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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내가 네게 명하노니
디모데 전서 6장 11절-19절
2007년 5월 25일 금요일 대한민국이 세계 5번째로 7650톤의 이지스구축함을 보유하는 쾌거를 이룩해 냈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함, 대공, 대잠능력을 갖춘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 함`의 진수식이 거행된 것입니다. 2004년 11월 건조에 착수하여 2년 6개월여의 공정을 거쳐 이날 진수하게 된 세종대왕 함은 SPY-1D(V) 레이더 등으로 구성된 이지스 전투체계를 탑재하여 1000여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 추적하여 그중 20여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뛰어난 방어 및 대응능력을 보유한 최신예 전투함입니다.
이보다 몇 주 전에 인터넷에서 “세계가 놀라는 세계 제일의 한국의 10대 무기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무기로는 먼저 TX-50이라는 초음속 고등 훈련기, 두 번째로는 K-9라는 이름의 자주포, 세 번째는 YK-2차기 전차, 네 번째는 함대함 미사일 해성, 다섯 번째는 휴대용 대공유도무기, 여섯 번째는 대형 상륙함 독도함, 일곱 번째는 KT-1 기본 훈련기, 여덟 번째는 백 상어와 청 상어라는 이름의 어뢰, 아홉 번째는 KDX-2라는 한국형 구축함, 마지막 열 번째는 현무라는 이름의 크루즈 미사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KF-21이라는 차세대 전투기도 만들었습니다.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이 언제 그런 기술을 보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계속해서 놀랄 것입니다. 핵무기도 6개월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아직 휴전 상태이기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과 전쟁 억제를 위한 수단으로 이처럼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도입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미국도 1천조에 해당하는 국방예산을 편성하여 천조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탄도 기막힌 무기를 발견하고는 이것으로 사정없이 인간을 공격하여 영락없이 자신들의 포로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성능이 얼마나 훌륭한지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다 통하는 전천후 공격용 무기라서 구태여 Up Grade 하지 않아도 그 성능은 인간을 초토화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 등을 통해서 유감없이 증명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몸을 난도질하게 만들고, 스승을 배반하게도 하였으며, 남편과 아내가 서로 양심에 가책 없이 죽이게도 하고 밤잠을 못자서 간이 녹아 버리면서도 이것을 얻으려고 목숨과 인생을 걸게도 하며, 신앙까지도 팔아 버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니 기막힌 무기라고 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사탄이 발견하고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데 이보다 더 좋은 무기가 없다고 자신하는 전천후무기는 무엇입니까? 바로 ‘돈’입니다.
사탄은 이것으로 인간을 유혹해서 순식간에 악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놈 목소리”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돈 때문에 어린 소년을 유괴하고 죽인 미해결 사건의 이야기입니다. 돈은 순식간에 냉혈인간이 되게 합니다. 파렴치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존속살인도 하게 합니다. 신앙도 명예도 자존심도 문제가 아닙니다. 마침내 예수님마저 팔게 했습니다.
이러한 돈에 화가 난 일본의 어느 사람은 1억 엔, 한국 화폐로 환산하면 10억 원이나 되는 돈을 대나무밭에 버리기도 했습니다. “돈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자살하고, 배신하고, 사기 치고, 서로 죽이고, 망하게 되는 것을 보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돈을 버려야 하겠구나! 생각했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갖다 버리는 것이 돈으로 인한 모든 불행을 해결하는 최선책입니까?
성경은 돈으로 인한 불행의 해결책은 돈에 있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돈은 여전히 우리를 망하게 하는 마귀의 첨단 공격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교회 안에 가만히 숨어들어온 거짓 선생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면서 자연스럽게 돈 이야기로 이어 갑니다.
거짓 선생들을 조심해야 할 이유는 그들의 목적은 결국 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 돈에 대해서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는 세 부류의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 세 부류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첫째 ‘우리’ 둘째 ‘부하려 하는 자’ 셋째 ‘부한 자’들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돈에 대하여 어떤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이들과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우리’라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가르칩니까?
여기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바울과 디모데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차적으로는 교회 안에 거룩한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돈을 쌓아 놓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궁색하게 길에 나가서 구걸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풍족하지 않지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내일의 양식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그날, 그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자족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란 어떤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재물이 별로 없어도 그것 때문에 마음에 풍랑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면서 영적으로 평안을 누리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만족을 누리려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인생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순식간에 쫄딱 망했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욥이 욥기 1장 21절에 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라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이며, 인생이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가는지 아는 성숙한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인생을 똑바로 바라본 신앙인의 고백인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한마디로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여유 있게 살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날마다 나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나 자신이 공중에 나는 새보다, 들에 피는 들풀보다 분명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과 훌륭한 신앙인들 대부분은 ‘우리’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행복과 감사는 많이 가졌다고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하는 사람의 전유물인 것입니다.
돈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돈으로 사랑과 건강과 잠과 지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우리’들은 신앙생활에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한마디로 돈에 미쳐서 날마다 돈돈하면서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탄이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모두가 교회 밖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뜻밖에도 교회 안에 그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는 믿되 돈에 대해 애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부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부하려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0절 말씀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경고하십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뿌리 즉 Root는 무슨 뜻입니까? 원어로 “흐리게 하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결국 돈은 이성을 흐리게 하고, 신앙을 흐리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분들은 결국 믿음을 떠나게 되고, 그러므로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죽이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순식간에 하나님의 위치에 돈을 올려놓습니다.
그들은 물질, 사람, 하나님의 순으로 물질을 섬기는 황금만능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그리스도인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으며, 그리스도인이라면 갖으면 안 되는 직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나쁜 수단과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것을 절대로 하나님의 복이 아닐 것입니다. 참된 복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다에 배가 떠 있습니다. 바닷물이 없으면 배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나 배에 구멍이 생기게 되면 배에 물이 차오르고 마침내 침몰하게 됩니다. 그렇듯이 인간이 살아가려면 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 자신도 침몰하게 됩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마십시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잘 관리해야 할 것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하나님이 물질의 축복을 주셔서 비교적 여유 있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깨끗하게 신앙생활을 하여 물질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들과 오늘날의 ‘부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주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마음을 높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이 많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게 됩니다. 돈의 위력을 과대평가하면서 자기가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또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구원을 베풀어 줄 수 없는 재물이나, 돈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돈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돈에 대해 섣부른 기대를 하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하거나 물질이 없는 것이 죄는 아니듯 물질과 부도 반드시 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황금만능주의가 죄이듯 물질을 경시하는 풍조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돈과 재물을 다루어야 할 것입니까?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1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뉴욕의 시민들은 수돗물을 공짜로 마십니다. 록펠러라고 하는 부자가 오래전에 이미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록펠러는 무슨 이유로 뉴욕 시민에게 수돗물 값을 지불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록펠러는 엄청나게 돈을 벌었습니다. 그 당시에 돈 많은 사람의 대명사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 보았더니 의사는 ‘폐암’이라고 진단하면서 앞으로 6개월도 살 수 없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낙심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의 낙심한 모습을 본 록펠러의 어머니는 록펠러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들아! 네가 지금까지 너만을 위해 돈을 벌었으니, 이제는 남을 위해 베풀며 남은 인생을 살기 바란다.” 그 후 록펠러는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서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아낌없이 썼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불과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그임에도 불구하고 죽기는커녕 무려 93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록펠러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비결은 19절에 있습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위하는 것이니라.”
남을 위해 자기를 아끼지 않는 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위하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잠언 19장 17절에 “가난 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 과부 된 자를 돌보아야 하실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들을 돌보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갚아 주심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19장 16절 이하에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청년은 아주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께 나아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데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2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돈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누어 주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이 주님께서 부자들에게 바라는 마음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계십니까? 그러면 나누어 주십시오. 이것이 이웃사랑의 첫걸음입니다.
어떤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에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러워할 뿐입니다.
그러나 돈을 바르게 쓰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돈을 바로 다루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을 지키십시오.
돈이 없다고 불쌍하거나 불행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그러나 돈밖에 모르고, 돈밖에 없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돈을 벌 때 “이렇게 버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반드시 생각하십시오.
돈은 인간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돈에 영혼을 팔지 마십시오.
그것을 이기려면 자족하십시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십시오.
돈을 쓸 때 “이곳에 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반드시 생각하십시오.
개처럼 벌어서 결코 정승같이 쓸 수 없습니다. 신앙인처럼 벌어서 신앙인답게 쓰십시오.
돈을 가장 멋지게 사용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데 기쁘게 사용하시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으로 인도하는 찬양의 교회 귀한 형제자매들이 되시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