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자의 결론
틀은 아무리 새롭게 만들어 봐야 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정의와 사랑을 외치는 자들이 불법과 착취를 서슴치 않는다. 평등을 외치는 자들이 특권을 즐긴다. 틀은 항상 있어 왔고 틀의 목적과 취지는 항상 좋았다. 다만 그 틀을 운용하는 자들이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달라서 틀이 잘못된 것으로 비난 받는 것이다. 그리고 새 틀을 만든다는 자들도 구악을 일소한다면서 더 나쁜 신악을 만들어 온 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사람이 진정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고서는, 인류를 위한 교회라는 소망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논리를 보면,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예언자들이고 선지자들이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성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돌맞을 각오를 하면서 진정한 신 앞에 그들을 바로 세워주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보인다. 신에게 참으로 솔직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보일 뿐이고 그렇게 포장할 뿐이다.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고 현대인을 위한다는 그들의 공언과는 달리 그들은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와 멀어지는 군중들을 양산할 뿐이다.
결국은 이들은 자기들의 철학과 인생관을 어떻게든 퍼뜨려서 동조자들과 아류들을 얻고 교회를 흩뜨리고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 발기고 하나님을 깊고 깊은 존재의 바닥으로 밀어넣는 ‘왕마귀’들일 뿐이다. 이 ‘왕마귀’라는 말은 90이 다 된 할머니가 신앙생활 잘 하던 딸이 이런 사상들을 접하면서 변질되는 것을 보며 그 원흉 격에 해당하는 철학교수 양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딸의 친구들은 한신 계통 또는 민중신학을 구가하는 유명 교수들이었다. 어린 소녀 같이 아름다운 신앙이 한 철학교수 양반을 만나 함께 사업하며 로빈슨이 말하는 신앙으로 변하고 말았다. 나를 위시해서 많은 순수한 젊은이들이 이 철학교수를 만나고서는 교회와 성경을 멀리하고 결국은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망나니들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구가하는 자유는 사람을 성숙시킨다는 미명하에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죄를 마음껒 짓는 자유로 전락하고, 인생을 어둠과 혼돈과 공허로 채우게 하는 왕마귀의 자유일 뿐이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유명 대학의 학위를 받아 주류 교단의 신학교의 교수가 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목사가 되어 오늘날 교회들을 어지럽히고 있다. 교회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들이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바리새적이고 보수적이기에 거기에 빌붙어 살기 위해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그들은 겉보기에 신앙 좋고 지적으로 매우 탁월해 보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들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성경 해석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의 지혜로 무장한 신학이 아니라, 성령의 지혜로 채워진 신학이어야 한다. 성경을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의 계시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고, 그 진리의 말씀을 내 삶의 기준과 원칙으로 살기를 힘쓰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대로 성령의 인도와 조명을 받으며 성경대로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들은 신을 깊이에서만 찾고, 높이와 넓이와 인격성과 완전 초월성과 타자성은 부인하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넘을 수 없는 구분을 무너뜨리면서, 현대판 신학적 범신론임을 숨길 수 없다.
로빈슨은 신에게 솔직한다고 하는데, 그가 말하는 ‘신’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고,
사탄이고 미혹의 영이고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일 뿐이다.
그는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르고 있다.