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동초 그늘 아래서
나금숙 (시인)
권선옥 시집 『밥풀 하나』
이든북
아름다운 인동초 그림을 시작으로 시집은 시작되고 있었다. 인동초의 꽃말 중에 ‘사랑의 인연’이라는 꽃말도 있다는데 그의 시들은 시작부터 닿지 않는 인연을 노래하고 있다. 시의 본령이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있다면 권선옥 시인은 그것을 잘 체득하고 있다. 시집의 여러 시들에서 의도했으나 이루어지지 않는 인연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들이 나타나 있다.
불갑사 상사화
죽어서도 우리 다시
만나지 못할까.
안개처럼 소낙비처럼
우리 다시 죽고 죽어도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려나.
세상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게
깊은 땅속 아늑한 어둠 속으로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간다.
백 번을 죽어 만나지 못하면
천 번 죽고
그래도 만나지 못하면
만 번을 죽고,
나는 죽고 또 죽어
기어이 너를 다시 만나리라.
―「불갑사 상사화」 전문
앞 페이지를 차지한 여러 시들이 이어지지 않은 인연에 대한 아쉬움이다. 특히 “불갑사 상사화”에서, 백 번을 죽어 만나지 못하면 천 번 죽고/ 그래도 만나지 못하면 만 번을 죽고,/ 나는 죽고 죽어 기어이 너를 만나리라/ 고 노래한다. 어찌 이런 독한 그리움이 있을까? 이 시 제목이 상사화이기 때문에 연인을 그리워하는 시로 일단 읽힌다. 그러나 깊은 땅속 아늑한 어둠 속으로까지 가서 만나려고 하는 연인은 실은 밖에 존재하는 상이한 존재에 대한 갈구가 아니라 자기 안에 내재된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읽힌다. 죽기 전까지 참된 나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 안타까움을 어찌 말로 다할까? 그러므로 시인은 백 번 죽고 천 번을 죽고 심지어는 만 번을 죽어 너-나를 만나겠다는 것이다. 사랑의 실제를 사실 타자와 나와의 합일이라고 볼 때 이 시가 찾는 세계는 진정한 자아 찾기로 읽을 수 있어서 그 진지한 탐구와 열정이 우리에게도 나이를 잊게 한다.
날아오른다거나 떠난다는 생각은
아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하늘을 향해 나무가 솟아오를 때에도
덩달아 하늘을 엿보지 않았다.
나부끼면 나부끼는 대로 나부끼고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고
그저 발밑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나무가 자라나는 만큼만 키를 키웠을 뿐이다.
봄이 되면 함께 몸집이 불어나고
나무가 앙상하게 뼈만 남을 때에는
같이 옷을 벗어 서리를 맞았다.
새싹의 부드러운 손을 잡아 보기도 했고
꽃의 얼굴을 쓰다듬는 날도 있었지만
나무의 키가 자랄수록
더러는 시내를 건너야했고 또 언젠가는
얼음웅덩이에 빠진 발이 시렸다.
그래도 떠돌지 않고 공꽁
묶여 살기로 했다.
오, 사랑하는 나의 나무여!
밤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아침마다 나는 또다시 네 발 아래
칭칭 몸을 묶는다.
―「그림자」 전문
시집의 시들이 잔잔하고 담담하게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노래하고 있는데, 권선옥 시인 이렇게 담백한 노년을 맞는데 큰 자양분이 되고 기틀이 되어 준 생각을 노래한 시를 발견했다. 모든 세상이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지금, 자신을 감추고 은밀하게 존재하는 법을 터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림자가 자신의 현 존재임을 성찰하고 있다. 덩달아 하늘을 엿보지 않고 그저 발밑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바깥의 외양인 나무의 키가 자랄수록 떠돌지 않고 그 자리에 꽁꽁 묶여있는 것이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그냥 두었을 때는 저절로 남을 밟고 드러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을 꽁꽁 묶어두는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죽은 생물이 그림자를 가질 수 없듯이 그림자는 그림자 단독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와 더불어 웃고 울고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 깨닫게 해 주는 시였다. 시를 쓰는 시인들은 스스로 알다시피 자신과 세상의 모든 것에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그 호명이 얼마나 눈물겹고 의미 있는 것인지 이 시집은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칠십 여 편의 시를 모아놓고 “밥풀 하나”라고 이름 붙인 건권선옥 시인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 그러나 실지로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에 대한 심성과 안목을 엿보게 하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