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온 누리가 하느님의 시
김주하 (시인)
윤동재 동시집 『씨앗 두 알』
창비
지난 오월 초순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권정생 선생 사시던 집을 찾아갔더니
마당의 질경이들이 소복소복 모여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읽고 있다가
나를 보자 책장을 덮고 반겨 주었습니다
질경이들은 해마다
제 몸을 불려 권정생 선생이
질경이 국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해 드렸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한 권 한 권
읽고 또 읽고 읽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을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올 때
질경이들이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다시 크게 소리내어 읽는 소리가
남안동 나들목까지 따라왔습니다
중앙고속도로 단양 휴게소에서 쉴 때
거기까지도 따라왔습니다
밤늦게 서울 우리 집에 들어서니
질경이들이 나보다 먼저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질경이들은 나를 다시 보자마자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강아지똥처럼 살아라 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맨날 강아지똥처럼 살아라
습니다
―「질경이」 전문
윤동재 시인은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원과 고려대학교 강사를 역임하고 1982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집 『재운이』 『서울 아이들』 『윤동재 동시선집』, 시 그림책 『영이의 비닐우산』, 시집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마다 좋은 날』 『대표작』, 학술서『한국현대시와 한시의 상관성』 등을 썼다.
윤동재 동시집 『씨앗 두 알』 은 2023년 네 번째로 상재한 동시집이다.
독자는 윤동재 시인의 이력을 참작하여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시인의 작품 공간에 흠뻑 빠져서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윤동재 시인의 동시집은 2부로 나뉘어 졌다. 동시집 속의 46편은 ‘동심’을 시의 표제로 삼아 사람들이나 동식물과 모든 사물들이 한마음이 될 수 있다고 느끼고 시를 써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었다. 윤동재 시인은 어린 아이들과 만나면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는 언제라도 마음을 열어 그들과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다.
윤동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는 동시여야 한다. 동시가 아닌 시는 시가 아니다. 동시는 동심에서 나온다. 동심이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이기 때문이다.
동시와 살고 동시가 되자. 동심을 잃으면 우리에게 꿈이 없다. 동심을 잃으면 우리에게 앞날이 없다. 동시와 살고 동시가 되자. 동시와 살면 빛이 있다. 동시와 하나 되면 길이 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동시와 살고 동시가 되자. 동시와 살고 동시가 되자.”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인 피카소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고 한다. 피카소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서 얼굴에 나타나는 것들을 그려야 할 의무가 있는지, 사람의 얼굴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사람의 얼굴 뒤에는 과연 무엇이 숨어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였다.
윤동재 시인의 동시집을 읽으면서 독자는 지난 세월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새로운 동시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었다. 몇 번이나 감탄을 하고 놀라움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여러 편의 동시집을 낸 윤동재 시인의 모든 동시들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느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윤동재 시인에게서 나는 어린아이 보다 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동심을 찾을 수 있었다.
윤동재 시인도 피카소처럼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위하여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과 노력을 하였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윤동재 시인이 동시를 즐겨 쓰고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인의 어린 시절은 순진하고 티 없이 맑은 심성이 가득하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성경의 말씀이 있다. 어린 아이를 떠올리면 천진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동심과 시인의 시 세계는 오직 밝고 맑은 동심의 세계에서 시작되며 착하고 진실하며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휴머니즘으로 돌아온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는 자아와 많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화해가 추구되는 가운데 동심에의 지향은 약자에 대한 사랑과 깊은 관심을 갖는 일이다.
특별히 나의 마음에 와 닿은 동시는 윤동재 시인의 동시집에서 여러 편이다. 그 중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동시는 「질경이」 이다.
뜰 안을 거닐다 보면 질경이들이 발밑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을 가끔 본다. 아무 생각 없이 밟고 지나갔는데 윤동재 시인은 질경이들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과 질경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가 「강아지똥」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강아지똥」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쓸모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강아지똥이라도 민들레꽃을 아름답게 키워내는데 소중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윤동재 시인의 「질경이」는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을 찾아간 시인에게 맑고 순수한 동심을 보여주는 최고의 장면이다. “마당의 질경이들이 소복소복 모여/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읽고 있다가/ 나를 보자 책장을 덮고 반겨 주었습니다” 질경이들이 재미있게 읽는 동화라서 어린아이들이 읽는다면 얼마나 더 재미가 있고 흥미로울지 짐작이 간다.
“질경이들은 해마다/제 몸을 불려 권정생 선생이/질경이 국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해 드렸는데/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한 권 한 권/읽고 또 읽고 읽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튼튼하게 자란 질경이들은 권정생 선생이 건강하게 지내시게 음식을 드렸는데 이제는 그분이 남겨주신 동화를 읽는 것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봅니다.
윤동재 동시집 『씨앗 두 알』 이 오래도록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시집이 되어서 읽혀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