied. So, his teacher directed him to approach the paccekabuddhas who were then staying in Isipatana. Susima went to Isipatana, but the paccekabuddhas told him that he must first become a bhikkhu. Thus, he became a bhikkhu, and was instructed how to conduct himself as a bhikkhu. Susima diligently practised meditation and he soon comprehended the Four Noble Truths, acquired Bodhi nana, and became a paccekabuddha himself. But as a result of his previous kamma Susima did not live long; he realized parinibbana soon afterwards.
Sankha, the father of Susima, came in search of his son, but when he arrived he only found the stupa where the relics of his son were enshrined. The brahmin felt very much distressed at the loss of his son. He proceeded to clean up the precincts of the stupa, by clearing away grass and weeds; then he covered up the ground with sand and sprinkled it with water. Next, he went into the nearby woods for some wild flowers and stuck them on the wet ground. In that way, he offered his services and paid respect to the paccekabuddha who was once his son. It was because of that good deed done in that previous existence of his that the Buddha gained such benefits, that he was showered with such lavish offerings, that he was shown such deep reverence and great devotion on that particular occasion.
Then the Buddha spoke in verse as follows:
Matta sukhapariccaga
passe ce vipulam sukham
caje mattasukhirh dhiro
sampassam vipulam sukham(1)
Verse 290:
If by giving up small pleasures
great happiness is to be found,
the wise should give up small pleasures
seeing (the prospect of) great happiness.
1. vipulam sukham: According to the Commentary, it means the bliss of Nibbana.
첫댓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두 사-두 사-두!_()_
사 두, 사 두, 사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