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3[일루전ILLUSION]은 매주 수~금 세 차례 게시 연재해드립니다. 이 소설은 해방공간의 대구를 배경으로 성악가이면서 공산주의자인 유부남과 목사의 딸이면서 여학교 국어교사인 처녀가 불륜의 관계가 되어 신앙을 버리고 애인의 사상을 좇아 함께 반미군정 사회주의 운동, 노조 운동 등을 벌이는 사상투쟁을 하면서 애정행각을 벌입니다. 대구 십일폭동에 깊이 관여하다가 상동 중석 광산의 파업을 주도하고 다시 대구로 잠입해 들어옵니다. 도피중 완전히 넉다운되어 버린 여자는 도중에 팔공산 아래 작은 개척교회에 몸을 의탁하고 있고, 남자는 대구에 잠입해 지하로 흩어진 남로당의 도당 지도부에 접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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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전ILLUSION
제2부 은신 (제24회)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경찰이 그놈을 고문해서 우리의 정보를 캐내면서 불면 놓아주겠다는 조건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놈이 적에게 무슨 정보를 제공했는지 그게 궁금하고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소리를 들은 명심은 입 가에 빙긋 웃음을 띄었다. 무슨 의미였을까?
그렇다는 것인지, 순진하다는 뜻인지 아리송했다.
그렇게 만나봤던 은명심은 다음 날 다시 찾았을 때는 소식도 없이 자신을 감추어버렸다. 물론 도당에는 전혀 알리지 않은 채. 그것은 이 지역에 나타날 때도 알리지 않았고, 도당에 와서 인사한 적도 없었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그저 중앙당에서 찾아가 뵙도록 하라고 해서 찾아갔었고, 그 인간을 그곳으로 데려오라고 해서 데리고 갔었을 뿐이다.
중앙당에서 그에 대해서 매우 정중한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정중하게 대했지만 그의 정체는 밝히지 않았다. 그를 중앙당에서 ‘심명은’이라고 해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본명을 뒤집어 쓴 가명이라는 것은 나중에 가만히 알려주어서 알았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반당분자는 은명심의 정체와 함께 그들을 둘러싼 사건의 전모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내용으로 알게 된다.
양력으로 이월 초, 정월대보름을 며칠 앞두고 있을 즈음, 또 다른 장소인 트에서.
거기 대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양수와 사공영춘을 포함해서. 그런데 그 나머지 사람들은 낯선 이들이었다. 물론 도당의 당원일터이지만 그런데도 용철은 모인 사람들이 무슨 소임을 맡은 누구인지 소개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관행인지 원칙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함께 같은 일을 하는 이들 이외의 당원들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그들의 활동과 조직 방식이었다. 소위 종적 관계만 알고, 횡적 관계는 알려고 하지도 말고 알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소개하지 않는 사람을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자기 소개도 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서 용철이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정보라고는 말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처형된 당원과 은명심에 대한 신분을 밝혔다. 비밀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것은 말하지 않고 아주 기본적인 몇 마디만 말한 것이다.
즉, 명심은 소련 군정에 딸린 정보국의 요원이었고, 처형된 반당분자는 군정과 경찰의 스파이로 도당에 프락치로 숨어든 존재였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에 체포되어 있는 청년 당원도 마찬가지였다. 폐결핵 환자가 그런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기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